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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계단

구부러진 계단

스토리콜렉터-093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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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6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512쪽 | 574g | 141*210*24mm
ISBN13 9791158791629
ISBN10 115879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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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누자는 폭우 속에 오랫동안 서 있었기 때문에 시력이 어둠에 완전히 적응한 상태였다. 대문은 흰색이었기 때문에 멀리서도 보였다. 문이라기보다 희끄무레한 비밀의 상징, 밤공기에 불길하게 둥둥 뜬 수수께끼의 상형문자 같았다. 어른거리며 울타리를 넘어오는 세 사람의 형체도 알아볼 수 있었다.
대문 밖 기둥에는 초인종이 달려 있었다. 손님이 버튼을 누르고 방문을 알리면, 집 안에서 문을 열 수 있었다. 지금 도착한 사람들이 초인종을 무시하고 울타리를 넘어온다는 것은 손님이 아니라 장난, 혹은 그보다 더 나쁜 짓을 하러 온 침입자라는 것을 의미했다.
--- p.21

편의점 내부와 외부에 있는 모든 보안 카메라 케이블은 벽에 매립되어 있었다. 듀보스가 직접 선을 추적해서 녹화장치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그는 점원에게 으르렁댔다. “뒤쪽에 있을 거 아닌가. 사무실이나 창고 같은 데. 웨딩 케이크 위에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처럼 뻔히 눈에 보일 텐데.”
“우린 웨딩 케이크 안 팝니다.” 투옹이 말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점원의 모국어가 당연히 영어일 거라는 사실도 유추하지 못하는지, 듀보스의 대답은 불만스럽고 경멸로 가득했다. “물론 웨딩케이크를 팔진 않겠지. 편의점이잖아. 그냥 은유가 그렇다는 거야.”
“직유겠지요?” 투옹이 대꾸했다.
“그건 뭐야?”
“아닙니다.” 투옹이 말했다. “여긴 바퀴벌레도 없어요. 보건위생 담당관도 칭찬만 했습니다.”
이 대결에 흥미를 느낀 저건은 카운터 진열대에서 초코바를 하나 집어 들고 포장을 벗긴 뒤 고급 극장식 식당 무대 앞에 앉은 듯 유쾌한 기분으로 한 입 베어 물었다.
“바퀴벌레 이야기가 아니라, 내 말은…….”
--- pp.108~109

“뭔가 더 큰 보답을 바라지 않고 내게 이런 일을 해준 사람은 평생 한 명도 없었어.”
페트라는 운전석으로 가서 문을 열었고, 제인도 뒤따랐다. “평생 그랬을 리가.”
“평생 없었어. 진심이야.”
페트라의 목소리에서 아련한 우울감을 느끼자, 제인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닌데…… 혹시 언제부터 내리막으로 흘렀는지 기억해?”
“아, 그럼. 기억해. 어느 해였는지 알아. 날짜, 시간도 기억해. 아주 오래전이야.”
“어쩌면 그 계기를 알고 있다는 게 좋은 일일 거야. 계기조차 수수께끼라면, 잊어버렸다면…… 이름을 알지도 못하는 악마를 쫓아낼 수는 없어.”
--- pp.187~188

그녀는 자신의 심장이 더 애타게 갈구하는 것이 복수가 아니라 정의라고, 한 점 의혹 없이 장담할 수가 없었다. 영혼의 긴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런 행동 동기에 대한 자기기만이다. 어쨌든, 트래비스와 닉에 대한 사랑이 헨드릭슨과 그 일당에 대한 증오보다 크다는 믿음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이야말로, 오로지 사랑만이 악에 감염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예방주사이기 때문이다.
--- p.277

헨드릭슨의 설명은 제인의 기억 속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었다. 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게 될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혐오하고 죽어 마땅하다고 믿어. 그들 중 일부는 우리의 쾌락을 위해 노예로 삼지. 아스파시아의 여자들처럼. 일부는 우리의 지시를 따라 세상을 움직이도록 해. 우리는 배후에 숨어 있고. 그들 모두 노예가 되어 마땅한 무지한 바보들이야.
--- p.342

“얼마나 오래 상자에 갇혀 있었지?”
“일주일에 이틀 밤. 아니면 사흘 밤. 그러다 보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됐어. 아예 새벽 2시쯤. 어머니가 잠든 뒤에.”
“달빛에 책을 읽으려고.”
“맞아. 들키지 않으려고.”
“처음에는 벌거벗고 얻어맞고 상자에 갇혔다고 했지. 그러면 나중에는…….”
“더했어. 나중에는 더 지독한 벌을 받았어. 구부러진 계단.”
아까 그녀와 질베르토에게 다 털어놓은 바로 그 구부러진 계단. 곧 함께 내려가야 할 그 계단이었다.
--- p.380

제시가 어렴풋한 손전등 불빛 속에서 미소 지었다. “당신 정말 그 앨 사랑하는군?”
“여보, 난 당신을 사랑하고, 그 애를 사랑하고, 개들도 사랑하고, 나 자신도 사랑하고, 내 인생도 사랑해. 나는 우리가 무슨 예의범절을 가르쳐야 하는 미개인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미워.”
--- p.381

애원하듯 손가락을 뻗은 손, 격분한 듯 뭔가 움켜잡으려는 손, 손전등을 비추는 곳마다 살점이 없고 뼈만 남은 수백 개의 손들이 빛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물기가 없는 공간의 손들은 대체로 흰색으로 잘 보존되어 있었지만, 축축한 곳의 손은 누렇거나 얼룩덜룩한 갈색이었고 곰팡이가 쥐 털처럼 자라나는 토양 역할을 하고 있었다. (…) 살인 사건 수사 전문가인 그녀가 볼 때 이 뼈는 트로피 같았다. 팔에서 손을 떼어낼 때 손목뼈를 뭉개고 부순 것 같았고, 어떤 것은 산 사람의 팔에서 잘라낸 것 같았다. 동굴은 폭력과 잔혹함, 고대의 전쟁과 정복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벽에는 낯선 룬 문자 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다. 날카로운 문자는 하나하나 증오의 외침 같았다.
--- pp.45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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