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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 : Lady Ga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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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가가,Stefani Joanne Angelina Germanotta
1986년 3월 28일, 미국 뉴욕에서 이태리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스테파니 조안 안젤리나 저마노타(Stefani Joanne Angelina Germanotta)는 음악에 재능을 많이 간직한 아이였다. 4살 때 피아노에 관심을 보인 그는 13살 때 작곡을 시작해 14살에는 작은 무대에 서면서 가수로서의 경험을 축적했다. 뉴욕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한 스테파니는 학교를 중퇴하고 전문 작곡가로 음반사에 취직했으나 빛을 보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멤버로 있었던 록 그룹의 미래 역시 불투명했다. 밴드를 탈퇴한 스테파니는 음악 노선을 팝으로 궤도수정 해 롭 푸사리라는 음반 제작자를 만나는데 그는 이탈리아 피가 흐르는 이 아가씨의 노래를 듣고 퀸(Queen)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가 떠오른다며 퀸의 노래 ‘Radio Ga Ga’에서 힌트를 얻어 예명을 하사했다. 레이디 가가. 롭 푸사리는 훗날 레이디 가가의 데뷔앨범에 수록된 ‘Disco heaven’과 ‘Beautiful, dirty, rich’를 공동 작곡자로 음반 크레디트에 오른다. “퀸과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는 내 인생의 열쇠 같은 가수들이다. 그들을 알기 전까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라고 밝힐 정도로 퀸과 데이비드 보위,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마돈나(Madonna)에게 경도된 레이디 가가는 2008년에 첫 음반 < Fame >을 공개했다. 이 앨범에 대해 “사람들이 명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담았다”고 설명한 레이디 가가는 첫 싱글 ‘Just dance’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그에게 벼락스타덤을 선사했고 후속 싱글 ‘Poker face’ 역시 넘버원을 차지해 ‘레이디 가가 신드롬’을 양산했다. < Fame >은 앨범차트 4위까지 상승했고 ‘Just dance’는 51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댄스 레코딩 후보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스테파니 조안 안젤리나 저마노타라는 길고 두려운(?) 이름으로 태어난 레이디 가가는 글램록 아티스트의 화려한 섹슈얼리티와 거침없는 자신감 그리고 확실한 멜로디 라인을 가지고 있는 쉽고 대중적인 노래로 대중 속으로 들어갔다. 그것도 매우 성공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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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 : Kylie Min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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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리 미노그
카일리 미노그(Kylie Minogue),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88년 데뷔앨범 < Kylie >를 들고 나타난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에서 이젠 성숙미가 물씬 풍기는 지나칠 정도의 섹슈얼리티로 승부를 건다. 호주 멜버른 출신의 그녀는 가수 데뷔 이전에 TV 탤런트로 명성을 쌓아 호주를 비롯하여 영국까지 활동 영역을 확대했다. 우연한 기회에 자선 공연에서 불렀던 리틀 에바(Little Eva)의 ’Loco-motion’이 행운을 안겨 줄 것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상품적 가치를 발견한 지역 음반사에 의해 이 곡은 호주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물론 그녀의 외모와 연기자로서의 명성이 한 몫 했을 것이다. 지역 음반사는 당시 영국 최고의 제작진으로 손꼽히던 유명한 3인조 SAW(스톡, 아이트켄 앤 워터맨)에게 카일리를 소개했고 이들은 신인이나 다름없는 여배우에게 데뷔곡 ’I should be so lucky’를 주어서 영국차트 1위에 오르는 예상밖의 결과를 빗어냈다. 그러자 SAW는 만사를 제치고 그녀의 데뷔앨범 제작에 몰두했으나 당시 카일리는 단지 노래만 부르는 앵무새 역할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I should be so lucky(미국 28위)’는 고향인 호주와 영국에서 동시에 차트 정상에 섰고 유럽 전역을 휩쓸고 다니며 싱글 판매가 100만장을 넘어서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유럽지역의 인기를 바탕으로 미국시장에도 진출, ’The loco-motion(3위)’으로 다시 한번 성공을 반복한다. 1960년대 리틀 에바(Little Eva), 1970년대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Grand Funk Railroad)에 의해 차트 정상에 오른 바 있는 미국의 골든 레퍼토리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여세를 몰아 ’Its no secret(37위)’가 미국에서 히트했고 영국에선 ’Got to be certain’, ’The loco-motion’, ’Je Ne Sais Pas Porquoi’등 3곡이 연속해서 2위에 오르는 줄 히트를 기록하며 앨범 차트도 정상을 움켜쥐었다. 외모에 딱 어울리는 경쾌하고 달콤한 댄스곡들을 수록한 기획의도가 적절히 맞아떨어진 셈이다. 이제 그녀에겐 탤런트라는 명함 대신 가수라는 직함이 어울리게 되었고 가수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자신을 키워준 인기 TV 시리즈 < 이웃들 >의 출연도 그만두는 강수를 띄웠다. 그 아쉬움을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제이슨 도노반(Jason Donovan)과 함께 한 발라드 ’Especially for you(영국 1위)’로 달랬고 1989년 두번째 앨범 < Enjoy Yourself >도 SAW의 진두 지휘 아래 제작, 발매했는데 분위기는 전작에 비해 다를 것이 없었다. ’Hand on your heart(영국 1위)’, ’I wouldn’t change a thing(영국 2위)’가 히트했고 ’Tears on my Pillow’가 자신이 직접 출연한 영화 < 비행자들 >에 삽입되면서 뒤늦게 영국차트 정상에 올랐다. 1990년 세 번째 앨범 < Rhythm Of Love >은 송 라이터로서 앨범 제작에도 참여했고 미국 출신의 유명 프로듀서를 영입하여 궁극적으론 미국시장의 재진출을 노렸으나 정작 미국에선 앨범이 발매되지도 못한 채 영국에서만 4곡의 싱글을 Top 10에 진입하는 체면치레로 그치고 말았다. 1991년에 발매된 4집 앨범 < Kylie Minogue >는 버블 검 음악에서 탈피해 성숙한 사운드와 섹시한 이미지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 앨범 수록곡 가운데 6곡을 공동으로 작곡하는 열의를 보였다. 하지만 변변한 히트곡 하나 없는, 음악인생 최대 위기를 맞았다. 결국 1993년 인디 레이블과 계약을 맺으며 음악생활을 이어가 1994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앨범 < Kylie Minogue >를 발매한다. 부단히 체질 개선에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고 마치 마돈나(Madonna)의 음악을 듣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신비로운 댄스곡 ’Confide in me’가 유럽지역에서의 인기를 회복해주는 듯 했지만 가시적 성과는 없었다. 이어지는 < Impossible Princess > (1997년) 앨범에선 시대의 주류로 자리매김한 테크노 사운드를 채택했고, 본국인 호주에서 가진 < Impossible Princess Tour > 실황을 앨범으로 제작한 < Intimate & Live >앨범을 발매, 호주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였는데 여기선 이례적으로 펑크 밴드 클래시(Clash)의 ’Should I stay or should I go’를 리메이크했다. 1998년 인디 레이블에서 마저 해고된 그녀는 더 이상 설 곳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댄스라는 생명력이 짧은 음악을 하면서 30살을 넘긴 나이는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오뚝이처럼 일어서 EMI를 통해 복고풍의 디스코 댄스곡들로 가득한 < Light Years >(2000년)앨범을 발표했고 화끈하고 자극적인 뮤직비디오들을 통해서 ’섹스 심벌’의 이미지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폴라 압둘(Paula Abdul)과 함께 곡을 쓴 첫 싱글 ’Spinning Around’로 영국을 비롯한 8개국 차트를 석권하며 마돈나(Madonna)와 더불어 영국차트 역사상 1980, 1990, 2000년대에 걸쳐서 정상을 차지하는 가수가 되었다. 계속해서 ’On a night like this(2위)’, 로비 윌리암스(Robbie Williams)와 함께 한 ’Kids(2위)’, ’Please stay(10위)’, ’Your disco needs you’등이 잇따라 히트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재기에 성공한 그녀에게 시드니 올림픽의 폐회식 공연 무대가 마련되고 아바(Abba)의 명곡 ’Dancing queen’과 자신의 히트곡 ’On a night like this’를 4억 시청자 앞에서 불렀다. 고삐를 늦추지 않고 2001년 봄 성공적인 투어 활동을 벌였고 이는 BBC가 선정한 그해 최고의 투어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같은 해 10월 발표한 미드 템포의 댄스곡 ’Can’t get you out of my head’는 부활한 명성에 가속도를 붙이면서 영국을 비롯한 17개국에서 정상에 자리에 등극하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어 발표된 새앨범 < Fever >도 순풍에 돛 단 듯 차트행진을 거듭했고 올해 초 제21회 브릿 어워즈(Brit Awards)에선 최우수 국제 여자가수상과 최우수 국제 앨범상을 수상, 마침내 영국의 최고인기 여가수자리를 탈환했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그토록 열망하던 미국시장의 재진입에 성공했다는 점으로, 앨범은 차트 3위에 올라 가수 데뷔이래 최고의 성적을 올렸고 싱글 ’Can’t get you out of my head(7위)’는 ’The loco-motion’ 이후 14년 만에 미국차트 Top 10에 진입하는 감격을 누렸다. 영국에선 발빠르게 두번째 싱글 ’In your eyes’가 3위에 올랐고 ’Love at first sight’를 다음 싱글로 준비하고 있다. 귀여움으로 1980년대 후반 전성기를 누린 후 섹시함으로 재무장하여 2000년대 초반 또 한차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