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소개(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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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 : Wilhelm Furtwangler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지휘 : Wilhelm Furtwang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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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푸르트뱅글러
1886년 1월 25일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지휘자·작곡가·피아니스트로, 20세기 전반부를 대표하는 지휘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여 일찍이 음악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라인베르거에게서 작곡의 기초를 배웠고, 실링스의 제자가 된 열다섯 살부터 지휘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06년 뮌헨의 카임 관현악단을 지휘하면서 공식 지휘 무대에 데뷔했다. 1917년 훗날 그와 함께 오랜 세월 동고동락하는 오케스트라가 되는 베를린 필하모닉을 처음 객원 지휘했다. 1922년 아르투어 니키슈의 후임으로 베를린 필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었고, 1927년에는 빈 필하모닉의 수석 지휘자에 올랐다. 1934년 ‘힌데미트 사건’으로 나치 당국과 마찰을 빚고 베를린 필과 베를린 국립오페라 지휘자 직에서 사임했으나, 괴벨스와 타협한 후 독일에 남기로 결정한다. 1945년까지도 베를린 필과의 연주를 계속하다가, 같은 해에 스위스로 탈출하여 종전을 맞았으며, 1946년 비非나치화 위원회에서 ‘단순 가담’ 판정을 받았다. 그 후 지휘를 재개해 유럽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 및 녹음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고, 1952년에는 베를린 필의 종신 예술 감독이 되었다. 1954년 11월 30일,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지은 책으로 이 책 『음과 말』과 유고집 『유산Vermachtnis』이 있다.

지휘 : Claudio Abbado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지휘 : Claudio Abb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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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아바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밀라노 주세페 베르디 음악원에서 지휘, 피아노, 작곡을 배웠다. 이 음악원을 졸업한 다음 빈에서 한스 스바로프스키에게 지휘를 배웠다. 1958년에 미국의 탱글우드에서 쿠세비츠키 상(賞)을 받았다. 1960년에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의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열린 갤러콘서트에서 스칼라 오페라 극장에 데뷔했다. 1963년에 뉴욕에서 열린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지휘자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65년 8월 14일에, 빈 필하모니를 지휘하여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데뷔했다. 그 때의 작품은 말러의 [교향곡 제2번]이었다. 1967년에 처음으로 스칼라 오페라 극장에서 시즌 최초의 공연을 지휘했다. 작품은 벨레니의 오페라 [카풀레티와 몬테키]였고, 1968년의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랴의 이발사]를 지휘했다. 그 해에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의 수석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1970년에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를 스칼라 극장에서 지휘하였다. 이 작품은 그 뒤에 런던의 코벤트 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이나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도 지휘하였다. 1971년에 빈 필하모니의 수석 지휘자로 지명되었다. 뮌헨 음악제에 처음으로 참가하여, 베르디의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를 지휘하였다. 1972년에 베를린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의 첫날을 지휘하였다. 이해에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의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올림픽 기간 동안 뮌헨에서 스칼라 극장의 오케스트라와 코러스를 지휘하여 베르디의 [레퀴엠]과 오페라 [아이다]를 연주한 것도 1972년의 일이다. 1973년에 빈의 모차르트 협회에서 모차르트 메달을 그에게 주었다. 이해에 클리블랜드 관현악단 및 필라델피아 관현악단과 함께 미국을 연주 여행하였고, 빈 필하모니와 함께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일본과 중국도 연주 여행하였다. 이때가 아바도의 첫 한국 방문이었다. 더욱이 이 해에는 런던교향악단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1974년에는 아바도로서는 최초의 모차르트의 오페라인 [피가로의 결혼]을 스칼라 극장에서 지휘하였다. 이렇게 해서 아바도는 착착 그 활동의 무대를 넓혀 온 셈인데 그 활동 무대 확대 방식은 용의주도하였다. 이것은 레퍼토리의 선택 방식에서도 볼 수 있다. 이제까지(1981년 봄) 아바도는 이탈리아의 지휘자이고 이탈리아 오페라의 메카로 이름난 스칼라 극장의 음악 감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푸치니에 의해 대표되는 베르디 이후의, 일반적으로 베리스모 오페라라고 불리는 오페라를 조심성 있게 피해 왔다. 한편으로 프로코피예프나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에 대하여 적극적인 관심을 표시하고, 더욱 루이지 노노의 신작 초연을 종종 하기도 했다. 이러한 것으로부터 아바도의, 굳이 말한다면 지성파(知性派)라고 할 수도 있는 지휘자로서의 본연의 자세가 떠오를 것이 틀림없다. 사실 아바도의 연주는 열기에 가득 찼다든가 또는 정열적이라든가 하는 형용이 걸맞지 않으며, 오히려 지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고 하겠다. 그의 연주는 언제나 명쾌하고, 조금의 애매모호함도 없으며, 그 작품의 양식적인 아름다움을 뚜렷이 떠오르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휘자로서는 아직도 젊다고 할 수 있는 아바도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마 그 정교하고 치밀함을 잃지 않으면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풍부한 표현일 것이다. 이제까지의 아바도는 문자 그대로의 수재 코스를 걸어 왔고 충분한 성과를 올렸다. 1989년 정식 상임 지휘자가 없는 빈 필하모니의 준상임 지휘자로 있었으며, 1989년 카라얀의 사망으로 그의 휘하였던 베를린 필의 제5대 음악 감독으로 취임해 세계적인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