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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 1

: 시원한 한 잔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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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6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40쪽 | 366g | 128*188*17mm
ISBN13 9788954679947
ISBN10 8954679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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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필요한 건 바로 검색이다. 식당에 들어가기 전 맛집 앱을 살펴보는 게 식도락 소설의 주인공이나 미식가로선 실격일지 모르겠지만, 이건 쇼코에게 더없이 소중한 한 끼, 한 잔이다. 자신은 미식가가 아니므로 감에 의존하지 말고 문명의 이기를 사용해야 한다.
--- p.12

날생선과 밥과 술의 조합도 좋아한다. 이것들이 입속에서 삼위일체가 될 때 쇼코는 큰 행복을 느낀다. 그야 당연한 이치지, 초밥을 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별개의 얘기라고 반론하고 싶다. 식초를 넣은 밥은 흰쌀밥과 전혀 다른 존재다. 생선회뿐만 아니라 고기에도 이 법칙이 꽤 들어맞는다. 구운 고기는 맥주랑만 먹기보다 밥과 함께 먹는 게 확실히 더 맛있다.
--- p.17

“젊을 때는 말이야, 한번 노인이 되면 계속 똑같은 줄 알았는데 노인에도 단계가 있더라고. 젊은 노인, 약간 젊은 노인, 아주 조금 노인, 완전한 노인, 중간 노인, 상당한 노인, 심각한 노인, 어찌할 방도가 없는 노인.” (…) 하기야 노후라는 시기는 일반적으로 퇴직하는 육십대부터 구십대까지 삼십 년이 넘는다. 갓 태어난 아기가 자라 어엿한 사회인이 되고 부모가 될 정도의 시간인 셈이다.
--- p.74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는 고등어 반쪽. 한눈에 봐도 통통하게 잘 구워졌다는 걸 알 수 있다. 함께 나온 무즙에 간장을 살짝 뿌리고 쇼코도 젓가락을 들었다. (…) 생선구이는 뭐든 맛있지만 숯불로 구운 이 집의 생선은 차원이 다르다. 두번째는 큼직하게 떼어낸 고등어 살에 맥주를 마셨다. 이것도 좋다.
--- p.78

사치에도, 다이치도 다들 신망이 두텁고 도쿄에서 쌓은 인간관계가 폭넓기 때문에 쓸쓸함을 느낄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들이 고향 친구들의 임시 피난처처럼 여겨지는 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쇼코는 정작 물어보지 못했다. 다들 곤경에 처하면 이 둘에게 의지했다가 다시 떠나가는 그런 관계.
--- p.83

마덮밥을 호쾌하게 후루룩 넘긴 뒤 매콤한 미소를 입에 넣고 맥주를 마신다. ‘마도 탄수화물이네. 오늘은 탄수화물로 몸과 마음을 채우자.’ 우설과 마덮밥도 함께 입에 넣는다. 기세 좋게 꼭꼭 씹고 다시 맥주를 마신다. (…) ‘나는 먹고 마시며 살아갈 거야. 살아 있으면 뭔가가 변할 테고, 그게 어디선가 그 아이에게 이어질 거야.’ 그거면 된다. 쇼코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남은 맥주를 다 비웠다.
--- p.123

‘와, 아침부터 알코올 섭취율이 높네.’ 쇼코는 술을 마실 마음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커피를 마시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문대 앞에 서니 자연스레 이렇게 시키고 말았다. “허브 간 파테랑 흑맥주 주세요.” ‘미쳤나봐, 내가 왜 술을 주문하는 거지? 그런데 여기서 마시면 여자인 것도 아침인 것도 그리 부각되진 않겠는데. 이런 기회는 놓칠 수 없지. 게다가 맥주랑 와인이 300엔부터고.’
--- p.132

쇼코는 그런 와중에도 더이상 아이를 울게 놔두면 시부모님이 2층으로 올라올 거라는 생각이 들어 겁이 났다. 남편이 늦은 밤에 후배와 얘기하는 것보다, 한밤중 아이의 울음소리보다, 그게 제일 무서웠다. 이혼 얘기가 나온 건 그 직후였다. 하지만 그날 밤의 일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다소 친근하게 얘기를 나누는 여자가 있어도, 매일 밤늦게 집에 와도 딱히 상관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만 그들의 집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 p.183

쇼코가 고개를 들고 보니 짙은 눈썹에 진한 쌍꺼풀, 그리고 살짝 곱슬거리는 머리칼…… 뭐, 선이 굵은 미남이라 할 수 있는 이목구비였지만 안타깝게도 요즘 스타일의 미남은 아니다. 다만 이런 유형, 즉 어머니나 할머니가 떠받들며 키워 “얼굴도 성격도 괜찮은 나”라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인간들이 많구나 싶어 쇼코는 처음부터 질려버렸다.
--- p.194

‘보고 싶다! 곱빼기 밥에 가라아게 열다섯 개가 올라간 모습을!’ “음식 나왔습니다.” 한발 먼저 쇼코의 치킨난반덮밥과 하이볼이 놓였다. 노릇노릇하게 튀긴 치킨의 크기가 그릇보다 커서 거침없이 끝부분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타르타르소스가 듬뿍 올라갔다. 우선 소스가 묻은 새콤달콤한 치킨을 입안 가득 넣는다. ‘거침없는 치킨, 맛있네. 이걸로 하길 잘했어. 하이볼에 딱 어울려.’
--- p.207

아, 맛있는 음식이란 건 정말 근사하다.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포근하게 해주니까. 우리는 부족한 인간이고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분명 실수를 저지를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그럭저럭 잘해냈다. 그러면 된 것 아닐까. (…) 오늘 일은 살면서 몇 번이고 거듭 떠올리게 될 것이다. 때로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 그때 이 요리의 기억이 마음을 위로해주리라 믿는다. 셋이서 디저트를 입안 가득 넣으며 쇼코는 그 찰나의 달콤함에 몸을 맡겼다.
--- p.247

지나치게 부드러워 흐물거리는 장어는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데 이곳의 장어는 식감이 알맞았다. 양념이 너무 달지도 않고 많지도 않아서 장어와 밥의 감칠맛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이 타이밍에 아이즈호마레를 한 모금. 기름진 장어와 쌉쌀한 술이 잘 어울린다. ‘장어덮밥은 알코올과 탄수화물의 만남에서 최고의 조합이 아닐까.’ (…) 실내를 둘러보니 다들 온화하고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장어를 입안 가득 먹고 맥주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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