[작가]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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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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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마디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기회는 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그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기회의 기차'가 내 앞을 지날 때 문고리를 잡고 기차에 뛰어오를 수 있다.

1949년 전주에서 9남매 중 8번째 막내딸로 태어났다. 전주여고 졸업 후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 서울 중구청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1972년 독일 파견 간호보조원으로 독일 생활을 시작했다. 3년간 정형외과 병동에서 거구의 남성 환자들을 돌보면서도 공부에 매진, 야간대학에서 어학공부를 하고 ‘75년 쾰른대 대학예비과정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교육학 석사와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강단에 서며, 쾰른대학 6백년 역사에서 '전공과목을 강의한 최초의 외국인 여성'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독일 통일 직후인 1991년 독일전문가로 당시 외무부에 특별채용 돼 주독일 한국대사관에서 1등서기관 부터 공사까지 역임했다. 2005년 9월 세르비아대사로 임명되었을 때, 외교부 당국자는 "세르비아를 포함한 발칸제국의 정치·경제·역사·문화에 대해 외교부 내에서 누구보다 해박한 인물"이라고 그의 전문성을 평가했다. 세르비아 대사 재직 시, 유일한 동양 여성 대사로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벌이며 ‘스타 대사’로 현지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했다.

공사 재직 시 '독일의 상징 베를린'이란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했고, 대사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독일통일의 사회적 성과' '독일통일이 한국에 주는 교훈' 등의 논문을 발표하며 왕성한 학술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30년 이상 유럽에서 활동하면서 독일통일과 유럽의 번영을 관심 깊게 지켜본 그의 바람은, 우리나라의 분단극복과 선진국 진입에 기여하는 것. 독일 유학중 만난 미국인 남편 헤퍼난 교수는, 외교관 아내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외조한 지지자인 동시에 학문의 동반자로 현재 보스턴에서 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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