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종교는 없어도 결코 냉소적이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살아 있음을 너무나 아름답고, 아찔할 정도로 신비롭고, 우연히 일어난 신성한 기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부모님은 우주는 막대하고 우리 인간은 궁벽한 곳에 있는 작은 행성에서 눈 한 번 깜박할 순간 동안을 살아가는 아주 작은 존재라고 했다. 또 두 분의 책에도 나오지만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이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다”라는 말도 나에게 들려주었다.
--- p.13~14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 독실한 신앙이 있다면 기쁜 일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확실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미 많은 것들을 기리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지 말라고 쓴 책이 아니라 기뻐할 만한 것들을 더욱 늘리라고 쓴 책이다. 사람은 누구나 축일, 축하, 전통 등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또 누구나 시간을 헤아리고 기록해야 한다. 누구나 공동체가 필요하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맞아들이거나 혹은 그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한다. 내게 신앙이 없다고 해서 이 지구상의 삶의 리듬을 따라 살고 싶은 욕망도 없는 것은 아니다.
--- p.17
아버지는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 증거가 없으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는 말이다.
--- p.35
호기심을 품고 세상을 탐구하는 일은 퍼즐을 완성하는 것보다는 조개껍데기나 우표처럼 작고 예쁜 물건들을 모으는 수집가가 되는 것과 비슷했다. (…)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의 답을 찾으려는 충동에 압도되었다. 답을 찾으면 다음 질문이 또 떠올랐다. 지엽적인 질문도 있고 우주적인 질문도 있었다. 지엽적인 질문은 보통 ‘잡다한 정보’라고 별것 아니라 치부되기 일쑤이지만 아주 작은 지식이 다른 것의 실마리가 되고 우리가 우주에서 어떻게 존재하느냐를 슬쩍 엿볼 수 있는 틈이 되기도 한다.
--- p.101
결국은 우리의 취약함이 우리가 무언가 더 깊은 것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사랑도 그렇고. 오류를 기꺼이 인정한다면, 예측이나 선입견을 과감히 놓아버릴 수 있다면,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에 다가갈 수 있다.
--- p.107~108
삶이 유한함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게 아니라,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느낄 수가 있었다. 이게 나에게는 어른이 되었다는 징표 같았다. 나는 모르는 게 약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아는 것이 축복이며, 기쁨을 얻으려면 때로 공포를 직접 마주해야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우리의 시간은 얼마나 짧은지를 진심으로 인정하고도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되자, 진짜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 p.141
언젠가 딸아이가 크면 우리는 한여름에, 어쩌면 하짓날에 집밖으로 나가 어딘가 오래전부터 있었던 아름다운 곳으로 갈 것이다. 아니면 그냥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볼 수도 있다. 그다음에 현대적이고 새로운 것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도록 가릴 방법을 찾아내는 거다. 손을 터널 모양으로 만들어 그 틈으로 보면서 이 광경을 처음으로 바라본 최초의 인간은 어떤 심경이었을까 상상해볼 것이다. 우리가 지금 보는 빛이 아주 먼 옛날에 멀리에 있는 별을 떠났을 때는 이 세상이 어떠했을까를 상상해본다. 그때 여기에 생명이 있었을까? 다른 별자리를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었을까? 우리는 같이 시간여행을 하면서 그 사람들의 허파에 들어갔을지 모르는 공기 분자를 들이마셨다가 다시 그것을 세상에 내어놓을 것이다.
--- p.162
믿음이 있건 없건 사람은 누구나, 다음에 무슨 일이 오든 지금 이 순간에 경험하는 이것은 필연적으로 끝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사실을 붙들고 살아간다. 삶 이후에 무를 발견하든 의미를 발견하든 그것은 우리가 아는 존재와는 다른 새로운 무엇일 것이다. 만약 당신이 윤회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몸으로 다른 시대에 사는 삶은 오늘날 경험하는 것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다음에 무엇이 오든 우리 중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는 없다.
플레이아데스성단의 별 일곱 개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머릿속에서 밀어내는 대신에, 두려움을 무시하는 대신에, 두려움을 존중하고 두려움에 관해 이야기하고 빛이 사라지기 전까지 빛을 조금이라도 더 즐겨야 한다.
--- p.281
크리스마스와 하누카 이전에, 일신교나 아니 어떤 종류의 종교도 있기 전에, 우리 조상들은 별을 올려다보며 계절의 변화, 시간의 흐름, 어둠이 무엇을 가져올지에 대해 알아내려고 애썼다. 온기와 빛이 찾아올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고 가장 길고 가장 추운 밤을 기념하는 행위는 아주 오래된 것이다. 어디에 살든, 어떤 종교를 믿든, 어떤 민족에 속하든, 조상 때부터 우주 안 지구의 자리를 경외감을 가지고 고찰했다는 사실은 모두 매한가지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신성한 일이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그렇다.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대해 조상들은 꿈도 못 꾸었을 지식을 과학을 통해 얻게 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 p.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