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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진 세계를 넘어

: 우리는 계속해서 말할 것이다

리뷰 총점9.6 리뷰 4건 | 판매지수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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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7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340g | 130*210*18mm
ISBN13 9791187135203
ISBN10 118713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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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첫째 장 밤나무 집
둘째 장 잠자리
셋째 장 세상에 부러움 없어라

마음이 통하는 사람

넷째 장 열세 살 아이에게 인생은
다섯째 장 도망자 그리고 달걀 50알
여섯째 장 낮말은 새가 듣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일곱째 장 창백한 얼굴, 마지막 만찬
여덟째 장 사흘 굶어 담 아니 넘을 놈 없다

아버지에게

아홉째 장 배신
열째 장 노예 생활
열한째 장 가장 잔인한 달 4월
열두째 장 아들과의 재회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옮긴이가 읽는 이에게

저자 소개 (3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나는 지현의 시선으로 그 내면세계에 접근했다. 나는 지현이 되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우리가 겪은 어린 시절의 행복, 고통, 죽음은 다를 바 없었다. 남과 북에서 각자 살아온 삶을 연결하며 분단으로 비틀린 궤적을 바로 잡고 싶다. 만약 우리나라가 분단되지 않았다면 우리 중 누가 지현이고 누가 나일까? 지현의 이야기는 어쩌면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이 글은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신뢰를 쌓고 평화의 꿈을 키우던 중에 태어났다. 한반도 이야기인 동시에 서로 마음을 연 이야기이다. 지현과 나는 더 큰 자유를 선택했다. 이 책은 그 선택의 결과물이다. 두 목소리, 두 자아가 만나 하나의 정체성으로 되살아난다. 하나의 한국, 한국인의 이야기다.
---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중에서

날이 갈수록 할머니와 정이 들었다. 겉보기와 달리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들은 만큼 무섭지 않았다. 숨바꼭질도 같이 하고 나를 배불리 먹이며 너그럽고 다정하게 대했다. 잠자리에 들 때는 방에서 가장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펴주었다. 전구보다 초를 주로 쓰던 할머니는 촛불 아래서 해와 달에 대한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마을에 사는 또래 아이들은 모두 탁아소에 다녔지만 할머니는 나를 보내지 않고 집에서 돌봐주었다. 나는 매일 막대기나 돌멩이, 닭 떼를 친구 삼아 놀았다. 하루는 지나가는 뱀을 막대기로 때려 죽이기도 했다. 라남에 살 때는 막대기로 미국놈과 남한 사람들을 때려잡는 놀이를 했는데. 그때나 이때나 내 능력에 우쭐했다.
--- 첫째 장 「밤나무 집」 중에서」 중에서

“사람들 화목하게 사는” 곳이라 했는데…… 어린 시절 나는 행복하다고 믿었지만 그렇게 배워서인지 정말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나의 행복은 이미 처방되어 있었고 복용할 약은 가족과 학교에서의 집단생활 그리고 낙관주의였다. 복용량은? 매일 낮 열두 시간 밤 열두 시간.
사실 우리는 하루하루 충실히 보내느라 자기 삶을 생각하거나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매시간 매분 무언가를 배워야 했다. 밤에 잠들 때조차 어서 빨리 일어나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조건 덕에 행복할 수 있었던 걸까
--- 셋째 장 「세상에 부러움 없어라」 중에서」 중에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현의 얼굴에 그리움이 묻어난다. 나는 두 시간 가량 열성적으로 받아 적으며 어린 소녀 지현이 보낸 일상은 어땠는지 자세히 들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지현에게는 힘든 일일 수 있다. 어릴 때 어떤 옷을 입었는지도 기억하기 어려워 그저 윗옷은 흰색, 아래는 검은색이었다고만 말한다. 놀라운 일이다. 지현의 기억은 모두 흑백이다. 나는 수첩에 이렇게 메모하고 옆에 별표를 단다. 중요.
우리는 아주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지현이 하는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확 와닿는다. 한 마디 한 문장 다 들리고 느껴진다. 나와 너무 다르면서도 너무 친숙한 이 여성이 한때 경계선 반대편, 세계가 외면한 나라이자 내가 지옥이라 여기던 그곳에 살았다는 사실이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다.
--- 「마음이 통하는 사람」 중에서

“한 사람에 열 개씩.”
어머니가 침착하게 말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달걀을 향해 달려들었다. 배가 너무 고팠던 우리는 잡혀가는 위험도 감수할 수 있었다. 마치 신성한 의식에라도 참여하는 듯, 작은 소리에 맛이 달아나기라도 할 듯 모두 침묵을 지키며 달걀을 먹었다. 새 달걀 껍데기를 깔 때마다 언니와 나, 정호는 기쁨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아버지는 소리 내지 말라며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여러 번 주의를 주었다. 이웃집 장 씨 아줌마가 엿듣기라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 다섯째 장 「도망자 그리고 달걀 50알」 중에서

하늘을 올려다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또렷이 기억나는 건
여덟 살 때 아버지가 해님 달님 이야기를 들려주던 날이에요.
옛날 옛적에 별도 아직 없던 시절에
해님과 달님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려주는 이야기였죠.
그 포근한 공기 속에서 아버지는 저와 장기를 두고
언니와 정호는 숨바꼭질을 했어요.
그 순간만큼은 배고픔도 잊을 수 있었어요
--- 「아버지에게」 중에서

철아, 힘내. 엄마 손 잡아. 겁낼 것 없어. 이제 200미터만 더 가면 돼. 저기 철조망 보이지? 그 바로 너머가 몽골이야.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뛰지 않고 그냥 걸어가도 돼. 다 잘될 거야. 믿지?
지옥으로 떨어지는 지름길일까 아니면 살아남는 길일까? 이미 뛰어들었으니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목숨을 지키는 데 제일 중요한 200미터를 모두가 전력 질주하는 동안 다섯 살 철이와 다리를 저는 나는 꾸준히 앞을 향해 걷기만 했다. 내 손을 잡은 아이의 손은 차가웠지만 두려워하던 눈빛은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 열두째 장 「아들과의 재회」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프랑스에서 선출간되어 유럽 각국에서 주목한 책
프랑스 ‘Bibliotheque Orange selection 2020’ 올해의 문학 작품


“남과 북 두 여성의 역사적인 만남의 기록이다. 이 책의 이슈는
남북 대립이나 가난, 불행, 독재가 아니라 사회문화를 섬세하게 기록한 데 있다.
이 책의 독창성은 두 주인공의 만남에 있다.”
_ Jean-Claude de Crescenzo (문학평론가·몽펠리에 대학 교수)

채세린은 박지현을 만난 뒤로 오랫동안 회피해 오던 질문을 마주했다. 평생 남한 사람으로 살아왔는데 또 다른 한국인을 발견한 것이다. 박지현도 마찬가지였다. 남한 사람도 북한 사람도 아닌 ‘그냥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나서야 알았다. 평화는 남북 정상회담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친밀한 공간에서, 소소한 대화로, 함께 보낸 역사와 잃어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만나서 대화하는 사이 둘은 평화롭게 ‘통일’을 이루었다. 이 책은 그 역사적인 순간의 기록이다.

저자에게 묻다
Q 공동 저자 중 한 분은 이야기로, 또 한 분은 글쓴이로 나오는데 박지현 님 스스로를 ‘발화자’로 특정한 이유가 있나요?
(박지현)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지금도 가끔 시를 쓰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제 이야기를 직접 쓰고 싶진 않았습니다. 제 이야기가 누군가의 객관적인 시선을 거쳐 기록되기를 원했습니다. 영국판 [마리끌레르]에 저를 인터뷰한 글을 실은 외국인 작가에게서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는데, 당시엔 힘든 상황을 끄집어내기가 두려웠어요. 그냥 묻어두고 싶었지요. 더구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로 감정이 통하지 않았고 통역이 있어도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세린 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린 시절 할머니에 대한 추억, 형제와 가족에 대한 애착, 부모에 대한 공경 등 공감하는 대목이 많았습니다. 몇 년간 소통하면서 다른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을 또렷이 잡아내 줄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통역 과정에서 놓치기 쉬운 제 삶의 진실을 그 어떤 평가나 오해 없이 담아내고 싶었으니까요. 그건 한국어로 대화 하는 사람끼리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북한 생활을 떠올리면 증오와 분노로 치닫는데, 세린 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해 낼 수 있었지요. 우리의 만남이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두 한국의 시대적 기록이 되었습니다.

Q 자신의 이야기를 묻어두고 싶었다고 하셨는데 결국 글로 남기게 된 또 다른 계기가 있는지요?
(박지현) 아들의 질문 때문입니다. 영국에 정착하고 4년 쯤 지난 어느 날 멘체스터 공원 벤치에서 아들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엄마 왜 저를 버렸어요?” 하고. 아들은 주변 사람들이 엄마가 자기를 버렸다고 했는데 진짜 숫자 백을 세고 나도 엄마가 오지 않았다며……. 당시엔 그저 울기만 하고 답을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그러다 한 인권단체에서 다큐를 찍었는데 제 이름도 가명을 썼고 얼굴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때 남편이 진실로 이 일을 하고 싶으면 자기 이름도 얼굴도 내놓고 하라고, 누군가가 돌을 던지면 막아주겠다며 응원해 줘서 용기를 냈습니다. 인권 활동을 하면서 “통일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꼭 글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도 책을 내게 된 강력한 동기입니다. 아들과 제가 왜 헤어졌고 어떻게 영국에 함께 있는 지, 책에 모두 풀어놓았습니다.

Q 저자 두 분 모두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인데 정작 한국에서 출간한 책은 번역서입니다. 어쩌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서야 한국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는지요.
(채세린) 그건 제 글쓰기 언어 때문이에요. 저는 유년기부터 계속 프랑스어권 나라에 살았거든요. 집에선 한국어를, 바깥에선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주로 외국어를 쓰며 자랐죠. 물론 그중에서 모국어인 한국어는 절대적이지만, 글을 쓸 때 제 머릿속 언어는 프랑스어예요. 이런 저의 배경을 듣고는 박지현 님이 프랑스어로 쓰는 게 좋겠다고 제안해 주었고요. 참 고마운 일이죠. 우린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한국어 특유의 독특한 감정을 프랑스어로 세심하게 표현할 수 있었어요. 지현 님은 프랑스어를 모르니까 쓰면서 일부분씩 영역본으로 확인받고 수정하면서 의견을 교환하는, 그런 과정을 거쳤어요. 우리 둘 다 아주 만족해요.

Q 그래서 프랑스 출판사에서 먼저 나온 거군요. 두 분 다 첫 작품이고 프랑스어로 썼지만 다른 나라 이야긴데, 출판사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채세린) 작업을 하면서 글 일부를 평소 눈여겨 본 프랑스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놀랍게도 역사가 오래된 꽤 큰 출판사인데 대표에게서 회신이 왔어요. 프랑스에선 완성된 원고를 보내도 출판 계약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현실인데 이례적이죠. 이렇게 출간으로 수월하게 이어진 이유는 프랑스인들이 한반도 상황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 사람들은 특정 이슈에 깊이 파고드는 성향이 있거든요. 이 주제가 눈에 띈 거죠.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잖아요. 게다가 북한과 남한 사람이, 그것도 ‘여성’이 함께 한 작업이라는 점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더군요. 저희 둘 다 60년대에 태어났고 분단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바른 역사 교육을 받지 못했거든요. 제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3년을 한국에서 다녔는데 북한은 나쁘고 무서운 나라로 인식했어요, 지현 님 역시 남한을 무찔러야 할 대상으로만 교육받았죠. 그 탓에 처음엔 서로를 경계 지을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는 5년 가까이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를 나눴던 그 지점이 무엇인지를 알아냈죠. 서로의 목소리를 반사하며 정리한 지점이 바로 프랑스 출판사에서 관심을 보인 이유죠.

Q 이 책이 기존 탈북자가 쓴 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요?
(채세린) 유럽에는 북한 관련 책이 많아요. 탈북민이 쓴 책도 있고요. 최근 한국 문학을 소개하는 프랑스 사이트에서 한 문학 평론가가 리뷰를 올렸는데 요약하면 이래요.
“남과 북 두 여성의 역사적인 만남의 기록이다. 이 책의 이슈는 남북 대립이나 가난, 불행, 독재가 아니라 사회문화를 섬세하게 기록한 작품이다. 이 책의 독창성은 두 주인공의 만남에 있다.”
딱 이거예요. 이 책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에요. 인간에 대한 책이죠. 우리 둘이 서로 신뢰하면서 맺은 우정과 연대, 평화를 말하는 책이거든요. 유럽에는 탈북민이 쓴 책이 꽤 있는데 그들의 책은 대체로 북한에서 이런 일을 당했다, 북한은 지옥이다, 공산당은 나쁘다고 토해내는 등 일부 과장되거나 선동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죠.
이 책은 달라요. 김일성 · 김정일 시대를 거친 한 여성의 일상을 통해 그 당시 시대상을 담은 이야기를 다른 한 사람이 문학적으로 재구성한 기록물이거든요. 제가 알기론 그 시절을 겪은 평범한 북한 사람의 일상을 기록한 책은 없어요.
체제 반대편 사람인 제가 쓰면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노력했어요. 게다가 동시대에 태어난 제 자신의 생애 경험과 교차시키며 두 한국의 교육제도와 사회문화를 서술해 나가면서, 분단 상황이 개개인의 관념에 미친 영향을 살펴볼 수 있었죠. 우리 둘의 문제가 곧 남과 북의 문제이고 나아가 세계 평화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기존에 나온 고발서류 책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Q 출간 후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반향을 일으켰다고 들었습니다. 그곳 독자들과는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누었나요?
(채세린) 출간 후 유럽 유수의 대학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했어요. 심지어 영문판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북페어를 통해 알려져서인지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도 초대받았죠. 그들은 평화나 통일에 관한 거대 담론이 아니라 민간인 차원에서 교류하면서 평화롭게 지낸다는 데 관심과 의미를 두더군요. 그러고는 “우리는 뭘 해야 도움이 될까.” 하고 진지하게 물어봐 주었고요. 강연 때마다 경청하는 청중들 모습은 집필 때의 괴로음을 싹 씻어주면서 보람으로 채워주었죠.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시국에 접어들기 직전, 벨기에 브뤼셀 북페어(2020 Foire du Livre book fair)에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대표주자로 초대받아 주목받았고요. 그때 『82년생 김지영』을 쓴 조남주 작가와 나란히 초대되었죠. (한국이 코로나 시국에 접어들었을 때라 조남주 작가는 참석하지 못함) 청중들은 이 책이 인간에 대한, 평화에 대한 더없이 감동적인 책이라며 공감과 지지의 말을 보내주었어요.
파리의 한 대학에서 한국 문화를 공부하는 학생들과는 온라인으로 만났는데 저는 프랑스어를, 지현 님은 영어를, 학생들은 한국어를 썼어요. 여러 언어와 문화가 어우러진 모습에 눈물이 핑 돌더군요. 글을 통해 세상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순간이었죠. 원서는 프랑스 ‘Bibliotheque Orange selection 2020’ (파리 공립 도서관에서 선정하는 문학 작품)에 뽑힐 만큼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습니다.

Q 채세린 작가님 해 온 일이 흥미로워요. 파리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뉴욕에서 프랑스 문학 박사과정 후 콜롬비아비즈니스스쿨에서 MBA를 거쳐 자산 관리 전문가로 경력을 쌓았는데요. 문학을 전공하고 전혀 다른 분야로 뛰어들었다니 무척 흥미로워요.
(채세린) 프랑스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치고 뉴욕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건, 그쪽에서 프랑스어 강사 제안이 있었고 새로운 곳에 도전하는 의미도 있었어요. 프랑스어를 가르치면서 박사 논문을 앞두고 있는데 당시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면서 도서관에서 씨름하는 제 모습을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박사학위에 매달리고 있는 모습이 처량해 보였죠. 자극을 받아서인지 그 세계가 되게 궁금했어요. 그래서 뛰어들었는데 회사에선 오히려 제가 문학 전공자이니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넘칠 거라는 기대로 뽑았다고 해요. 10년 넘게 그 세계에서 일하다 영국으로 와서 박지현 님을 만나 작가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어요, 이 일로 우리는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공적이기도 한 기록을 남기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게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Q 출간 후 가장 보람 있던 일 한 가지를 말씀해 주세요.
(박지현) 북한에도 사랑이 있고 정이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북한 사람도 그냥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배고프고 불쌍한 정치적 꼭두각시가 아니라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매일 싸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독자 리뷰 중에 “아픔을 보여준 책인데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는 평을 읽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북한 사람은 초라하지만은 않으니까요. 머지않아 남한 사람 북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한국인으로 불리게 될 그날이 올 것입니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북에서 온 박지현과 남에서 온 채세린.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한국어’를 쓴다는 것과 ‘여성’이라는 점이다.
한국어와 여성이라는 공통어는 그들이 매개자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준다.
두 사람의 대화가 우정과 연대를 지닌 하나의 생명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책은 한 여성의 가려진 삶을 또 한 여성이 자신의 삶과 교차하며 완성해 낸 기록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음으로써 두 사람의 기록에 동참할 때,
이들이 도모한 기록은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역사적 기록이라는 궁극의 여정을.
- 박혜진 (『82년생 김지영』 편집자·문학평론가)
독재를 경험한 지현, 지현을 만나 또 다른 한국을 인식하게 된 세린
극과 극에 있던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 반사해주는 거울 역할을 하면서
인권에 대한 의식을 일깨운다. 공통된 미래를 향한 희망과 화해의 가능성을 그려낸다.
많은 분이 읽기를 권한다.
-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벤처 투자가)

회원리뷰 (4건) 리뷰 총점9.6

혜택 및 유의사항?
가려진 세계를 넘어 : 두 개의 한국을 월경하는 여성들의 대화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데*씨 | 2022.04.10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YES24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디아스포라. 산포된 자. 자신이 살던 땅에서 추방당한 뿌리뽑힌 존재 혹은 생존을 위해 자신이 살던 땅을 떠나 타지에 이식된 존재.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디아스포라의 존재와 기억은 조금 낯선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금 멀게는 100년 전, 일제 식민치하에서 조선인들은 만주로, 일본으로, 하와이로, 멕시코로, 중앙아시아 등지로 강제 이주를;
리뷰제목
-YES24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디아스포라. 산포된 자. 자신이 살던 땅에서 추방당한 뿌리뽑힌 존재 혹은 생존을 위해 자신이 살던 땅을 떠나 타지에 이식된 존재.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디아스포라의 존재와 기억은 조금 낯선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금 멀게는 100년 전, 일제 식민치하에서 조선인들은 만주로, 일본으로, 하와이로, 멕시코로, 중앙아시아 등지로 강제 이주를 당하거나 살아남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떠나야 했다. 가깝게는 50년 전만 해도 지방의 아이/청소년/청년들은 농촌으로부터 값싼 노동력을 대량으로 수혈받아 노동집약적 산업화 정책의 일환으로 '뿌리 뽑힘'을 경험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군사정권 치하에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이 미국을 포함해 외국으로 떠밀리듯 이주를 감행해왔다. 이제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한국인들이 더 이상 정치적 난민의 입장으로 대규모의 이주를 떠나는 상황은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서 디아스포라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다. '탈조선'을 한 국외 한국인 디아스포라, 이주민뿐 아니라 새로운 삶을 위해 한국 땅을 찾은 국내 디아스포라, 이주민들이 있다. 외국인노동자, 다문화가정, 탈북민, 새터민, 불법체류자 등 이미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만 아직 잘 보이지 않는 이웃들이 있다.

시리아, 예멘, 아프가니스탄. 세 나라의 공통점은 최근 내전 등으로 인한 국내정치의 불안정한 정세로 인한 대규모의 난민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난민에 대한 인도적 책임을 지기 위해 난민을 수용하는 쪽과 난민을 적극적으로 타자화시켜 혐오하는 방식으로 쇄국 정책을 펴는 쪽 중 한국은 대체로 후자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인권에 기반을 둔 보편적 인류애와 국가이익과 국민정서에 기반을 둔 배타적 민족주의, 환대와 혐오, 다양성을 포용하고 약자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성숙한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 현실은 이렇게 이분법적 잣대로 분별을 하기 힘든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을 테고, 점점 더 개인화되고 부족적으로 분열하는 공동체를 하나로 엮을 수 있는 도덕적 합의를 도출해내기 힘들어지고 있다.

이렇게 추상적이고 거대한 질문 대신 초점을 작은 개인에 맞추면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답변을 얻어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는 한국사회의 일반성과 평범성의 범주를 벗어나는 낯선 타인의 이야기를 얼마만큼 경청할 수 있는가. 나와 상관없는, 혹은 그렇게 느껴지고 인식되는 타인의 이야기에 무관심한가, 교양 있는 시민으로서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긴 하지만 거기서 멈추는가, 연대의 사회적 기술을 실천할 수 있는가. 고정된 답을 확실하게 꺼내놓긴 힘들 것 같다. 나 하나 건사하기 때때로 벅찬 세상에서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의를 지키자는 태도를 견지하려 한다는 정도의 답을 대신 건넨다.

사유화된 위험, 유동하는 공포에 휩쓸려 매몰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위험을 조절하고 관리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타인들과 함께 더불어 즐겁게 살 수 있는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궁리하고, 타인의 고통과 이야기에 감응할 수 있는 상상력과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 시와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고, 마음이 맞고 고민거리가 비슷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곤 한다. 표면적인 논리의 형태로는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었던 페미니즘의 주장에 대해 친구들이 여성 동료 시민으로서 구체적으로 증언해준 서사를 통해 내가 서 있는/있었던 위치와 그들이 서 있는/있었던 위치가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다른지 깨달았던 것처럼.

[가려진 세계를 넘어]를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마음 먹게 한 내적 동기가 두 가지 있다. 대학 시절,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활동했던 다문화탈북자가정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탈북자 가정 출신의 중학생과 멘토/멘티의 관계로 만남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언어 능력을 한창 발달시켜야 할 시기에 이사를 자주 다닌 영향으로 말이 어눌해서 중학생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했다. 또 탈북자라는 프레임에 맞춰 중학생 아이를 대하고, 얕은 호기심으로 가족사에 대해 물어보는 일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탈북민 출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제각각 다르겠지만 미디어에 노출되고 소비되는 유형과는 다른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었다. 들어보고 싶었다.

다른 하나는 현재 내 신분과 관련이 있다. 군 복무를 하고 있는 군인으로서 북한을 직간접적으로 의식할 기회가 잦다. 군사훈련이나 교육을 받을 때면 '주적'으로 북한을 호명하게 되고, 가끔 통일의 파트너 혹은 짝으로 거론하기도 한다. 통일대박론부터 세금 폭탄 및 사회 혼란의 디스토피아적 전망까지 북한에 대한 다양한 논의에서 북한 인민/시민의 자리는 어디에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 3대 세습의 독재 체제 아래 고통받는 북한 시민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대의에 동의하면서도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되어 온 북한 시민들의 정체성과 그에 따른 언어적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조율하고 대화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빠져 있는 관점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이 종식되었다고 하지만 철의 장막은 여전히 한반도의 허리에 굳건히 세워져 있다. 군사적 대치 상황을 뛰어넘어 더 이상 한민족이란 집단기억에 기반한 통일의 당위성에 공감하지 못하는 세대가 품고 있는 마음의 분단, 마음의 장막을 걷는 일이 더 요원할 지도 모른다. '두 여성의 이야기에 담긴 두 한국의 역사/부조리 너머, 화합을 위한 열망의 증거를 보여준다'는 책 소개글에 마음이 동했다. 손쉽게 화해나 통일, 용서를 말하는 이를 믿지 않는 편이지만 두 여성이 함께 지어낸 공동의 서사와 그 이면에 자리한 공감과 이해의 제스처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내게 [가려진 세계를 넘어]가 흥미로웠던 지점은 두 한국여성이 새로 뿌리내린 장소와 만남의 장소, 뜻밖의 물리적 언어적 국경의 월경/번역이었다. 이 책은 영국에서 북한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인권운동을 펼치는 함경북도 청진 출신 박지현과 프랑스에서 자라 영국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 채세린이 국제엠네스티 캠페인을 계기로 만나 채세린이 박지현의 이야기를 채록한 구술사 작업의 결과물이다. 옮긴이의 말에 적힌 내용대로 불어로 집필된 [두 한국 여성]이 영어로 한 번, 영문번역본이 한국어로 한 번 더 언어의 국경을 넘는 여정을 거쳐 한국 독자들에게 도착할 수 있었다.

'고난의 행군' 시기 가족을 살리기 위해 매매혼을 통해 북한에서 중국으로 떠나고, 중국에서 북한으로 송환되어 수용소에 갇히고, 재탈출을 시도해 중국에서 고비 사막을 건너 영국으로 건너가 정치적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박지현의 처절하고 핍진한 가난과 고통, 여성으로서 당한 폭력의 증언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자체로도 북한 현실에 대한 르포이자 자서전적 자기서사로서 좋았지만 나는 책에 미처 적히지 못한, 책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두 사람이 사이를 오간 표정과 침묵에 관심이 갔다. 여전히 신변의 위협 가능성이 남아 있긴 했지만 겨우 되찾은 안온한 일상과 평범한 행복의 생활을 포기하고 직면하기 끔찍히 고통스러웠을 기억과 대면해야 했을 박지현이 지새웠을 차가운 밤의 시간들. 같은 '한국''여성'이었기에 박지현은 말할 수 있었고, 채세린은 들을 수 있었다.

고난의 현대사-80년대부터 이미 '고난의 행군'이 예고되었던 북한에게는 좀 더 가혹한 형태로 실현되었지만, 온정적 가족주의-가족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박지현에게 가족은 좀 더 복잡한 의미로 다가오겠지만, 한과 정-한국인 특유의 심성(망탈리테)이라고 보기에 미심쩍은 부분도 있지만 두 사람의 '케미'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였던, 여성-두 개의 한국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분열된 두 세계에서 같은 여성으로서 함께 아파하고 웃었을.

이런 책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런 만남, 이런 대화가 없었더라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이야기, '가려진 세계를 넘어' 우리를 연결시키고 확장시키는 이야기. 잘 듣고, 잘 옮기는 '기록자'들이 좀 더 조명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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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진 세계를 넘어]우리는 우리를 위해 아파해야 한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무* | 2022.03.27 | 추천14 | 댓글4 리뷰제목
<독서 편식> 특정 음식만 가려 먹는 편식. 기호가 지나치게 강한 탓에 섭취 영양소의 균형이 깨질 경우 건강을 해칠 수 있으며, 특히 성장 어린이에게는 발육뿐만 아니라 성격 형성, 미각의 폭, 음식 상황 대처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책 읽기에도 편식이란 단어를 붙여 쓴다. 독서 편식. 사회과학과 비평서가 대부분인 나의 독서 생활. 더구나 난 독서계의 어린이지 않은가. 그렇;
리뷰제목

독서 편식

특정 음식만 가려 먹는 편식. 기호가 지나치게 강한 탓에 섭취 영양소의 균형이 깨질 경우 건강을 해칠 수 있으며, 특히 성장 어린이에게는 발육뿐만 아니라 성격 형성, 미각의 폭, 음식 상황 대처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책 읽기에도 편식이란 단어를 붙여 쓴다. 독서 편식. 사회과학과 비평서가 대부분인 나의 독서 생활. 더구나 난 독서계의 어린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사유의 성장에 문제가 있을까. 시선의 폭이 좁아졌을까?

 

석고대죄

편식 탓에 매달 읽을거리를 찾고, 검색하고, 기웃거리는 곳이 참 좁다. 실로 다양한 책이 많을 텐데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 서평단은 이런 편식 길에 잠시 옆길로 빠져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책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런저런 신간이 있구나정도로 그치는 수준이고 막상 서평단 신청은 하지 못한다. 이놈에 편식 때문에.

편식 때문에 석고대죄해야 할 일이 있다. 정확히 1년 전, 쉽게 생각하고 서평단에 접근했던 한 권의 소설책. 그야말로 딱딱한 활자라고 불러 마땅했던 그간의 책들에서 너무나 곱고 순한 우리말로 이뤄진 책을 손에 들게 되었고 그 문장의 부드러움에 도저히 적응을 못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책은 노려보고만 있다. 고백하자면 난, 독후기 없이 책 먹은 이력을 가진 1인이다. 다시는 사람 착해지는 책은 들지 않으리라.

 

사회 고발서?>

편식과 1년을 넘긴 죄인 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가려진 세계를 넘어』는 조심(죄송)스레 내 손에 들렸다. 내 입맛에 맞는 책이라 생각했다. 남과 북, 두 한국, 두 여성, 그리고 연대. 잊고만 있던 한반도의 통일 염원을 재확인하는 책이라 생각했다. 분단된 조국에 살면서 책만 끼고서 뭐를 하고 있단 말인가. 내 편식에 맞는 책이리라.

그러나 짐작한 책은 아니었다. 한 여인의 아픔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박지현. 이 여인이 겪은 경험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앉은자리에서 동작을 멈출 만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진진했다.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북한의 박지현’. 지현의 경험을 자신의 생애에 비춰 기록하고 있는 남한의 채세린’. 그리고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나.

 

박지현과 그의 한국

엄마, 왜 날 버렸어?” 지난 상처를 묻어두고 지내던 박지현은 2012년 어느날, 맨체스터 공원에서 아들이 던진 물음이 계기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버리지 않았다는 간단한 말로는 할 수 없었다고.

 

청진이 고향인 박지현의 유년시절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있다면 60년대에 아파트에서 지냈다는 것. 그 시절 북한 사회는 사뭇 보릿고개라는 말로 대표되었던 남한의 모습과 비교해볼 때 풍족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아는바 북한 경제는 7~80년대를 거치며 점차 기울다 90년대를 넘어오며 식량 대부분을 의존하던 소비에트 연방 붕괴에 가뭄과 수해가 겹쳐 추락했다. 이는 박지현의 기억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처음 강제노동을 경험해야 했던 이야기. 식량 배급이 충분치 않아 허기진 가족을 위해 몰래 마련한 아버지의 달걀 50를 간밤에 뱃속에 넣으며 잠시 행복했던 하룻밤의 이야기. 이들 가족이 범죄의 흔적으로 남은 달걀껍데기를 심각히 고민하여 갈아서 가루로 만드는 모습을 보며 웃프면서도 주변의 눈을 의식하는 남과 북의 다른 이유가 교차 되었다. 속은 달라도 겉으로 주변과 같아야 하는 사회와 겉으로 주변보다 더 잘나야 하는 사회다. 이러한 면은 출신 성분이라는 그 유명한 신분제의 출발에도 들어있다. 항일운동에 참여했던 엘리트계층과는 달리 해방 이후 월남한 외할아버지로 인해 적대계층에 속했던 지현과 그 언니는 뛰어난 학업성적임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사회적 진출에 좌절해야 했다. 겉으론 사회주의 표방하면서도 그 속은 처음부터 계층을 나눠 기회의 한계를 규정한 사회다.

 

체제의 신념으로 극복하기에 한계를 드러낸, ‘고난의 행군이라 알려진 그 기근을 겪은 90년대의 북한 사회는 상상 이상이다. 수많은 주민이 집도, 직장도, 목숨도 잃고 북을 탈출했다. 박지현의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장사수완이 좋았던 어머니에 기대어 살아남으려 고군분투하는 그의 가족들. 또 수완 좋은 어머니 덕에 수학교사가 된 지현이지만 아이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큰아버지와 아버지마저 굶어서 자리에 눕는 현실 앞에, 그리고 먹을 것을 찾아 산과 들로 땅을 파헤치는 자신을 보며 참을 수 없는 체제의 혼란과 굴욕을 느낀다. 소식이 끊긴 어머니와 동생을 기다리며 홀로 병석에 누운 아버지를 돌보지만, 언니 가족의 설득에 이끌려 아버지를 남겨두고 국경을 넘는다.

 

세 여성

여러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난민 자격으로 영국에 정착해 인권운동에 뛰어든 박지현은 우연한 일로 통역 일을 잠시 맡은 남한의 채세린을 만난다. 경계 속에 또 다른 한국을 마주하지만 비슷한 연배의 두 한국, 두 여인에서 하나의 한국, 같은 여인의 마음이 된다. 외교관의 딸로 살아온 채세린은 처음엔 박지현이 겪은 상처와 경험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잠시 잠깐 박지현의 무거운 상처를 거부하며 평온한 이전의 일상을 그리워한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연대를 이어나가게 된다. 만약 박지현 자신이 글로 썼다면 드러냄이 덜했으리라. 구술로 전하는 박지현의 이야기에 채세린이 공감하고, 아파하고, 상처를 드러내어, 기록되어 목소리에 힘을 더했다. 그 드러내는 공감에는 (국경을 넘을 때 도와준)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한 여자로서의 상처도 있다.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된 원제는 『두 한국 여성』이다. 그러나 내게 또 다른 한 여자가 보였다. 옮긴 이 장상미다. 감춰진 한국의 박지현, 공감한 한국의 채세린. 두 여자는 한국어로 연대를 이루지만 오랫동안 프랑스어권을 살아온 채세린의 머릿속 언어는 프랑스어였다. 이런 이유로 또 다른 한국 여인 장상미를 거쳐 내 손에 들렸다. 오랫동안 사회운동을 하며 무력감에 지쳐있던 옮긴 이 또한 채세린처럼 박지현의 상처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후반 작업에서는 박지현을 응원하며 오히려 힘을 얻었다 한다.  다른 세 곳의 한국 여인들이 만나 가려진 세계가 전하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다시 편식

내 편식에 맞는 책이라 생각했다. 서로 다른 사회와 그 체제가 들어있어야 했다. 그러나 책은 내 기대를 무너뜨렸다. 그 세계에는 얼마 전까지 우리의 1960년대가 있었다. 또 국경을 넘어 겪은 박지현의 상처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무게로 다가왔다. 지현이 딛고, 넘고, 발버둥 쳤던 행위에 응원을 더하며 책이 흥미진진한 소설처럼 읽히는 건 왜일까. 두 여인이 나누는 대화에 공감되어 어느덧 조용히 그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일까. 착해지는 책을 거부했지만, 어느덧 나는 착해진 것일까.

 

좋아하는 것만 취하는 편식. 음식에도 편식이 있고 책 읽기에도 편식이 있다. 또 사회를 보는 시선에도 편식이 있다. 우리 사회의 편식. 가려진 세계를 보는 우리 사회의 편식. 오랫동안 가려진 세계를 보는 우리 사회의 편식증에 약이 있을까. 이 책 『가려진 세계를 넘어』는 박지현의 이야기로, 그녀를 공감한 채세린의 목소리로, 우리 정서로 번역한 장상미를 통해서 우리 사회 오랜 편식증의 처방을 알려준다.

 

바로 공감이다.

우리는 누군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하지 못하는 말을 할 수 있다. 누군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고, 하지 못하는 노래를 할 수 있다. 누군가 먹지 못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그 누군가를 위해, 우리를 위해 아파해야 한다. 부제처럼 이들은 계속 말할 것이고 우리는 또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가려진 세계가 전하는 공감의 목소리를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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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도서 리뷰] 가려진 세계를 넘어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고******이 | 2022.03.21 | 추천3 | 댓글0 리뷰제목
  p74. 터미널은 언제나 사방에서 몰려든 여행객으로 북적이지만 카페는 누가 어떤 이념을 가졌든 신경 쓰지 않고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렇게 평온한 상태로 우리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에 더 집중하면서 서로의 삶을 마주한다.     북한만큼 가깝고도 먼 나라가 있을까. 나는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도, 극단적인 단절의 시간을 보낸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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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4. 터미널은 언제나 사방에서 몰려든 여행객으로 북적이지만 카페는 누가 어떤 이념을 가졌든 신경 쓰지 않고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렇게 평온한 상태로 우리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에 더 집중하면서 서로의 삶을 마주한다.

 


 

북한만큼 가깝고도 먼 나라가 있을까. 나는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도, 극단적인 단절의 시간을 보낸 세대도 아니다. 평화통일을 외치며 교류가 왕성했던 시기에 태어나서 오히려 TV나 영화 등 각종 매체를 통해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다. 처음에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그러한 궁금증 때문이었을 것이다. 38선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우리 민족의 국가에 대한 궁금증.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그 나라와는 상관없이 지현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타국의 광장에서 세린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p147. 지금 여기 있는 우리는 딱 잘라 북한 사람, 남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한국인이에요. 두 한국인 여성. 분단의 아픔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하나가 돼요.

 


 

지현의 이야기는 같은 듯 다르다. 지현의 어린 시절에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말괄량이 소녀가 있다.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일상을 누리고, 할머니와의 특별한 추억도 쌓고, 친구와 골목을 누비기도 하며, 작은 방 안에서도 큰 미래를 꿈꾼다. 그런 그녀가 조국의 실상을 마주하고 탈북을 감행하며 겪는 일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국가나 이념은 지워지고 그녀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이를 가능하게 한 이 책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바로 다른 이의 손으로 쓰여졌다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시대의 아픔을 겪어온 한 사람의 일생을 스스로가 기록한 자서전 형식이 아니라 다른 이의 손으로 받아적어진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그것도 어린 시절 내내 무찔러야될 '적'으로 인식해온 나라의 사람 손에 말이다. 같은 역사를 바라보는 2개의 시선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아픈 역사의 현실은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드러난다.

 

두 사람이 똑바로 마주 앉았을 때, 국가나 체제는 온데간데없고 두 명의 사람만 남는다. 이 두 명의 한국인 여성이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연대의식은 피어오른다. 소통을 바탕으로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는 상태. 이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관계이자, 만들어나가야 할 이상적인 통일의 형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계속해서 말할 것이다.

 


 



 

덧. 책이 들고 다니기 좋게 가볍다 했더니 FSC 인증 종이를 사용하여 만든 책이라고 한다. 몇달 전에 읽었던 타일러의 책에서 알게 된 이후로 처음 본 친환경 도서라 반가웠다. 앞으로도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리뷰는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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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3건) 한줄평 총점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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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5점
영화로도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분들이 일기어보셨음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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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골드 m****6 | 2022.12.30
평점5점
난 착해졌다. 그리고 인권단체에 정기후원을 등록했다. 나를 변화시킨 책.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무* | 2022.03.28
평점5점
긴 여운이 남는 한 사람의 이야기, 아니 역사다. 이 책이 나에게 와서 정말 뜻깊다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YES마니아 : 로얄 g*****7 | 202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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