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05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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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64쪽 | 196g | 128*198*20mm |
ISBN13 | 9788936478704 |
ISBN10 | 8936478702 |
발행일 | 2021년 05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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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64쪽 | 196g | 128*198*20mm |
ISBN13 | 9788936478704 |
ISBN10 | 8936478702 |
1장 서론 2장 동물복지법 3장 헌법 조항 4장 법적 인격성 5장 성원권 6장 민주적 대표성 7장 결론: 동물을 위한 정치적 권리 감사의 글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
요새도 동물을 학대하는 사건에 관한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고문하거나 죽이는 사이코패스 성향이 보이는 인간들부터, 경제적 이익을 위해 열악한 상태에서 동물들을 사육하는 업자들, 각종 끔직한 동물실험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까지 그 경우도 다양하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불쾌한 감정이 들 것이다. 누군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막으려(적극적으로 나서든지, 누군가에게 알리든지) 할 것이고. 하지만 그걸로 충분할까?(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법적 처벌수위도 그다지 무겁지 않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들이 필요하겠지만, 이 책의 저자는 법을 제정함으로써 일을킬 수 있는 변화에 집중한다. 동물보호, 혹은 동물복지에 관한 법인데,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나아간 입장이다.
저자는 현재의 동물복지 관련 법률이 충분치 못하다고 주장한다. 이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 처벌수위가 현저히 낮아서 제대로 된 범죄예방효과가 있는지조차 미지수다. 저자는 여기에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현재의 법률은 동물을 인간에 비해 낮은 지위에 있는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는 것.
방법은 동물들에게 일종의 ‘법적 인격’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 예상되는 반대의견을 하나하나 반박해 나간다. 예컨대 법적인 의무를 질 수 있는 존재에게만 이런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지적) 장애인이나 어린 아이 같은 경우에는 그런 의무를 묻지 않음에도 법적으로 인격을 부여하고 있지 않느냐고 되받아치는 식이다.
물론 동물들에게 법적 인격을 부여한다고 해서, 모든 종류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컨대 고라니에게 참정권을 부여한다거나 할 필요는 없다. 대신 저자가 말하는 건 ‘성원권’이다. 동물들도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 물론 이건 단지 법조문 몇 개로 보장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좀 더 적극적으로 동물들의 지위를 보장할 수 있는 전담 입법위원(의원)를 배정하는 식의 조치도 필요하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처음 책 제목인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을 처음 봤을 때, 문자 그대로 읽히지는 않았다. 뭔가 알레고리적 표현이나 우화적 문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로 동물에게 ‘정치적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내용일 줄이야.
동물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저자의 깊은 공감력에는 박수를 치고 싶다. 특히 우리와 가까이 지내는 동물들에 관해 좀 더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저자는 철저하게 법적 논리로 동물들에게 ‘성원권’을 부여해야 하는, 정확히 말하면 부여할 수도 있는 근거를 제시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이런 논리 전개는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면도 있다.
다만 뭔가 개운치가 않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그 정도로 희미한 것일까? 인간의 인간됨(법적 인격을 부여하는 근거)은 그저 법조항을 만들기 나름일까? 물론 인간과 동물의 차이라는 게 진화의 정도와 방향의 문제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결론에 이르기가 좀 더 쉬울 것 같긴 하다. 언뜻 단지 법률 자구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이건 실은 세계관 차원의 문제다.
그리고 법이라는 게 생각만큼 정교하게 제정할 수도, 적용하기도 어렵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게 낫겠지만,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수많은 ‘겹침’의 공간들이 존재하고, 해석을 통한 유보나 양보의 시간도 마주할 수밖에 없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의 운전자가 한 무리의 양떼와 한 사람의 인간 중 어느 쪽으로 핸들을 트는 것이 정당할까. 처벌의 선은 어디까지가 합당할까. 동물의 복지를 신장시키기 위한 전담 국회의원이 필요하다면, 같은 논리로 장애인의 권익을 위한 의원이나 소상공인, 자영업자, 학생, 어린이, 학교 밖 청소년, 미혼모를 위한 전담 의원들을 뽑지 말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책은 동물의 복지, 지위 향상에 관한 내용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본질에 관한 질문이 좀 더 강하게 떠오른다. 여전히 동물에게 법적 지위, 특히 정치적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감상적인 주장으로 느껴진다. 그것이 정말 동물들이 ‘원하는’ 일인가? 우리는 쉽게 동물들을 의인화하지만, 사실 아직 동물들의 의식세계에 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이에 대한 C. S. 루이스의 견해가 떠오른다. 루이스는 동물에게는 자아가 없기에, 앞서 일어난 고통과 지금 당하는 고통 사이를 연결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동물에게 고통은 지금 이 자리에서 느끼는 감각 차원의 문제지,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후회하거나 회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이건 그러니까 동물을 학대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최근 벌어지는 동물 학대 사건들을 보면, 루이스의 추측이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지옥 같은 경험을 날마다 겪고 있는지..
동시에 루이스는 어쩌면 반려동물, 혹은 인간과 가까운 동물들의 경우에는 자아 비슷한 것이 형성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상상의 범위를 조금 넓히기도 한다. 이 점에서 그는 기독교적 해석을 가미하는데, 마치 그리스도로 인해 인간이 새로운 인식과 본질을 얻게 된 것처럼, 인간을 통해 자연이 구원 비슷한 것을 얻게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동물들 또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사실 문제는 인간이 동료 인간을 충분히 존중하지도 않는다는 게 더 크지 않을까 싶다. 동료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사람이 동물을 향해서는 잔혹하게 대할 가능성이 낮을 테니까(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다). 법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타인을, 다른 생명을 대하는 의식이 개선되어야 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해 보이고.
얼마 전에 차별금지법 10만행동 국민동의청원이 달성되었다. 제정될 듯 제정될 듯 제정되지 않는 차별금지법을 두고 국민동의청원 10만명 달성을 통해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취지의 캠페인이 나름의 성공을 거둔 것인데 이 성공과는 별개로 아직도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쉽지 않겠다는 느낌이다.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을 읽으면서 차별금지법이 떠올랐다. 우리는 무수한 차별을 얘기한다. 성차별, 장애인차별, 외국인차별 등등 그런데 이 안에 종차별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다. 기후변화, 기후 위기가 너무나 체감되는 요즘, 이 지구를 마치 전세 낸 듯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는 인간이야말로 지구유해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데 우리는 우리 외에 다른 종들도 이 지구에 살고 있고 그들의 권리가 있는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우리의 공동체 안으로 들여서 생각해야 되는 존재임을 잊는다.
저자인 앨러스데어 코크런은 정치이론의 관점에서 동물윤리 문제를 연구해온 학자라고 한다. 막연하게 동물에 대한 보호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오히려 이렇게 정치적인 관점에서 동물의 권리를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게 설득력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 말해서, 공동 구성원은 미래까지 서로 깊게 의존할 정도로 관계가 얽혀 있는 개인들이다. 이러한 관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비슷한 문화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정체성을 지녔지만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선뜻 성원권을 인정해주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또한 기여를 성원권의 충분조건으로 여기고 필수 조건이라 간주하지 않는 이유도 설명한다. 나아가 공동체에 단기간 체류하면서 다른 구성원들과 긴밀한 교류가 없는 사람들을 성원권에서 분명하게 배제하는 이유 역시 드러난다. 물론 결정적으로 이것은 많은 동물이 구성원으로 간주되어야만 함을 의미한다. 실제로 우리 집 안에서 살고, 거리에서 일하고, 공원에서 뛰노는 길들여진 동물은 의심할 여지 없이 킴벌리 스미스가 묘사한 '돌봄과 의존으로 얽힌 관계'로 존재하며 구성원의 자격을 충족한다(Smith 2012: 61면).
-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 中 p.106~107
이 책은 단순히 동물을 우리의 사회 구성원, 공동체의 일부로 생각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에 대한 정치적으로 가능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동물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무를 이행하거나 기여한 바가 없어서 이들을 우리의 공동체 안으로 넣어 그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유아, 중증 장애인 등 국가가 법으로 정한 의무를 오롯이 스스로 실행할 수 없는 인간도 존재한다는 걸 이야기한다.
군견이나 경찰견, 시각장애인 안내견 등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인간과 함께 활약하는 동물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이들만이 예외라고 말하고 싶다면, 생각해 보자. 지금 모든 동물들은 환경에 순응하며 생태계의 흐름에 맞춰 살고 있다. 더욱이 인간의 필요에 따라 기꺼이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인간만이 생태계를 더럽히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 모든 종보다 우월하다고, 그래서 우리의 권리가 무엇보다 우선한다고 믿는다면 진짜 지구라는 공동체에서 해가 되는 행동을 누가 많이 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가능한 한 가장 엄격한 동물복지법을 제정한다 해도 여전히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존중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동물복지법은 일반 법률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물복지법은 헌법이 보호하는 자유나 권리와 충돌할 경우 쉽사리 무시될 수 있다. 그 정도는 독일의 한 예술가가 살아 있는 새를 접착제로 고정하여 전시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강력한 동물복지법은 헌법 조항과 결합되어야 한다. 그 조항은 공동체가 동물보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헌법상의 다른 보호와 같은 토대를 제공해야 함을 명시하는 규정이다.
-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 中 p.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