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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불안한가

: 세 평 진료실에서 철학 숲과 미술 정원을 산책하다

리뷰 총점9.7 리뷰 11건 | 판매지수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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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1년 07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53쪽 | 370g | 148*205*16mm
ISBN13 9788974188511
ISBN10 897418851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뵈클린, 고흐, 뭉크, 카라바조, 키르히너, 클림트, 루소, 쿠르베, 고갱, 사전트의 그림이
니체, 하이데거, 라캉의 철학을 만나다


우리는 통증을 무시하거나, 고통을 다른 즐거운 것들로 대신하며 잊어버리려 애쓴다. 그래도 불쑥불쑥 우울감이 찾아온다. 다른 이들의 삶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왜 이런가? 무엇이 나를 위로해 줄까?

라캉에 의하면 우리는 자신의 욕망에 온전히 다다를 수 없다. 그런 완전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다른 이들보다 가까이 갈 수는 있다. 사람은 태어난 후 타인의 욕망을 따름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사회의 일원이 된다. 타인의 욕망을 따르는 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나의 것으로 내면화시켜 따라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느 것이 타인의 욕망인지 어느 것이 고유한 나의 것인지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나의 온전한 욕망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할까? 일단 자아의 위치를 옮겨 나의 욕망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어떨까? 서는 위치가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고 하지않나. 다음은 타인의 이식된 욕망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져보는 것이다. 아주 단순화시킨다면 해야만 하는 것은 줄이고 하고 싶은 것을 늘이는 것만도 도움이 될 것이다. 타인은 지옥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지옥이다. 단독적인 삶이란 그 지옥에서 아주 조금씩이나마 빠져나오는 삶이다. 심우도를 떠올려보자. 어렵겠지만 소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아는 것부터가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미술과 철학을 연결하면서 열 명의 미술가와 세 명의 철학자를 소환한다. 삶과 철학이, 또 삶과 미술이 어떻게 이어지고 연결되고 있는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문체로 풀어보고 있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들어가는 말 … 7

죽음의 섬 아르놀트 뵈클린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하이데거의 현존재 11

슬픔에 찬 노인, 영원의 문에서 빈센트 반 고흐
존재의 허무를 채워주는 시간. 시간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삶 33

저승에서, 자화상 에드바르트 뭉크
하이데거의 불안, 존재의 진리로 통하는 비상구 56

나르키소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라캉의 상상계에 빠져버린 현대인 77

차르다시 댄서 에른스트 키르히너
철학이 주는 위안, 예술이 주는 해방 106

유디트 구스타프 클림트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거짓말쟁이, 이성은 고작 거짓말쟁이의 하수인인가? 135

잠자는 집시여인 앙리 루소
니체의 병듦과 회복의 내적 변증법, 위버멘쉬를 위하여 157

오르낭의 장례 귀스타브 쿠르베
니체여! 우리는 우리가 섬기는 이즘의, 자본의 신을 죽일 수 있을까? 180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폴 고갱
영원회귀라는 화두가 주는 무게 205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 존 싱어 사전트
낙타와 사자와 어린아이의 비유는 단순한 동화적 설정이 아니다. 229

마치는 말 … 251

저자 소개 (1명)

회원리뷰 (11건) 리뷰 총점9.7

혜택 및 유의사항?
파워문화리뷰 나는 왜 불안한가를 읽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산*람 | 2021.11.27 | 추천7 | 댓글0 리뷰제목
나는 왜 불안한가 주응식 인간사랑/2021/7.30 sanbaram   미술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 관점이 다를 수 있다. 그렇기에 같은 그림을 보면서도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 ‘그림을 감상하는 시각을 철학자의 눈으로 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그림을 감상해 보겠다는 것이 <나는 왜 불안한가>의 저자 생각이다. 그는 열 명의 미;
리뷰제목

나는 왜 불안한가

주응식

인간사랑/2021/7.30

sanbaram

 

미술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 관점이 다를 수 있다. 그렇기에 같은 그림을 보면서도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 ‘그림을 감상하는 시각을 철학자의 눈으로 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그림을 감상해 보겠다는 것이 나는 왜 불안한가의 저자 생각이다. 그는 열 명의 미술가인 뵈클린, 고흐, 뭉크, 카라바조, 키르히너, 클림트, 루소, 쿠르베, 고갱, 사전트 등의 그림을 세 명의 철학자 하이데거, 라캉, 니체의 시각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우리의 삶과 미술은 어떻게 연결되고 있으며 그 또한 어떤 철학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산부인과 전문의 시선으로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 주응식은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 산부인과 전문의로 울산에서 17년째 의원 운영 중으로 철학과 미술에 관한 공부를 좋아해 10년 정도 지역에서 공부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고흐는 우울과 망상에 시달리며 왕성한 창작욕으로 이 시기에 약 20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 예술가에게 우울 혹은 광기는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p.42)”고 말하는 저자는 그들이 고통에 시달리던 때에 그린 그림들을 보며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림을 볼 때는 감탄하면서도 예술가들에게는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고전적인 예술의 기능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이나 사물을 어떻게 잘 모방해서 그리는(재현하는)가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사물의 표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진리드러나게하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고 한다.

 

에로티시즘, 불안, 사랑, 슬픔 등의 강렬한 감정을 밀도 있게 표현한 그의 그림은 우리를 죽음과 삶의 갈림길로 인도하며, 그것을 통해 망망한 세계에 아무 이유 없이 던져져 불안에 가득 찬 실존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p.57)” 뭉크의 예술은 극적이고, 강렬하며, 역동적이다. ‘지옥에서의 자화상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그림의 배경은 주황과 검은색으로 두껍게 그려져 있어 인물을 집어삼키려는 듯 보인다. 옷을 벗은 남자는 우두커니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얼굴은 형태도 불분명하고 색은 배경과 비슷하게 어두운 톤으로 그려졌다. 지옥 앞에 선 인간은 그 이후를 짐작조차 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하이데거는 이런 비본래적 삶을 부정적으로 보고 철저히 걷어내어야 할 그러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또한 비본래적 삶에 빠져 불안감없이 사는 이들을 그들 속에 빠져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본래성이 옳고 비본래성이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비본래성에 지나치게 매몰된 삶은 불행하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오히려 불안을 인간이 본래적인 삶으로 진입하는 통로로 보았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하는 자각이 오는 그 순간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변곡점이 되는 인생의 중요한 지점이다. 그 지점을 무시하고 억압할 때 우리는 평생 돈 버는 기계로 살다 삶을 마칠 수 있다.

 

라캉은 거울에 비친 나의 이미지를 나로 받아들이는 것과 비슷하게, 이미지적인 것을 나와 동일시하여 나라고 믿는 그러한 것을 상상적인(이미지적인) 이라고 하며 이것이 인간의 자아의 형성에 핵심적이라고 말했다.(p.80)” 예를 들자면 엄마의 얼굴을 보고 엄마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하나의 몸이라 믿는다든가,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며 내가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사랑하는 이도 나를 사랑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라고 한다. 상징계는 상상계와는 다른, 세상의 언어적인 질서이다. 상상계가 그림이나 사진에 가깝다면, 상징계는 언어나 글에 해당한다. 언어를 통해 구축된 기존 질서를 내가 동일시함으로써 세상에서 다른 이들과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주체가 형성된다. 아마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경구 속에 담긴 사회화과정을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거의 비슷할 것 같다. 인간은 다양한 형태로 상징적인 질서를 배우고 따르며 깊게 내면화한다. 라캉의 상상계와 상징계는 인간의 창의와 주체를 구성하는 중요하고도 큰 두 축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먼저 상상적인 것(이미지적인 것, 태어나서 바로는 물론 엄마의 얼굴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과의 동일시를 통해 자아를 형성하고, 더 자라면서 법 혹은 세상의 질서, 규범을 총칭하는 상징적인 것을 내면으로 받아들여 주체를 형성한다. 물론 상징적인 질서가 인간의 기본적인 주체를 대부분 형성하지만, 이미지적인 상상계 역시 나라는 존재의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하게 된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도 마찬가지다. 3개의 창과 4개의 무리를 이룬 열두 제자와 각 제자의 손짓과 표정에 관해 이해하려면 신약성경을 모두 읽어보아야 한다. 르네상스의 회화는 이렇게 등장인물도 많고 인물들 각자의 스토리가 따로 있다. 이러한 길고 산만한 이야기들을 한 화면에 넣기 위하여 균형과 비례를 강조해서 그림에 안정감을 부여한다.(p.90)” 바로크양식의 그림은 주제가 되는 이야기 중 가장 강렬한 장면 하나만 골라 전면에 내보이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모두 생략해버린다. 바로크의 선구자인 카라바조의 그림의 배경은 어둡고 배경 속의 인물들은 어둡게 생략되어 처리됨으로써 주인공이 처한 극적인 순간을 더 생동감 있게 만들어준다. 이런 회화의 전통은 이후의 바로크 화가들에게 계속 이어진다. 즉 르네상스의 회화가 상징계에 조금 더 가깝다면 바로크 회화는 상상계에 조금 더 가깝다고 설명한다.

 

상징을 도상이라 하고 영어로는 아이콘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아이콘이라는 단어의 유래이다. 즉 백합은 순결의 아이콘이고 강아지는 충직의 아이콘이다. 이 그림에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말해주는 아이콘이 두 개 있다. 수레바퀴와 칼이다. 특히 수레바퀴가 여성과 함께 있는 그림을 본다면 - 타리나군!’이라고 큰소리로 이야기해도 괜찮다.(p.103)” 카타리나는 성녀이다. 그래서 라파엘로핀투리키오 등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카타리나는 온화하고 순결한 이미지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카라바조의 카타리나는 성인이라기보다 세상과 계속 전투중인 전사이다. 끝없는 전투 중 잠깐 수레바퀴 옆에서 몸을 숨기고 숨을 고르는 듯하면서, 곧 다음 전투에 가서 긴 칼을 휘두르며 세상의 편견과 억압에 맞서 싸움을 시작할 것 같은 눈빛으로 그녀는 편안히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무의식은 질서나 규범을 잘 따르지 않는다. 라캉에 의하면 무의식은 충족되지 못하는 충동 덩어리이다. 언어적인 법과 규범의 질서가 빈 곳을 대신 채워주고는 있지만,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러한 결여의 틈으로 욕망이 생성된다.(p.109)” 분명 욕망은 대상이 있지만 그 대상이 충족되더라도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또 다른 대상을 향한다. 즉 욕망은 대상을 손에 넣으려 하지만 그 어떤 대상도 욕망을 영원히 충족시킬 수 없다.

 

중세의 회화에는 세 가지가 없다고 한다. 화가의 이름이 없고 인물의 표정이 없으며, 원근법이 없다. 이 시기의 그림을 예술로 봐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이견이 있을 것이다. 벽화의 내용은 신을 찬양하는 내용이나 성서의 내용을 재현한 것들로서 교회 벽화를 만드는 이들은 아마 작가라기보다는 기능공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p.130)” 중세의 미술을 두 단어로 환원하면 평면성색채로 압축된다. 중세건축의 완결인 성당에 들어가 보라. 온통 금빛으로 뒤덮인 벽화 밑에서 색채의 위용에 압도되거나(비잔틴이나 로마네스크 건축양식) 혹은 스테인글라스을 통해 내려오는 빛에 둘러싸여(고딕건축양식)자신도 모르게 절대자를 향한 경언심이 가슴속 가득 차오름을 경험할 것이다.

 

존재를 한마디로 정의 내린다면 변화와 생성이다. 존재의 본질은 플라톤의 말처럼 이데아의 모사품도 아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특별한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의 교리처럼 신에 대해 창조되지도 않았고, 데카르트의 말처럼 사유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영국 경험주의 철학자인 버클리 주교의 말처럼 눈에 보이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는 존재도 아니며 헤겔의 말처럼 절대정신의 일부분이 물화된 것도 아니다. (p.213)”라고 저자는 말한다. 근대까지의 철학은 존재를 고정된 것으로 파악하며 존재의 어떤 변하지 않는 측면을 강조하며 정의했다. 그러나 세상 만물은 한순간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 몸의 세포 속에는 지금도 세상의 탄생과 몰락에 버금가는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에도 나의 사고는 책에서 읽은 내용과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계속 변하고 있다. 생성은 존재의 한 특징이나 속성이 아닌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기본으로 욕망의 존재이다. 욕망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서 긍정적인 큰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부정적인 흐름은 간혹 다른 이를 해치거나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신은 그런 불완전한 인간을 보충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p.227)” 그런 이유로 나는 신을 믿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니체는 신을 고발한다. 첫 번째 죽어야 할 신은 교회이고 성직자들이다. 두 번째로 그는 연민의 신도 고발한다. 세 번째로 그는 시기와 질투에 빠진, 유일신만을 인정하는 신을 고발한다. 마지막으로 니체가 고발하는 신은 고대 그리스 시기부터 서구의 지성을 이끌어오던 형이상학의 신이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신을 설정해두고 신의 목소리를 도용하여 인간의 긍정적인 욕망을 가로막거나 다양한 욕망의 흐름을 단일성으로 포획하려는 시도에는 반대한다. 직접적으로 신을 지칭하지 않지만 그러한 포획은 국가, 학교, 군대, 회사, 교회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도덕은 인간의 삶의 조건에 따라 조건 지어지고 변화하는 상대적인 것이며, 삶의 필요에 따라 요청되는 것이지 시공을 초월하는 초월적인 도덕을 내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p.237)” 이런 도덕에 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여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불합리하며 오히려 인간의 삶을 왜곡시키거나 퇴락시킬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가치를 기록해둔 서판은 민족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민족마다 스스로찾아낸 가치의 기록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선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그것의 가치를 영구적인 기준으로 만들어버리는 기존 전통 철학의 형이상학적 이분법’(예를 들어 천국과 지옥, 선인과 악인, 천사와 악마)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을 니체는 감행한다고 설명한다.

 

춤은 환각효과 때문에 가끔 통증을 잊게 하는 마취제의 역할도 하는데, 군에서 고공 점프 직전에 체조를 하거나 원시 부족들이 불 위를 걸을 때 집단으로 춤을 추는 것이 그러한 예이다.(p.247)” 음악과 춤이 예술의 장르에 속하는 것은 무의식에의 접근을 통해 우리에게 일상의 억압과 고통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춤은 경박하고 저급한 문화로 인식되기도 한다. 근대의 이성 중심의 사유는 의식이 사라진 상태의 해방감이나 카타르시스의 상태를 혼돈이나 질 낮은 쾌락으로 간주하여 배척하고 무시했다. 이러한 시각은 꽤 오랜 기간 서구의 지성을 지배했으며 물론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사전트엘 할레오는 회화적인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음악이 주는 해방감까지 뛰어난 솜씨로 관람자에게 전달한다. 공감각적 체험은 이런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사랑이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던져졌을 때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의식을 멀리 밀어놓는다.(p.252)” 라캉에 의하면 우리는 자신의 욕망에 온전히 다다를 수 없다. 그런 완전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다른 이들보다 가까이 갈 수는 있다. 사람은 태어난 후 타인의 욕망을 따름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사회의 일원이 된다. 타인의 욕망을 따르는 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나의 것으로 내면화시켜 따라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느 것이 타인의 욕망인지 어느 것이 고유한 나의 것인지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다. 타인은 지옥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지옥이다. 단독적인 삶이란 그 지옥에서 아주 조금씩이나마 빠져나오는 삶이다. 심우도를 떠올려보자. 어렵겠지만 소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아는 것부터가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p.253)”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나의 것이 아닌 욕망을 나의 것으로 오인하고 살아간다는 라캉의 생각처럼 우리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이 책에서는 철학적 시각으로 미술을 감상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이제부터라도 나를 중심으로 세계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데 이 책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사랑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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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나는 왜 불안한가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i**********a | 2021.08.16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세 평 진료실에서 철학 숲과 미술 정원을 산책하다      철학이나 미학에 관해서라면 어려울것 같다는 선입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철학자의 이론을 읽을때마다 생각할 거리를 잔뜩 안겨주고, 다소 생경한 학문적 용어나 이름에 거리를 두고 싶기 마련이다.  <나는 왜 불안한가> 이 책에서는 이러한 막연한 불편함이 없었다. 분명 미술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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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평 진료실에서 철학 숲과 미술 정원을 산책하다 

 

 

철학이나 미학에 관해서라면 어려울것 같다는 선입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철학자의 이론을 읽을때마다 생각할 거리를 잔뜩 안겨주고, 다소 생경한 학문적 용어나 이름에 거리를 두고 싶기 마련이다. 

<나는 왜 불안한가> 이 책에서는 이러한 막연한 불편함이 없었다. 분명 미술을 보면서 철학을 언급하는데, 오히려 작품을 이해하는데 깊이와 도움을 준다. 이런 식의 미술읽기와 혹은 철학읽기를 공부해 나간다면 분명 눈에 띄는 성취가 있을 것이라 기대되었다. 

때로 저자가 임상에서 만났던 환자들의 이야기를 거론하거나 예를 들어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부분들도 무척 흥미로웠다. 탁상공론이 아닌 현실에서 살아있는 적용을 목격하는 순간인 것처럼. 

 


 

미술과 철학을 연결해 보고 싶어서 열 명의 미술가와 세명의 철학자를 소환했다고 소개하는 책. 우리의 삶과 미술, 그리고 우리의 삶과 철학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문체로 풀어보고 싶었다는 저자의 겸손한 의도에 눈길이 먼저 갔다. 

그래서 이 책에서 돋보이는 업적을 꼽자면, 저자가 추구한 의도처럼 어렵거나 관념적이지 않으면서 깊이와 재미의 두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생각된다. 

현재 산부인과 전문의로 의원을 운영하고 있고, 단지 미술과 철학에 대한 공부를 좋아한다는 작가의 소개를 보니 그저 또 한 번 그의 학문적 소양에 놀라고 만다. 

 


 

 

 

아르놀트 뵈클린 (1827-1901)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하이데거의 현존재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실존에 대한 세 가지 물음 중 '죽음'에 관해 진지하게 묻는 화가가 있다. 뵈클린은 '죽음의 화가'로 불렸을 만큼 죽음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19세기말 유행했던 상징주의는 어두운 현실을 현실에서의 이탈이나 관념으로의 회귀로 회복해보려는 정신적 태도의 산물이다. 상징주의의 주제는 주로 죽음, 환각, 판타지, 에로티시즘이다. 

철학자들 중에서 죽음이라는 주제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이는 독일의 '마르틴 하이데거'일 것이다.  

그는 실존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죽음 앞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결정해서 선택하고, '존재 가능성'을 실현하면서 존재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대개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삶을 살기보다는 타인에 의해 정해진 '존재 가능'에 맞추어 살아가게 되고 그런 세계속에서 안주하며 안락함을 느낀다. 그러하기 때문에 결국 인간은 '죽음'이라는 것을 통과해야만 '자신의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찾을 수 있고 '본래적인 삶'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요즘과 같이 죽음의 그림자는 보기 힘든 긍정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우울증 환자나 자살자가 오히려 넘쳐나는 것은 아니러니하다. 이런 현상은 인간은 깊은 내면으로 내려가는 기회를 박탈당해 긍정의 피로에 지쳐 우을감이 찾아 오는 것이라 진단하고 있다. 회복하기 위해서는 병이 필요한 것이듯, 인간에게 긍정성 못지않게 필요한 것이 부정성이고, 이 둘의 존재는 인간의 삶의 균형을 위해 필요하다

 

인문학과 철학을 자주 들여다봐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욕망의 방향을 바람직한 곳으로 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p32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존재의 허무를 채워주는 시간, 시간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삶

고흐는 우울과 망상에 시달렸던 시기에 왕성한 창작력으로 약2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고흐에게 우울과 광기는 창작의 동력으로 작용한 듯하다. 그의 고통의 산물을 보고 우리가 감동을 느끼는 것은 조금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하이데거의 존재만 들여다 본다면 인간의 삶은 허무하고 회의론적이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개념때문에 세계의 모든 존재자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고,시간 앞에서 영원하거나 불변할 수 없다. 죽음. 바로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다.

우울에 빠진 이들은 내부의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 시간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하이데거가 말한 시간성을 거세 당한 듯이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그저 시간이 중단되길 원한다. 


 

 


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

하이데거의 불안, 존재의 진리로 통하는 비상구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 뭉크. 불안, 사랑, 공포, 슬픔 등의 강렬한 감정을 그 누구보다 밀도있고 극적이며 역동적으로 표현하였다.  

 

임상에서 만난 환자의 이제껏 살아온 삶이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억누르고 타인의 욕망에 의해 살아 왔다고 후회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왜 이렇게 사는 거지?'와 같은 물음을 하이데거에게는 '불안'으로 표현되었다. 

우리는 '불안을 통해 '세상에 묶여 느긋하지만, 타성적으로 살아가는 나'와 '세상의 법칙에서 벗어난 고유한 나'를 발견하는 '현존재(인간)의 구조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일상적인 인간은 '퇴락'적 삶을 살고 있건만, '불안'은 일상적 삶에서 '본래적' 자기를 회복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렇게 '불안'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왜 살고 있는거지?'라고 질문하는 그 순간이 나의 존재에 너무나도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이다. p63

 

저자는 환자인 그녀에게 자신과 마주칠 수 있는 시간을 권하였다. 스스로의 내면을 자주 들여다보고 자신의 허무나 욕망과도 가깝게 지내라고 말했다고 한다. 불편한 나의 내면의 허무와 욕망을 마주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안은 온전한 나의 내면으로 가는 통로가 열리는 때이기 때문이다. 불안을 정면으로 맞닥뜨린 뭉크의 자화상의 시선이 보여주는 가르침도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불안을 느낄때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그 지점이 새로운 사유가 생겨나는 출발점이기도 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의 시간이기도 하다. 불안마저 우리의 존재 방식 중의 하나라고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사랑해주는 자세. 우리가 용기를 가지고 시도해 봐야할 방법이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

라캉의 상상계에 빠져버린 현대인

나르키소스를 그린 바로크 미술의 선구자 카라바조의 그림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은 라캉의 이론이다. 

라캉의 상상계와 상징계는 인간의 자아와 주체를 구성하는 중요하고도 큰 두 축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먼저 상상적인 것과의 동일시를 통해 자아를 형성하고, 더 자라면서 법, 질서, 규범등을 총칭하는 상징적인 것을 내면으로 받아들여 주체를 형성한다. 

라캉에 의하면 인간이 성장하여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적절한 진입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나르키소스는 상상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장이 멈추어버린 존재이다. 자기에는 우리에게 자좀감을 부여해주는 토대이지만, 지나친 자기애와 이미지들에 도취된다면 정신의 성장을 방해할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상상계보다는 상징계적 질서를 더 중요한 과정으로 이해한다. 


 

 

 

에른스트 키르히너(1880-1938)

철학이 주는 위안, 예술이 주는 해방

키르히너는 20세기 초반 독일에서 활동했던 표현주의 화가이다. 1905년 드레스덴에서 브리케(다리파)라는 그룹을 결성하는데 그들은 대상의 형태를 단순하게 변형시키고 원초적인 색채를 사용하여 대상의 내면에 있는 감정이나 고통을 그리고자 했다. 

'다리파'라는 이름은 니체의 '위대한 인간은 스스로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위버멘쉬와 짐승을 잇는 다리같은 존재이다'라는 글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전통과 미래를 이어 진보한 예술을 창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스스로가 키르히너의 그림을 보고 위안을 받았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의 그림은 뜨거운 초기의 그림이든, 차가운 후기의 그림이든 불안한 우리를 그 불안에서 해방시킨다.p115 


 

 

 

구스타프 클림트(1862- 1918)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거짓말쟁이, 이성은 고작 거짓말쟁이의 하수인인가?

1900년 전후의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프로이트의 등장으로 그의 무의식의 이론에 의해 문화 음악, 미술등이 급격하고도 혁명적인 전화점을 이루었다. 클림트 역시 프로이트의 이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란 의식으로 나타낼 수 없는 욕망이나 충동의 저장소 같은 곳이며, 의식이 접근하지 못하는 곳에서 의식을 조종하는데 무의식이 인간의 본질에 가깝다고 했다. 프로이트 이후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인간의식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무의식의 실체에 관해 연구했다고 한다. 

당대의 질서와 규범을 철저히 거부하고 자신의 욕망에 따라 자신만의 언어로 예술세계를 창조한 클림트는 작품 안에서 욕망과 충동, 성과 죽음을 과감하게 표현했다.


 

 

 

앙리 루소(1844-1910)

니체의 병듦과 회복의 내적 변증법, 위버멘쉬를 위하여

40대 후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고군분투하여 전업화가가 된 앙리 루소는 이국적이고 낯선 화풍의 독창적인 그림을 그렸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기존 철학의 체계를 전복시키고, 인간을 신으로부터, 또 인간이 섬기는 다른 모든 주인으로부터 해방하려 했다. 인간의 감정과 열정을 이성과 합리에서 벗어나게 하고고, 생의 원시성을 과학과 이성에서 탈출시키려했다. 

니체의 '위버멘쉬(초인)'는 세상의 가치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창조한 이, 자유정신의 소유자로 제시하는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묵묵히 하거나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이해하고 따르는 이들일 것이다.  

니체에게 두통마저 병듦과 회복을 반복함으로써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갈 수 있는 일종의 통과의례였고, 몰락은 인간이 더 나은 상태로 발돋움하기 위한 과정으로 여겼다

 

실존주의라 부르는 철학자들의 공통점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가치만을 따르는 삶을 경계한다는 점에 있다. 하이데거의 '세계', 라캉의 '상징계', 니체의 권력 혹은 무리들이라고 표현되는 것들이 개인의 외부적인 곳에 존재하며 개인의 삶을 규정하는 구조들인데, 모두 그 구조에 비판없이 편입되는 삶을 비판한다.p159

철학과 예술은 그렇게 삶의 근본을 어루만지며 생의 상처 역시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도려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병듦과 회복, 고통과 치유, 니체의 사유 안에서 철학과 예술은 하나처럼 보였다. p179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

니체여! 우리는 우리가 섬기는 이즘의, 자본의 신을 죽일 수 있을까?

쿠르베는 역사의 영웅들이나 신화나 성서의 내용르 그리지 않고,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을 그렸던 사실주의의 대표 화가이다.

니체가 권위와 복종의 신을 인간의 사유에서 지웠다면 쿠르베는 신과 그 대리자 역할을 했던 인물들을 캔버스에서 지웠다. 니체가 삶의 단독자로서의 인간을 실존으로 내세웠다면 크르베는 모든 인간의 순간순간을 화면의 중앙에 내세웠다. p193

 

신의 죽음을 선언했던 니체가 볼 때, 현대인들은 또 다른 신을 섬기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즘의 신'과 '자본의 신'. 현대인에게 돈은 우리가 모시는 최고의 신일지도 모르겠다.

인간 스스로의 의지로, 스스로를 단련시키며, 스스로 인간의 격과 위엄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신의 행세를 하며 우리의 삶을 왜곡하는 것은 진정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인간다운 삶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말한다. 


 

 

 

폴 고갱(1848-1903)

영원회귀라는 화두가 주는 무게

후기 인상파의 대표 화가인 고갱의 유명한 작품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는 존재 근원의 질문을 던지듯이 깊고 묵직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림 자체가 철학적인 물음을 가득 던지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고갱은 내면의 강인함으로 현실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켰고 순수성과 원시성을 작품에 그려넣으며 예술가로서의 힘을 되찾았다.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삶에 대한 태도나 자세일지도 모른다.삶의 고통이나 괴로움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위치에서 다른 시선으로 그것을 마주할 때 변화하고 회복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존 싱어 사전트(1856-1925)

낙타와 사자와 어린아이의 비유는 단순한 동화적 설정이 아니다

어린아이를 존재의 가장 높은 곳에 둔 철학자가 니체이다. 위버멘쉬를 설명하며 인간 정신의 3가지 단계의 변화를 낙타,사자,어린이로 비유한다. 

낙타는 주인의 도덕과 가치를 비판없이 받아들이고 복종하는 단계, 사자는 도덕과 가치를 행하는 규범을 스스로 선택하고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단계, 어린아이는 어딘가에 구속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모습을 통해 삶을 이끌어 나가는 존재이다. 

 

사전트가 그린 천진난만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어린아이들의 그림에서 니체의 비유를 떠오르는 것도 그럴만하다. 낙타와 사자, 어린아이 중 우리 내면에서 어떤 존재를 깨워낼 것인가는 우리 선택의 몫이다. 규칙을 지키는자, 규칙을 만드는자, 규칙에 초연한 자중에서 무엇을 선택하여 길러낼 것일까.


 

 

 

인문학과 철학의 중요성이 더욱 대두되는 요즘이다. 마치 유행이나 트렌드처럼 곳곳에서 관련된 서적들이나 관심들이 보인다. 왜 이제와서 또 인문학이고 철학일까? 아마도 시대가 요구하기 때문일 테지만, 근본적인 답이 그곳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불안하고 아프다.

살아가면서 고통이나 아픔을 겪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면, 그곳에 예외가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육체적이거나 혹은 감정적이거나 이 아픔은 치유되어야 한다. 미술과 철학을 통해 그 방법을 알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방법을 알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림을 보면서 사유하는 놀이처럼 이 책을 읽어 나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나에겐 그랬다. 그리고 이것이 미술을 알고 보는, 더 깊이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도 안다. 그리고 나의 내면에도 한 가지 생각이 인다. 나도 그저 해야만 하는 것을 줄이고 하고 싶은 것을 늘려보는 것에 용기를 내보면 어떨까? 하는.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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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불안한가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v***a | 2021.08.12 | 추천2 | 댓글1 리뷰제목
  나는 불안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다. 나의 예민함? 남들보다는 조금 더 예민한 나의 성격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많이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 성격탓에 남들과 조금 다른 길을 걸어야 하기도 했는데 이런 사정들이 또 나의 불안감을 키우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이런 제목의 책들은 매번 나를 궁금하게 하고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
리뷰제목

 

나는 불안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다. 나의 예민함? 남들보다는 조금 더 예민한 나의 성격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많이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 성격탓에 남들과 조금 다른 길을 걸어야 하기도 했는데 이런 사정들이 또 나의 불안감을 키우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이런 제목의 책들은 매번 나를 궁금하게 하고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을 주기도 한다. 이 책은 작은 의원을 운영하는 산부인과 의사인 저자가 열 명의 미술가와 세 명의 철학자를 통해 미술과 철학을 연결하여 그런 불안에 대하여 일반인의 문체로 풀어낸 책이다. 의사인 저자가 미술과 철학에도 관심이 많아 보여 흥미로웠다. 

 

저자는 미술과 철학을 연결해 보고 싶었다며 우리의 삶과 철학은, 또 우리의 삶과 미술은 어떻게 이어지고 연결되고 있는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문제로 풀어보고 싶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저자의 의도를 달성하지 않았나 싶다. 나에게 철학과 미술은 사실 가깝지만 멀고 어려운 그런 것이다. 남들보다 더 자주 전시회를 찾고 미술관을 찾지만 전혀 이론적으로 아는 바도 없고, 철학이 궁금해 대학생 시절 철학과를 복수전공하려하였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중도에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던 그런 나에게 말이다.

 

특히나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건 일반인들도 충분히 알 법한 미술가들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고흐, 미켈란젤로, 클림트, 루소, 고갱, 뭉크 등의 미술가. 그리고 그 내용은 잘 알지 못할지라도 누구나 들어봤을 프로이트, 니체, 라캉... 그리고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게 고흐와 고갱의 에피소드, 뭉크의 어린시절과 사랑, 뵈클린이 죽음의 화가로 불릴만큼 죽음에 대해 많이 그려냈는데 그에게 12명의 아이가 있었는데 그중 6명이 어릴 때 목숨을 잃었다는 그런 개인적인 사정까지. 또 <버킷리스트>, <메이즈러너>와 같은 영화들을 예로 들며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니체의 "위버멘쉬". 초인, 좀 더 높은 인간, 좀 더 강한 인간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타인이 던져준 삶의 의무를 따라 살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닌, 적극적인 창조의 길을 걷기 위한 존재라는 점. 인간은 '그랬었지.'라는 과거형의 체념 언어를 쓰는, 수동적으로 인생을 생각하는 존재가 아닌, '나는 그러하기를 원한다.'의 미래형의 언어를 쓰는, 적극적인 의지의 삶으로 자신을 변형시키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 -P.161- 마음에 가장 와닿는 구절이라 꼭 머릿속에 기억하고 싶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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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4건) 한줄평 총점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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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4점
흥미로운 책, 일반인 시점에서 그림과 철학을 볼 수 있게 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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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 2021.08.04
구매 평점5점
일반인이 쉽게 이해되게 설명한 철학 인문서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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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 | 2021.07.23
구매 평점5점
회화와 철학이 씨줄과 날줄로 형상화한듯하여 초보자도 쉽게 이해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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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 | 202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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