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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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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5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448쪽 | 572g | 140*210*26mm
ISBN13 9791191602012
ISBN10 119160201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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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돌에 등을 기댄 반듯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두 다리는 앞으로 곧게 뻗어 있었고, 고개는 지친 사람처럼 옆으로 살짝 기울어진 채였다. 검은 물속에서 솟아오른 남자의 금발 머리칼이, 제이스가 만든 물살에 휩쓸리며 야단스럽게 춤을 추었다. 윗입술은 마치 비웃고 있는 듯이 말려 올라간 상태였다. 누군가를 조롱하는 듯한 기분 나쁜 미소. 제이스는 남자의 치아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남자의 발목에는 밧줄이 칭칭 감겨 있었고, 그 끝에 낡은 아령이 매달려 있었다.
--- p.13

“그 총 치우고 뭘 원하는지 얘기해봐요.”
“환대를 해주시는군.” 긴 금발의 남자가 말했다. “여기 와서 만나본 다른 사람들과는 확실히 달라.”
“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도 차분해. 한밤중에 낯선 남자가 둘이나 들이닥쳤는데도 말이야.”
“게다가 우린 총까지 들고 있잖아. 어떻게 저렇게 덤덤할 수가 있지?”
그들은 그녀에게로 다가오며 대화를 이어갔다. 마치 여행 중에 주변 경치를 구경하며 감상을 나누는 사람들처럼. 그들이 툭툭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눈에 들어온 권총보다도 더 그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 p.133

‘그들이 죽었으면 좋겠어.’ 그는 생각했다. 뜨거운 눈물이 배어나기 시작했다. ‘놈들도 그날 물속에서 본 시체랑 같이 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그들은 내가 거기서 죽었기를 바랐겠지만.
그는 절망적인 현재의 상황이 아직 실감 나지 않았다. 물론 목격자인 자신이 그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라는 사실은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한다는 발상은 너무 터무니없어서 가끔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들은 내가 죽기를 바라고 있어. 그들은 진정으로 내가 죽기를 바라고 있어.’
--- p.160

“‘그들’이 대체 누구지? 이름은 몰라도…….” 그녀는 적절한 표현을 찾아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이스에게 표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악마들이에요.” 그가 말했다. “악마. 경찰처럼 차려입고 진짜 경찰들을 죽였어요. 그것도 돈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면서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더라고요. 난 그들의 범행을 똑똑히 목격했어요. 너무나 여유로워 보이던걸요. 무슨 게임을 하듯이 말이에요.”
--- p.199

“정말로 불꽃을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냥 연기만 보일 줄 알았는데. 표현이 좀 그렇지만, 여기서 내려다보니 예뻐 보이네요.”
“그래.” 그녀가 말했다. 소년의 말대로 멀리서 바라본 불꽃은 예뻤다. 아니, 숨이 멎을 듯 아름다웠다. “현장에서 보면 또 달라.” 그녀가 말했다. “불꽃이 구름으로 변할 때, 불길이 선사시대의 무언가처럼 무섭게 달려들 때. 그걸 직접 보고, 느끼고, 들어보면 말이야. 불이 내는 소리는…… 꼭 굶주린 괴물이 내는 소리 같아. 그렇게밖에는 표현이 안 돼. 굶주린 괴물.”
“어떻게 불에 대해 그렇게 잘 아는 거죠?”
“한때 불을 끄고 다녔던 적이 있거든.”
--- p.276

불길이 번지는 속도는 오르막에서 더 빨라졌다. 산불의 사악한 수법 중 하나였다. 그들이 자리한 곳의 경사는 35도 정도였다. 어쩌면 40도에 이를 수도 있었다. 불은 30도 경사면에서 두 배나 빨리 번져나갔다. 거센 바람도 감안해야 했다. 바람막이가 되어줄 나무가 죄다 타버렸으니 말이다. 바짝 마른 풀에 불이 옮겨 붙는 순간, 마라토너는 스프린터로 돌변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맹렬하게 따라붙는 불길 앞에 위태롭게 놓이게 될 터다.
그들이 이길 가망은 없었다.
--- pp.41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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