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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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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6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384g | 140*215*19mm
ISBN13 9791156758815
ISBN10 1156758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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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MD 한마디

[“우리는 찬란한 어둠에 파묻힌 채 헤엄쳤다.”] 1980년대 동성애가 금지된 폴란드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 서로를 발견한 루드비크와 야누스. 하지만 격변하는 시대는 둘의 열망을 어긋나게 하고 결국 그 둘을 갈라놓는다. 억압을 피해 자연 속에서 온몸을 내던져 유영하는 둘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찬란한 동시에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해지는 소설. -소설MD 김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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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가 됐든 네가 이걸 읽어주기를 바라는지는 스스로도 모르겠지만, 이걸 써야겠다는 것만은 알겠다. 네가 내 마음속에 너무 오래 있었으니까. 열두 달 전의 그날부터, 내가 비행기에 올라타 두꺼운 구름을 층층이 뚫고 날아가 바다를 건넌 그날부터.
--- p.11

이곳에서 나는 베니에크를 다시 보았다. 성당에서 그를 본 적이 없었기에 그가 거기 있다니 놀라웠다. 그는 변해 있었다. 내 기억 속의 깡마른 소년은 남자가 되어가고 있었기에─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우리 모두 고작해야 아홉 살이었음에도 그에게서는 벌써 남성성이 움트는 게 보였다. 한구석이 목젖으로 도드라지던 강인한 목, 다 같이 사제실에 둥그렇게 둘러앉을 때면 반바지 아래로 뻗어 나오던 길고 강인한 두 다리, 피부 아래로 불뚝대던 근육, 무릎 위쪽으로 자라나던 솜털까지.
--- p.17

나는 고개를 돌려 열을 눈으로 훑으며 카롤리나를 찾았지만, 대신에 시선이 너에게 떨어졌다. 나는 일찍이 너를 본 일이 없었다─여하간 의식해서 본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마치 아는 얼굴을 알아본 양 내 마음은 기묘하게 안심되었다. 너는 키가 나만큼 컸고, 어깨가 넓었으며, 눈동자는 밝은색이라 짙은 색의 머리칼과 대비를 이루었다. 벨카에게 주목하고 있던 너를, 나는 잠시 나 자신을 잊고 무방비한 상태로 눈에 담았다. 그러자 마치 직감적으로 제게 내려앉는 시선을 불현듯 의식한 동물처럼 너는 내게 고개를 돌렸고, 이에 내가 미처 눈길을 피할 겨를도 없이 우리의 시선이 만나며 무한하고도 가없는 일순간 공중에서 얽혀 들었다.
--- p.41

“안녕.” 나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너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너는 눈을 찡그리고 손날을 눈썹 위에 대어 내 등 뒤에서 비추던 햇살을 가렸다. “나랑 같은 작업반에 있는 애 맞지?”
나는 끄덕였다.
“나는 야누시.” 너는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거기 선 너는 거의 무례할 만큼이나 태평스러워 보였다. 발가벗은 기분이 드는 쪽은 나였다.
--- p.64

“가끔 어디 다른 곳에 있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 해본 적 없어?” 난데없이 이 질문이 내게 떠올랐다.
너는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서방 국가 말하는 거지?”
나는 끄덕였고, 내 솔직함에 내가 놀랐다.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카롤리나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얘기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없는데.” 너는 단호히 말했다. “왜?”
“그냥. 나는 줄곧 궁금했거든. 저쪽에서는 모든 게 더 좋아 보여서. 더 아름답고. 더 자유롭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희망을 품고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고개를 젓고는 지평선에 놓인 아득한 어딘가를 응시했다. “너도 그런 부류라는 걸 알아봤어야 하는데.”
--- p.83

내 몸이 네 쪽으로 움직였고, 너는 나를 바라보고는 갑자기 덩달아 잠잠해졌다. 양팔을 양옆으로 쭉 뻗은 너는 도약하다 공중에서 멈춘 발레 무용수 같았다. 수면 아래 모종의 온기가 배 속에서 요동쳤다. 계속 다가가자 네 이마와 코끝과 입가에 맺힌 물방울까지 보였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미 언어를 초월한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네가 그곳에서, 나도 그곳에서, 바투 호흡하고 있었다.
--- p.96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너를 더 꽉 껴안았다. “고마워.” 나는 네 목에 대고 말했다. 내 볼에 맞닿은 네가 미소 짓는 게 느껴졌다. 나는 네가 어떻게 그런 것들을, 진료 예약이고 닭이고를 다 얻어냈는지 다시 물어보려고 작심해 있었으며 찾아오기 전부터 이런저런 질문들을 궁리해두었다─하니아, 무엇보다 그 여자에 관한 질문도. 그러나 도저히 물어봐지지가 않았다. 너를 보니까 너무 행복했고 너무 안심되었다. 뭘 재고 따지는 것도 너무 피곤해졌다. 나는 몸을 침대 위에 털썩 누였다. 둘이 옷을 벗으려니 한기에 닭살이 돋았다. 네 이불 아래에서 우리는 온기를 찾았다.
--- pp.19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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