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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평전

: 권위와 신화의 옷을 벗은 인간 공자를 찾아서

안핑 친 저 / 김기협 역 / 이광호 감수 | 돌베개 | 2010년 11월 0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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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0년 11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327쪽 | 578g | 153*224*30mm
ISBN13 9788971994122
ISBN10 8971994126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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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중국을 읽을 수 있는 문제적 키워드, 「공자」

최근 중국 공산당은 '포용과 조화'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유교의 현대화를 통해 중국의 '평화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전략을 보이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이미 역사적으로 중국 뿐 아니라 한국, 일본, 베트남에도 큰 영향을 가지고 있는 유교는, 서양에서도 '공자'가 가진 성인의 이미지와 부합하여 중국이 정치적 의도를 포장하여 전달하기에 충분한 수단이 되고 있다. 중국이 전 세계 54개국 156곳에 「공자 학원」이라는 이름의 교육기관을 개설하면서 자국의 문화, 역사뿐 아니라 언어의 전파를 위해 애쓰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중국이 2500년 전의 인물을 부활시켜 현재의 아이콘으로 활용하고 있는 지금, 그렇다면 우리는 공자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공자 평전』의 저자 「안핑 친金安平」은 중국계 미국인으로 청대 고증학을 전공한 역사학자이다. 그녀는 꼼꼼하게 고대 문헌들을 정독해가면서 가장 믿을 만한 공자 본연의 모습을 복원해냈다. 지금까지 공자의 삶에 대한 이해는 주로 사마천의 「공자전」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저자는 이보다 좀 더 오래된 문헌에 의거하여 공자의 인생을 재구성한다. 또한 지금까지 공자의 업적 위주로 이루어졌던 기술의 방식을 배제하고, 공자의 삶, 특히 공자의 만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자가 살던 시대의 정치적·사회적 분위기의 이해를 먼저 바탕으로 하고, 그가 조정을 떠나 유랑의 길에 나서는 곡절, 인간성에 대한 관점을 갈고 닦으면서 도덕적 정치 질서의 원리를 정리해내고 직업적 교사의 역할을 맡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공자를 모르는 한국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공자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도덕시간에 배우는 유교를 떠올리거나, "공자왈, 맹자왈"로 시작하는 경전의 낡은 구절들, 봉건, 충효, 인(仁), 전통 등, 공자를 둘러싸고 있는 관념들에 대해서만 생각하기 쉽다. 이 책은 그러한 관념들에 둘러싸여 보이지 않았던 공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 『공자 평전』은 공자가 단순히 고리타분한 과거의 인물이 아닌, 현대의 삶에도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는 삶의 생생한 가르침을 남긴 사상가로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감사의 말

프롤로그
2,500년의 세월
우울한 출발
공자 시대의 정치
젊은 길동무들
고달픈 유랑
돌아오는 길
가르친다는 일
삶과 죽음의 예법
두 사람의 후계자
에필로그

옮긴이의 말

집필 자료에 관한 한마디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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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명)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감수 : 이광호
서울대 철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민족문화추진회와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태동고전연구소 연구교수와 한림대 철학과 부교수를 거쳐 현재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있다. 박사논문인 「이퇴계 학문론의 체용적 구조에 관한 연구」 외에 퇴계 이황,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과 관련된 여러 편의 논문이 있다. 대표 번역서로 『근사록집해 1·2 』『성학십도』 『이자수어』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오늘의 중국을 읽는 핵심 코드, 공자

최근 중국 공산당 5중 전회에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당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선출되면서 2012년 등장할 중국의 새 지도체제가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시진핑의 정치적 모토는 ‘포용과 조화’로 정리되는데, 이는 후진타오의 정치적 구호를 잇는 것이다. 조화사회 구현이라는 정책목표를 내세우고 있는 중국 공산당은 유교의 현대화를 통해 ‘평화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유교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베트남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에도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유교는 중국이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포장하여 전달하기에 여러모로 유용한 수단이다. 따라서 이 유교의 창시자이자 아이콘인 공자를 부각시키려는 중국의 노력은 자연스럽다. 중국이 최근 전 세계 54개국 156곳에 공자학원을 개설하면서 자국의 문화, 역사뿐 아니라 언어를 전파하기 위해 애쓰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파악이 가능하다. 중국어 교육을 주목적으로 하는 이 단체의 이름이 ‘공자’라는 사실,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중국이 공자를 이렇게 자국의 정치적 아이콘으로 삼아 다각도로 활용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공자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공자’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옛 사극에서 고리타분한 훈장이 늘어놓는 “공자왈, 맹자왈” 시작하는 경전의 낡은 구절들, 봉건, 충효, 전통 등의 관념들뿐인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중국이 2,500여 년 전의 인물을 현재에 부활시킨 것은 공자라는 인물이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모호한 관념들에 파묻혀 제대로 읽어볼 기회가 없었던 ‘인간’ 공자 본연의 모습을 확인해보는 것은 어떨까? 여기 오랜 시공을 거슬러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공자를 만나려고 시도한 학자가 있다. 그녀가 바로 안핑 친이다. 그녀는 서양에 중국사를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데 큰 공헌을 한 저명한 중국학자인 조너선 스펜스의 아내이기도 하다. 중국계 미국인인 안핑 친은 청대 고증학을 전공한 역사학자로서 꼼꼼하게 고대 문헌들을 정독해가면서 가장 믿을 만한 인간 공자의 모습을 복원해냈다. 그 역작이 바로 『공자 평전』이다.

드라마틱하게 재구성된 공자의 삶과 사상

이제까지 사마천의 공자전은 공자의 삶에 대한 가장 믿을 만한 기록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안핑 친은 공자의 삶에 대한 사마천의 기록이 재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보다 더 오래된 문헌에 근거하여 공자의 인생을 재구성하려는 야심찬 시도를 했다. 이 작업에서 저자가 가장 크게 의지하는 문헌은 『논어』와 『춘추좌씨전』이다. 또한 저자는 사마천의 이전의 『맹자』, 『순자』, 『장자』 등 수많은 문헌을 통해 공자의 삶을 재구성한다. 게다가 곽점본이나 상해박물관의 죽간 등 최근 발굴된 고고학 자료까지 활용했다. 물론 이러한 저자의 작업은 공자 시대에 근접할수록 더 충실하게 공자의 인생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다.

저자는 이 작업을 하면서 주로 공자의 만년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노나라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죽기 전 5년간과 공자가 자신의 도덕적 정치적 가르침을 폈던 유랑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저자는 공자의 삶을 재구성하기 위해 입체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역사적 인물을 온전하고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공자 시대의 사회역사적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할 뿐 아니라 공자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수많은 인물들에 대해서도 다룬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하게 공자가 자신의 인생에 걸쳐 만난 인물과 사건의 단편적인 모음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보다는 공자가 살았던 중국의 ‘축의 시대’Axial age를 온전하게 그려내려는 시도에 더 가깝다. 주변상황과 사건을 분리하기보다는 사회적 맥락을 온전히 파악한 아래서 사건과 인물을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같은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사마천의 기록에는 공자가 14년간 7개국을 돌아다니고 어떤 나라는 몇 차례 방문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저자는 『논어』나 『장자』를 근거로 공자가 7개국이 아니라 4개국을 유랑했으며 그의 루트가 같은 나라를 두 번 방문해서 겹치는 것이 아니라 원을 그리고 있음을 분명하게 확인해준다. 2천 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공자는 중국사에서 떼어낼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 거대한 명성과 달리 그 인간 자체의 모습은 명확하지 못하다. 안핑 친은 『공자 평전』에서 가장 믿을 만한 자료들을 통해 수많은 연의演義와 억측 속에서 공자의 참 모습을 조탁해냈다.

저자는 공자가 살던 시대의 정치적?사회적 분위기를 우선 그려낸다. 그러고 나서 그가 조정을 떠나 유랑의 길에 나서는 곡절, 인간성에 대한 관점을 갈고 닦으면서 도덕적 정치 질서의 원리를 정리해내고 스스로 바람직하지 않게 여기던 직업적 교사의 역할을 맡게 되는 곡절을 보여준다. 그렇게 해서 공자가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생각을 한 사람인지 알려주는 흥미롭고 참신한 책 하나를 만들었다. 공자의 습관과 취향, 사람들과의 관계, 스승과 조언자로서 그의 역할, 세태와 장래에 대한 그의 걱정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공자가 우리에게 다가와 자신의 도덕 이념, 그리고 가정과 정치, 문화와 학문에 관한 자신의 가르침을 직접 전해주게 한다. 『공자 평전』은 지금의 세상에까지 힘찬 가르침을 남긴 한 사상가의 생애와 지적 발전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유랑과 가르침의 길에서 읽어낸 인간 공자의 질박한 삶

프롤로그
삶과 도덕의 탐구자 공자를 연구하는 목적과 과정, 전체 내용 요약을 기술한다. 저자는 중국을 대표하지만 제대로 된 이해를 얻지는 못하고 있는 공자라는 인물을 과장되지 않게, 철저히 수집된 자료에 근거해 연구하고자 한다.

2,500년의 세월
공자는 주나라의 봉건체제가 흔들리고 제후와 귀족이 자신들의 야심을 위해 움직이던 시기에 활동했다. 엄격한 계급체제가 느슨해지면서 사士 계층의 진출이 잦아졌는데, 공자는 그런 사 계층에 속했다. 기존과 달리 새로운 역사의 규칙을 마련할 수 있는 변환기이므로, 잠재력은 높았지만 그만큼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공자는 주나라 무왕의 동생인 주공을 자신의 지표로 삼았고, 자산이나 관중 같은 이를 참고하고자 했다. 그런 공자에게는 그의 그런 문제들을 함께 토론하는 제자들이 있었다. 그중 존재가 두드러지는 사람은 자공, 안회, 자로이다.

상인의 활동과 역할이 확대되기 시작하던 춘추시대에 자공은 상인으로 태어났다. 사 계층인 안회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기는 하지만 높은 이상을 지난 사람이었다. 한편 자로는 새로이 국가 체제에 편입된 외부인으로 공자의 제자가 된 사람이었다. 공자는 그들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과 대화를 즐겼다. 대화를 하며 가르침을 베풀기도 했지만 배우기도 했다.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할 때도 차별이 없었지만 차이는 두었다.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대화를 풀고 이해한 공자의 태도 때문에 훗날 그의 문장은 여러 관점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송대에 이르러 주희와 정이의 학설로 확장되고, 이 학설은 나중에 청대 말기에 강유위와 담사동으로 이어진다.

우울한 출발
공자가 노나라를 떠난 이유를 탐색한다. 공자가 왜 노나라를 떠났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논어』에는 제나라에서 여자와 말을 보낸 뒤 계환자가 사흘간 조정에 나오지 않아 떠났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저자는 제나라의 여자와 말이나 제사 고기를 받지 못한 이야기 등은 사실이라기보다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는 데 쓴 핑계이기 쉽지 않나 생각한다. 이때의 노나라는 귀족 가문의 횡포가 극심했고, 공자의 노력만으로는 이 상황을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자 시대의 정치
공자는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과 정벌을 천자가 주재하고 도가 없으면 제후가 주제하되, 제후가 주재하면 10대를 지키기 힘들고 대부가 주재하면 5대를 지키기 힘들며 가신이 주재하면 3대를 지키기는 일이 드물다고 했다. 저자는 이 말을 장 앞에 두고 주나라의 몰락과 제후들의 야심을 간략히 설명한다. 주나라 초기 역사의 왕들은 노력해서 봉건제도를 만들어 주나라의 체제를 유지했지만 결국 유왕이 살해되면서 서주의 시대는 끝난다. 이후에 제후들의 도움으로 주나라는 명맥만 유지한다.

공자는 예악과 전쟁을 제후가 주도하는 자신의 시대를 도가 행해지지 않는 시대라고 믿었다. 그러면서 주나라의 반석을 다진 주공을 흠모했다. 주공은 주나라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으로, 일찍 죽은 무왕의 후계자 성왕을 보필했다. 반란을 일으킨 형제들을 처리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이 장에서 저자는 공자의 시대 전후의 역사 배경을 설명한다. 노나라의 3대 가문이 생겨난 배경과 그들의 횡포, 그로 인해 무너지는 원칙들. 그것을 걱정하는 공자. 춘추시대의 변화를 촉진했던 계무자의 이기적인 정책과 월권행위들, 그런 그와는 달리, 동시대를 살면서 좀 더 성실하고 충실했으나 무력했던 숙손목자. 숙손목자의 비극적인 최후와 뜻하지 않게 후계자가 되어 합리적으로 일처리를 도모한 숙손소자와 근신 두설 이야기가 나오고, 공자가 높이 평가했던 정나라의 자산이 잠깐 언급된다. 그 뒤로는 계무자의 뒤를 이은 계평자의 행패, 그런 모욕을 견디지 못한 소공과 다른 가문의 ‘반란’이 어떤 식으로 실패했는지 기술한다. 거기에 어리석고 옹졸한 소공의 측근 자가자의 충성을 대비하며, 공자는 자가자나 두설 같은 이가 실패한 사람이라고 여기지는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젊은 길동무들
공자의 유랑길에 함께했던 제자들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먼저 영리하고 언변이 좋지만 행실에 문제가 있어 공자의 걱정과 근심을 불렀던 재아가 나슿다. 낮잠을 자다가 야단맞은 일화, 애공과 사당의 나무에 대해 나눈 대화, ‘어진 사람’에 대한 공자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행실에서는 공자를 흡족하게 하지 못했지만 공자의 사고에 자극을 준 제자였음을 설명한다. 자공은 공자가 대화 상대로 가장 좋아했던 제자다. 공자는 자공이 자기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고 보았고, 침착하면서도 과장하지 않는 그와의 대화를 즐겼다.

공자는 안회를 자신도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사람으로 생각해, 인간의 도덕적 품성의 완성을 보여 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따라서 오히려 안회와는 사고를 깊이 하기 위한 대화가 적었다. 안타깝게도 안회는 요절했고, 공자는 크게 상심한다. 중궁은 천한 신분이지만 훌륭한 소질과 특성을 지니고 있어, 공자로부터 ‘남쪽을 향하고 앉게 해도 될 사람’이라는 극찬을 들었다. 그럼에도 그에 관한 언급은 『논어』에 거의 없다. 그가 공자의 유랑에 함께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그는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고달픈 유랑
공자는 기원전 497년부터 기원전 484년까지 노나라를 떠나 유랑했다. 이 세월 동안 그의 행적에는 많은 공백이 있다. 저자는 자료들을 모아 최선을 다해 이 기간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한다. 이 조각난 사실들을 하나의 연속으로 엮고자 시도한 사람은 사마천이다. 다만 그는 지나치게 과장하고 공자의 명예를 지키려는 열성으로 현실 문제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했다. 그의 글은 활동과 모험으로 가득한 이야기가 되었고, 공자는 그 이야기 속에서 쉼 없이 계속 움직인다. 공자의 시대에 좀 더 가까웠던 장자의 서술은 다소 간략하고 복잡하지 않다. 저자가 보기에, 사마천의 공자보다는 장자의 공자가 더 그럴듯하다. 그래서 장자를 기조 삼아 진행한다.

돌아오는 길
위나라의 대신 공문자와 친하게 지냈으나 그의 옳지 않은 행동을 보고 떠나려고 한 공자에게 마침 노나라에서 돌아오라는 요청이 전해졌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제자 중 염구와 자공의 출세가 공자의 귀국에 도움을 주었다. 염구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자공은 훌륭한 언변으로 계손씨를 위기에서 구한 적이 있다. 그러나 노나라는 더욱 혼란해져서 계손씨는 공자가 긍정적으로 보는 봉건제도를 무너뜨리고 백성에 전부田賦를 부과하고 싶어 했다. 염구가 조언을 청했지만 공자는 세금을 매기는 기본 원칙만을 넌지시 일러주었다. 염구는 스승의 말을 따르지 않았고 공자는 염구에게 몹시 화를 냈다.

노나라 애공에게는 아무런 권력이 없었다. 제나라의 대신 진항이 제나라 간공을 죽인 일이 일어나자 공자는 애공에게 제나라 백성들과 힘을 합쳐 진항을 치자고 하지만, 애공은 계손씨(혹은 3대 가문)에게 물으라고 대답한다. 공자는 애공의 말대로 그들에게 가서 말하지만 거부당한다. 이 일화는 주군의 명을 거역하지 않는 공자의 기본 원칙을 보여준다. 그리고 공자 역시 하나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치에서 느낀 무력함이 교육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젊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더욱 교육에 집중했다. 새로운 제자의 대표는 자장과 자하로, 한 사람은 지나치다는 평을 듣고 한 사람은 모자라다는 평을 들었다. 저자는 자장을 솔직하고 분명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말만 앞세운 재아와 다르게 공자가 자장을 아끼고 성심껏 가르쳤다고 말한다. 반대로 글자 하나하나를 장인처럼 파고든 자하 쪽을 갑갑하게 보았다. 똑같이 『시경』에 대해 대화를 하더라도 자공과는 달리 자하와는 대화를 피했다고 생각한다.만년의 공자는 체념 속에서 교육과 자기 세계로 파고들었다. 악사마저 노나라를 떠나는 마당이지만 공자는 떠나지 않았다. 체념을 통해 얻은 평정심으로 젊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몰두했다.

가르친다는 일
공자는 교육자이기를 바란 적이 없었다. ‘스승’이라는 사람을 존경하기는 했지만 배움은 스스로 닦고 스승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다. 가르치는 일이 하나의 직업이 될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깨우쳐주고 밝혀준다는 의미에서의 교육을 행하는 데는 싫증내는 일이 없었다. 그는 일방적인 가르침보다 빛을 던져줌으로써 스스로 깨닫게 하는 가르침을 좋아했고, 자신이 전해주는 사람이지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중시하는 것은 음악과 예법이었다. 『시경』의 즐겁되 넘치지 않고 슬프되 다치지 않는 노래와 순 임금의 「소」 음악을 좋아한 공자는 시에서 일어나 음악에서 모든 것이 완성된다고 믿었다. 그런 그가 싫어한 사람은 ‘명망가’의 평판을 가지면서 덕을 해치는 자들이었다. 그는 노나라의 재상을 대행하던 중에 소정묘라는 유명한 선비를 처형했다. 이에 따른 후대의 철학자 순자의 설명에는 그와 비슷한 사람으로 등석을 꼽으며, 사회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이라고 지적했다. 사?을 깊이 아는 것이 가능하지만 사물에 대해 함부로 단언하지 않던 공자가 소정묘를 죽인 이유는 소정묘가 인간과 짐승의 차이를 흐리게 하는 짓을 했기 때문이었다. 소정묘는 그저 사람의 올바른 판단을 가로막는 데 취미를 가진 사람일 뿐이었다. 공자에게 이것은 중죄 중의 중죄였다.

이렇게 선으로 흐르는 마음을 가로막는 무엇인가가 인간의 본성의 하나이므로, 공자는 그것을 잡아주는 매개체로 예를 주장했다. 공자는 ‘예는 붙들어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 혹은 예법은 명확한 구조와 규칙을 가져서 기본적인 인간성을 유지하게 해 준다. 공자는 특히 부모와 자식 간의 예법을 강조해 가례나 예라는 이름으로 따로 격식을 갖추었다. 그리고 자신을 억제하고 예로 돌아감으로써 인仁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통해 절도를 지키면, 지나치게 감정을 드러내 너무 기뻐하거나 너무 슬퍼하는 일이 없고 판단력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공자의 가르침은 결국 그 자신에게 하는 가르침과 같다. 공자에게 가르침과 삶은 하나였다. 삶이 자연스럽듯 가르침도 그에게는 자연스러웠다.

삶과 죽음의 예법
살아서의 예와 죽어서의 예에 대한 얘기가 전개된다. 대부분이 『논어』에서 관련 대목을 인용한 것이다. 마지막 부분은 공자가 죽은 후 공자의 제자들 사이에 있던 갈등과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해 한 말을 역시 인용으로 채운다. 공자의 삶을 다루는 실질적인 마지막 장이다.

두 사람의 후계자
저자는 마지막 장을 맹자와 순자에게 할애한다. 먼저 공자 사후에 어떤 제자들이 그 뒤를 이었는지, 문제는 없었는지 서술하고, 공자의 시대에 상대적으로 가까웠던 맹자가 어떻게 학통을 이었는지 살핀다. 맹자는 공자의 직전 제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공자의 가르침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며, 증자의 제자 자사가 가르친 제자에게 배웠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맹자는 논쟁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논점을 밝히는 데 공자의 이야기들을 효과적으로 뽑아 썼다. 그에게 공자는 어려운 세상살이에서 공정하고 온정 있는 길을 밝혀줄 안내자였으며, 공자의 가르침에 자신의 생각을 얹어 모든 사람에게 측은지심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과장에 능했고, 묵자나 양주 같은 경쟁자를 지나치게 의식했으며 자신의 직업을 너무 고상하게 여겼다. 냉정과 명민함이 부족했던 그의 모호한 주장을 가장 강력하게 비판한 사람은 순자였다. 현실적인 인물인 순자에게 신화적 인물과 이야기를 끌어들인 맹자의 논설은 교활한 선택으로 보였다. 전국시대 말기를 몸으로 겪었던 순자는 인간의 이성과 지성으로 지켜지는 정의를 신봉했다. 그는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고 욕망이 인간의 본성이며, 그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힘이 지성이라고 믿었다. 그럼으로써 폭력이 난무하고 일상화돼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전국시대의 개혁을 역설했다.

세상을 보는 냉철한 눈으로 지나친 타협에 주의했던 지닌 공자와 순자에 비해, 좀 더 유화적인 맹자는 중국 역사를 통해 많은 군주의 애호를 받았다. 맹자 자신은 군주와의 시간을 불편해했지만, 그의 죽음 이후 그의 사상과 군주들은 더욱 가까워졌다. 그의 사상은 국가 이념의 핵심을 이루었고, 송대에 이르러 다시 한 번 각광을 받아 근대까지 이르렀다. 반면 순자는 맹자의 부흥과 더불어 몰락했다. 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추악한 것’으로 본 그를 인정하지 않았고, 마침내 16세기에 이르자 공자의 사당에서 그의 위패를 치웠다. 18세기 청대에 이뤄진 잠시의 복권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절대왕정의 옹호자라는 비난과 함께 사그라지고, 그 모습은 현재에 이른다. (그러나 공자는 순자가 자신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말할 것이다.)

에필로그
저자가 곡부를 방문하면서 보았던 장면을 가볍게 스케치하면서 마무리하는 이 글에서 저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공자라는 인물이 무엇을 찾았는지 간략하게 정리한다. 그에 따르면 공자가 찾은 것은 ‘모든 것을 맞아들이며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걱정하며 모든 것을 하는 것’이었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언어가 가진 미묘한 의미와 불가사의한 지혜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공자는 소크라테스나 예수와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 미묘한 의미를 알아보는 데 안핑 친처럼 도움을 준 사람은 없었다.
'해럴드 블룸(예일대학 인문대 교수,문학비평가)'
공자의 가르침은 무려 2,500년의 세월을 통해 수많은 정치적 혼란과 가혹한 탄압을 견뎌왔다. 안핑 친이 다년간의 고전 연구에서 얻은 성과를 토대로 그려낸 공자의 생애와 그 시대의 모습은 많은 생각을 일깨워준다.
'헨리 키신저(전미 국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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