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시작하면서, 사무실 임대와 명함 제작에 정신 쏟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나름의 이유도 있을 테지만, 말리고 싶다. 무슨 일이든 시작은 작고 초라하기 마련이다. 하나씩 키워나가는 맛이 성취감을 품게 하고, 더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럴듯한 사무실과 명함은 자리를 잡은 후에 만들어도 늦지 않다.
글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마음 같아서는 처음부터 해리포터를 쓰고 싶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자신의 수준에서 정성껏 글을 쓰겠다는 자세다. 연습과 노력은 게을리 하면서도 입만 뗐다 하면 베스트셀러 노래를 부르는 이가 적지 않다. 팔리는 책을 쓰는 것도 좋겠지만, 팔리는 책에 대해 부끄러움 없도록 충분한 연습과 공을 들이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 않겠는가.
한 평짜리 책을 내고, 세 평짜리 책을 출간하고, 그러고 나서 여덟 평짜리 책을 쓰는 것. 욕심 부리지 않아도 물 흐르듯 때와 기회가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무실에 출근했다. 현관문을 열자 가지런히 놓인 책상과 모니터와 책장이 나를 반긴다. 밤새 기온이 뚝 떨어졌지만, 사무실 온기는 여전했다. 걸레에 물을 적셔 바닥과 책상을 닦는다. 물을 끓여 커피를 타고 창문 앞에 선다. 1월의 바람이 심장까지 닿는다. 겨울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팔을 뻗어 빗물을 만지고 싶다.
모진 세월 잘도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삶을 통째로 잃으며 배우고 깨달은 인생살이 진실을, 죽는 날까지 잊지 않으리라. 작은 일에 감사하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무릎 꿇지 않는다. 나, 여덟 평짜리 사무실 가진 남자야!
--- p.24~25
당신 몸이 아파서 병원을 찾았으면서도 시종일관 자식을 염려하는 말만 하신다. 그 마음 잘 알기에 내 마음이 편치 않다.
“서울에 있는 네 누나도 형편이 여의치 않은가 보더라. 힘들 거다. 세상살이가 참 만만치 않다. 네 매형이 어떻게든 잘 풀어갈 거야.”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부모가 된다 했던가. 병원 대기실에 앉아 ‘환자’가 ‘보호자’ 걱정을 하고 있다. 여든을 넘기셨다. 하지 말라고 해도 하실 테고, 하라고 해도 하지 않으실 터다. 80년 인생 살아온 생각과 말과 행동이 쉽게 바뀔 리 없다.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
기로 했다. 아버지는 매일 등산을 하신다. 아버지는 공원에 나가 바둑을 두신다. 아버지는 마을 순찰 도우미로 활동하신다. 아버지는 친구를 좋아하고, 아버지는 정리와 청소에 서툴고, 아버지는 자존심이 센 분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식 걱정에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분이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태산처럼 여기고 기대며 살아왔다.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 이제는 아버지 어깨를 가볍게 해드려야 하는 나이인데도, 여전히 심려를 끼쳐드리고 있다. 하나도 바쁘지 않은데, 오늘은 급한 일이 전혀 없는데, 나는 아버지께 하나도 바쁘지 않다는 말씀을 끝내 드리지 않았다.
--- p.113
뱃살을 빼기 위해 헬스클럽에 다닌 적 있다. 첫날, 트레이너의 조언과 도움으로 다리 운동부터 시작했다. 40분 근육 운동을 하고, 30분 러닝머신을 뛰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데 허벅지가 뻐근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온몸이 아팠다. 트럭에 부딪친 것 같았다. 억지로 몸을 움직여 헬스클럽에 다시 갔다. 트레이너는 원래 그런 거라며 며칠 운동하면 나아질 거라고 별것 아닌 듯 말했다. 이틀째에는 팔과 어깨 운동을 했다. 다리 운동을 마쳤을 때에는 다리를 못 쓸 것 같았고, 팔과 어깨 운동을 마치고 나니 팔과 어깨를 못 쓸 것 같았다. 이러다가 아예 쓰러지는 건 아닌지. 뱃살 빼려고 헬스클럽 갔는데, 몸은 점점 마비가 되는 듯했다.
일주일쯤 운동을 계속하자 훨씬 부드러워졌다. 다리와 팔에 근육이 조금씩 붙는 듯했다. 트레이너에게 자신감 넘치는 말을 건넸다. 이제 해볼 만합니다!
“저기, 이은대 회원님. 제가 몸 만들려고 7년 운동했습니다. 아직도 기구를 들고 나면 몸이 뻐근해요. 고작 일주일 운동하셨는데요. 아직은 근육 붙지 않습니다. 먼저 근육이 손실되고, 다시 회복되는 과정에서 단백질 보충하면 서서히 근육이 불어날 겁니다. 마음 여유를 갖고 운동하셔야 합니다.”
책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내가 늘 수강생들한테 했던 말을 트레이너로부터 듣게 되었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나는 왜 이렇게 조급한 것일까. 무슨 일이든 시간이 걸린다. 어떤 일이든 훈련과 반복이 필요하다. 꾸준함이야말로 성과의 핵심인 것을.
--- p.129~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