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여행은 벗어남을 뜻했다. 교내 가장 어린 교사라는 위치, 관심과 보살핌이라는 명목의 지적과 수군거림, 전교 조라는 딱지, 억측과 오해들, 편두통처럼 반복되는 불합당한 현실에는 떠남이 가장 효과적인 처방이었다.
다행히 교장은 교사들에게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최소한 원리 원칙을 따지며 이런저런 핑계로 교사들을 방학 동안에도 붙잡아 두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것 하나만으로 교장의 두둑한 뱃살도 그녀에겐 넘치는 인품으로 보였다. 방학이 있는 삶은 여행이 있는 삶을 뜻했고, 그것은 그녀가 도망을 꿈꿀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여행의 이유를 묻는 이들에게 그녀의 대답은 막힘이 없었다. 먹먹한 마음에 노트에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써 내려가다 문득 그러기로 했다고……. 일 년 만에 마주한 동창에겐 떠나기 전 이렇게 한 명씩 얼굴을 보러 다니는 시간이 좋아서라고 했다가, 짧아진 머리칼을 만지며 여행을 핑계로 분위기를 가볍게 바꿀 수 있어 좋다고도 했다. 멀리 떠나곤 하는 그녀는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자신이 꿈꾸는 삶을 살고 있다는 주변의 말은 그녀의 은근한 자부심이기도 했다.
여행은 늘 환영받는 주제였으나 여행지가 문제였다. 파키스탄이나 훈자라는 이름은 메아리처럼 “왜?”라는 질문으로 되울려 왔다. 기대와는 다른 반응이 쏟아졌다. ‘나 이슬람교에 귀의하려고 해.’라든가, ‘그곳에 내 아이가 자라고 있어.’ 같은 선언을 한 것도 아닌데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토끼 눈을 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종군기자라도 된 듯 위험을 생생히 소리 높였지만, 누구도 그녀 눈에 담긴 위태로움은 읽지 못했다.
--- 「프롤로그」
“네, 좋아요. 일단 게임 이름은 ‘외계인 게임’이야. 우리 중에 있는 외계인을 찾는 거지.”
“오! 마피아 게임 같은 거예요?”
빨갛게 달아오른 나은이의 볼을 후가 누르며 말을 이었다.
“그런 건 아니고, 종종 우리가 특이한 애나 남들과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을 외계인 같다고 하잖아. 사차원이라고도 하고. 그치? 우리 중에 그런 사람을 찾는 거야. 현실에선 절대 일어날 리 없을 법한 사건 하나를 던져서, 지금 당장 그 일이 일어난다고 상상해 보는 거야.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지 말이지. 똑같은 하나의 질문에 자신은 어떤 결정을 할지 고민해 보고, 그 선택을 공개하는 거지.”
“아, 그럼 그중에서 소수 의견을 낸 사람이 외계인이 되는 거구나?”
“그렇지. 역시 우리 김 쌤은 이해가 빨라요.”
후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섯 명이 다 다른 대답을 하지. 겹치겠어?”
“하나야, 들어봐. 그러니까 답은 둘 중에 하나로 정해둬야 해. 예를 들면, 지금부터 평생 하나의 음식만 먹을 수 있다. 짜장이냐, 짬뽕이냐? 이렇게 질문했을 때, 무조건 둘 중 하나의 답을 정하는 거야. 우리는 다섯 명이니까 오 대 영이 아닌 이상은 무조건 소수 쪽의 대답이 외계인이 되는 거지. 외계인은 벌칙으로 한 잔 마시고, 혹시나 오 대 영의 선택이 나오면 다같이 한잔하면 되는 거고.”
“그럼 답은 같아도 이유는 각자 다를 수 있겠군? 이유는 상관없이 일단 소수의 선택을 한 쪽이 무조건 외계인이 된다는 거지?”
“네, 형님. 맞아요. 우선 외계인을 찾고 벌주를 마셔요. 그다음엔 한 명씩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유를 들어보는 거죠.
당연히 각자 이유도 다를 테고, 의외로 우리가 예상했던 상대의 성격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고요. 스스로도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도 하고요. 그 점이 재밌더라고요.”
(중략)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 단 한 명만 떠올려 봐. 꼭 한 명이어야 해. 가족이건 친구건 간에 가장 사랑하는 단 한 명.”
“지금 떠올린 사랑하는 사람 말이지. 사실 그 사람은 사이코패스 성향의 연쇄살인마였어. 그 사실을 지금 나만 알게 됐고, 내가 신고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살인을 멈추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나는 신고할 것인가, 아니면 신고하지 않을 것인가. 자, 이제 다들 선택해 봐.”
“아, 미쳤어! 뭐야 이거? 상상이 어려운데.”
“하나, 너 말고도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지. 그러니까 더 진지하게 선택해 보라고. 단순히 게임이라고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신고한다고 결정하면 지금 바로 현실에서 그 사랑하는 사람을 신고해야 하고, 아니라면 그 사람이 바로 누군가를 살해한다고 이입을 해 보라는 거지.”
--- 「김설」
어서 돌아가 자라며 후가 등을 쓰다듬었다. 취기 탓일까. 걸음보다 심장이 먼저 뛰었다.
방으로 돌아와 먼저 보인 건 베개 옆에 개어둔 그 사람의 티셔츠 두 장이었다. 마당으로 나가서 평상 아래 놓인 나무 상자를 끌어냈다. 안에 깔린 낡은 천 뭉치를 빼내고, 그 자리에 티셔츠를 포개어 두었다. 숙소 형제들이 종종 찾아오는 고양이들을 위해 만든 집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아무도 날 지탄하지 않아.’ 몸에 달라붙은 젖은 셔츠를 벗어낸 듯 후련한 서늘함이 감돌았다. 긴 작별 인사를 마치는 순간이었다. 울렁거리는 마음에 평상에 누워 밤하늘을 응시했다. 후와의 첫 밤이 떠올랐다. 찼지만 뜨거웠던, 부드러운 접촉과 연대의 시작. 그 밤 이후 기억의 절벽에 설 때마다 후를 찾았다.
시리게 빛나는 별들을 보며 차가워진 손에 입김을 후후 불어 넣는데, 순간 별똥별이 떨어졌다. 얼른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입술에 닿은 손까지 간절히 모아 기도를 했다. 오랫동안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별똥별이 하얗고 긴 포물선을 그리며 내 위로 떨어진 듯 파동이 일었다.
--- 「김설」
그날 밤 역시 휴게실로 올라 작업을 준비했다. 출판사의 원고 독촉에 답을 보내야 했다. 답장을 하지 않은 지 오래여서, 그날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아쉬운 소리라도 전해야 했다. 에세이는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소설보다 나를더 괴롭혔다. 가이드북에나 쓸 법한 관심 없는 정보들만 나열 하며 글자 수를 늘려가고 있었다. 나에게서 나온 문장이 맞는 지, 어지러울 정도로 눅눅한 문장들에선 금세 곰팡이라도 피어날 것 같았다. 초조했다. 여행의 반을 지나고 있었다.
메일함을 열었다. 낯선 메일들이 눈에 보였다. 잠시 멈칫했지만, 곧 오후의 메일함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메일을 보내곤 로그아웃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로그아웃을 누르려다, 호기심이 일었다. 요즘은 누구도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지만, 오후는 오랜 여행자였다. 차마 읽지 못할 낯부끄러운 연애편지 따위라도 좋으니 재미난 것이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메일함을 살폈다. 의외의 결벽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습관처럼 보낸 메일함을 클릭했다. 같은 주소로 보낸 목록이 수십 개가 나열되었다. 수신 확인도 되어 있지 않았다.
하나를 골라 열어보았다. 보고 싶다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혼자지만 괜찮다고 했다. 살이 빠지고 종종 그날이 그립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했다. 대부분의 메일이 비슷한 내용이었다.
떠난 옛 여자 친구라도 되는 걸까. 최근 보낸 메일엔 우리 일행들과의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특이한 건 모든 메일에 하나 씩의 한글 파일이 첨부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열어보니 여행을 하며 쓴 글 같았다. 일기 같기도, 한 명에게 보내는 편지 같기도 했다. 눈으로 대충 글을 살폈다.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괜찮은 표현들이 보이더니, 놀라운 문장들이 눈에 띄었다.
재차 하나씩 메일을 열어 첨부된 글을 내려받기 시작했다.
너무 사적인 글이거나 난해해 이해할 수 없는 글, 시처럼 짧은 단문을 걷어내니 대략 삼십 꼭지 정도가 남았다. 빼앗고 싶은 글이었다. 편집자에게 메일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휴게실에 숨듯이 박혀 밤새 오후의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오후는 작가가 아니었다. 아마도 메일을 확인조차 하지 않는 지난 애인에게 집착을 보이는 것 같았다. 답장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훈자에 머문 시간이 길었던 만큼 이곳 배경의 글이 많았고, 내가 거쳤던 인도와 네팔에서 쓴 글도 있었다.
우리의 루트는 비슷했다. 무언가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타인의 글에 매료된 경험은 오랜만이었다. 그렇다 해도 오후의 글은 작품이 아니었다. 일기와 낙서 사이 즈음에 놓인 잡문일 뿐이었다. 독자가 없는 글은 글이 아니다. 소설을 출간하지 못하는 소설가는 더 이상 소설가가 아닌 것처럼.
내가 수정해 완성한다면, 그제야 글이 되고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좋을 일이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은 오래지 않았다. 모든 사건엔 동기가 있고, 모든 만남에도 이유가 있는 법이라 믿고 살아왔다. 양과 늑대의 길 중, 남보다 앞서거나 많은 것을 얻어내는 때는 안타깝지만 늘 늑대의 길을 선택할 때였다.
--- 「최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