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소개(2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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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곡 : A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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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
멤버 : 아그네사 팰트스코그(Agnetha Faltskog), 애니프리드 린스태드(Anni-Frid Lyngstad), 베니 앤더슨(Benny Andersson), 비요른 울바에우스(Bjorn Ulvaeus)

틴에이저에서 할머니까지... 스웨덴의 침공 1971년 비욘(Bjorn Ulvaeus)과 결혼한 아그네사(Agnetha Foltskog)의 첫 아이 출산 예정일은 하필 1973년 2월 23일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출전 티켓을 따기 위한 스웨덴 본선 당일이었다. 팀 동료 베니(Benny Anderson)의 약혼녀 안니 프리드(Anni-Frid)가 부랴부랴 그녀의 노래 파트까지 연습해 만일을 대비해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 출산이 늦어져 무사히 아그네사는 무대에 올라 ‘링링(Ring ring)’을 부를 수 있었다. 이 네 사람의 그룹 아바()는 이날 3위에 그쳐 스웨덴 대표가 되지 못하는 고배를 마시지만 온전히 출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일이 잘 풀려 나갈 것임을 암시하는 징조였다. 그 같은 길조는 당장 이듬해에 현실로 나타났다. 마침내 ‘워터루(Waterloo)’라는 노래로 1974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출전, 32개국 5억 TV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20대 1의 경쟁을 뚫고 당당 그랑프리를 차지한 것이었다. ‘워터루’는 순식간에 영국 및 유럽에서 밀리언 셀링 싱글이 되었다. 이후 아바는 마치 천운을 타고난 그룹인 듯 쾌속 항진을 거듭했다. 영국 출신이 아니면 설령 유로비전 대회에서 우승했다 하더라도 곧 잊혀지고 마는 관례마저 운 좋게 비껴 가는 ‘위대한 예외’를 창조했다. 발표하는 싱글마다 차트 상위권으로 치솟아 영국 차트에서는 18주 연속 톱 10싱글을 기록했고 그중 9곡이 1위에 등극하는 눈부신 히트 퍼레이드를 펼쳤다. 이 ‘9곡의 넘버원’ 기록은 역사상 비틀스, 엘비스 프레슬리, 클리프 리처드 셋만이 장식한 대 기록이었으며 이로써 아바는 ‘1970년대에 가장 레코드를 많이 판 그룹’이라는 타이틀을 안게 됐다. 1978년까지 4년간 아바의 레코드 판매량은 세계적으로 무려 5천3백만 장에 달했다. 1977년 연간 소득이 110억원을 기록, 스웨덴의 자랑인 볼보 자동차 회사의 총판매고 90억원을 제치고 1위 기업으로 부상할 정도였다. 그들의 인기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을 넘어 지구촌을 덮었다. 터키, 이스라엘에서도 음반 판매량 1위였고, 호주 사람 4명 가운데 하나가 1976년 앨범인 < 아바 히트곡집 >< Abba Greatest Hits >를 갖고 있었으며, 심지어 소련의 암시장에서도 그들의 LP가 130달러의 고가(당시 LP 한 장 가격은 8달러)로 거래되었다. 극동 지역에서도 그 인기는 막강해 우리나라의 경우만 하더라도 한 앨범에서 보통 4곡 이상이 방송과 다운타운가를 뒤덮었다. 1978년 < 앨범(The Album) >의 미국 히트 싱글은 ‘게임의 이름(The name of the game)’ ‘내게 승산을 걸어보라(Take a chance on me)’ 두 곡이었지만 국내에서는 ‘독수리(Eagle)’ ‘무브 온(Move on)’ ‘음악을 감사해요(Thank you for the music)’도 덩달아 팝송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아바는 그러나 결코 운으로 먹고 산 팀은 아니었다. 그들은 대중들의 환호를 독점할 만한 충분한 재능이 있었다. 아바의 모든 곡들은 출중한 작곡 실력을 보유한 남성 멤버 비욘과 베니가 당시 매니저이자 폴라(Polar)레코드사 사장인 스틱 앤더슨(Stig Anderson)과 함께 썼다. 그들의 음악이 이윤의 지상 명령에 따라 팝 시장을 요리하기 위해 혈안이 된 음악업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체 생산’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 했다. 베니와 비욘이 제조해 낸 아바의 경쾌한 ‘버블 검(Bubble gum) 음악’은 당시로 볼 때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자랑했다. 신시사이저와 ‘스트링’의 풍요로운 사운드와 종소리 같은 여성 보컬은 유서 깊은 필 스펙터(Phil Spector)의 ‘사운드의 벽’(Wall Of Sound) 방식을 따른 두드러진 부분이었다. 명랑한 리듬의 사운드 구조에 더구나 쉬운 멜로디를 화학적으로 결합시킬 줄 아는 비범한 능력을 뽐냈다. 그리하여 누구나 듣기에도 좋고 춤추기에도 안성맞춤인 곡들을 뽑아내 1970년대 초중반에 세력을 떨친 헤비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록의 시끄럽고 복잡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단순한 음악을 바라는 수요층이 폭넓게 존재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1978년 < 뉴스 위크 >지는 “아바의 부패되지 않은(antiseptic) ‘이지 리스닝’ 사운드는 틴에이저에서부터 할머니까지 포괄하는 전 수요층에 어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물론 그들도 비판으로부터 완전 해방되지는 못했다. 팻 분(Pat Boone)의 ‘모래 위에 쓴 사랑의 편지(Love letters in the sand)’에 기초해 ‘아이 두, 아이 두, 아이 두, 아이 두(I do, I do, I do, I do)’를 만든 것에서 알 수 있듯 영미의 고전적인 팝 스타일에 편승, 기술 제휴함으로써 그들의 구미에 맞추고 있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이와 함께 음악 외적인 요소가 본질을 압도한다는 문제도 제기돼 한 스웨덴 음악 평론가는 “마케팅, 스테이지 조명 그리고 사운드 기술자를 빼고 나면 그들도 단지 그저 그런 그룹”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록 음악 진영은 < 롤링 스톤 >지 아닌 < 비즈니스 월드 >지를 읽으며 여가를 보내는 상업성 지향의 그들에게 애초부터 무관심이었다. 그러나 많은 음악 관계자들은 그들이 스스로 곡을 써서, 세대와 계층을 포괄하는 작품을 만들어 냈고 또한 외로이 스칸디나비아 출신 뮤지션들의 미국 상륙(Scandinavian Invasion)을 주도했다는 점을 높이 샀다. 사실 비(非) 영미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영미 팝의 본고장을 정복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이 때문인지 예외 없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비슷한 계열의 버블검 그룹들 오스몬즈(Osmonds), 카펜터스(Carpenters)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시달렸다. 아바가 인기를 얻는 데는 여성 멤버인 안니 프리드와 아그네사의 리드미컬한 보컬이 크게 작용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매끄럽게 곡조를 타면서도 강렬했고, 또 듣기 좋은 하모니를 일궈냈다. 이와 함께 북유럽형의 늘씬한 신체와 미모도 빼놓을 수 없는 인기 창출의 밑거름이었다. 국내에도 개봉된 78년 다큐멘터리 영화 < 아바(Abba-The movie) >의 재미는 순전 두 여인의 ‘환상적인 엉덩이’로 초점이 맞춰질 지경이었다. ‘오디오+비디오’의 AV시스템을 일찍이 구현한 아바의 네 구성원은 하나로 뭉치기 전부터 본국 스웨덴에서는 알아주는 스타들이기도 했다. 기타를 친 비욘(1945년생)은 포크밴드 웨스트 베이 싱어스(West Bay Singers)를 거쳐 후테내니 싱어스(Hootenanny Singers)의 멤버였고, 같은 1945년생인 베니는 ‘스웨덴의 비틀스’로 불린 그룹 헵 스타스(Hep Stars)의 베이스 주자로 활약했다. 1966년 우연히 어느 파티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후 간헐적으로 함께 일하기 시작했고 1969년 각각 아그네사와 안니 프리드를 만나게 되면서 공동 전선을 펴기에 이른다. 유일하게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2살 때 스웨덴으로 이주해 온 안니 프리드(1945년생)는 13살 때 이미 댄스 그룹의 리드 싱어로 나서 장래의 남편인 베니를 만나기 전까지 일본, 베네수엘라 등 국제 무대에 출전, 명성을 쌓았다. 탁월한 각선미의 아그네사(1950년생)는 스웨덴판 록 오페라 <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에서 마리아 막달레나 역을 맡아 ‘주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I don’t know how to love him)’을 불러 주목받은 인기 가수였다. 그녀와 비욘은 스타들의 결합으로 화제를 모으며 경찰이 하객을 통제하는 들뜬 분위기 속에서 1971년 7월 결혼식을 올렸고, 안니 프리드와 베니도 비슷한 시기에 약혼해 동거에 들어갔다. 배우자들로 짜여진 팀이라는 점은 독신주의가 팽배한 1970년대의 ‘감정 중독’ 경향과 견줄 때 신선한 자극이었고 그룹 내부의 갈등 요소를 감소시켜 주는 순기능을 발휘했다. 눈에 띄는 불협화음없이 순탄하게 1970년대 중반을 질주하는 데 성공했지만 역시 그들도 베이비 붐 세대의 자유분방한 가치와 결별한 별종의 연예 스타는 못 되었다. 남다른 부부애를 과시했던 비욘과 아그네사가 1978년 12월 이혼 수속을 밟기 시작했다. 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랜 동거 끝에 배니와 안니 프리드가 1978년 10월 웨딩마치를 올린 지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터진 일이었다. 여기에 영향을 받았을까, 베니 부부마저 2년 반만인 1981년 2월 갈라서고 말았다. 이혼과 그에 따른 팀 결속력 와해로 아바는 1981년 이후 급속히 인기 차트로부터 멀어져 갔고 1982년 안니 프리드(이 때부터 프리다), 1983년 아바 아그네사가 솔로 싱글을 내놓으면서부터 공식 해산, 뿔뿔이 흩어졌다. 베니와 비욘은 1984년 팀 라이스(Time Rice)와 연대해 뮤지컬 < 체스(Chess) >레퍼토리를 써 그중 머레이 헤드(Muray Head)의 ‘방콕에서의 하룻밤(One night in bangkok)’을 히트시키는 저력을 발휘했다. 전성기에 아바는 미국에서 4장의 톱 10싱글과 5장의 톱 40앨범을 기록했다. 물론 두드러진 성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바의 멤버들은 미국을 유일한 ‘실패 지역’으로 간주했다. 그들은 유럽만큼 미국을 제압하지 못한 것이 늘 불만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 팝 시장 진출의 교두보 확보’라는 매우 의미있는 역사적 발자취를 남겼다. 그들로 인해 훗날 많은 북유럽 출신 가수들이 미국 상륙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노르웨이 그룹 아하(A-ha)가 ‘아바 이후 최대의 스칸디나비아 사절단’으로서 미국 정복에 성공했고, 스웨덴의 록시트(Roxette), 에이스 오브 베이스(Ace Of Base)가 아바의 후광을 업고 1990년대 미 팝계를 석권, 스웨덴 열풍을 일으켰다. 특히 혼성 4인조라는 라인업까지 계승(?)한 에이스 오브 베이스는 ‘아바 신화의 재현’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그들을 능가할 만큼의 기세를 떨쳤다. 이제 아바의 이름은 역사의 뒤켠으로 물러섰지만 이러한 후배들의 잇단 등장은 여전히 아바가 ‘채권자’로 살아 꿈틀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비단 스칸디나비아 국가 가수들 뿐 아니라 영미 댄스 음악 지향의 가수들도 그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 아바의 영향을 공개적으로 시인하는 마돈나, 팻 숍 보이즈(Pet Shop Boys) 등 영국과 미국 댄스 가수들이 곧 아바에게 바치는 앨범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같은 사실 또한 아바가 팝 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적 그룹임을 암시하는 뚜렷한 사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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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 : 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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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Cherilyn Sakisian LaPiere
Do you believe in cher? 셰어가 또 한번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팝 팬들이라면 아마도 1998년도에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Believe’라는 댄스곡을 기억할 것이다. 그 ‘Believe’의 주인공 셰어가 비슷한 경향의 댄스앨범 < Living Proof >를 발표하며 다시 음악으로 돌아왔다. 가수와 배우를 겸업하고 있는 그녀는 지난해에 인터넷을 통해 < Not Comm.ercial >이라는 음반을 내놓은 바 있으나 이번 정규 앨범을 통해 본격적인 셰어 바람을 몰고 올 기세다. 일렉트로닉 댄스 리듬과 함께 보코더를 통한 중성적인 보이스 컬러가 돋보였던 ‘Believe’는 당시 유럽과 아시아에서 정상을 차지했고, 또한 이듬해에는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1위를 기록하며 세계를 완전히 평정했다. 그녀에게는 1974년의 ‘Dark Lady’ 이후 무려 25년만의 빌보드 차트 넘버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십 수년간 가수로서 별다른 성과를 이루지 못했던 53세의 매혹적인 여가수 셰어는 그 한 곡으로 찬란하게 재기했다. 어쩌면 나이 어린 음악 팬들은 ‘Believe’가 차트에 1위를 기록한 것, 또 셰어가 재기에 성공했다는 것에 별 감흥을 못 느낄지도 모른다. 짐작컨대 대부분의 젊은 음악 팬들은 셰어라는 이름을 단지 ‘Believe’란 곡을 통해 알았을 테고, 겨우 그 댄스 넘버 하나로 차트 1위에 오른 게 뭐 대수냐 싶을 것이다. 그리고 셰어는 댄스가수쯤으로 각인돼 있을 게다. 사실 그건 너무도 당연하다. 요즘 N세대가 셰어를 알기에는 그녀의 경력이 너무도 오래됐으며 한편으론 그녀의 음악이 고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셰어는 1964년에 데뷔해 지금까지 무려 37년 동안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이것저것 발표한 음반만 해도 30장이 넘는다. 17세 때 소니 보노를 만나 ‘월 오브 사운드’로 유명한 프로듀서 필 스펙터의 눈에 들었고, 셰어는 걸 그룹 로네츠(Ronnets)의 백업 보컬로 가수생활을 시작했다. 얼마 후 바로 남편이 된 소니 보노와 함께 소니 앤 셰어(Sonny And Cher)라는 듀엣을 결성해 ‘All I really want do’, ‘Bang bang (My baby shot me down)’, ‘I got you babe’ 등의 히트곡들을 남겼다. 음악적으로는 밥 딜런에게 영향 받은 포크 가수로 시작했지만 그 후로 어떠한 정형화된 음악을 선보인 게 아니라 그때마다 색다른 음악을 펼쳐 보였다. 그룹 버즈(Byrds)에 영향 받은 포크 록 넘버 ‘All I really want do’부터 1960년대 말 팝/록의 효시 격인 ‘I got you babe’ 그리고 1990년대 중반까지 시대에 따라 소프트 록, 팝, 어덜트 컨템포러리 같은 변화된 음악 스타일을 해왔다. 그 다음으로 셰어가 들고 등장한 게 바로 1998년의 ‘Believe’, 즉 일렉트로닉 댄스뮤직이다. 사실 셰어는 데뷔한 이래 줄곧 세인의 관심 밖을 떠나 있은 적이 없다. 미국의 주간지 < 피플 >은 창간 15주년 특집호에서 “셰어야 말로 196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가르쳐 주는 좌표”라 평할 정도로 셰어는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그것은 셰어의 음악적인 면보다는 그녀의 남달랐던 옷차림이나 다채로웠던(?) 남자관계 등 외적인 부분에 한정되어 있었다. 게다가 1980년대 들어 셰어가 영화에 주력하면서 음악은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Believe’란 노래가 예상치 못한 대박을 터뜨리면서 가수로서의 셰어가 다시 부각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건’은 셰어 본인이나 팝 역사에 있어서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팝 역사에서 누구도 셰어만큼 그렇게 장수하며 화려한 빛을 받지 못했다. 셰어는 살아있었고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팝 디바였다. 그리고 3년이 지나 다시 새 앨범을 발표했고, 지난 11월 18일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라이브 공연에 스페셜 게스트로 초청돼 자신의 딸보다도 훨씬 어린, 까마득한 후배와 더불어 노래를 부르며 건재를 과시했다. 신보와 발맞춰 셰어는 또 한번 새롭게 변신했다. 흑갈색이던 머리칼을 완전히 하얀색으로 탈색해 나타난 것. 역시 파격적인 셰어답다. 그러나 음반의 분위기는 전작 < Believe >를 상당히 많이 닮아있다. 수록된 총 11곡 중에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댄스트랙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멜로디가 살아있는 팝 넘버와 정열적인 라틴 풍의 노래들이 포진해 있다. 앨범제작에는 ‘Believe’의 히트를 일궈냈던 마크 테일러가 다시 참여하고 있으며 그 외에 브라이언 아담스와 작업했던 프로듀서 시케인(Chicane)도 동참했다. 첫 싱글로 영국과 유럽에서 발매된 ‘The music’s no good without you’는 ‘Believe’와 마찬가지로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보코더를 사용해 차가운 느낌이 드는 댄스곡이다. 싱글은 11월 10일 현재 영국 차트 8위에 올라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대다수의 댄스 트랙들에서 힘이 넘치는 셰어의 보컬을 감상할 수 있다. 선율이 다가오는 팝 넘버들은 ‘Rain rain’과 ‘Real love’. 그밖에 라틴 분위기의 2곡, 스패니시 기타가 감미로운 ‘Love so high’와 풍성한 라틴 리듬을 차용한 ‘Body 2 body’, 그리고 ‘댄스 디바’ 앰버(Amber)의 1999년도 히트곡을 커버한 ‘Love one another’ 등이 귀에 잘 들어온다. 변함 없이 힘찬 셰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반갑긴 하지만 반복되는 기계음이 좀 단조로워 보이고 인위적인 음성 변조는 이젠 다소 식상하게 들린다. 또한 13살 후배가수 마돈나가 이미 일렉트로닉 실험을 한 후라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게 바로 셰어다. 남들이 뭐라든지 제 갈 길을 고집하는 반항적(?) 여인. 여태껏 그녀는 그래왔고 또 앞으로 그럴 것이다. 셰어의 그러한 카리스마는 비평가들의 몇 마디 말보다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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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 : Meryl Str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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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 스트립
1949년 미국 뉴저지 출생. 예일 대학의 연극과를 졸업. 버몬트의 지방 극단에서 뉴욕으로 진출하여 75년부터 무대에 서고 곧이어 연기력을 주목받게 된다. 프레드 진네만의 ‘줄리아’로 영화에 데뷔했다. 1980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1982년 ‘소피의 선택’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비포 앤 애프터’’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리버 와일드’’죽어야 사는 여자’ 등 다양한 연기색깔을 보여준다. 2006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미란다 역으로 또 한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맘마미아’’줄리 & 줄리아’등에 출연했다. 2012년 ‘철의 여인’으로 두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필모그래피]

디어 헌터(1978)|주연배우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1979)|주연배우
폴링 인 러브(1984)|주연배우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주연배우
죽어야 사는 여자(1992)|주연배우
영혼의 집(1993)|주연배우
리버 와일드(1994)|주연배우
매디슨 카운티 다리(1995)|주연배우
비포 앤 애프터(1996)|주연배우
마빈스 룸(1996)|주연배우
뮤직 오브 하트(1999)|주연배우
프레리 홈 컴패니언(2006)|주연배우
앤트 불리(우리말녹음)(2006)|주연배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미란다 프리슬리
앤트 불리(한글자막)(2006)|개미 여왕
로스트 라이언즈(2007)|제니 로스
이브닝(2007)|조연배우
맘마미아(2008)|도나
다우트(2008)|알로이시스 수녀
줄리 앤 줄리아(2009)|주연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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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 Andy Garcia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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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가르시아
1956년 쿠바 태생. 플로리다 국제 대학에 입학한 후 연기를 공부하고 지방 극단에서 수년간 연극배우로 무대에 선다. 70년대 후반에 로스엔젤레스로 이주한 후 TV 시리즈 ‘힐 스트리트 부르스’와 미니시리즈 ‘지상에서 영원으로’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영화는 1985년 ‘The Mean Season’으로 데뷔. 1986년 ‘800만가지 죽는 법’의 악역으로 주목 받고 ‘언터쳐블’ ‘블랙레인’ ‘유혹은 밤 그림자처럼’ ‘대부 3’ ‘환생’ ‘리틀 빅 히어로’ ‘오션스 일레븐’ 등 많은 성공작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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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 Stellan Skarsgard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노래 : Stellan Skarsg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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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란 스카스가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 에밀리 왓슨의 상대역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스텔란 스카스가드는 스웨덴에서 가장 인정 받는 배우이다. 스톡홀름의 Royal Dramatic Theatre에서 연기를 시작한 후 16년 동안 알프 소버그, 잉그마르 베흐르만 등의 거장과 함께 작업했다. 1982년 제작된 스웨덴 영화 < The Simpleminded Murder >와 <암호명 콕 로그>로 베를린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출연 작품으로 <붉은 10월>, <광신도인 나의 아들>, <굿 윌 헌팅>, <아미스타드>, <딥 블루 씨>, <로닌>, <타임코드>, <글래스 하우스>, <도그빌>, <킹 아더> 등이 있다.

[필모그래피]

바람과 야망 (1992)|주연배우
브레이킹 더 웨이브(1996)|주연배우
굿 윌 헌팅(1997)|주연배우
로닌(1998)|주연배우
글래스 하우스(2001)|주연배우
엑소시스트 : 더 비기닝(2004)|랭카스터 메린 신부
고야의 유령(2006)|프란시스코 고야
와즈(2007)|주연배우
맘마미아(2008)|빌
천사와 악마(2009)|조연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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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 Colin Firth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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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퍼스
전통적인 연기 수업을 받은 콜린 퍼스는 여러 TV 프로그램과 영화에 출연한 베테랑 배우. 특히 영국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역으로 여성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1996년에는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 크리스틴 스코트 토마스, 랄프 파인즈와 함께 출연해 스타대열에 진입했다. 1997년에는 <1000에이커>에서 미셸 파이퍼, 제시카 랭과 출연하였고, 1998년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기네스 펠트로가 연기한 비올라의 사악한 약혼자 로드 웨섹스 역을 맡아 인상깊은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역시 그의 존재를 국내 관객들에게 널리 알린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르네 젤위거의 상대역으로 출연하면서 부터이다. 이 영화에서 휴 그랜트와 맞서 브리짓의 사랑을 얻으려는 마크 다씨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전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왓 어 걸 원츠>에서 켈리 프레스톤, 아만다 바인스 등과 함께 연기한 바 있으며, 싸이코 스릴러물 <트라우마>에서 미나 수바리의 상대역으로 출연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에서는 자기 아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아름다운 시골 소녀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는, 17세기의 신비로운 예술가 요하네스 베미르역을 맡아 열연했다. 2008년 여름,최고인기뮤지컬을 영화화한 <맘마미아!>에 출연한 그는 춤과 노래까지 멋지게 선보여 팬들은 그에게 다시 한번 열광할 것이다.

[필모그래피]

발몽(1989)|주연배우
잉글리쉬 페이션트(1996)|주연배우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8)|주연배우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주연배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3)|요하네스 베르메르
왓 어 걸 원츠(2003)|주연배우
러브 액츄얼리(2003)|주연배우
브리짓 존스의 일기:열정과 애정(2004)|마크 다씨
내니맥피:우리 유모는 마법사(2005)|세드릭 브라운
스위트룸(2005)|빈스
마지막 군단(2007)|주연배우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2007)|주연배우
덴 쉬 파운드 미(2007)|주연배우
이지 버츄(2008)|주연배우
맘마미아(2008)|해리
뉴욕은 언제나 사랑 중(2008)|리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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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 Pierce Brosnan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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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스 브로스넌
역대 제임스 본드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배우로 평가받는 피어스 브로스넌은 점잖고 세련된 영국 신사와 섹시가이의 이미지를 동시에 지닌 깔끔한 신사복 차림이 어울리는 배우이다. 아일랜드 태생의 그는 11살때 영국으로 건너가 학교를 졸업하고 상업적인 예술가로서 생활하다 연기를 배우게 된다. 그는 헐리웃의 스타배우로서의 명성뿐 만 아니라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환경단체의 리더 역할까지 맡고있다. 또한, 전국 여성암 연구 연맹을 출범시키고 기금을 모으는데 도움을 주었고, 지금은 쇼 비즈니스 자선 부서인 연예 산업 협회를 위해 홍보 의장을 맡았다. 그는 91년 아내를 난소암으로 잃은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필모그래피]

소련 KGB(1987)|주연배우
론머 맨(1992)|주연배우
모델
작가 그리고 애인(1993)|주연배우
미세스 다웃파이어(1993)|주연배우
핵 살인특급(1993)|주연배우
러브 어페어 (1994)(1994)|주연배우
나이트 워치 (1995)(1995)|주연배우
라이브 와이어(1995)|주연배우
007 골든아이(1995)|주연배우
화성침공 (1996)|주연배우
로빈슨 크루소(1997)|주연배우
007 네버 다이(1997)|주연배우
단테스 피크 (1997)|주연배우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1999)|주연배우
그레이 올(1999)|주연배우
007 언리미티드(1999)|주연배우
테일러 오브 파나마(2001)|주연배우
007 어나더데이(2002)|주연배우
에블린(2002)|주연배우
사랑에 빠지는 아주 특별한 법칙(2004)|다니엘 래퍼티
애프터 썬셋(2004)|맥스 버뎃
세라핌 폴스(2006)|주연배우
더 버터플라이(2007)|톰 라이언
맘마미아(2008)|샘
토마스와 친구들 - 극장판 (우리말 녹음)(2008)|주연배우
매리드 라이프(2008)|주연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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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 Julie Walters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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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월터스
데뷔작인 연극 '리타 길들이기'로 비평가협회 선정 신인상을 수상한 이래 무수히 많은 상을 수상했다. 연극 '사랑과 열정'으로 로렌스 올리비에상 후보, TV시리즈 '디너 레이디스''쎄이 썸씽 해픈드''보이스 프롬 더 블랙스타프'로 BAFTA상 후보, '나의 아름다운 아들''살인과 캔터베리 이야기'로 BAFTA상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연속으로 수상했다. 또한 '빌리 엘리어트'로 BAFTA상과 아카데미상, 골든글로브상 최우수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최근 '카렌다 걸스'에 출연하고 '해리포터'시리즈에 지속적으로 출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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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다 사이프리드
어릴 때부터 음악과 춤에 재능을 보여 11살부터 모델로 활동해 온 아만다 시프리드는 〈맘마미아!〉 캐스팅에서 수천명의 젊은 배우들을 제치고 오디션에서 발탁되었다. 당시 ‘I have a dream’을 부른 아만다는 아바 멤버인 베니에게서 ‘완벽하다’는 찬사를 받았다. 엄마의 옛 남자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당돌함과, 사랑스러움을 갖춘 ‘소피’역의 아만다 시프리드야 말로 이번 영화의 가장 새로운 발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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