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08월 10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40쪽 | 292g | 120*195*20mm |
ISBN13 | 9791160262360 |
ISBN10 | 1160262365 |
발행일 | 2021년 08월 10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40쪽 | 292g | 120*195*20mm |
ISBN13 | 9791160262360 |
ISBN10 | 1160262365 |
들어가며 6 1부 나는 그저 가만히 있어, 담배도 피우지 않고 이렇게 여성시라는 장르 규칙1 10 여성시라는 장르 규칙2 18 기억의 간헐 작용 25 나는 그저 가만히 있어, 담배도 피우지 않고 이렇게 32 우리처럼 그들도 43 병에 대한 불안감 47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50 대체될 수 없는 사람 59 하지 않는 쪽으로 62 2부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 66 알지 못했던 세계에서―나의 1990년대 77 성난 얼굴을 돌아보기―‘여성혐오’에 대하여 85 2019년 여름, 소비의 기억으로부터 94 제1세계에서 본 것, 느낀 것 104 ‘끝없는 게임’의 ‘시작’: 『비바, 제인』 113 나를 실망시킬 때 내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반박하는 여자들』 117 더없이 투명한 가면 쓰기: 「체향초」 123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누베르, 남자와 여자: 〈히로시마 내 사랑〉136 3부 선생님은 작가시죠, 아마도? 토끼 인형처럼 무력했던 우리들은 그러나 148 거울 너머의 사람을 바라보는 장면 163 필드워크의 스승 175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소설의 인물에 대하여 178 자꾸 실패한다는 사실이 유용해지는 까닭에 대하여 188 최후의 심판대에서 맑다는 것 195 선생님은 작가시죠, 아마도? 207 나의 오랜 친구 민정이―최은영 219 나가며 231 |
살고 있음에도 사는 문제를 걱정하는 것이 인간의 일이라면, 쓰고 있음에도 쓰는 문제를 걱정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 아닌가 싶다. 소설가 박민정의 산문집 <잊지 않음>을 읽으며,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쓰고, 쓰는 문제를 걱정하면서도, 더 잘 쓰지 못함을, 더 제대로 쓰지 못함을 괴로워하는 작가의 모습을 여실히 보았다.
이 책에 드러나는 박민정의 모습은, 그야말로 소설가가 되기 위해 태어나고, 소설가가 되는 것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 같다. 그도 그럴 게, 박민정은 아주 어릴 때부터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소설을 썼으며, 대학에선 문예 창작을 전공했고, 모두가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 그는 등단을 준비했다. 그리하여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으나, 정식으로 소설가가 된 후에 체감한 '소설 쓰기의 무게'는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무거워서, 오랫동안 고통받고 상처 입은 듯 보인다.
그로 하여금 소설 쓰기를 어렵게 한 요인 중 하나는, 그가 소설가이기 이전에 여성이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 문단은 한국 사회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남성이 권력을 차지하고 남성이 여론을 주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여성인 그의 글은 오독되고 오해받기 일쑤였다. 그가 직접 경험한 일에 관해 쓰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신경증 환자의 헛소리 취급했고, 그가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문제의식을 느낀 일에 관해 쓰면 "네가 그 일에 관해 아냐!"라는 질책 어린 일갈이 돌아왔다. 그는 "허구를 만드는 테크니션"일 뿐인데, 사람들은 그가 만든 허구를 보지 않고 그(가 여성이라는 사실)만 보았다.
그토록 그를 괴롭게 하는 소설을, 계속해서 쓰는 이유는 뭘까. 평생 쓰는 일만을 꿈꾸었고 쓰는 법밖에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의 눈에 담기는 장면들과 그의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들이 그로 하여금 계속해서 글을 쓰게 추동하는 것 같다. 어릴 적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창밖으로 보았던 집창촌의 풍경이라든가, 딸이라는 이유로 해외에 입양된 사촌 언니들에 대한 생각이라든가. 그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해, 오늘도 책상 앞에서 고뇌하고 있을 그의 모습이 선연하다. 부디 계속 감각하고, 감각한 것에 대해 써주기를 바라본다.
분량만 놓고 보면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속도가 나지 않았다. 첫 글에서 박서원 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솔직히 아주 낯선 시인이다. 덕분에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몇 가지 정보도 얻고, 시인의 얼굴이 나온 책 표지도 볼 수 있었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얼굴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시집에 외모를 내세우면 눈길을 잘 주지 않는다. 어쩌면 집 안 책장을 뒤지면 박서원 시인의 책 한 권 정도 나올지 모르지만 자신할 수 없다. 나의 수집은 언제나 편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서원 시전집>에 자꾸 눈길이 갔다. 두툼한 분량을 생각하면 다 읽을 자신이 없는데 괜한 수집욕이 생긴다.
무심코 내뱉은 말 한 마디가 남성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다. 자주 마눌님의 타박을 받는다. 이 산문집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완전히 고친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내 머릿속을 점령한 작가에 대한 인식을 다시 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민정 작가는 문창과를 나온 후 등단했는데 글쓰기 외에 다른 경험이 없다고 말한다. 글쓰기 경험을 얻기 위해 한 행동에 대한 반성은 읽으면서 그래도 그 지점까지 가지 않았냐고 말해주고 싶다.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면 삶의 방향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동의한다. 이 솔직함이 좋다.
해외 입양에 대한 글은 놀랍다. 사촌 언니들이 해외 입양되어 떠난 후 다시 한국에 돌아와 보여준 감정의 편린들은 냉정하고, 현실적이고, 아련하다. 작가가 읽고 본 소설이나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적은 글들은 호기심을 불러오고, 그 깊이나 다른 해석에 고개를 끄덕인다. 개인의 기억과 사회의 역사를 혼동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 분석들은 날카롭고 나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게 한다. 그녀가 여성이었기에 겪어야 했던 혐오와 여성 착취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우리 사회의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일상 속에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은 지 알게 된다. 쉽게 빠르게 읽기에는 담고 있는 이야기가 무겁다.
아직 박민정 작가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기에 작품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다. 출간된 목록을 찾아보니 <멜랑콜리 해피엔딩>에서 한 번 읽은 적 있는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쓴 서평에도 박민정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말했듯이 나의 한국 소설가에 대한 시간은 너무 더디게 나아간다. 모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소설에서 작가의 동생과 인터뷰한 내용이 나오는데 생활인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작가나 모델이나 불러주지 않으면 생계가 힘들다. 그리고 예상 외의 인물이 쓴 글이 하나 나온다. 최은영 작가다. 역시 사 놓고 몇 년 동안 묵혀 두고 있지만 박민정 작가보다는 개인적으로 인지도가 더 높다. 이들의 인연을 풀어낸 소소한 글은 삶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안에 이 두 작가 중 한 명의 소설은 읽고 싶은데 과연 어떨지.
1980년대 사촌언니들의 해외입양
1990년대 성폭행, 강간,면도칼로 찢긴 흔적의 고모 가방
2000년대 유니텔 pc통신 안에서 이대생(여성 고유명사) 군대 보내자,
된장녀 혐오
/ 강제 징용 피해자의 외손녀
나는 80년대를 살아본적은 없었지만 유튜브로 본 80년대는
경제성장이 높아지고, 88올림픽 정도였다.
90년대, 2000년대에도 어렸을 적이라 사회에 관심이 없고, 몰랐다.
그런데 이책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지나쳤을 시기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에 들어서 엄마와 얘기하던 중 기형아일수도 있다고 했던 아이가
지금 생각해보니 여자아이여서 낙태를 권유한게 아닐까 싶다는 생각도 하셨다고 한다.
여성들의 이야기에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 잊지 않아야겠다.
---
61쪽 결국 상대는 나에게 대체 가능한 존재인데 나는 상대에게 유일해야 한다는 건 이기적인 욕망일 뿐이다. 그러므로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이다.
101쪽 신토불이 따위 주장하지 않아도 국내에는 일본제만큼 좋은 물건이 많았다. 내가 오랫동안 써온 일본제를 대체할 만한 소비재가 생각보다 너무나 많았다는 것이다.
109쪽 언어는 결국 그것을 사용하는 사회의 재현이어서, 타국의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의 일부가 되고 싶은 욕망에 다름없는 것이다.
121쪽 어떤 여자애게는 "왜 거절하지 않았어? 너도 좋았어?" 라는 가치 없는 질문이 꽂히고, 어떤 여자에게는 "왜 아이를 낳으려고 하지 않아?"라는 질문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회에서 비수로 와닿는다.
196쪽 상황은 다양했을지 몰라도 주로 피해자는 청년 여성, 가해자는 중년 남성이었다. 이러한 구도는 피해자가 무력이 부족하며 계산이 빠르지 못한 '여성'이며 가해자는 악락하고 힘세며 이기적인 '남성'임을 동시에 의미한다. 해를 가한 쪽은 아버지거나 나이 많은 애인이거나 권위를 가진 선생이거나 길에서 만난 위협적인 남성이다. 굳이 그가 힘이 세거나 나이가 많거나 피해자를 위협하는 권력을 갖고 있다고 묘사하지 않아도 이미 '남성'이다.
203쪽 이것은 이야기일뿐이며, 화자와 작가를 분리하는 것이 소설 장르의 기본 전제라는 것은 중학생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진짜 현실속에서 여성작가는 여성 시민으로서, 즉 열등 시민으로서 겪어던 곤경만큼이나 이중의 부담을 안고 있다.
204쪽 더이상 여성작가로서 쓸데없이 가져야 하는 압박과 죄책감으로부터는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다. 나는 어쨌거나 이야기의 힘과 매혹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