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은 자식을 공부나 성취나 업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존재 그 자체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난다. 자식의 능력 때문에 만나는 것이 아니라 본질로, 관계로 만나는 것이다.
아버지를 떠난 아들은 먼 나라로 간다. ‘먼 나라’란 무조건적인 사랑이 전혀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먼 나라다. 평화가 없는 먼 나라다. 신비해 보이고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가족 공동체를 파괴하고 자신을 파괴하는 나라다.
지금도 사탄은 우리를 속인다.
“먼 나라로 가라! 아버지를 떠나 뭔가를 보여 줘라.”
이것은 사탄의 목소리다.
“너는 아버지 없이 얼마든지 살 수 있어. 너는 하나님처럼 될 거야. 선악과를 먹어.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하나님이 지겹지도 않니? 지금이 기회야.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어. 아버지 곁을 떠나!”
이것이 사탄의 유혹이다.
--- 「1장 아버지 마음」 중에서
하나님은 나를 복의 통로로 부르셨다. 나 한 사람을 세워 그 복이 다른 사람에게, 교회 안에, 온 민족에게 흘러넘치기를 원하신다. 복의 근원, 복덩어리로 산다는 것은 내가 어떤 복을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받은 복으로 다른 사람을 어떻게 세우고, 얼마만큼 나누느냐의 문제다. 나 때문에 우리 교회가, 우리나라가 얼마만큼 복을 받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복덩어리의 비전을 망각하고, 먹고사는 일에만 매달려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도 하나님의 사람들의 생활방식도 아니다.
성경에 노아시대를 진단하고 선포하는 말씀이 있다. “그때 그들은 먹고 자고 일하고 집을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생활을 하다가 망했다.” 먹고 자고 일하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집을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생활을 하다가 망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일상적인 생활이 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무가치한 삶에 있다. 다시 말하면,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살다가 망했다는 것이다. 이런 무가치한 삶은 종말의 시대에 사람들의 가치관이 될 것이다.
--- 「7장 복의 통로」 중에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순간, 내 인생은 가장 커다란 기쁨과 감격을 느낀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아픔이 하나 찾아온다. 나는 이렇게 구원을 받아서 행복한데, 사랑하는 내 가족이 구원받지 못하고 있다는 슬픔이 찾아온다. 내 곁에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모두 구원을 받는 그날까지 이 슬픔과 아픔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가슴앓이요, 내 가족과 이웃을 향한 나의 가슴앓이다. 이 가슴앓이가 없다면 누가 내 가족과 이웃을 구원할 생각을 하겠는가? 가슴앓이가 강하면 강할수록 눈물의 기도와 간절한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 그래서 이 가슴앓이는 아픔이지만, 참 소중하다.
요나서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토록 싫어하는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가슴앓이를 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 이 나라, 나아가 열방의 구원을 위한 아픔을 함께 나누자는 것이다.
하나님의 가슴앓이가 내 마음에도 있는가? 하나님의 눈물이 내게도 있는가? 하나님의 아픔이 내 가슴에도 있는가?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것은 소풍 가서 보물찾기 하듯이 요행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아픈 만큼 영혼의 열매는 소중한 것이다.
--- 「9장 아버지의 가슴앓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