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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물에 들기 전 무릎을 꿇는다

햇살은 물에 들기 전 무릎을 꿇는다

[ 양장 ]
리뷰 총점9.9 리뷰 10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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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6월 04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314g | 132*187*20mm
ISBN13 9791197414206
ISBN10 119741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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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견딜 수 있는 만큼만 견디는 것
시시껄렁한 이야기도 침묵보단 견딜 만하지
--- 「안과 밖의 은유」 중에서

비누칠한 사랑에 오래도록 울먹였을까
그 표정이 아주 낯익다
바라보면 친해질 것 같은 얼굴을 애써 외면한다
(…) 거울이 깨어져도 풍경은 깨지지 않는다
--- 「거울의 거울」 중에서

어머니의 손길보다 부드러운 물살이 일렁거린다
혼자서는 멀리 갈 수 없어
한 방울 한 방울 모인 물줄기가
흐름이 될 때까지 한 방향으로 왔다
--- 「물살, 화살, 햇살」 중에서

객쩍은 나날들이 우울한 파노라마처럼 지나갑니다
자리에 붙들려 살아도 마음 놓고 흐느낄 시간은 필요하죠
숲 그늘은 다정하고 때로 위안이 된답니다
안개와 안개가 흘레를 붙는 한순간 안개의 장막 속에서
울어라 울어라
울음을 부추기는 바람도 가족이 될 수 있을까요
나뭇가지마다 하나씩 음표를 얹고
나무의 붉은 속울음을 물어 나르며 새들이 피어납니다
가장 먼 곳은 갈 수 없는 곳,
꿈속의 꿈처럼 모르는 별들의 지도,
떠난 사람의 등을 생각했어요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 뿌리의 표정을 보았나요
감당하기 힘든 배역이었을 이마에 진땀이 흘러내려요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눈빛을 닮은,
겨울잠의 실핏줄을 퉁기는 빗방울의 말을 읽어요
--- 「숲의 잠상(潛像)」 중에서

쉬운 이별은 없었고
이별과 만남을 재구성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다시 사랑을 노래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먼 산에 다가가면서
가까운 마을에서 멀어졌다
나는 새롭게 도굴한 겨울을 주머니에 넣었다
--- 「겨울, 원행」 중에서

온종일 같이 놀다 같이 잠들어도
외로워서 서걱거린다
근지러운 외로움이 시원해지기라도 할까
끊임없이 서로의 등을 부빈다
--- 「갈대의 애인」 중에서

푸르른 집들로 가득 찬
숲은 담이 없는 마을이다
그늘을 비벼 먹는 아이와
햇빛을 들이켜는 아이가 함께하는 놀이터,
새들도 날아온다
저마다 선 자리에서
숨 쉬는 잎
다투지 않는 입들이다
우거진 행간 사이로
하늘이 보였으면 좋겠다, 싶은 사이
더 짙어진 초록 넝쿨엔
무지개가 걸렸다
--- 「숲」 중에서

발톱으로 긁어대는 오리무중의 캄캄한 꿈으로
푸우 풍선을 만들어보는 거야
지금 보이는 대로 보지 말고
들리는 대로 듣지 말라
혼자 맞이하는 역설적인 계절에
‘죽은 사람이야’
지나치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뜨자
등 뒤로 바투 따라온 길이 주름을 펴고 있었어
--- 「나는 내가 되고 있었어」 중에서

사과나무는 온몸이 사과로 가는 길이다
첫 걸음의 아린 촉
긴 행로로 이어지고
흰 꽃으로 부푸는 푸른 숨은
나날이 순한 이치 익힌다
뿌리에서 공터까지
빛깔로 향기로
물든 꿈이 시릴수록 단단해진다
물들수록 아름다운 일기
쨍한 꿈의 정수리,
사과 열매는 온몸으로 쓴 문장의 송곳니다
--- 「사과의 문장」

한때의 마음은 한때의 마음
거품처럼 부풀다 스러진다
끄나풀을 엮고 묶고 싣고 내리고
쪼개고 집어뜯고 살리고 죽이면서
마침내 부딪히고 깨져 산산조각이 난다

마음이 없다면 무법천지였을 세상
마음이 웃으면 나뭇잎이 웃고
강가의 돌멩이도 따라 웃는다

지켜야 할 룰은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곱게 마름질해서 지은 옷으로 단장하고
뿌리 내리고 있었던 달의 미소,
그윽해지는 법을 익힌다
--- 「심법」 중에서

잎이 오지 않는다 잠시 네 말을 꺼내주렴
한 자리를 뱅뱅 맴도는
네 눌언을 이해하고 싶어
손짓조차 할 수 없는 극한의
마음은 증상이 아니라 풍경이라는 것
용해될 수 없는 꿈틀거림을 헤치고 어서 와
비밀은 미리 보여주는 게 아니야
꼭 맞춤한 시간에 제대로 한 번 불을 켜고
다시 어두워져도 괜찮아
표정이 없는 얼굴은 얼굴이 아닌 것 같아
빨강 파랑 초록 어떤 무늬도 없이
흰색 아니면 검은색의 단순한 구도일 뿐,
연초록 줄기 속에서 칩거 중인 잎들은
어느 맥락에서 몸부림치는 걸까
필생의 언어를 다 밀어낸 꽃이
자기가 온 길을 남기고 스러질 때까지
잎은 오지 않는다
꽃을 만날 수 없는 잎처럼
들을 수 없는 소리에 갇혀 막막했다
아득해서 더 간절한 벼랑을 붙들고
한 글자도 남기지 못했다?
?--- 「할까 말까」

사람이 다른 마음 안에 드는 것도
집을 지어 세간을 드는 일,
언제 지은 오두막인지
당신의 풀빛 속으로 스며드는
국수꼬리 같은 나를 보았다
--- 「집에 들다」 중에서

좀더 낭만적인 재건축이 필요해,
목소리가 들렸다
종이 위에 연필심을 심으며
점점 얼얼해지는 어깨가
파뿌리 같은 말의 미간을 파고들었다
시가 나를 사육하려 해
나는 나를 부숴버릴 거야
--- 「암전」 중에서

잉크 냄새 풍기는 호외, 붙들린 글씨들,
시신들을 시인들로 읽었다
―내 삶은 오타가 아니지
바람이 점점 위협을 가하고
느닷없이 사라진 눈앞의 구름 한 장
다 탄 양초나
날바람에 느닷없이 꺼진 촛불도
그대로의 일생
피었으니 질 것이다
떨어져도 다시 필 것이다
--- 「잎이 피고 잎이 지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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