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출연진 소개(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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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폴커 슐렌도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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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ker Schlondorff
폴커 슐뢴도르프는 1939년 독일 바이스바덴에서 태어났다. 10대 시절,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고등학교 졸업 후 정치학을 전공하러 파리로 갔다가 장-피에르 멜빌, 알랭 레네, 루이 말 같은 누벨바그 감독들과 친분을 맺게 된다. 이때 무질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그의 첫 작품 <젊은 퇴를레스>의 각본을 쓴다. 이후에도 주로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지적인 메시지를 전하는데 관심을 기울이며 문학적 토양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구한다. 1962년 폴커 슐뢴도르프는 베르너 헤어조크, 빔 벤더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등 젊은 감독 26명과 함께 오버하우젠에 모여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고 선언한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침체된 독일영화계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 뉴 저먼 시네마의 시작이다. 그 가운데서도 슐뢴도르프는 제국주의의 잔영이 어린 곳에 거침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용기가 남달랐으며 세련된 연출력과 뛰어난 미장센으로도 주목받았다. <젊은 퇴를레스>는 1966년 칸느영화제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하며 뉴 저먼 시네마 작품 가운데 가장 먼저 국제적인 성공을 거둔다. 1975년 하인리히 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아내 마가레타 폰 트로타가 주인공을 맡은 영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독일 박스 오피스 기록을 갱신하며 대성공을 거둔다. 테러리스트를 은닉했다는 혐의를 받은 한 여자가 당국과 언론으로부터 어떻게 공격받았는가에 대한 이야기. 작품을 통해 또한 실제 정치참여를 통해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슐뢴도르프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선보인 이후 공산주의자로 공격받기도 했다. 1979년 <양철북>으로 깐느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거머쥔다. 비평적 성공과 함께 상업적 성공도 거둔다. <양철북>에 나타난 악마적인 기괴함과 파격적인 성묘사는 지금 보아도 충격적이며 스스로 성장을 멈추는 아이 오스카, 양철북을 두드리며 괴성을 지르는 그의 모습은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긴다. 수 많은 상징에 기대어 나치즘을 비난하는 솜씨는 직설법을 쓸 때보다 훨씬 교묘한데, 이를 뒷받침해준 원작자 귄터 그라스에게 노벨상이 안겨지는데는 그 후로 30년이 걸렸다. <가을의 독일(1978)> <후보(1980)> <전쟁과 평화(1983)> 등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 독일의 뿌리깊은 권위주의를 비판하던 슐뢴도르프는 <스완의 사랑(1984)>을 만든 이후 1984년 뉴욕으로 건너간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에는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더스틴 호프만, 존 말코비치가 출연하는 <세일즈맨의 죽음(1985)>, 홀리 헌터와 함께 <개더링 오브 올드맨(1987)>, 해롤드 핀터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핸드메이즈(1990)>를 작업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로 돌아와서 만든 첫 작품은 <사랑과 슬픔의 여로(1991)>. 이 때, 낡은 우파 스튜디오의 한계를 절실히 느낀 그는 1992년부터 1995년까지 고전 스튜디오를 재건하고 현대적인 미디어 시티로 변화시키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였다.

[필모그래피]

양철북(1979)|감독
핸드 메이즈(1990)|감독
사랑과 슬픔의 여로(1991)|감독
레전드 오브 리타(2000)|감독
아홉째 날(2004)|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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