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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무로 사이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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室生犀星
무로 사이세이는 다이쇼(大正) 시대부터 쇼와(昭和) 시대에 걸쳐 시·소설·하이쿠·수필·평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방대한 양의 작품을 남겼다. 단행본 기준 150권 이상의 저서를 간행했으며 그 가운데 20여 권의 시집과 80여 권의 소설집을 펴낸 일본의 대표적 시인이자 소설가다.

하급 무사 출신인 아버지와 하녀였던 어린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일주일 만에 인근 절의 주지승을 통해 양자로 입양된다. 주지승의 내연의 처에게 입양되어 자라면서 친부모와는 가깝게 교류하지 않았고 열 살 무렵 친부가 사망한 뒤 친모는 자취를 감추어 평생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비롯된 자격지심과 그로 인한 반항과 고독에서 사이세이는 일생 동안 자유롭지 못했다. 사이세이의 삶과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테제는 이러한 태생적 결함을 극복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 독립을 도모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사이세이 문학은 전통 시가인 하이쿠에서 시작한다. 양모의 권유로 14세 무렵 고등소학교를 중퇴하고 지방재판소에 급사로 취직을 한 그는 직장 상사에게 하이쿠의 기초적인 작법을 배운다. 이후 지역 신문이나 문예지에 시가나 산문을 발표하는 등 문학에 대한 열의를 쏟아붓는다. 초기에는 본명인 데루미치(照道)와 필명인 잔카(殘花)를 썼으며 17세 무렵부터는 사이세이(犀西)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사이세이(犀西)라는 이름은 당시 가나자와 출신의 고쿠부 사이토(?府犀東)의 필명 속에 담긴 ‘사이강의 동쪽(犀東)’이라는 의미에 상응하여 붙인 것이다. 그는 강의 서쪽에서 나고 자랐다는 의미를 담아 필명을 ‘사이세이(犀西)’라고 지었으며 나중에 같은 음의 한자인 ‘사이세이(犀星)’로 바꾼다.

1907년 그의 나이 19세 때 《신성(新?)》에 발표한 시를 계기로 고다마 가가이(?玉花外)의 지원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시에 몰두한다. 아울러 1910년 22세 때에는 포부를 품고 상경하지만 무명 시절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경제적 궁핍과 불안정함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도시 생활에 지친 그는 미련 없이 고향 가나자와로 돌아간다. 그러나 고향에서의 삶 역시 녹록하지는 않았으며 가슴속에 품은 문학을 향한 열망은 그를 몇 번이고 다시 도쿄로 돌아오게 만든다. 도쿄와 가나자와를 오가며 이상과 현실 속에서 좌절을 반복하는 동안 그의 시에는 고향에 대한 애착과 고된 삶의 모습이 현실적인 감각과 이상 세계로의 환영으로 발현된다.

값싼 하숙방을 전전하며 곤궁한 생활을 하는 생활 속에서도 사이세이는 뜻이 맞는 문인들과 시사(詩社)를 결성하거나 동인지를 간행하는 등 시인·편집자·발행인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 간다. 20대 중반부터는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를 비롯하여 우에다 빈(上田敏),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郞),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등과 친분을 이어 가며 문단의 중심에 선다.

시인으로 이름이 알려지던 시기 사이세이는 소설 창작에도 힘쓴다. 그가 소설로 영역을 확장하게 된 까닭은 불우한 성장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공명심과 경제적 자립에 우선하는 것이었다. 1919년 31세에 〈유년시대(幼年時代)〉를 《중앙공론(中央公論)》에 발표하여 높은 반응을 얻게 되고 그해에 〈성에 눈뜰 무렵(性に眼?める頃)〉, 〈어느 소녀의 죽음까지(或る少女の死まで)〉를 발표하며 소설가로서 명성을 다진다. 초기 자전소설 3부작이라 할 수 있는 〈유년 시대〉, 〈성에 눈뜰 무렵〉, 〈어느 소녀의 죽음까지〉는 태생적 속박과 자신의 상흔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이와 더불어 사이세이는 한 해 30~40여 편의 소설을 발표하는 창작욕을 보인다. 그런 성과로 46세에 양모와 절에서 함께 자란 형제들을 소재로 소설 〈남매(あにいもうと)〉(1934)를 발표하며 1935년 제1회 문예간담회상(文芸懇話?賞)을 수상한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 오다 1953년에는 영화화가 되기도 하고 1972년에는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한다.

소설이 많은 관심을 받은 것에 반해 사이세이는 점차 시를 쓰는 일에 소홀해 진다. 1932년 간행한 시집 《철집(鐵集)》에서 ‘더는 시집을 엮을 마음이 없다’는 것을 고백한 이래 1934년 8월에는 〈시여 그대와 헤어지노라(詩よ君とお別れする)〉(《문예(文藝)》)라는 글에서 마침내 시작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는 변화에 대한 의지와 시와 소설 두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이후 침체기를 겪다가 〈남매〉의 성공으로 자신의 문학적 생명을 소설에 걸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러한 문학적 변혁기를 보내며 사이세이의 문학은 더욱 깊이를 더한다.

그는 타고난 미적 감각으로 전통적 아름다움이 살아 있는 일본의 정원을 소재로 하는 글을 다수 남기고 있다. 수필집 《정원을 만드는 사람(庭を造る人》(1927), 《정원과 나무(庭と木)》(1930), 《일본의 정원(日本の庭)》(1943)이 그것이다. 그는 1931년 가루이자와에 별장을 짓고 매년 여름을 그곳에서 보내며 집과 정원을 직접 가꾸는 것을 취미로 삼는다. 이 별장은 자신과 친분이 깊은 호리 다쓰오(堀辰雄),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시가 나오야(志賀直哉) 등 많은 문인들이 드나드는 교류의 장소가 되었으며 사이세이 자신 역시 이 별장에서 〈성처녀(聖處女)〉(1935), 《살구 아이(杏っ子)》(1956) 등과 같은 작품을 저작한다.

전시기에 이르러 사이세이는 《천황의 군대(美以久佐)》(1943)와 《일본미론(日本美論)》(1943)에서 전쟁을 찬양하는 시를 발표하여 전후 논란의 중심에 선다. 이에 도미오카 다에코(富岡多?子)는 ‘시인은 대중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해 주는 능력자로서 국가에게 이용당하는 시대도 있다. 전쟁 시대에 시인은 국책에 봉사하는 선전가·선동가로만 기대되었을 것이다’라며 사이세이를 옹호하기도 한다. 사이세이는 《무로 사이세이 전시집(室生犀星全詩集)》(1962)에서 ‘오늘 이들 시를 지우는 것은 마음속의 더러움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며 논란이 된 전쟁시를 삭제한다.

오랜 문학 활동을 통해 높은 문업을 이룬 사이세이는 제1회 문예간담회상(文芸懇話?賞)(1935), 제3회 기쿠치간상(菊池寬賞)(1941), 제9회 요미우리문학상(??文?賞)(1958), 제13회 마이니치출판문화상(?日出版文化賞)(1959), 제12회 노마문예상(野間文芸賞)(1959) 등을 수상한다.

1961년 10월 73세에 폐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던 중 쇠약 증세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1962년 3월 1일 도쿄 도라노몬(虎の門) 병원에 입원한 뒤 의식 불명에 이른 19일로부터 일주일 후 3월 26일 영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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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하기와라 사쿠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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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giwara Sakutaro,はぎわら さくたろう,萩原 朔太郞
1886년 11월에 군마 현 마에바시 시에서 태어났다. 마에바시 중학교 때부터 당시의 가장 유명한 문학잡지인 [명성(明星)]에 단가(短歌)를 투고하는 등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을 떠나 타지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몇 번의 낙제를 거듭한 후 귀향하여 1913년경부터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개시했다.

이후로 수도 도쿄(東京)와 고향을 오가는 생활을 계속하면서 시작에 전념하여 1917년, 처녀 시집 『달 보고 짖는다』를 간행했다. 이 시집에서 근대인들의 고독감과 신경 쇠약, 우울증을 구어체(口語體)로 섬세하게 표현해 냄으로써, 하기와라 사쿠타로는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郞)와 함께 ‘일본 근대시의 완성자’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게 된다. 관능적이며 근대적인 고독에 대한 시를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 썼고, 이는 일본 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1923년에 두 번째 시집 『우울한 고양이』를 출판한다. 이 시집에서는 우울함과 무료함, 권태로움을 ‘우울한 고양이 스타일’이라 불리는 독특한 시 형식으로 표현했다. 쇼펜하우어와 니체, 불교의 영향을 받은 염세적 허무 의식과 관능적이며 퇴폐적인 시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1925년에 발간한 『순정 소곡집』은 단가에서 시로 옮길 때의 작품인 ‘애련(愛憐) 시편’과 30대 후반에 발표한 ‘... 향토망경(鄕土望景) 시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에는 소년 시절의 순수한 감상과 영탄이, 후자에는 도쿄에서 바라본 변해가는 고향의 모습과 비속한 인생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어 있다.

1934년에 출판된 마지막 시집 『얼음 섬』에서는 고향을 상실한 영원한 방랑자로서 당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증오와 적요(寂寥)와 격정’을 담은 ‘절규’를 비분강개의 한문 번역 투의 문어체로 표현했다. 그 밖에 아포리즘을 모은 책 『새로운 욕망』(1922), 시론집 『시의 원리』(1928), 수필집 『일본으로 회귀』(1938), 산문시집 『숙명』(193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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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마키노 신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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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chi Makino,まきの しんいち,牧野 信一
다자이 오사무가 많은 영향을 받은 작가. 환상적, 초현실적 문체로 자기만의 문학적 세계를 확립했다. 1919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열세 명의 동인을 모아 『13인』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는데, 거기에 첫 작품 [손톱]을 발표했고, 당시 자연주의의 대가였던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에게 극찬을 받았다. 이후 전기에는 대부분 신변잡기적 사소설풍의 육친 혐오적 작품을 썼다.

그러나 중기에는 작풍이 다소 변화되어, 이른바 환상풍의 경지를 개척하게 된다. 고향 오다와라(小田原)의 풍토에 고대 그리스나 유럽 중세의 이미지를 중첩시켜 꿈과 현실을 교착시킨 환상적인 작품들로, 지적인 유머나 풍자성이 그 특징이다. 후기에 해당하는 1931년 무렵부터는 신경쇠약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작품은 다시 전기의 사소설적 경향으로 바뀌며 더욱 어두워졌다. 이런 마키노 문학은 일본문학사에서 일반적으로 자연주의의 전통을 이은 ‘사소설’의 방류로 평가되며, 그 작품은 ‘변형 사소설’로 불린다.

마키노 문학의 미학적 본질은 창백한 자의식에서 반사되는 신경증적 양상과 비애감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살도 채 안 된 자신과 어머니를 남겨두고 미국으로 가 버린 아버지의 보헤미안적 이고 데카당적인 삶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교육열이 높고 훈육에 엄격했다. 어머니의 엄한 양육 방식은, 아버지를 닮아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던 마키노의 유년 시절에 큰 상처를 남겼으며, 그 트라우마는 끝내 치유되지 못했다. 그것이 육친 혐오 양상이나, 신경증적 양상, 그리고 방랑이나 위악성과 자조성, 광기 등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起夫)는 “일본인으로서 일본 풍토에 발을 디디고 살면서, 이것을 서구적 교양으로 치환해 바라보고, 서구적 환상으로 장식해, 언어 예술만이 잘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이 같은 이중의 영상을 작품 세계로 해, 그 신비한 지적 감각 체험에 독자를 이끌고 가는 하이칼라의 작가”라고 그의 작품의 본질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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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다나카 고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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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taro Tanaka,たなか こうたろう,田中 貢太郞
소설가 겸 수필가. 고치 현 출신으로 한학 학원에서 공부를 한 뒤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후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다 도쿄로 올라와 오마 게이게쓰, 다야마 가타이, 다오 레이운에게 사사했다. 1909년 다오의 「메이지 반신전」 집필 작업을 도운 것을 계기로 「중앙공론」지에 연애담, 괴담 등을 싣게 된다. 이후 기행문, 수상록, 연애담, 괴담, 기담 등을 주로 썼다. 대표 저서에 「다나카 고타로 견문록」,「선풍 시대」,「일본 괴담 전집」,「지나 괴담 전집」 등이 있다. 다양한 장르 약 500편에 정도의 글을 남겨 오늘날까지도 계속 출판되고 있다. 사후 제 3회 키쿠치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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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토요시마 요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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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shio Toyoshima,とよしま よしお,豊島 與志雄
소설가, 번역가, 아동문학가. 1890년 11월 27일, 후쿠오카 현 아사쿠라 군 후쿠다 촌(현재는 아사쿠라 시로 승격)에서 태어나, 도쿄대학 불문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때인 1914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기쿠치 칸, 구메 마사오, 야마모토 유조 등과 제 3차 『신사조』를 창간했다. 같은 해, 『제국문학』에 발표한 로 문단에 데뷔했다.

1917년 첫 창작집 을 펴냈다. 소설과 번역 등의 문학 활동을 하는 한편 1919년부터 아동문예잡지 『빨간새』를 중심으로 여러 잡지에 동화를 발표했다. 이때부터 아동문학과도 깊은 인연을 맺었고, 소설과 함께 많은 동화를 남겼다. 번역서에는 『레미제라블』, 『장 크리스토프』, 『천일밤 이야기』 등이 있는데 이 번역 작품은 오늘날에도 읽히고 있는 명역이다. 그가 번역한 번역본은 오늘날까지 개정판을 거처 많은 사람이 읽고 있다. 주로 번역을 하며 창작활동을 했다.

다자이 오사무, 사카구치 안고, 다나카 에이코 등과 친교가 있었고, 전후에는 일본 펜클럽 간사장, 일중우호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또 도쿄대학 강사, 호세대학과 메이지대학 교수를 역임하는 등 문학과 교육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 1955년 6월 18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시대가 변해도 그 매력이 퇴색되지 않는 작품들의 가치가 현대에 이르러 새로이 높 은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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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boku Kozakai,こさかい ふぼく,小酒井 不木
추리소설가, 의학자. 1890년 10월 8일 일본 아이치현에서 태어난 고사카이 후보쿠는 도쿄대학 의학부에서 생리학과 혈청학을 전공했다. 도호쿠대학의 교수로 재직한 그는 당시 생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였다. 1921년 「신청년」이라는 잡지에 탐정과 범죄를 주제로 한 소설과 논문을 발표한 후 1924년부터 본격적으로 추리소설가로 활동했지만 1929년 40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의학과 생리학을 소재로 당시로서는 전무한 미스터리 소설을 개척한 그는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도가와 란포의 스승으로서 현대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선구자이다. 해외 탐정 소설을 번역,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한 범죄 연구를 진행하였고, 이는 그의 탐정 소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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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川 方夫
본명 야마카와 요시미. 도쿄에서 태어나 게이오기주쿠 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중퇴했다. 소설가가 되기로 하고 전쟁 후 다쿠보 히데오, 가쓰라 요시히사 등과 함께 제3차 『미타문학』을 편집 및 복간했다. 전쟁 후의 청춘을 자전적으로 그린 「매일의 죽음」을 인정받았고, 「그 1년」으로 문단에 등장했다. 「연기의 끝」, 「그 1년」, 「바다의 고발」, 「해안공원」, 「아마 사랑일지도」가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고, 「크리스마스 선물」이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다. 쇼트쇼트 분야에서도 활약하여 「부적」이 해외에 소개된 바 있다. 「여름의 장례 행렬」은 일본 교과서에도 수록될 만큼 쇼트쇼트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촉망받는 작가였으나 결혼하고 1년이 채 되지 않은 1965년 2월 교통사고로 35세에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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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 최수민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역 : 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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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것을 좋아하고 기억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일본 메이지 대학에서 일본 문학을 전공했으며, 타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 『문신』 속 여자의 하얀 맨발에 관하여 졸업논문을 썼다.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떠도는 것을 좋아하며, 음악과 영화, 책과 늘 가까이한다. 부드럽지만 걸림이 있는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역 : 최은경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역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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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을 전공했다. 외국어 문학의 울림과 감성을 한국의 정서로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는 번역을 추구한다. 구성작가, 번역가, 글쓰기 강사 등으로 활동하며, 독립출판물과 문예지를 출판한다. 글이 닿는 자리가 좋아 이곳저곳을 떠도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