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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1년 06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40쪽 | 220g | 111*190*16mm
ISBN13 9791190885843
ISBN10 1190885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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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서른다섯 번째 책 출간!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서른다섯 번째 소설선, 김미월의 『일주일의 세계』가 출간되었다. 등단 이래 생동감 있는 문장과 서사로 현실 속 고단한 개인의 삶을 절제되면서도 차분하게 짚어온 작가의 이번 신작은 2020년 [현대문학] 9월호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것이다. 횡단보도에서 벌어진 황당한 사건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우정이나 사랑이라고 믿었던 자신의 감정이 그저 연민이나 관성일 뿐이라고 회의하게 된 과거를 소환시켜, 현재를 자각하게 하는 화자의 일주일 동안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 그러다가 갑자기 머리가 한쪽으로 확 꺾이면서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습니다. 무슨 일인가 알아차릴 새도 없이 머리가 다시 반대쪽으로 세차게 꺾였어요. 뒷머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코와 입을 잿빛 털목도리로 싸매고 눈만 내놓은 여자가 거기 서 있었습니다. 깡마른 체구에 키가 작은 여자였지요. 그 여자가 제 뒤통수를 연달아 두 번 후려쳤던 겁니다.
--- pp.10~11

*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제가 저 자신에게 묻기 시작한 것이요. 왜 화가 날까. 사람들이 선배를 조롱하는데 왜 내가 화가 나는 것인가. 혹시 내가 그를 좋아하나. 그러니까 그를 좋아하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인가. 그렇게 묻긴 했지만 답을 확신할 수는 없었어요. 그저 저만이라도 선배의 편이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당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었습니다.
--- p.20

* 그때였습니다. 제 뒤에 앉아 있던 남자아이가 과장되게 심술궂은 말투로 외쳤습니다.
“으악, 그거 쟤 주면 안 되는데!”
이어 그 옆에 앉은 남자아이가 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쟤네 엄마는 또라이래요.”
원화의 표정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저는 못 들은 척 물었습니다.
“그 책 좋아?”
“응? 응.”
“좋으면 너 가져도 돼.”
엄마가 또라이라는 악담에도 태연자약하던 원화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움찔했습니다.
--- p.53

* 맞아요.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엄마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저는 몰랐던 사실 하나를 문득 깨달았는데, 제가 더 이상 그 여자와 원화를 연결해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틈엔가 그 여자 생각은 희미해져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원화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제가 그 여자에게 폭행당했다는 사실도 이제는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냥 원화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 p.76

* 우리는 그 후 그 일을 결코 입 밖으로 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자주 생각했습니다. 그 애를 볼 때마다 그 일이 저절로 떠올랐어요. 아무리 사이가 멀어졌다고 해도 저는 어쩌면 친구에게 그렇게 상처가 되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었을까요. 초등학생들 싸움이 원체 유치하다지만, 운동경기처럼 승부를 가리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다툼은 특히나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라지만, 저는 제 말 속에 들어 있던 즉흥적이지도 감정적이지도 않던 그 견고한 악의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우연히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 애에게 상처를 주고자 했던 저의 깊고 단단했던 진심을요.
--- p.106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월요일 아침, 내면의 불편한 감정들과 마주치며 시작된 일주일의 세계

『일주일의 세계』는 각기 다른 외톨이 청춘들의 이야기를 낙천적이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 첫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 세상에 상처받은 영혼들이 자발적으로 치유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낸 장편소설 『여덟번째 방』. 녹록치 않은 현실 속에서 비루한 개인이더라도 그 가치를 읽어내며 청춘들의 꿈을 대변했던 소설집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3, 40대 사회인의 불안과 고충을 짚어내고 삶의 방향을 뒤흔드는 순간들을 포착해낸 소설집 『옛 애인의 선물 바자회』를 발표하며 ‘우리 시대의 청춘을 대변해온 작가’ 김미월의 최신작이다.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뒤흔드는 불편한 진실을 목도하고 이를 담담한 어조로 풀어내며 독자들에게 성찰을 끌어내는 작가의 이번 작품은 어린 날부터 내제되어 있던 연민과 이기심, 그 속의 복잡다단하게 얽힌 사랑의 감정에 괴로워하는 한 개인의 삶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박물관 탐방 프로그램 강사 정은소는 월요일 출근길, 횡단보도에서 목도리로 얼굴을 가린 이에게 뒤통수를 맞는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뒤 사라진 의문의 인물이 누구인지 의구심은 풀리지 않고, 애인 봉수 선배에게 이를 털어놓지만 더 심한 두통과 악몽에 시달릴 뿐이다. 그러다 문득 과거 교사였던 엄마가 발령받았던 산골 초등학교에 다닐 때 만난 짝꿍 오원화를 떠올리고, 박물관 탐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녀로 추정되는 인물과 조우한다.

서울에서 온 전학생 은소는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의 대상이던 원화와 기꺼이 ‘친구 관계’를 맺지만, 오래지 않아 둘의 사이는 급격히 멀어진다.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원화에게 은소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고, 원화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우정이 아닌 연민으로 비롯된 이기심이었음을 자각하게 된다. 결혼까지 약속한 봉수와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이라고 믿었으나 그저 안쓰러움에서 시작한 관성이었음을 자인한 은소는 파혼을 고하고, 그에게 횡단보도 여인에게 들었던 불가해한 소리를 다시 듣게 된다.

그럴듯한 어른이 되었으나 어린 날의 감추고 싶었던 과오가 현재진행형임을 깨닫고 괴로워하다 다시 유년 시절과 똑같은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도망치면서 자신의 진짜 내면을 바로 보게 하는 서사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소설이다.

앞으로도 관성적인 소설들은 함부로 연민하고, 사랑하게끔 유도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모른다. 우리의 마음을 의심하고, 변화하게 만드는 것도 소설이지만 그 자체가 우리임을 인지하게 만드는 것 역시 소설의 관성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변화할 수 있는 인간이고, 소설을 찾아 읽는다. 김미월의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사랑과 연민을 가로지르면서 우리로 하여금 불확실한 상태야말로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하고도 분명한 진실임을 직시하게 만든다. 소설의 숙명과 한계에 소설로 응답하는 작가의 작품을 읽은 우리는 “과거반추형 문장들이 점차 미래지향형으로 바뀌”듯, 이 일시정지 상태의 멈춤이 잠재성의 또 다른 성질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박하빈(문학평론가)

사랑이야? 연민이야? 자기반성?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야!

타인들의 삶과 현실 속으로 들어가보는 서사적 경험이 인간에게 주는 사랑의 선물은 우리가 서로를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착한 존재라는 윤리적 허상 속에서 자족할 때가 아니고 우리가 그다지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라는 존재론의 진실을 겸허히 수용할 때 주어진다. 소설의 윤리적 가치는 한마디로 착해지는 데서가 아니라 아이러니해지는 데서 생겨난다. 따라서 이것이 저것이 될 수 있고 저것이 이것이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의 고양을 통해 편협한 마음을 관대한 마음으로 바꾸는 일은 사랑의 에토스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서사적 경험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과감하게 말해서, 소설의 유일한 도덕은 아이러니다. 우리에게는 신이 없지만 대신 이렇게 소설이 있다. 특히 김미월의 『일주일의 세계』라는 소설이.
-오양진, 「작품해설」 중에서


"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얻어맞은 적이 있다. 스무 살 때였다. 춘천 팔호광장,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태양서적 앞 횡단보도에서 나는 두 친구와 나란히 보행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셋 다 웃고 있었으니 아마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아무 조짐도 기척도 예고도 없이, 갑자기 누군가 내 뒤통수를 퍽 후려쳤다. 너무 세게 맞아서 순간 눈앞이 다 캄캄했다. 뒤돌아보자 거기 시커먼 목도리로 코와 입을 가린 웬 여자가 서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아는 사람인가, 모르는 사람인가. 왜 나를 때렸지. 내가 뭘 잘못했나. 혹시 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걸까. (……) 착각이 아니었다면. 그 사람이 다른 누구 아닌 정확히 나를 겨냥하고 때린 것이었다면. 그렇다면 누구인가, 기필코 때려야 했을 만큼 내게 깊은 원한을 가진 그는.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 가만있자. 지금 나는 맞아야 할 만큼 누군가에게 큰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그 일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이 소설 『일주일의 세계』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쓰였다. 과정일 뿐 결과는 아니어서 아마 나는 앞으로도 종종 그 횡단보도에 불려 갈 것이다. 그렇게 그 자리를 서성이다 보면 언젠가 그럴듯한 답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저자의 말 중에서


월간 『현대문학』이 펴내는 월간 〈핀 소설〉, 그 서른다섯 번째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선보이는 단행본들은 개별 작품임과 동시에 여섯 명이 ‘한 시리즈’로 큐레이션된 것이다. 현대문학은 이 시리즈의 진지함이 ‘핀’이라는 단어의 섬세한 경쾌함과 아이러니하게 결합되기를 바란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은 월간 『현대문학』이 매월 내놓는 월간 핀이기도 하다. 매월 25일 발간할 예정인 후속 편들은 내로라하는 국내 최고 작가들의 신작을 정해진 날짜에 만나볼 수 있게 기획되어 있다. 한국 출판 사상 최초로 도입되는 일종의 ‘샐러리북’ 개념이다.

001부터 006은 1971년에서 1973년 사이 출생하고, 1990년 후반부터 2000년 사이 등단한, 현재 한국 소설의 든든한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렸고, 007부터 012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출생하고, 2000년대 중후반 등단한, 현재 한국 소설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013부터 018은 지금의 한국 문학의 발전을 이끈 중추적인 역할을 한 1950년대 중후반부터 1960년대 사이 출생 작가,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등단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려졌으며, 019부터 024까지는 새로운 한국 문학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패기 있는 1980년대생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진행되었다.
세대별로 진행되던 핀 소설은 025~030에 들어서서는 장르소설이라는 특징 아래 묶여 출간되었고, 031~036은 절정의 문학을 꽃피우고 있는 1970년대 중후반 출생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현대문학 × 아티스트 박민준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아티스트의 영혼이 깃든 표지 작업과 함께 하나의 특별한 예술작품으로 재구성된 독창적인 소설선, 즉 예술 선집이 되었다. 각 소설이 그 작품마다의 독특한 향기와 그윽한 예술적 매혹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소설과 예술, 이 두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낸 영혼의 조화로움 때문일 것이다.

회원리뷰 (5건) 리뷰 총점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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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나’로 등장하는 대신 ‘저’로 연민하는 온통 유보의 태도... 김미월, 일주일의 세계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k******i | 2022.04.28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나 정은소는 대안 학교에서 박물관 탐방을 실시하는 선생으로 근무한다. 어느 월요일 출근길에 나는 모르는 여자로부터 뒤통수를 가격당한다.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행인들이 나와 여자를 힐끔거렸고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망설였고 그 사이에 여자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 여자가 나에게 뭐라고 말한 것 같기도 한데 정확히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
리뷰제목

  나 정은소는 대안 학교에서 박물관 탐방을 실시하는 선생으로 근무한다. 어느 월요일 출근길에 나는 모르는 여자로부터 뒤통수를 가격당한다.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행인들이 나와 여자를 힐끔거렸고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망설였고 그 사이에 여자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 여자가 나에게 뭐라고 말한 것 같기도 한데 정확히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엄마 말로 아빠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사고로 돌아가셨다는데, 별로 신빙성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아빠 사진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엄마 아빠의 결혼식 사진도 없고 하다못해 아빠의 독사진도 없었습니다. 제가 그 이유를 물어보면 엄마는 번번이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없긴 왜 없어, 당연히 있지, 그게 어디 있더라, 찾아보면 나올 텐데 내가 정신이 없어서······ 라고요. 저는 어린 마음에도 엄마가 거짓말하고 있구나, 아빠 사진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구나, 혹시 아빠도 없었던 것 아닐까, 어쨌든 엄마가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겠거니 했습니다. 내가 아홉 살이 되면 말해주겠지, 열 살이 되면 말해주겠지, 열한 살이 되면, 열두 살이 되면······. 그러다가 저도 잊었습니다. 더는 엄마 앞에서 아빠에 대해 묻지 않게 되었지요.” (pp.43~44)


  다음 날 나는 대학 선배이자 직장 선배였고 현재의 연인이기도 한 봉수 선배를 만난다. 그리고 나를 후려친 모르는 여자에 대해 선배에게 말한다. 선배는 신고를 하거나 하지 않고 여인을 사라지도록 만든 나를 나무랐고 혹시 그 여인이 아는 사람이 아니었는지 되물었다. 그러나 말을 계속 이어가지 않았고, 만남의 원래 목적이었던 프러포즈로 상황이 바뀌게 된다. 그리고 나는 초등학생 때의 친구인 원화를 떠올린다.


  “... 어째서인지 저는 선배의 대답에서 심각한 오류를 찾아내고 그것을 정정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그의 말을 계속 곱씹었습니다. 너무 긴장해 있던 탓일까요. 그저 엄마의 형식적인 질문에 선배가 그렇게까지 시시콜콜 구체적으로 대답한다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엄마가 먼저 물었으니 답했을 뿐이요, 그의 답에 아무 오류가 없는데도 이상하게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불안하고 못 미더웠어요. 그렇다고 그의 말을 저지할 수도 없었지요.” (pp.70~71)


  소설은 이제 현재의 연인인 봉수 선배에게서 어린 시절의 친구인 원화에게로 옮겨 간다. 원화와 나 사이에 진행되었던 우정, 그리고 그 우정의 어정쩡하면서 동시에 파괴적인 마지막을 보여준다. 어리기 때문에 순수하였으나 어리기 때문에 그만큼 잔인하였던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꽤나 직설적이다. 나는 원화를 좋아하였으나 그만큼 싫어하게 되었고 거기에 엄청난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 가장 싫은 것은 그 애의 모든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동시에 제가 죄책감을 느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원화는 눈치가 빨랐습니다. 말수가 적어졌고 웃는 일도 줄었습니다 원래는 방과 후에 늘 저와 나란히 교문을 나서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애는 저보다 한 발짝 뒤처져서 걸었습니다. 제 집 대문 앞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어요. 처분을 기다리는 포로처럼 저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 그 애의 표정은 뭔가를 참는 것 같기도 했고 애원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번번이 숙제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등 뒤에 그 애를 남겨두고 대문을 닫았습니다.” (p.89)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내가 지금 원화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봉수 선배와의 관계가 내포하고 있던 어찌할 수 없는 마지막에 대한 예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뒤통수를 때린 여자는 어쩌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환상일 수도 있다. 그 여자가 있어 원화를 떠올린 것이 아니라 봉수 선배와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하여 뒤통수를 때리는 여인이라는 환상으로 원화가 호출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어디가 좋았느냐는 엄마의 질문에 똑 부러지는 대답을 내놓지 못한 것은 애초에 똑 부러지는 대답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착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회사 사람들이 선배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화가 났던 것이 제가 선배를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고. 선후 관계가 바뀌었다고. 제가 그를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그를 무시하니까 화가 난 게 아니라, 사람들이 그를 무시하는 것에 화가 나서 그를 좋아하게 되었던 거라고... 오랫동안 저의 연인이었던 사람을 알고 보니 제가 그다지 사랑하지 않더라는 사실을, 사랑이라고 믿어왔는데 그것이 처음에는 연민이었고 그 후에는 그저 관성이었음을 알아버린 기분이 참담했습니다.” (p.108)


  소설에서 정은소는 일인칭의 주인공이고, ‘나’로 등장하는 대신 항상 ‘저’로 등장한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연민의 태도는 원화를 친구로 만들었지만 또한 소극적인 자세의 ‘저’는 죄책감 속에서도 원화를 강하게 밀어내고 말았다. 현재의 나 또한 어느 순간 맞닥뜨린 ‘저’가 던진 질문 앞에서 만남의 유보를 결정짓고 만다. 아, 그리고 모르는 여인이 내뱉은 말은 아마도 ‘하지 마’ 였던 것 같다고 ‘저’는 생각하였고 마지막 순간 선배도 그 말을 내뱉은 것만 같다. 


김미월 / 일주일의 세계 / 현대문학 / 138쪽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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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의 세계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겁**봄 | 2022.03.1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제가 그를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그를 무시하니까 화가 난 게 아니라, 사람들이 그를 무시하는 것에 화가 나서 그를 좋아하게 되었던 거라고.오랫동안 저의 연인이었던 사람을 알고 보니 제가 그다지 사랑하지 않더라는 사실을, 사랑이라고 믿어왔는데 그것이 처음에는 연민이었고 그 후에는 그저 관성이었음을 알아버린 기분이 참담했습니다 |108처음에는 원화가 안쓰러워서 그 애를 아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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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를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그를 무시하니까 화가 난 게 아니라, 사람들이 그를 무시하는 것에 화가 나서 그를 좋아하게 되었던 거라고.
오랫동안 저의 연인이었던 사람을 알고 보니 제가 그다지 사랑하지 않더라는 사실을, 사랑이라고 믿어왔는데 그것이 처음에는 연민이었고 그 후에는 그저 관성이었음을 알아버린 기분이 참담했습니다 |108
처음에는 원화가 안쓰러워서 그 애를 아끼고 염려했다고요 그러나 나중에는 그런 저 자신이 더 안쓰러워져서 그 애를 멀리하게 되었다고요
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연민이 중요한 사람. 그러나 그 연민이 곧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려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 선배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었습니다 원화에게 아무 잘못이 없었던 것처럼. |109

우리가 그다지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라는 존재론의 진실을 겸허히 수용할 때 주어진다 소설의 윤리적 가치는 한마디로 착해지는 데서가 아니라 아이러니해지는 데서 생겨난다 따라서 이것이 저것이 될 수있고 저것이 이것이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의 고양을 통해 편협한 마음을 관대한 마음으로 바꾸는 일은 사랑의 에토스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서사적 경험이 된다고 할 수 있다 |134 작품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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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의세계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n**t | 2021.11.2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은소는 횡단보도에서 모르는 여자에게 뒤통수를 가격당한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애인 봉수 선배에게 털어놓지만 두통과 악몽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어릴 때 친구 원화가 떠오른다어릴 때 은수는 원화에게 호의를 베풀었으나, 자신의 호의에 대해 원화가 더이상 고마워하지 않고 관성으로 대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후 은수에게 원화에 대한 미움이 싹트게 되고 다른 아이들처럼 원화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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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소는 횡단보도에서 모르는 여자에게 뒤통수를 가격당한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애인 봉수 선배에게 털어놓지만 두통과 악몽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어릴 때 친구 원화가 떠오른다
어릴 때 은수는 원화에게 호의를 베풀었으나, 자신의 호의에 대해 원화가 더이상 고마워하지 않고 관성으로 대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후 은수에게 원화에 대한 미움이 싹트게 되고 다른 아이들처럼 원화에게 상처를 준다

연민과 악의 사이에 아주 얇은 막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악의라는 것이 늘 깊은 뿌리를 가지는 것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잠시했다

#일주일의세계 #김미월 #H #핀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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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3건) 한줄평 총점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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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5점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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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미 | 2022.03.03
구매 평점5점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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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h****m | 2022.01.04
구매 평점5점
멋부리지 않는 간결한 문장 아주 좋다. 게다가 뒤통수 때리는 반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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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 | 2021.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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