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9월 15일생 1999년 12월 31일, ‘룰루 랄라 신촌을 누비’던 유쾌한 두 사나이의 행보는 끝났다. ‘좋아 좋아’, ‘인형의 꿈’, ‘떠나려는 그대를’ 등 몇몇 히트곡들을 발표했던 일기예보는 5집까지의 기록을 콘서트로 마무리하며 작별했다. 그러나 한 명의 기상 케스터는 남아 있다. 이제 그는 가벼워진 홀몸(?)으로 한결같은 날씨를 표현한다. 모던록이라는 잔잔한 태풍은 강현민만의 독보적인 영역이다. 그의 음악 여정은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열린 제 10회 강변가요제에서 ‘아침’으로 동상을 수상, 1991년 제 3회 유재하 가요제에서는 ‘작은 꿈’으로 은상을 거며 쥔 탄탄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이후 나들과 일기예보를 결성해 만들고 노래하는 음악적 주체로 활동하면서도 꾸준히 다른 여러 가수들의 음반에서 약방의 감초 노릇을 독톡히 했다. 신효범의 ‘너의 의미’, ‘세상은’이나 송은이의 ‘상상’이 모두 강현민의 작품이다. 아울러 영화 < 8월의 크리스마스 >, < 순애보 >에서도 각각 ‘아이처럼 고운’, ‘잘 지내나요’를 통해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강현민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일깨워준 가수는 따로 있었다. ‘It’s you’의 더더(The The) 시절부터 박혜경과 찰떡 궁합을 보여주었던 강현민은 박혜경의 솔로 선언 이후 전폭적으로 지원, 프로듀싱은 물론 ’주문을 걸어‘, ’고백‘, ’너에게 주고 싶은 세 가지‘ 등을 선사하며 가창력을 살리면서도 연주를 등한시 하지 않는 아기자기한 록 주조에 힘을 쓰고 있었다. 눈치 빠른 음악팬이라면 그의 관심사를 보다 일찍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옛날 박지원이 부르던, 익스트림(Extreame)의 ’More than words’를 연상케 하는 ‘10년 후에’(1995)에서 전조를 찾을 수 있으니까. 이렇듯 그동안 몇몇 가수들에게 흘린 모던록의 편린은 곧 하나의 완성작을 이루게 된다. 일기예보 해체이후 홀로 발표했던 솔로 음반 < She >(2001)에서는 속지의 ’Thanks to’ 란에 오아시스(Oasis), 라디오헤드(Radiohead)의 이름을 적어가며 브릿팝, 모던록에 대한 애정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듀오의 틀을 벗어나 함춘호(기타), 신현권(베이스), 강수호(드럼) 등 일급 세션맨들과 함께 교감하여 역설적으로 보다 밴드의 성격에 가까워진 원맨 강현민은 전곡을 작사, 작곡하는 기염을 토하며 타이틀 곡 ‘늘...’을 비롯해 ‘She’, ’피터팬’을 통해 솔로로서 추구할 수 있는 무한 영역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혼성 듀엣 곡치고는 다소 파격적인 구성을 보여주는 ‘이런 난 걸요’에서는 음악 지우 박혜경의 낯익은 목소리도 감상할 수 있다. 1년 후 그는 뉴 푸른하늘 출신으로 박혜경의 3집 < Feel Me >에서 ‘빨간 운동화’를 작곡했던 베이시스트 이재학과 함께 새로운 밴드 결성을 꿈꾸며 포털 싸이트 다음(www.daum.net)을 통해 여가수를 공모하게 된다. 그리하여 2003년, 600: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생존한 지선과 함께 3인조 밴드 러브홀릭(Loveholic)이 탄생, 동명 타이틀 곡인 ‘러브홀릭’을 내세워 현재 활동 중이다. 솔로 시절보다 훨씬 서정적이고 말랑말랑한 팝풍의 록을 구사하고 있으며, 이로서 다채로운 음악과 동고동락했던 15년 개인사의 착지점은 결국 갈수록 여위어 가는 모던록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밖에도 성시경, 트랜스픽션(TransFixion), 주얼리(Jewelry), 우미진, 첼로(Cello), 임형주 등 수많은 젊은 가수들 음반에 작곡과 편곡, 코러스로 크레딧을 채우며 숨가쁜 과외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렇듯 ‘객’으로서의 면모는 갈피를 잡기 힘들지만, 일기예보-솔로활동-러브홀릭에서 찾을 수 있는 음악적 리더쉽을 살피자면 현 메이져 가요계에서 모던록의 전사로 군림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안주하는 우를 범하지도 않는다. 경력이 쌓일수록 그의 감수성은 섬세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