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소개(1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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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안토니 포고렐스키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안토니 포고렐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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Антоний Погорельский
1787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으며 러시아 문학사에서 판타지 장르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작가다. ‘안토니 포고렐스키’라는 이름은 작가가 1828년에 발표한 「분신?소러시아에서 보낸 밤들(Двойник, или Мои вечера в Малороссии)」에서 처음 사용한 필명으로, 본명은 알렉세이 알렉세예비치 페롭스키(Алексей Алексеевич Перовский)다. 귀족 신분인 아버지와 평민 신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외자였지만, 아버지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훌륭한 조기 교육을 받으며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모스크바대학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상원, 법무부, 재무부 등 국가 기관에서 근무하다 1812년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입대하여 국내외 각지에서 다양한 전투를 경험했다.

포고렐스키는 어릴 적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긍정적인 성격과 섬세한 유머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아버지가 당대의 유명한 문인들과 친분이 있었던 덕분에 일찍이 카람진(Николай М. Карамзин), 주콥스키(Василий А. Жуковский) 등과 같은 대문호들과 교류했고, 이는 곧 작가의 향후 문학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807년 카람진의 단편 「가엾은 리자(Бедная Лиза)」의 독일어 번역본을 완성하면서 문학계에 첫발을 내디뎠고 이후 본격적인 문학 창작 활동에 돌입했다. 포고렐스키는 1836년, 당시에는 제정 러시아령이었던 바르샤바에서 죽음을맞이했다.

「라페르토보의 양귀비씨앗빵 노파(Лафертовская маковница)」(1825), 「검은 닭?지하 세계의 사람들(Черная курица, или Подземные жители)」(1829) 등의 작품을 통해 미스터리와 초자연적 요소를 조화롭게 활용하여 러시아 고딕 소설 특유의 흥미와 긴장감을 표현한 그는 인물의 내면세계를 정교하게 묘사하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포고렐스키의 작품에는 감상주의적이거나 낭만주의적인 경향이 간간이 드러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독자들이 쉽게 받아들이고 큰 흥미를 느낄 만한 작품들이다.

저 : 발레리 브류소프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발레리 브류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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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ery Yakovlevich Bryusov
러시아 상징파의 대표적 시인, 소설가, 이론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선구적으로 러시아 모더니즘 문학을 주창했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자유주의 교육을 받았으며, 프랑스 상징파에 영향을 받아 1893년 시문집 『러시아 상징파』를 출판하여 러시아 상징주의의 시초가 되었다. 1904년 러시아 상징파 최대의 잡지 [천평칭(天平秤) Vesy]를 창간하여 이후 상징파가 쇠퇴하기 까지 그 중심에 있으면서 벨리, 블로크를 키워냈으며, 나아가서는 미래파(미래주의)를 육성하였다.

대표적 작품으로 시집 『도시와 세계』(1903), 『화관(花冠)』(1906) 등이 있고, 소설 , 『불꽃의 천사』(1907~1908), 『승리의 제단』(1911~1912)과 단편집 『지축(地軸)』(1911) 등이 있다. 그 밖ㅇ ㅔ평론과 희곡 작품도 다수 남아 있다.

1910년에 상징주의 운동과 결별하고 혁명 후에는 문학을 가으이했으며 죽을 때까지 강의와 출판 일을 했다. 그는 번역문학가이자 비평가로서, 그리고 수필가로서 러시아 근대 시의 위상을 고양시키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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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알렉산드르 이바노프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알렉산드르 이바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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Александр П. Иванов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생을 마감할 때까지 페테르부르크를 근거지로 활동했던 시인 겸 소설가다. 사실 이바노프는 문학 작가라기보다는 예술 이론가 겸 수필 작가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후 1902년부터 재무부에서 10등 문관으로 근무하면서 회계 업무를 담당했지만, 예술에 대한 관심과 조예가 매우 깊어 예술 관련 논문이나 기사를 끊임없이 발표했다. 특히 브루벨(Михаил А. Врубель), 레리흐(Николай К. Рерих), 레핀(Илья Е. Репин) 등 러시아 화가에 관한 글을 많이 남겼다. 1920년부터는 재무부를 떠나 국립유형문화재역사학술원으로 이직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립러시아박물관으로 다시 한번 일자리를 옮겨 1931년까지 근무했다. 혁명 후에는 레닌그라드국립대학으로 이름이 바뀐 모교에서 부교수를 역임했으며 레닌그라드예술대학에서 러시아 회화 실습 과목을 강의하기도 했다.

여기 소개한 「입체경?기묘한 이야기(Стереоскоп-Сумеречный рассказ)」는 이바노프 생전 발표된 유일한 문학 작품이다. ‘기묘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공상과학적 요소와 고딕적 요소가 결합된 작품으로, 1905년에 쓰여진 후 완성된 지 4년 만에 출간되었다. 푸시킨(Александр С. Пушкин)의 「스페이드 여왕(Пиковая дама)」으로부터 시작된 ‘페테르부르크표’ 판타지 문학에 새로운 장을 연 작품으로 20세기 초 러시아 판타지 문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된다. 또한 마치 사진으로 찍어놓은 듯한 세밀한 묘사로 각 장면이 자아내는 생동한 공포를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하여 예술(특히 회화) 전문가다운 면모가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1918년에 재판되었지만, 이후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1980년대 말이 되어서야 재조명되었고, 이후 ‘러시아 고딕 소설’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저 : 지나이다 기피우스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지나이다 기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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Зинаида Н. Гиппиус
러시아 중서부 툴라 주의 벨료프에서 태어난 시인 겸 소설가다. 남편 메리시콥스키(Дмитрий С. Мережковский)와 함께 러시아에서 상징주의 사조를 이끌었던 인물로 현실과 초월의 세계를 혼합하는 특유의 시적 언어로 유명하다. 사랑, 죽음, 종교, 예술 등을 소재로 고전적인 시의 형식을 빌려 현대적인 감수성을 전달하여 많은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19세기 푸시킨(Александр С. Пушкин)을 시작으로 전성기를 구가한 러시아 문학의 ‘금세기’에 이어 20세기 초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러시아 문학의 ‘은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하나로 평가된다. 동시대 작가인 블로크(Александр А. Болк), 만델시탐(Осип Э. Мандельштам), 예세닌(Сергей А. Есенин) 등이 문학계에서 입지를 굳히는 데 큰 힘이 되어주는 등 당시 러시아 문학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888년 첫 시집 『북방통보(Северный вестник)』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한 기피우스는 남편과 함께 문학 모임을 주도하면서 브류소프(Валерий Я. Брюсов), 솔로구프(Фёдор К. Сологуб), 민스키(Николай М. Минский), 안넨스키(Иннокентий Ф. Анненский), 발몬트(Константин Д. Бальмонт) 등 동료 상징주의 작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1905년 러시아에서 발생한 첫 혁명은 기피우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는 이 혁명을 ‘정신의 혁명’으로 받아들였고 이로써 사회의 변혁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17년 10월에 재발한 혁명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고, 급기야 남편과 함께 프랑스 파리로 망명하게 된다. 소비에트 정권을 강력하게 비판했던 기피우스는 파리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다. 그는 파리에서도 자신의 거처를 아지트로 삼아 러시아 망명 작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이어 갔다.

여기 소개된 단편 「상상?한밤의 이야기(Вымысел. Вечерний рассказ)」는 1906년에 발표한 단편집 『붉은 칼(Алый меч)』에 수록된 작품으로, 권태로운 현실에서 벗어나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려는 삶의 태도를 지향했던, 기피우스의 초기 작품에 드러난 문학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기피우스는 20세기 초 러시아 고딕 소설 장르에서는 거의 유일무이한 여성 작가로 인정된다. 그는 망명지인 파리에서 1945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저 : 알렉세이 톨스토이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알렉세이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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Алексей Н. Толстой
사마라 현 니콜라옙스크(현재 사라토프 주 푸가초프)의 명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사회 소설, 심리 소설, 공상과학 소설, 역사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발표한 작가다. 톨스토이는 어릴 적부터 문학을 사랑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학과 글쓰기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901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페테르부르크 기술대학 공학부에 진학했지만 늘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었던 톨스토이는 1907년 졸업 논문 심사를 앞두고 돌연 학교를 그만두고 집필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수많은 작품을 발표한 톨스토이는 현재 ‘다작의 작가’로 기억되고 있다.

1910년 단편과 중편을 묶은 소설집 『자볼지예(Заволжье)』를 발표하여 고리키(Максим Горький)를 비롯한 동시대 작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후 수많은 소설과 희곡을 발표한 톨스토이는 혁명이 일어난 이듬해인 1918년 해외로 망명하여 파리와 베를린 등지에서 생활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 갔다. 이 시기 중편소설 「칼리오스트로 백작(Граф Калиостро)」(1921), 「니키타의 어린 시절(Детство Никиты)」(1922) 등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망명 생활을 견디지 못한 톨스토이는 1923년 귀국길에 올랐다. 이를 목격한 러시아 출신 해외 망명자들은 톨스토이를 ‘붉은 백작’[당시 볼셰비키 혁명군을 ‘붉은 군대(적군)’라고 일컬었다]이라고 부르며 작가의 행보를 비난했다.

톨스토이는 귀국 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쳐 공상과학 소설인 「아엘리타(Аэлита)」(1923)와 「엔지니어 가린의 죽음의 광선(Гиперболоид инженера Гарина)」(1927), 중편소설 「푸른 도시들(Голубые города)」(1925) 등을 발표했다. 톨스토이는 대하소설 「표트르 1세(Пётр Первый)」(1930-1934)와 3부작 장편소설 「고행길(Хождение по мукам)」(1922-1941)로 각각 1941년, 1943년에 스탈린상을 받았다. 희곡 「이반 뇌제(Иван Грозный)」(1942-1943)도 모스크바에서 생을 마감한 이듬해 1946년 스탈린상을 사후 수상했다.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는 영화화된 작품이 많다. 특히 여기서 소개한 「칼리오스트로 백작」을 모티브로 뮤지컬 영화가 만들어져 1984년 〈사랑의 법칙(Формула любви)〉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저 :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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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an Alekseyevich Bunin,Иван Алексеевич Бунин
1870년 러시아 중부 돈 강 유역에 있는 보로네쥬 시에서 영락한 귀족 집안의 셋째로 태어났다. 1874년, 오룔 지방의 옐레츠로 이주하여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골의 자연 속에서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냈다. 뛰어난 서정시로 문단에 데뷔하였고, 1901년 시집 『낙엽』으로 푸슈킨 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했다. 그후 점차 소설 창작에 몰두하여 1900년에 발표한 단편 「안토노프의 사과」를 비롯해 「농촌」, 「마른 골짜기」,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 등의 소설들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1917년 볼셰비키혁명으로 제정 러시아가 붕괴되면서 사회주의 혁명을 온몸으로 거부하며 1918년 모스크바를 떠나 1920년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그후 부닌은 다시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자전적 장편소설 『아르세니예프의 생』은 1927년부터 집필하기 시작하여 1933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그해 러시아 작가 중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다. 이후 그의 창작세계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단편집 『어두운 가로수길』은 예술적으로 완성도가 가장 높은 작품이다. 『부닌 단편선』은 이 작품에서 선정한 1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두운 가로수길」, 「파리에서」, 「차가운 가을」, 「성스러운 일요일」, 「사랑의 문법」 등 사랑의 백과사전이라고 불릴 만큼 사랑의 다양한 모습들을 담은 주옥같은 단편들을 발표하였으며, 1937년에는 톨스토이의 삶과 문학, 인생철학을 새롭게 조명한 회고집 『톨스토이의 해방』을 출간했다. 진정한 작가의 길, 하나의 삶을 창조해가는 작가가 추구해야 할 진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부닌은, 체호프에 관한 회고록을 완성하지 못한 채 1953년 11월 8일, 83세를 일기로 파리에서 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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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미하일 불가코프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미하일 불가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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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hail Bulgakov,Михаил А. Булгаков
1891년 우크라이나 키이우(키예프)에서 태어났다. 키이우(키예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불가코프는 의사였던 외삼촌들과 마찬가지로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키이우(키예프) 대학교 의과 대학에 입학한다. 다음 해인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불가코프는 적십자를 통하여 우크라이나 남서쪽에 있는 카메네츠-포돌스키, 체르놉치 등 최전방 지역에서 의료 활동을 한다. 의대 졸업을 앞두고 있던 불가코프는 1916년 여름에 갑작스레 모스크바로 소환되어 스몰렌스크 현의 니콜스코예 마을로 파견된다. 1916년 러시아는 의대 졸업생들을 징병하여 각 지방으로 파견 보냈는데, 불가코프도 그 징병 대상에 속했던 것이다. 불가코프는 1년 후인 1917년 9월에 뱌지마로 파견되어 계속 의료 활동을 이어 간다.

한편 1917년 겨울, 러시아 혁명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러시아가 볼셰비키의 손에 떨어지면서 내전의 기운이 감돌았다. 이미 뱌지마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불가코프는 예기치 못한 징병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병역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수차례 요청한 끝에 1918년 2월에 건강상의 이유로 퇴역한 불가코프는 키이우(키예프)로 돌아와 성병 전문의로 활동한다. 하지만 불가코프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우크라이나 내전에 휘말린다. 수차례 키이우(키예프)의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불가코프도 징병된다. 이후 키이우(키예프)를 점령한 데니킨의 백군 진영에서 군위관으로 활동하게 된 불가코프는 1919년, 퇴각하는 백군을 따라 러시아 남부의 블라디캅카스로 이동한다. 얼마 안 가 백군은 볼셰비키에게 패배하여 해외로 도주하지만 불가코프는 티푸스에 걸려 망명을 포기하고 러시아에 남기로 한다. 이후 그는 의사직을 버리고 펜을 잡기로 결정한다. 1921년에 모스크바로 이사 오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게 된 불가코프는 궁핍한 생활을 견디며 『기적』, 『노동자』 등의 신문 또는 잡지에 사설, 단편 등을 왕성하게 투고했다. 1924년에 소설 『백위군』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는다. 1925년에는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이 작품을 연극으로 각색해 달라는 요청도 받는다. 같은 해에 중편소설 『디야볼리아다』, 『비운의 알』, 단편소설 「중국인 이야기」 등이 포함된 소설집도 출판된다.

하지만 중편소설 『개의 심장』의 원고가 1926년, 압수당한 것을 시작으로 불가코프의 작품 출판에 제동이 걸린다. 1929년 불가코프의 모든 작품들이 출판 및 상연 금지되고 망명 신청마저도 거부당한다. 다음 해인 1930년에는 어렵게 창작에 매진하던 불가코프에게 마지막 희망과도 같았던 희곡 『위선자들의 비밀 모임』 상연까지 금지된다. 스스로 작품 원고를 불태워 버릴 정도로 좌절한 불가코프는 결국 스탈린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망명을 요청하였고, 얼마 후 스탈린이 직접 불가코프에게 전화를 걸어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일해 볼 것을 권한다. 극장에서 조연출로 일하게 된 불가코프는 고골의 『죽은 혼』, 『검찰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등 고전 작품들을 각색하며 왕성하게 활동한다. 1939년에는 스탈린을 주인공으로 한 희곡 『바툼』을 집필하지만 역시 스탈린이 상연을 금지시켜 버리고, 이후 건강이 급속도로 안 좋아진 불가코프는 시력을 상실하는 지경에 이른다. 병상에서도 창작 활동을 이어 간 불가코프는 세 번째 아내인 옐레나 세르게예브나 실롭스카야의 도움을 받아 구술로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교정한다. 하지만 불가코프는 1940년 3월 10일 사망하고,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불가코프 사후 26년이 지난 1966년에야 출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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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알렉산드르 차야노프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알렉산드르 차야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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Александр В. Чаянов
모스크바의 프티 부르주아 계급 상공인 집안에서 태어나 1937년 알마아타(현재 알마티)에서 총살형이라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다. 작가로서보다 소비에트 경제학자로서 더 잘 알려져 있다. 경제학, 사회학, 사회인류학 분야에서의 연구 활동을 본업으로 삼았던 차야노프는 학제 간 농민 연구의 창시자로, ‘도덕 경제학’과 ‘식량 안보’라는 용어를 고안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철학과 문학 등 인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차야노프는 1920년대에 10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집약적으로 문학 작품을 발표했다. 대부분 현실과 환상이 융합된 세계를 그리는 판타지 장르로 분류되는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유토피아주의적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공포스러우면서도 신비주의적인 분위기의 러시아 소설에 나타나는 문학적 전통도 어우러져 있다고 평가된다.

1920년에는 이반 크렘뇨프(Иван Кремнёв)라는 필명으로 첫 중편소설 「내 동생 알렉세이의 농민 유토피아 국가로의 여행기(Путешествие моего брата Алексея в страну крестьянской утопии)」를 발표했다. 이후 1921년부터 1928년 사이에는 ‘식물학자 X’라는 필명으로 「베네딕토프?내 생의 잊히지 않을 사건들(Венедиктов, или Достопамятные события жизни моей)」(1922), 「베네치아 거울?유리인간의 엽기 행각(Венецианское зеркало, или Диковинные похождения стеклянного человека)」(1923),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부투를린 백작의 비범하지만, 진실된 모험(Необычайные, но истинные приключения графа Фёдора Михайловича Бутурлина)」(1924), 「율리야?노보데비치에서의 밀회(Юлия, или Встречи под Новодевичьим)」(1928) 등 네 편의 판타지 소설을 발표했다. 비평가들은 이 네 작품에 ‘러시아의 호프만 소설’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저 : 알렉산드르 그린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알렉산드르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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Александр С. Грин
뱌트카 현(현재 키로프 주) 슬로보츠코이에서 태어났다. 상징주의적 판타지 요소를 작품에 반영했던 그린은 러시아 신낭만주의의 대표 주자로 평가된다. 본명은 알렉산드르 그리넵스키(Александр Гриневский)로, ‘알렉산드르 그린’은 작가가 사용하던 수많은 필명 중 하나다.

1896년 실업학교를 졸업한 후 어린 시절부터 동경했던 모험 가득한 삶을 살고자 선원이 되었지만, 이상과는 너무도 달랐던 지루하고 고달픈 선원 생활을 오래 버티지 못했다. 1902년 군에 입대했지만, 군 생활 역시 오래 버티지 못하고 탈영했다. 이후 혁명 사상에 심취하여 지하조직 생활에 전념하다 1903년에 체포되어 10년간 시베리아에서 유형 생활을 했다. 유형 생활 중 집필 활동을 시작하여 1932년 스타리크림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수많은 작품을 남긴 그린은 다작을 했던 작가로도 유명하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발표된 그린의 첫 작품은 단편 「이탈리아를 향해(В Италию)」(1906)였다. 그린은 이 작품을 시작으로 매년 30여 편의 단편을 써냈다. 1916년부터 1922년까지 작업하여 1923년에 출판된 몽환적 중편소설 「붉은 돛(Алые паруса)」은 그린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1928년 발표된 그린의 또 다른 대표작인 장편소설 「파도 위를 달리는 여인(Бегущая по волнам)」은 다중 플롯 구조로 각종 상징, 신화, 원형, 동화 등의 모티브를 차용하여 환상과 신비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린은 독자들로 하여금 음울한 현실을 벗어나 상상의 나라로 가게 해주는 작품을 많이 썼다. 또한 진심으로 바란다면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고한 믿음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이를 위해 그린은 상상의 세상을 창조하여 사건의 무대로 삼는 일이 잦았다. 문학 비평가 코르넬리 젤린스키(Корнелий Л. Зелинский)는 그와 같은 독특한 세상에 ‘그린이 만들어낸 세상’을 뜻하는 ‘그린란드(Гринландия)’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저 : 시기즈문트 크르지자놉스키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시기즈문트 크르지자놉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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Сигизмунд Д. Кржижановский
키예프에서 태어나 모스크바에서 생을 마감한 소비에트 소설가 겸 극작가다. 크르지자놉스키는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연극 이론가로서도 명성을 크게 얻은 인물이다.

1913년 키예프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변호사 보조로 근무하다 1918년 키예프에 소재한 키예프 음악원, 리센코 연극대학, 키예프 유대인 예술학교 등지에서 창작 심리학, 연극사 및 연극이론, 문학사 및 문학이론, 음악사 및 음악이론 등을 강의했다.

1910년대 말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1919년에 문예지 『노을(Зори)』을 통해 단편소설 「철학자 야코비와 ‘어쩌면’(Якоби и ≪Якобы≫)」을 발표했고, 1925년에는 예술 잡지 『예술.문학.연극 주간(Неделя искусства, литературы и театра)』을 통해 수기 형식의 중편소설 「스템프?모스크바(Штемпель: Москва)」를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전개했다.

1922년 키예프에서 모스크바로 거처를 옮긴 크르지자놉스키는 1920년대 중반부터 국립예술원(Государственная академия художественных наук)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공개 석상에서 자신의 작품을 낭독하고 연극이론과 창작심리학 등을 주제로 공개 강의를 진행하여 모스크바 연극계의 유명 인사로 자리 잡았지만, 정작 작품이 출판되는 일은 드물었다. 따라서 문학 이외의 활동, 즉 출판사 편집장, 광고 대본 작가, 영화 시나리오 작가, 오페라 대본 작가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크르지자놉스키의 작품 활동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집중되었다. 「문자 살인자 클럽(Клуб убийц букв)」(1926), 「뮌히하우젠의 귀환(Возвращение Мюнхгаузена)」(1927-1928) 등의 중편소설, 『영재들을 위한 동화(Сказки для вундеркиндов)』(1919-1927), 『낯선 테마(Чужая тема)』(1927-1931) 등의 단편집이 이 시기에 완성되었지만 출판으로 이어지지는 못했고, 그의 작품 대부분은 소련이 해체된 1989년 이후에서야 봇물 터지듯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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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다닐 하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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Даниил И. Хармс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시, 소설, 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겼지만, 기묘하고 복잡한 형식의 시를 쓴 시인으로 특히 유명하다. 본명은 다닐 유바초프(Даниил И. Ювачёв)로 ‘하름스’는 1921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필명이다. ‘하름스’라는 필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해로움’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harm’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고 ‘매력’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charme’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다. 또한 작가가 좋아했던 코난 도일의 작품에 등장하는 셜록 홈스의 이름을 변형했다는 설도 있다.

어린 시절부터 상징주의 시에 매료된 하름스는 1927년 아방가르드 시인들의 모임 ‘오베리우(ОБЕРИУ, Объединение реального искусства: 현실 예술 협회)’를 창립했다. 푸시킨(Александр С. Пушкин)에서 도스토옙스키(Фёдор М. Достоевский)로 이어지는 러시아 고전 문학의 전통을 거부하자고 주장했던 마야콥스키(Владимир В. Маяковский) 등의 미래파 작가들을 본보기로 삼아 보수적인 예술 양식을 경시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형상화했던 모임으로 평가받는다.

192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집필 활동을 시작한 하름스는 1920년대 말 아동문예지 『검은머리방울새(Чиж)』, 『고슴도치(Ёж)』, 『귀뚜라미(Сверчок)』 등을 통해 아동용 시와 단편을 발표했다. 하름스의 아동 문학 작품은 적지 않은 인기를 끌었지만, 하름스 개인에게 있어서는 철저한 생계 수단이었다고 전해진다. 하름스의 작품 중 생전에 출판된 작품은 많지 않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반소비에트적 작품으로 취급되어 사후인 1960년대부터 출판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소개된 「노파(Старуха)」 역시 1939년 완성한 작품이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2년이 지난 1974년에야 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은 특히 1990년대에 들어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고, 2013년 맨체스터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서는 최초로 연극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역 : 김경준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역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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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소련이 해체된 이듬해에 대일외국어고등학교 러시아어과에 입학하면서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성균관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노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정치, 외교, 과학기술, 국방, 경제, 학술, 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프리랜서 통번역사로 활동하면서, 중앙대학교 국제대학원 통번역학과 한노과에서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과거에는 러시아교육문화센터 ‘뿌쉬낀하우스’에서 교육센터를 운영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했고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정보기술통신발전부에서 차관 보좌 겸 인하우스 통번역사로 재직했다. 문화예술 콘텐츠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아이스〉(올레그 트로핌 감독, 2018)를 비롯한 러시아 영화 10여 편과 〈사도〉(이준익 감독, 2015)를 비롯한 한국 영화 10여 편을 각각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번역했다. 옮긴 책으로는 『알쏭달쏭 러시아인?러시아 비즈니스, 이것만은 알고 가자』(공역), 레프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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