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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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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 김별아, 공감과 치유의 산행 에세이

김별아 | 해냄 | 2012년 05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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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90g | 153*224*20mm
ISBN13 9788965743422
ISBN10 896574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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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의 1차 산행을 지리산에서 시작했다면 우리는 내내 지리산에 붙매여 다른 산들이 갖는 각각의 아름다움과 흥취, 고통과 시련의 의미를 헤아려 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작은 산들을 오르내린 경험이 모이고 쌓여서야 비로소 ‘큰 산’ 앞에 주눅 들거나 경망해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윤기가 반드르르한 검은빛 깃털을 자랑하는 오동통한 지리산 까마귀들이 홰쳐 오를 때 마음속으로 영혼들의 이름을 부를 여유를 갖고, 스키니 팬츠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채 ‘관광’하러 오는 것으로도 모자라 케이블카를 타고 ‘정복’하겠노라는 오만방자한 도발에 분노하는 건 우리가 지리산을 닮은 숱한 산들을 넘어왔기 때문이다.

지리산은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 만드는 곳이라고 한다. 지혜롭기 위해서는 우선 어리석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나는, ‘큰 산’ 앞에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리하여 시인은 단호히, 그리고 간곡하게 말한다.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고. 어리석음과, 그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그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꾹 눌러 참는 어리석음을 그럭저럭 이러구러 견딜 만하다면. ---「언제나 첫 마음」 중에서

어느 지점에서는 1시간에 3.7킬로미터까지 걸을 만큼 평탄한 구간이었다. 다행이 일기예보가 어긋나 주어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또한 따뜻했던 지난주 날씨 덕택에 무릎까지 쌓였던 눈도 다 녹아 있었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산행은 힘들었다. 25킬로미터라는 거리를 하루에 주파한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발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무릎이 후들거렸다. 스틱을 잡은 팔에 힘이 빠지고 종내는 머리마저 멍해졌다.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고, 말 그대로 산 너머 산이었다. 너무 힘들면 대화도 끊긴다. 바로 대여섯 발자국 앞에 누군가 가고 있지만 따라가 말을 건넬 기운이 없다. 그저 침묵 속에 오롯이, 고독 속에 가만히 침잠한 채 바람처럼 스쳐가는 상념들을 좇을 뿐이다.---「산 너머 산, 삶 너머 삶」 중에서

산행이 30차를 넘어가면서 내가 얼마나 변했는가는 나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초반의 산행은 오로지 내가 자아내고 지어낸 숱한 물음으로 번잡했다. 산에게 삶을 묻고 삶에게 산을 묻느라 나는 공연히 수다스럽고 경망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산에서 진정한 마음의 자유를 찾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낮추고 때로 침묵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입을 다물면 된다. 값없는 질문과 덧없는 답변을 버리기만 하면 된다. 입을 다문 채 가만히 나무를 바라보고 조용히 구름을 쳐다본다. 길을 떠나기 전에 품었던 세 가지 의문은 길을 걷는 동안 저절로 풀렸다. 두타-청옥은 겁을 집어먹고 꺼릴 만큼 엄청난 ‘무릎 타격 구간’은 아니었다. 돌사닥다리와 너덜이 많지만 무릎보호대를 단단히 조이고 내리막에서 스틱을 활용해 걸으니 어지간히 견딜 만했다. 가파른 기울기와 낭떠러지가 만만찮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림 속의 뾰족뾰족한 바늘산 같은 건 없었다. ---「버리고 비워야 얻는 반짝임」 중에서

진정한, 건강한, 지속 가능한 소통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서부터 시작된다. 나 자신에게 비굴하거나 오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마냥 아끼고 사랑하기……는 솔직히 말해 아직도 어렵고 힘겹다. 부족하고 어리석고 실수투성이인 나를 끊임없이 질책하고 멸시하고 비난했던 이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으므로. 그래서 나는 산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지르밟으며 누구나 부족할 수 있다고, 인간이니까 어리석을 수밖에 없다고, 고의가 아닌 실수는 용서받을 수 있다고 되뇐다. 구름이 내 어깨를 다독인다. 바람이 내 손등을 쓸어준다. 산이 나를 이끌어 품어준다. 대단히 멋있고 훌륭하진 않지만 반성과 성찰을 할 줄 알기에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인 나와 가만히 눈을 맞춰본다. 나와 나의 소통이, 깊은 눈맞춤이 이루어지는 순간 비로소 세상과도 똑바로 마주볼 수 있을 것이다.
---「깊은 눈맞춤이 이루어지는 순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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