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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시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 김무명들이 남긴 생의 흔적

[ 양장 ]
리뷰 총점10.0 리뷰 1건 | 판매지수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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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7월 09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380g | 137*208*15mm
ISBN13 9788967359195
ISBN10 8967359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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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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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 시의 평일이었다. 손님이 없어 가게 문을 일찍 닫은 날에 나는 차비가 없어 집까지 걸어가야 했다. 언덕의 오르막길을 걸어가면서 너무 피곤한 나머지 신발을 벗고 바닥 위로 쓰러져 누워버리고 싶었다. 섬유질의 종이가 되면 어떨까. 종이가 돼서 종이파쇄기로 걸어 들어가 누군가 나를 읽지 못하도록 흔적들을 지워버리자.
--- p.52

지친 몸과 마음에 필요한 건 타인의 간섭이 없는 혼자만의 공간이고 이 공간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고 듣지 않아야 한다. 마치 눈이 먼 것처럼 귀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내 일이 아닌 타인의 문제에 대해 갖는 관심은 쌓인 피로감을 가중시킬 뿐이니까. 그것이 사회와 나를 단절시키고 고립시키는 것을 모르는 사이에 침묵을 선택하면서 말이다.
얼마나 쉬웠던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말하고 눈길을 거두는 것은. 마음을 한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않도록 했던 일들은.
--- p.58

밤에 일한다는 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둡고 지저분한 그늘만 있는 게 아니에요. 여기에서 일하는 많은 누나와 친구, 동생들은 저마다 꿈을 꾸며 미래를 위해 현실을 영위해나가요. (…) 바깥의 시간에 무감해지고 유리되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여기에도 웃음이 있고 눈물도 있어요. 제 친구가 제게 했던 말이 생각나요. 나는 어둠 속에서 빛을 본 적이 있어. 어둠 속에만 있었다면 몰랐을 거야. 지금은 편안하다고. 어쩌면 사람들은 밤에 일하는 사람들의 그늘만을 보기 때문에 모르는지도 모르겠어요. 여기에도 빛이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떠난 사람들을 생각해요. 사회에서 호명되지 못하는 죽음들을요. 밤에 일한다는 건 그런 죽음들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 일이기도 해요. 전 올해에만 벌써 네 번의 부고 소식을 들었어요.
--- p.77

감염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아. 단지 감염 이후의 시간, 처음의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난 그들에게 말하고 싶어. 어리광 부리지 말라고. 징징대는 거 보기 싫다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도 없을 거야. 그래도 여성 감염인분들을 위해선 가끔 기도해. 그들은 감염인들 안에서도 소수니까. 같은 감염인이라고 하지만 여성 감염인들은 더 힘들고 고통이 큰 거 같아서. 그들을 위한 기도는 가끔 하는 거야.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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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감염인 당사자로서 자신을 드러낸 이는 자신의 문장으로 타인의 이야기를 싣는다. (…) 학제의 연구와 다른 방식의 실천은, 외로움과 고통으로부터 개인을 구제할 수 없지만 삶의 윤곽을 살피며 외로움과 고통의 사회적 구조를 거슬러 읽도록 한다. 그의 글쓰기를 좇으며 가난과 외로움과 고립의 문장들이 어떻게 제 동료를 만나고 기억하며 단단해지는가를 확인한다. 타인에게 제 자리를 양보하듯 자신의 문장을 채우는 방식은 그만의 이야기도, 상대의 이야기만도 아닌 행간의 메아리로, 외로움과 고통을 잇는 연대의 글쓰기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문장들은 ‘외로움의 질병’을 안고 있음에도 타인의 삶과 주파수를 맞춘다.
- 남웅 (미술·시각문화 평론가, 퀴어활동가)
내가 건강을 유지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당하게 때로는 기쁘게 일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 대답을 원천적으로 부정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질문을 나에게 던지는 사람과 나의 대답을 진심으로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관계 맺는 이야기를 짓는 이야기꾼 이정식은 무엇이든 정확하고 자세한 언어로 설명해주지만, 듣는 이의 대답을 누구보다 더 강렬하게 기다린다. (…) 혐오의 언어가 구체화되고, 그것이 착취를 위해서 사용되지 않게 하는 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들어보지 않은 이야기, 상상해보지 못한 삶에 가까이 다가가 연루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 나영정 (퀴어 페미니스트, 인권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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