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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6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303g | 128*188*30mm
ISBN13 9788946418431
ISBN10 8946418435

중고도서 소개

사용 흔적 약간 있으나, 대체적으로 손상 없는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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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지는 아주 조금 고개를 움직여 요코 쪽을 살짝 본다. 천장을 가만히 응시하던 요코의 눈꼬리에서 물방울이 주르르 넘쳐 귀까지 흘러내린다. 에지는 그 모습을 못 본 것으로 하고 자신도 천장으로 시선을 돌린다.
가슴 안쪽에서 넘쳐나는 여러 ‘생각’들이 열을 품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어떤 ‘생각’도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만약 준비되지 않은 채 ‘말’로 바뀐다면, 한없이 ‘안녕’에 가까운 울림을 동반할 것 같다.
에지는 잡은 손의 온기에 마음을 담았다.
요코의 손이 에지의 손을 살짝 맞잡은 순간, 여태까지 줄곧 붙잡고 있던 에지 안의 가느다란 실이 뚝 끊어졌다. 갑작스레 눈꼬리에서 물방울이 주르르 넘쳐 귓속으로 흘러내린다.
딸랑.
요코가 좋아하는 풍경이 울린다. 두 사람은 늘 보아 익숙해진 천장에 시선을 준 채, 이불 속에서 가만히 손을 잡고, 소리 죽여 울었다. (p. 22)

“유치우편으로 보내는 편지, 지금 여기서 받는 건 불가능한지…….”
“죄송합니다만, 고인의 희망에 따르는 것이 저의 본분인지라……. 요코 님이 의뢰하신 대로 나가사키 우체국에 유치우편으로 발송하게 됩니다.” 죄송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사사오카 미네코의 어조는 사무적이고 단호했다. “이 편지는 오늘 돌아가는 길에 우체통에 넣게 되는데요. 유치우편을 받을 수 있는 기한은 도착 후 열흘간입니다.”
“그렇다면……, 그 편지가 우스카 우체국에 도착한 후 열흘 이내로 찾아야 한다는?”
“네, 그렇습니다.”
그 말은……. 나는 머릿속으로 날짜를 계산했다. 오늘 우체통에 넣으면 내일 수거해간다. 그렇다면 우스카에는 빨라도 모레 도착할 것이다. 내게 주어지는 유예기간은 불과 12일.
“저기, 혹시 말입니다만…….”
“네.”
“제가 만약 우스카에 안 가면 그 편지는……?”
“우편물은 반송하게 되어 있지만 그때는 저희가 소각 처분합니다.”
“소각 처분?”
“의뢰 내용이 그렇습니다.”
“내가 읽기 전에 태워버리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무심코 꿀꺽 하고 침을 삼켰다. 요코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우스카에 보내려 한다. (p. 89)

내가 요코의 뼈를 부술 수 있을까. 불안감이 머리를 든다. 분골을 업체에 맡기는 사람의 마음이 이제야 이해된다. 하지만 요코의 유언은 반드시 내 손으로 이루고 싶다. 마음을 담아, 철두철미하게, 나 자신의 손으로.
“요코…….”
쉰 목소리로 문득 이름을 불러보았으나 그다음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요코의 미소 짓는 얼굴이 언뜻언뜻 뇌리에 떠올랐다가 사라질 뿐이다.
“요코…….”
다시 한 번 부르며 유골을 응시한다. (……) 나는 일단 쇠망치를 내려놓고 양손을 뻗어 주머니 위로 유골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거친 뼈의 감촉에서 일말의 온기를 찾으려는 나 자신을 느낀 순간, 척추에서 힘이 쑥 빠져나가는 듯했다. (……) 요코의 뼈가 하얀 주머니 안에서 부서져 순식간에 작아져간다. 이때 알았다. 슬픔보다도, 허무감보다도, 상실감보다도, 오히려 고마움이 눈물샘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 p. 141

“아내는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책을 많이 읽고 박식해서, 제가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지요.”
“호오.”
스기노는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린다. 거실 의자에 앉아 문고본을 읽을 때의 요코의 옆얼굴을 떠올리며 천천히 추억 속의 구절을 입에 담는다.
“타인과 과거는 바꿀 수 없어도, 나와 미래는 바꿀 수 있다.”
“…….”
“아내의 좌우명입니다.”
나는 쑥스러워 콧등을 긁으며 웃었지만, 스기노는 이상하게도 입을 꾹 다문 채 뭔가 고민하는 듯한 얼굴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생에는 유효기간이 없다’라는 말을 자주 했지요.”
산의 경사면을 타고 상쾌한 바람이 올라온다. --- p. 160

모리사와 작가의 전작인 《무지개 곶의 찻집》이 어떻게 잘 살아야 할지를 이야기했다면, 《당신에게》는 자신이나 타인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표현해도 좋다.
요코가 남편인 에지에게 남긴 두 번째 편지는 앞으로 언젠가는 죽게 될 우리와, 언젠가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가슴 아픈 이별을 맞게 될 우리에게,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부드럽지만 명료하게 깨우쳐준다. …… 어느 한쪽의 죽음으로 인한 이별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면, 조금 위험하고 엉뚱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그리 슬프지만은 않을 것 같다.
---「옮긴이의 말에서」 중에서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교도소에서 직업훈련 교사로 일하는 구라시마 에지는, 아내의 장례를 치른 후 아내가 남긴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편지에는 유골을 고향 바다에 뿌려달라고 적혀 있었고, 나가사키의 우체국에서 한 통의 편지를 더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편지를 받을 수 있는 기한은 12일간. 아내의 마음을 알기 위해 직접 꾸민 캠핑카에 아내의 유골을 싣고 여행을 떠난 구라시마 그리고 우연한 만남들…….
결국 아내의 고향인 어촌 마을에서 마지막 편지를 읽은 구라시마는 참았던 눈물을 떨구며 무너지고 만다. 아내는 자신의 유골과 함께 남편과의 마지막 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바다에 아내를 뿌린 구라시마는 생전에 아내가 자신에게 하던 말을 상기하며 새로운 힘을 얻는다.
“타인과 과거는 바꿀 수 없어도, 나와 미래는 바꿀 수 있어요. 그리고 인생에는 유효기간이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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