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금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자꾸 가슴에 들어찬다.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괜찮아. 밥 먹자.” 당신은 이불 속에서 나를 끄집어낸다. 고등어 조림, 오징어볶음, 계란찜, 간장 무조림 같은 음식들. 내 앞으로 밀어주는 반찬들. 내게 밥을 먹는 일이 낭만적이고 뭉클한 것은 누군가 괜찮지 않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 p.13, 「밥을 먹는 일」 중에서
“왜 그렇게 식물을 키우는 거야?”
“정직하니까. 내가 애정을 쏟으면 쏟는 대로 생생해져. 애정을 거부하지도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지도 않으니까…. 인간보다 심플하고 위로가 돼.”
사람이 하는 사랑에는 머리가 달려 자꾸 계산을 한다. 마음을 계산한다는 건 곱해도 더해도 셈한다는 그 자체로 마냥 쓸쓸하다. 마음의 셈법에 답이 있다면 하면 할수록 외로워진다. 내어 주고 돌아오지 않는 마음에 상처가 나기도 하고 누군가가 내어 준 마음에 의심을 품고 외면하기도 한다.
--- p.22, 「마음의 셈법」 중에서
나의 언어는 뱉는 순간 타인의 언어가 된다. 당신의 언어 역시 나의 언어로 해석된다. 그 간극에서 서로에 관한 오해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곱씹고 상상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당신의 언어를 당신의 언어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다. 이로써 우리의 삶은 훨씬 심플해질 수 있다.
--- p.67, 「상상하는 말」 중에서
화장실 앞에서 다리가 풀렸다. 나를 안고 정신 차리라고 울먹이는 당신의 말이 간간이 들린다. “괜찮아. 괜찮아.” 그 말이 꼭 마법사가 외는 주문 같다. 알고 있다. 임신한 내게 쓸 수 있는 정신과 약은 없다는 것을. (…) 정신 차리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당신은 그렇게 되뇐다. 나에게 하는 말인지 당신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두렵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두려움이다. 아기가 어떻게 될까 봐. 배에 힘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자꾸 힘이 들어간다. --- pp.92~93, 「믿음」 중에서
아기는 벌이 눈앞에 와도 똑바로 바라볼 뿐 무서워하지 않는다. 나는 아기의 이런 상태가 좋다. 순수하고 두려움이 없는, 연약하지만 야생적인, 길들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 의도가 있지 않은 상대는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아기의 이런 상태 때문에 나는 벌이 더 무섭다. 동시에 벌이 아기를 쏘기라도 할까 봐 손으로 때려잡을 준비를 한다.
--- pp.140~141, 「새벽」 중에서
밤이 좋다. 밤은 무척이나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느낌이다. 평온함, 치유와 회복 그리고 마무리되는 느낌들이 밤의 사색과 어우러져 참 멋진 시간이 된다. 원래도 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나 아이를 낳고는 더욱더 좋아진다. (…) 엄마에게 혼자인 시간이 꼭 필요한 것은 ‘원할 때 할 수 있는’ 자유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돌보고 자기 자신이 된다. 아기를 키우기 전에는 당연했던 시간. 나로 사는 시간이 즐겁다. 어떤 나인지는 상관없다.
--- pp.184~185, 「고독의 즐거움」 중에서
“엄마. 공황발작이 와도 아기가 옆에 있으면 곧 괜찮아져. 정말 신기해.”
“상아야, 아기 앞에서 아픈 모습을 보이면 안 돼. 아기들은 다 알아. 그러다 언젠가 아기가 엄마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날이 올 거야. 그러면 아기가 엄마를 보호해 줘야겠구나 생각하기도 하고 이제 네 눈치를 보게 될 거야. 그런 걸 원치는 않잖아. 그러니까 부모는 자식 앞에서 아프면 안 돼.”
--- p.210, 「안 되는 사람」 중에서
늘 내게로 향해있던 시선이 타인에게 향한다. 나를 돌보기 급급해 충분히 바라보지 못한 가족과 같은 가까운 타인들을 이제서야 바라본다. 내 양팔로 안을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의 인생에 눈을 맞추고 안녕을 살핀다.
--- p.231, 「너그러워지는 일」 중에서
행복은 태어날 때부터 쥐고 태어난다. 웃음과 울음은 본능이다.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울면 된다. 어른들은 반대로 복잡하게 산다. 긴장해서 주먹을 꽉 쥔다. 긴장을 풀고 주먹을 편다. 웃는다. 모두가 웃는다. 웃는다. 마음이 큰소리로 웃는다. 즐겁다. 신난다. 쉽다. 행복은 이토록 쉽다.
--- p.236, 「행복은 쉽다」 중에서
아이는 클 때마다 성장통을 겪는다. 세상이 없을 것처럼 울다가도 언제 아팠냐는 듯이 어느새 모험을 떠난다. 아픔에 휘둘리는 것은 어른이다. (…) 행복도 아픔도 휘둘리지 않을 만큼만 중요하면 된다. 불행 슬픔 아픔 같은 것들이 견디기 힘든 건 행복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살다 보니 유별나게 중요한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도 없다. 사랑은 엉망진창인 나와 함께이다.
--- pp.256~257, 「산다는 건 시가 아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