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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제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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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극 작자이며 희곡 이론가다. 하북성(河北省) 고양(高陽) 출신으로 경극 집안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경극과 함께했다. 일찍이 서구에서 유학해 유럽 연극을 두루 섭렵하고 귀국한 뒤, 중국에 유럽 연극을 소개했을 뿐 아니라 경극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다.
1912년 북경에서 매란방의 몸동작과 그가 공연한 극본의 문장에 대해 조언함으로써 매란방과 지기(知己)가 되었다. 이후 매란방의 공연을 위해 극본 문장을 수정하고 몸동작을 조정하는 등 매란방과 공동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1916년부터 제여산은 이석감(李釋戡) 등과 함께 매란방을 위해 40여 편이 넘는 극을 지속적으로 창작하거나 개편했다. 「패왕별희」, 「천녀산화(天女散花), 「낙신(洛神)」, 「태진외전(太眞外傳)」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들의 공동 작업은 경극 무대에 개성 있는 여성 배역의 형상을 만드는 데 기여해 경극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매란방이 경극 천재라는 칭송을 받을 수 있게 했다.
1931년 매란방, 장백구(張伯駒) 등과 북평국극학회(北平國劇學會)를 조직해 『희극총간(戱劇叢刊)』과 『국극화보(國劇畵報)』를 편집·출판하는 동시에 진귀한 희곡 자료를 수집했다. 또 부설로 국극전습소(國劇傳習所)를 설립해 유중추(劉中秋), 곽건영(郭建英) 등 학생 75명을 교육했다. 논저에는 『중국극지조직(中國劇之組織)』, 『경극지변천(京劇之變遷)』, 『국극신단보(國劇身段譜』 등이 있는데, 이를 모두 합해 『제여산극학총서(齊如山劇學叢書)』라고 한다. 일찍이 북평여자문리학원의 교수를 지냈고, 1962년 대만에서 병사했다.
1912년 북경에서 매란방의 몸동작과 그가 공연한 극본의 문장에 대해 조언함으로써 매란방과 지기(知己)가 되었다. 이후 매란방의 공연을 위해 극본 문장을 수정하고 몸동작을 조정하는 등 매란방과 공동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1916년부터 제여산은 이석감(李釋戡) 등과 함께 매란방을 위해 40여 편이 넘는 극을 지속적으로 창작하거나 개편했다. 「패왕별희」, 「천녀산화(天女散花), 「낙신(洛神)」, 「태진외전(太眞外傳)」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들의 공동 작업은 경극 무대에 개성 있는 여성 배역의 형상을 만드는 데 기여해 경극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매란방이 경극 천재라는 칭송을 받을 수 있게 했다.
1931년 매란방, 장백구(張伯駒) 등과 북평국극학회(北平國劇學會)를 조직해 『희극총간(戱劇叢刊)』과 『국극화보(國劇畵報)』를 편집·출판하는 동시에 진귀한 희곡 자료를 수집했다. 또 부설로 국극전습소(國劇傳習所)를 설립해 유중추(劉中秋), 곽건영(郭建英) 등 학생 75명을 교육했다. 논저에는 『중국극지조직(中國劇之組織)』, 『경극지변천(京劇之變遷)』, 『국극신단보(國劇身段譜』 등이 있는데, 이를 모두 합해 『제여산극학총서(齊如山劇學叢書)』라고 한다. 일찍이 북평여자문리학원의 교수를 지냈고, 1962년 대만에서 병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