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소개(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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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 :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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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안재찬
시인이자 명상가.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바 있다. 1980~1982년까지 박덕규, 이문재, 하재봉 등과 함께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했으나 1983~1990년에는 창작 활동을 중단하고 구도의 길을 떠났다. 이 기간 동안 명상서적 번역 작업을 했다. 이때 『성자가 된 청소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티벳 사자의 서』, 『장자, 도를 말하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등 명상과 인간의식 진화에 대한 주요 서적 40여 권을 번역하였다. 1988년 '요가난다 명상센터' 등 미국 캘리포니아의 여러 명상센터를 체험하고, 『성자가 된 청소부』의 저자 바바 하리 다스와 만나게 된다. 1988년부터 열 차례에 걸쳐 인도를 여행하며, 라즈니쉬 명상센터에서 생활해왔다.

그의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1989년~1998년 동안 21번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시인은 「시로 여는 세상」 2002년 여름호에서 대학생 5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인에 윤동주 김소월. 한용운과 함께 이름을 올렸으며 명지대 김재윤 교수의 논문 설문조사에서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 10위, 21세기 주목해야할 시인 1위, 평소에 좋아하는 시인으로는 윤동주시인 다음으로 지목된다. 저작권 협회의 집계 기준으로 류시화 시인의 시는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낭송되는 시로 손꼽히기도 한다.

류시화 시인의 작품은 문단과 문예지에도 외면을 당하기도 했는데 안재찬으로 활동했을 당시, 민중적이고 저항적 작품을 지향했던 당대의 문단과는 달리 신비주의적 세계관의 작품세계로 인해 문단으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외계인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적극적인 현실참여를 주장하고 있는 민중주의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당시의 문단에서 현실 도피의 소지를 제공한다며 비난을 받았으며 대중의 심리에 부응하고 세속적 욕망에 맞춰 작품이 창작되었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 이문재씨는 류시화의 시가 그 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하지 않고 초기의 시세계를 유지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20여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을 지키며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이 큰 변화 못지 않은 견딤이라 평가하기도 하였다. 류시화의 시는 일상 언어들을 사용해 신비한 세계를 빚어내어, 걸림없이 마음에 걸어들어오면서 결코 쉽고 가볍게 치부할 수 없는 무게로 삶을 잡아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낯익음 속에 감추어져 있는 낯설음의 세계를 재발견하는 시세계를 한껏 선사해왔다.

그의 대표작인『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에서는 한층 깊어진 눈빛을 지닌 시세계가 곱씹히고 곱씹힌다. 류시화는 가타 명상센터, 제주도 서귀포 등에서 지내며 네팔, 티벳, 스리랑카, 인도 등을 여행하며 그가 꿈꿔왔던 자유의 본질 그리고 꺠달음에 관한 사색과 명상들이 가득한 산문집을 내기도 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실소를 자아내는 일화들 속에서, 그렇지만 그냥 흘려버리기엔 너무 무거운 이야기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르침을 전해준다.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비롯하여,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치유 시집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과 하이쿠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를 집필했고, 산문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을 썼다. 또한 인도 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지구별 여행자』와 인디언 추장 연설문 모음집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를 썼으며,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티벳 사자의 서』, 『조화로운 삶』,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용서』, 『인생수업』 등의 명상서적을 우리말로 옮겼다. 2017년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를, 2018년 ‘인생학교에서 시 읽기1’ 『시로 납치하다』와 우화집 『인생 우화』를, 2019년 산문집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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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저 : 헬렌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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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 Knothe Nearing
먹고 사는데는 적어도 절반이상 자급자족 한다는 것과 돈을 모으지 않는다는 것과 동물을 키우지 않으며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 '조화로운 삶'을 평생 실천한 그녀는 남편 스콧 니어링과 함께 전세계적으로 귀농과 채식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1904년, 뉴저지 릿지우드의 중산층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예술과 자연을 사랑하고 채식을 실천하는 부모 슬하에서, 그녀 역시 자연의 혜택을 흠뻑 받으며 자연스럽게 채식인으로 성장했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그녀는 젊었을 적부터 유럽 여러 나라를 자유롭게 여행하였고, 한때는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와 교류하기도 하였다. 1928년, 헬렌은 장차 남편이 될 스코트 니어링(Scott Nearing)을 만난다. 스코트 니어링은 왕성한 저술과 강연으로 존경받는 교수 출신이었으나,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반전 운동을 벌인 명목으로 당시 주류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있었다. 미친 사회라고 규정한 자본주의, 제국주의 사회의 대안으로 '생태적 자치사회'를 몸소 실천하고자 1932년 도시를 떠나 버몬트의 한 낡은 농가로 이주한다. 바로 그 곳에서 자연과 하나되는 '조화로운 삶'을 시작한다.

노동 4시간, 지적 활동 4시간, 친교 활동 4시간으로 꾸릴 수 있는 '조화로운 삶'(good life)이 바로 그것이다. 문명화된 현대 사회에서 벗어나 자급자족하며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고 사는 것, 그리고 많이 가지기보다는 검소하고 단순하게 사는 삶을 실천에 옮긴다. 하루를 온전히 일에만 바치지 않았다.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시간만 노동에 사용하고, 나머지 시간은 독서와 명상, 여행처럼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했다. 현대 문명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가능한 손을 이용해 일을 했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하지' 식의 방종적 낭만과 게으름을 철저히 경계했다. 그들은 스스로 12가지의 삶의 원칙을 세워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먹고 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고 이후 시간은 그들의 정신을 풍성히 하는데 힘쓰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식사 또한 특별한 조리법이 없었다. 통밀 빵과 생과일, 소금을 안 친 팝콘처럼 가능한 조리하지 않은 음식을 먹었고, 육식을 하지 않았다. 특히 이러한 방식은 건강식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반세기 동안 의사 없이도 건강하게 생활한 그녀의 몸 자체가 건강법의 증거가 되었다. 삶의 매 순간을 명료한 의식과 치열한 각성 속에서 살아갔던 그 두 사람은 이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스코트 니어링은 100세 되던 해에, 음식을 서서히 끊음으로써 자신을 붙들고 있던 목숨과 작별을 고했다.

"나 또한 삶에 큰 고마움을 느끼며 또 죽음이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데 큰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는 누워서 병을 앓으며 무력한 삶을 계속 살아갈 필요가 없다. 요양원에서 이루어지는 긴 사멸의 공포를 느낄 필요도 없다. 우리가 집에 있고 우리 희망을 알릴 수 있으면, 우리는 먹는 것을 멈출 수 있다. 그것은 간단한 일이다. 병구완을 않고 먹는 것을 멈추면, 죽음은 우리 앞에서 두 손을 활짝 벌리는 것이다. 스코트의 죽음은 내게 훌륭한 길, 훌륭한 죽음을 보여 주었다. 고통과 억압이 없는 죽음, 여전히 생명의 흐름이 이어지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슬픔이 없다."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보리, 1997, p.233)

헬렌 니어링 또한 남편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고자 하였으나, 불행히도 그 바람은 실현되지 못했다. 1995년 9월 17일, 차 사고로 인해 그녀는 갑작스럽게 92세의 일기를 마쳤다. 그녀의 대표적인 저서인 조화로운 삶은 탐식에 길들여진 우리를 일깨우는 참 먹을거리에 관한 깊은 성찰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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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저 : 스콧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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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Nearing
1883년 미국의 탄광도시 펜실베니아의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는 1864년에 가족을 데리고 펜실 베이니아 티오 카운티의 모리스 런에 정착을 한 뒤 광산 회사를 운 영하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할아 버지께서 경영하시던 광산의 노 동자들을 보면서 자랐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였고, 어머니는 에 너지가 넘치는 여자였으며 이상적인 여자였다. 어머니는 니어링 이 자연, 책,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니어링은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사람으로 할아버지를 뽑고 있다. 그는 1905년에 대학을 마치고 1909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며 자 본의 분배문제를 깊이 연구했으며 왕성한 저술과 강연으로 미국 인들을 가르치고자 했다. 그는 아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 아동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다 대학교에서 해직 되었다. 그후 톨레도 대학에서 근무하였으나 전쟁에 대한 비판 적인 견해를 주장하다 또다시 해직되었다. 1917년 반전 논문을 발표하고 1919년 연방법정에 피고인 자격으로 섰지만 배심원들 은 30시간에 걸쳐 논의한 끝에 그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그러 나 사회로부터 위험분자 또는 과격분자로 몰려 소외를 당했다.

생의 후반기로 접어든 작가는 1928년 스무 살 연하의 매력적인 여성 헬렌 노드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였다. 두 사람은 자본주의 경제로부터 독립하여 자연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살며, 사회를 생각하며 조화롭게 살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부부는 1952년 메인으로 이사하여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였다. 1954년에 버몬트에서 산 기록을 『조화로운 삶』으로 펴내고, 1979년에는 메인에서 지낸 기록을 『조화로운 삶의 지속』으로 묶어 냈다.『그대로 갈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는 1954년에 처음 냈고 1974년에 개정판을 냈다. 스코트 니어링은 그 밖에도 『진보주의자의 양심』을 비롯하여 수 많은 책을 써서 많은 이들을 깨우쳤다. 스코트 니어링은 백 년 동안 살고 1983년에 부인 헬렌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대로 갈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는 스콧 니어링이 반자본, 반권력, 반전쟁을 몸소 실천하였던 스콧 니어링이 더나은 앞날을 꿈꾸며 지은 책이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을 통하여 조화로운 삶을 찾아가는 방식을 찾으라고 말하는 저자의 이 책은 처음 쓰여진 때로부터 50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 문명비판서는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다가오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지적하여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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