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 반 작가 반 점주의 아슬아슬한 나날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지고 편의점에도 잠시 여유가 찾아오면, 달호 씨는 영수증 뒷면, 박스 귀퉁이, 휴대폰 메모장 가릴 것 없이 부지런히 하루를 기록했다. 이 꾸준하고도 생생한 글들이 쌓여 첫 에세이 『매일 갑니다, 편의점』이 세상에 나왔다. 무색무취한 공간으로 여겨지던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다양한 관계와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는 ‘세계’로 확장시킨 그의 책은 출간 즉시 큰 주목을 받았다. 다독가로 유명한 하지현 정신과 전문의는 “일본에 『편의점 인간』이 있다면 한국에는 『매일 갑니다, 편의점』이 있다”는 리뷰를 남겼고, 신문과 잡지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이 평범한 아저씨를 찾기 시작했다. 일상이 글이 되고, 다시 책이 되는 기적 같은 순간은 어느새 3년 전 일이 되었다. 달호 씨는 여전히 편의점 글을 쓴다. 다만, 이제는 계산대나 시식대가 아닌 어엿한 책상에 자리를 잡는다. 새벽부터 낮까지 글 쓰고, 오후에는 편의점으로 출근하는, 반(半) 작가 반(半) 점주의 삶을 ‘아슬아슬’ 이어가는 중이다.1+1의 기쁨이 여기에 있다! 파는 만큼 보이는, 편의점이라는 무한한 세계 편의점은 ‘21세기 만물상’이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상품이 자리하고, 다양한 필요에 따라 각양각색의 손님이 드나드는 곳이다. 모든 편의점이 이러할 텐데 유독 달호 씨네 편의점에 에피소드가 넘쳐나는 이유는 뭘까? 손님 한 명, 상품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는 호기심과 따뜻한 오지랖 때문은 아닐까. 하원 후 등장한 어린이 손님들이 용돈에 넘치는 간식을 들고 오자 “다른 거 골라 와!” 하고 바로 돌려세우는 대신 덧셈 뺄셈 알려주고(이 역할은 직원 정욱 씨가 한 수 위), 간식으로 적당하지 않은 상품을 골라 오면 장사치의 마음은 잠시 넣어두고 고개 젓는 장면에선 절로 미소가 핀다. 기록적인 폭염으로 우유 수급에 비상이 걸리자, 여름엔 우유가 부족하고 겨울엔 넘쳐나는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젖소의 품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집요함을 따라가다 보면 읽는 이도 의외의 정보를 득템(?)할 수 있다(해외에서 건너온 홀스타인 품종은 더위에 취약해 여름엔 원유 산출량이 줄어든다. 고로 1+1, 2+1 같은 우유 증정 행사는 겨울에 자주 붙는다).저는 ‘지키기’로 했습니다 흔들리는 세상에서 오늘도 성실하게 달호 씨가 그리는 편의점 풍경은 우리에게 온기와 웃음을 전한다. 하지만 그가 마주하는 현실 역시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오죽했으면 에필로그에서 “『매일 갑니다, 편의점』이 땀으로 쓴 책이라면 이 책은 눈물로 썼다”고 고백했을까. 언론에서는 편의점을 코로나 수혜 업종으로 소개했으나 상권에 따라 명암은 극명히 갈렸다. 오피스 빌딩 지하에 입점한 달호 씨네 편의점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입주사들이 재택근무 비율을 늘리면 그만큼 매출이 빠졌고, 빌딩에서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관리 사무소는 폐쇄 조치를 단행했다. (불시에 편의점이 강제 휴업하는 날이 얼마나 잦은지 출판사 미팅 날에도 비보가 닥쳤다.) 폐기 음식은 속절없이 쌓여가고 임대료와 인건비는 무섭게 빠져나가는 상황. 출로는 분명했다. 직원들을 모두 내보내고 편의점에만 매달리는 것. 그러나, 그는 ‘지키기’로 했다. 지금의 일상을, 사람들과의 약속을, 작가라는 꿈을. 매일의 다짐으로 눌러쓴 책 『오늘도 지킵니다, 편의점』이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주길 바란다. “편의점을 운영하며 내내 ‘지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코로나로 흔들리는 요즘은 더욱 그렇다. 내가 가진 무엇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것도 지키는 일이다. 다짐한 약속을 깨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도 지키는 일이며,해야 할 일을 하고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도 과연 지키는 일, 평소와 같은 오늘을 이어가는 일상 자체가 지키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