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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

리뷰 총점9.4 리뷰 18건 | 판매지수 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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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1년 07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432g | 145*215*17mm
ISBN13 9791191438109
ISBN10 1191438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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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MD 한마디

우리가 아는 조선 후기는 장자 상속을 원칙으로 하는 가부장제 사회였다. 여성과 남자, 내외 구분이 엄격했다. 집안일도 주로 여성의 몫이었을 듯하다. 그런데 사실일까? 이 책은 조선 사람이 남긴 일기와 편지를 바탕으로, 살림하지 않는 조선 남자란 편견임을 입증해낸다. 조선 남자는 『허생전』에 등장하는 양반처럼 책만 읽지 않았다. 다양한 형태로 가사 노동에 참여했다. - 손민규 역사 MD

외조하는 조선 남자들

조선은 철저한 남존여비 사회,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였을까? 실질 생활 속으로 들어가 조선 시대 사람들이 남긴 일기와 편지 등을 살펴보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조선 사회의 한 단면을 마주하게 된다. 살림은 주부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시작하며―우리 조상들이 영위한 남녀 공존의 역사

1장 조선 사람의 살림 인식

장가와 처가살이의 나라 / 여자의 경제 주도권 / 조선 남자, 일기를 쓰다 / 남자에게도 당연한 살림 / 남자가 살림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2장 가족을 부양하다

녹봉 / 기타 부수입 / 꼼꼼한 농사 관리 / 농사는 어떻게 지었을까? / 닭을 기르고, 벌을 기르고, 사람도 기르다 / 상업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

3장 음식

음식 / 의복 / 주택

4장 요리하는 남자

최고의 효도, 음식 공양 / 전문적인 남자 요리사 / 장 담그기와 술 빚기 / 남자가 쓴 요리책

5장 재산 증식

재산 증식에 대한 관심 / 토지, 조선 시대의 재산 증식법 / 뽕나무 재배와 원포 가꾸기 / 중요한 살림, 노비 관리 / 노비를 다스리는 법, ‘은위병행’ / 노비, 재산에서 식구로

6장 남녀가 함께한 봉제사 접빈객

봉제사, 가장 중요한 집안 행사 / 남녀가 함께 지내는 제사 / 접빈객, 인심의 척도

7장 조선 시대의 부부 관계

손님을 대하듯 공경하며 / 부디부디 조심하옵소서 / 아내의 바깥 활동을 뒷바라지한 남편

8장 조선의 다정한 아버지상

아버지의 역할을 다하다 / 자식의 병상일지를 쓰다 / 퇴계 이황의 자식 교육 / 연암 박지원의 자식 교육 / 아버지의 딸 교육

9장 극성스런 손자 교육

최초의 육아 일기 『양아록』 / 퇴계 이황의 손자 교육 / 미암 유희춘의 손자 체벌기

10장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

목숨을 담보로 한 출산 / 출산과 육아 풍속 / 육순 노인이 달리 무엇을 구하겠니? / 산기가 있거든 즉시 사람을 보내소

11장 원예 취미와 정원 가꾸기

꽃을 든 남자 / 연암 박지원의 정원 가꾸기 / 다산 정약용의 정원 꾸미는 법 / 조선의 원예서

12장 외조하는 남자

외조하는 남자 / 미암 유희춘, 아내의 문집을 만들다 / 허균, 누이의 문집을 만들다 / 아전이 기녀의 시집을 간행하다 / 남동생 임정주의 『윤지당유고』 간행 / 남편 윤광연의 『정일당유고』 간행 / 아들 유희의 『태교신기』 번역과 간행 / 남편과 아들과 사위가 힘을 보태다 / 남편 서유본의 『규합총서』 저술 지원 / 양자 성태영의 『정일헌시집』 간행

글을 마치며―한국 가부장제를 재조명하자

저자 소개 (1명)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조선이 가부장제 사회였다고?

이 책은 조선 시대 양반가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영위한 남녀 공존의 역사를 찾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집필되었다. 이 책의 조사 대상이 조선 시대 양반가 남자로 한정된 데는, 유감스럽게도 현재 남아 있는 자료 대부분이 양반 남자들의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자료의 양은 적지만 그 속에서 발견한 유의미한 부분은, 조선 시대 양반 남자가 집안의 살림꾼이었다는 사실이다.

조선은 16세기까지만 해도 여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남녀 공존의 시대였고, 이는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이 남자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였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오늘날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요, 정치권력을 기준으로 바라본 또 다른 남자 중심적인 시각이다. 정확한 남녀의 관계, 그리고 전통시대 여성상을 알기 위해서는 집안을 둘러싼 실질 사회에 주목해야 한다.

조선 시대 양반가는 그 규모만 해도 오늘날의 중소기업체와 맞먹을 정도였다. 신발, 옷, 쌀, 술 등 의식주에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집안에서 생산했고, 자녀 교육, 질병 치료, 종교 활동도 집안에서 이루어졌다. 그야말로 오늘날의 작은 사회와 같은 곳이었다. 조선 시대의 집안 살림은 크게 안살림과 바깥살림으로 나뉘었다. 음식 장만과 옷 짓기 등 안살림은 주로 여자의 몫이었고, 각종 생계 활동, 재산 증식, 노비 관리 등 바깥살림은 주로 남자가 담당했다. 그밖에도 남자는 정원 가꾸기, 자식 교육, 가족 돌보기 등 정서적인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안팎, 내외로 구분하고 남녀의 역할을 나누는 것은 양성평등의 이념과 어긋나지만, 이러한 내외의 구분은 음양의 구분만큼이나 조선 시대에는 당연한 것이었고, 조선 후기 내외법(內外法)이 강화되면서는 더욱 엄격해졌다. 성리학과 내외법의 강화로 여자의 사회 참여 자체가 금기시되는 풍조가 만연할 즈음에 이른바 ‘외조하는 남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지금까지는 조선 시대의 외조하는 남자를 거의 주목하지 않았지만, 이들이야말로 조선을 대표하는 진정한 남자의 모습일 수 있다. 조선이 가부장제 사회라는 막연한 생각을 여지없이 깨트리는 면면을 이 책을 통해 살펴보자.

외조하는 조선 남자들

이 책에서는 조선 시대 양반 남자가 평소 집안 살림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했는지 유형별로 나누어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다. 당시 바깥살림의 종류와 그것을 처리한 방식, 또 그들만의 살림 비법과 고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지금까지의 조선 시대 생활사 연구에서는 대상 인물의 행장이나 묘지명, 언행록 등이 주요 자료로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지향하는 규범적이고 이념적인 모습을 부각시켜 그 인물을 위인화하기 위한 것으로, 그의 실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는 실제 생활의 기록인 일기나 편지, 그리고 개인 문집의 다양한 기록 등을 토대로 조선 시대 남자의 살림 참여 모습을 살펴보았다.

조선은 ‘일기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 시대에는 국가와 개인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기를 썼다. 특히 양반 남자들은 날마다 집안 대소사를 꼬박꼬박 일기에 기록했는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대표적인 조선 시대 일기로는 『묵재일기』(1535~1567), 『미암일기』(1567~1577), 『쇄미록』(1591~1601), 『계암일록』(1603~1641), 『흠영』(1775~1787), 『노상추일기』(1763~1829) 등을 들 수 있다. 현대의 일기가 철저히 개인의 기록인 반면, 조선 시대의 일기는 집안 대소사를 차례대로 기록한 일종의 가족 일지이자 가계부였다. 그래서 대대로 후손에게 물려주어 생활의 귀감으로 삼도록 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살림 노하우를 후대에 물려주고자 했다. 1596년 10월 4일. 아침에 아내가 나보고 가사(家事)를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한참 동안 둘이 입씨름을 벌였다. 아! 한탄스럽다.

조선 중기의 인물 오희문(1539~1613)이 쓴 『쇄미록』의 기록이다. 아내는 살림에 무관심한 남편 오희문이 원망스럽고 남편 오희문은 집안일에 나름 열심인 자신을 몰라주는 아내가 무척 서운하다. 남자가 살림에 등한시하는 것이 부부싸움의 빌미가 되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가화만사성’이라는 글도 모두 집(家)이 나라(國)보다 앞서 있다. 다시 말해 국가보다 집안을 우선시했고, 남자의 모든 바깥 활동은 궁극적으로 여자의 안살림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어쩌면 조선 시대는 오늘날과는 정반대의 세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껏 우리는 오로지 독서에만 골똘했던 『허생전』의 주인공 허생을 양반 남자의 대명사라 생각하고, 여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남자의 모습에 대해선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 책은 조상들이 영위한 ‘남녀 공존의 역사’를 담아냈다.

살림은 여자의 몫이라는 고정관념

조선 시대 남자는 집안의 살림꾼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을 집안에서 자급자족했다. 소규모 사회였던 집안에서 남녀 간 역할 구분은 뚜렷하지 않았고 상황에 따라 매우 유동적이었다. 물론 조선 후기엔 성리학이 강화됨으로써 내외의 구별이 엄격해지긴 했지만, 그것은 단면일 뿐 실제로 집안 살림에서의 남자의 역할과 비중은 매우 컸다.

조선 시대 여자는 임신과 출산이 목숨을 담보로 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주로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음식과 의복을 담당했다. 반면에 남자는 물질적·정서적 측면에서의 각종 집안 살림을 담당했다. 다양한 생계 활동을 비롯해서 의식주 마련 등 안살림에도 적극 참여했고, 그 밖의 재산 증식이나 노비 관리, 봉제사 접빈객 등도 담당했다. 정서적인 측면에서는 훨씬 그 역할이 컸다. 원만한 부부 관계로 집안을 화목하게 했고, 부모를 봉양하고, 아들과 딸, 며느리 등 자식들뿐만 아니라 손자들의 양육과 교육도 책임졌다. 또 본래 여자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임신과 출산 및 육아에도 적극 참여했으며, 가족의 행복을 위해 꽃과 나무를 심고 기르며 정원을 가꾸기도 했다. 더 나아가 아내나 어머니, 누이 등 여자의 작품 활동을 통한 사회적인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외조했다. 조선 시대에는 남자가 오히려 여자보다 훨씬 많은 살림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 시대의 정치적(국가적) 가부장제 모습을 과도하게 집안의 영역에 대입할 수 없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외재적, 타의적으로 주입된 현모양처

집안 살림을 여자의 역할로 규정하고 남자는 집 밖 일터에서 오로지 경제 활동에만 종사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이러한 성별 역할 구분은 일제강점기와 현대의 산업화 시대에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그것도 내재적, 자발적인 생성이 아닌 근현대의 식민지와 전쟁, 자본주의 산업화라는 외재적, 타의적인 주입이었다. 1910년 이후 35년 동안 일본의 철저한 탄압으로 우리 민족 문화는 말살 직전까지 갔고, 1945년 광복 후 미군정의 지배, 1950년 한국전쟁, 1970년대 경제개발이라는 기치 아래 전통적인 모든 가치가 몰가치화되면서 급속도로 자본주의 산업사회로 편입되었다. 이 모든 사건이 채 한 세기도 되지 않은 기간에 일어났다.

남녀 간 역할이 구분된 현대 가부장제의 정착도 마찬가지였다.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 강제로 근대화를 겪으면서 우리나라는 집안보다 사회의 비중이 커지기 시작했다. 또 사회와 집안은 공(公)과 사(私)로 구분되면서 집안은 철저히 사적 영역으로 치부되었다. 그와 함께 사회는 남자의 영역, 집안은 여자의 영역으로 각각 역할을 부여받았다. 조선 시대만 해도 집안 자체가 공이면서 사였는데, 이 시기부터는 남녀의 역할 구분만큼이나 집안과 사회의 구분도 뚜렷해졌다. 이제 남자는 사회에 나가 경제 활동만 담당하고, 여자는 가정에 남아 전업 주부로서 가사를 담당함은 물론 어머니로서 자녀를 양육해야 했다. 일제의 식민지 여자 교육의 목표는 조선인의 황국 신민화와 함께 부덕(婦德)의 함양을 통한 ‘현모양처’ 양성에 있었다. 특히 중일전쟁을 겪으면서 이런 모습은 더욱 강화되었다.

현모양처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유교적 관념이 아닌 일본의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일제에 의해 의도적, 조직적으로 식민지 사회에 이식된 근대의 왜곡된 여성상이었다. 원래 조선 시대에 ‘양처’는 ‘양민 신분의 처’라는 신분적 개념이었는데, 일제는 이를 가사 노동의 전담자로 만들었다. 또 조선 시대에 ‘현모’는 어진 어머니 정도의 뜻이었는데, 일제는 이를 여자의 역할로 바꾸었다. 이후 현모양처는 한국 여성의 삶을 규정짓는 주요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한편, 1970년대 이후 산업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사회와 가정은 완전히 분리되었고, 남자와 여자의 성별 노동 분업도 강화되었다.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남자는 일터에 나가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家長)이 되고, 여자는 가정에 남아 가사 노동과 자녀 양육을 담당하는 주부(主婦)가 되었다. 가정은 이제 소비 공간이자 휴식 공간으로 낮게 평가받게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여자의 사회 참여 비율이 남자와 동등한 현대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남녀 모두가 자유롭고 공평하게 사회 활동과 집안 살림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여자의 일-가정 양립 못지않게 남자의 일-가정 양립 역시 중요하다. 언제까지 가부장제 운운하며 현 사태를 관망만 할 것인가. 조선 시대의 자료들을 살펴보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자.

회원리뷰 (18건) 리뷰 총점9.4

혜택 및 유의사항?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이* | 2022.01.2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보통은 예스24나 교보문고 웹페이지를 통해 신간이나 추천도서를 접한다. 아니면 구독하는 블로거가 읽고 올린 리뷰나 서평을 통해 새로운 책을 접한다. 그렇게 몇 권의 목록을 염두에 두고 오프라인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실물을 본다. 한 번 읽고 말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보고 그래도 더 보고 싶은 책은 구입을 한다. 중국에 거주했을 때는 책 나르는 일이 힘에 부치고 여의치;
리뷰제목

보통은 예스24나 교보문고 웹페이지를 통해 신간이나 추천도서를 접한다.

아니면 구독하는 블로거가 읽고 올린 리뷰나 서평을 통해 새로운 책을 접한다.

그렇게 몇 권의 목록을 염두에 두고 오프라인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실물을 본다.

한 번 읽고 말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보고 그래도 더 보고 싶은 책은 구입을 한다.

중국에 거주했을 때는 책 나르는 일이 힘에 부치고 여의치 않을 때가 많아 고르고 골라 신중을 기한다고 했지만 온라인으로만 판단한 책은 막상 두고두고 볼 책이 아닌 경우가 혹 있었다.

이제는 실물을 보고 판단하니 확실히 오류가 줄었다.

그럼에도 좋은 책은 계속 발간되고 책은 쌓여 간다...

 

이 책은 도서관 신착도서 서가를 지나치다 눈에 든 책이다.

보통은 목록에 뽑아 놓은 책들만 도서관에서 대출해오는데, 아마도 제목이 눈에 띈 때문이리라.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이라.. 재미있겠네.

돌베개에서 출판한 책이다.

여기서 펴낸 책은 믿을만하다는 출판사들이 있다. ‘돌베개역시 그렇다.

제목도 눈길을 끌고 표지도 감각적으로 간결하게 잘 낸듯하다.

무쇠 솥과 식칼, 소반, 항아리 일러스트만 간결하게 세로로 배치했다.

 

우선 이 책에서 말하는 살림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가사일보다 광범위하다.

저자는 살림이란 한 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라 정의한다.

그렇다면 표지 일러스트가 감각적이긴 하지만 본문의 내용을 포괄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조선시대 가정의 살림 즉 가계 운영을 하나의 중소기업과 같다고 말한다.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도 같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농사와 부업, 녹봉(급여) 등의 수입과 재테크, 노비(직원)관리 등 경제 활동과 요리를 포함한 손님 접대, 자녀교육, 제사, 병과 의료문제 등 가정 운영 전반에 주도권을 갖고 있었다.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로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가정은 부부가 같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기업이었다는 것이다.

 

부부관계, 자식 교육, 손님접대, 요리, 재산증식, 안살림, 원예 등 취미생활, 등 모두 12장의 꼭지로 분류했다.

 

책의 내용은 재미있다.

일기와 편지 등 실제 사례 중심으로 되어 있어 당시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저자가 풀어서 설명해주니 어려운 내용도 없다.

역사와 철학을 통해 배운 퇴계 이황이나 추사 김정희는 근엄한 위인의 모습만 있지 않았다.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는 남편이요 자상한 아버지였다.

이메일과 SNS가 없었어도 오가는 인편으로 전하는 편지글을 정성스럽게 자주 보내며 가족들과 소통했다.

부모 형제, 부부사이에 자녀에 심지어 며느리에게 살뜰히 안부 인사와 감사치례하고 교육하고 훈계했다.

다산 정약용이 아들들에게 보냈던 편지들도 모아서 책으로 나왔었지 않은가.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늘 안부를 전하고 공부 내용에 대한 점검을 하고, 낙담하지 말고 꿈을 품고 미래를 준비할 것을, 체면 때문에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부업도 놓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일기와 편지는 사실 사생활이다.

세월이 지났다고 남의 일기나 편지를 후세에서 이렇게 대놓고 펼쳐도 될지 모르겠지만 예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볼 수 있으니 미안하지만 고맙다.

전쟁과 일제강점기를 통해 허다하게 유실되었지만 우리 조상들은 기록의 삶을 살았다.

일기를 쓰고 편지를 쓰고 책을 쓰고.

그림으로 활자로 남긴 것들로 후세대가 그 당시를 짐작하니 현재를 사는 우리가 남긴 것들 또한 우리 후세가 보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가 보내는 이 하루가 역사의 일부임을 알고 산다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겠다 싶다.

예전 사람들에 비해 오늘날은 결혼이 매우 늦다.

공부하고 직업을 갖고 가정을 이루기까지 오래 걸린다. 그럼에도 부부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부모가 되는 교육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하고 닥친다.

그때그때 인터넷 검색으로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기 바쁘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받지 못한 가정을 이루는 교육을 이 책이 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존중하고 아끼고 부지런히 가족과 집을 가꾸며 가정을 이루어나가는 옛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

 

저자인 정창권교수는 역사 속의 소외계층인 여성, 장애인, 하층민의 삶을 책으로 펴내고 있다고 한다.

이 책 역시 남다른 시각으로 펴냈다고 생각한다.

이전 세대에 대한 편견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나는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책은 읽는 재미가 있어야지. 재미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저자가 책의 마지막 20페이지를 각 장의 미주와 참고문헌에 찾아보기 까지 넣어 엮었다는 점이다. 연구하고 고증하고 정성껏 만든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을 덮으려던 순간 이 마지막 부분은 감동이었다...

 

1. 좋은 글귀, 마음에 드는 가사 인상 깊은 영화 대사 등을 메모해 주세요.
2. 출처를 넣어주세요. ex) 234page, 4번 트랙<사랑해>, <브리짓존스의 다이어리>에서 브리짓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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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회였던 자신의 가정을 직접 꾸려나간 양반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여*게 | 2022.01.1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조선의 남자는 매우 바빴다. 입신양명을 위해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 됐고, 과거에 합격하고 나서는 왕을 잘 모시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하고 집안의 가장이 되어서는 농사, 요리, 제사, 자식 교육, 정원 가꾸기 등 작은 사회인 집안에서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뚜렷하게 구분한 가부장적 사고방식은 결코 조선;
리뷰제목

 조선의 남자는 매우 바빴다. 입신양명을 위해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 됐고, 과거에 합격하고 나서는 왕을 잘 모시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하고 집안의 가장이 되어서는 농사, 요리, 제사, 자식 교육, 정원 가꾸기 등 작은 사회인 집안에서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뚜렷하게 구분한 가부장적 사고방식은 결코 조선에서 온 관습이 아니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평민의 삶은 기록이 없는 관계로 알기 어렵지만, 양반 계층이 남긴 일기를 통해 그들이 살림의 구석구석까지 관심을 쏟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히 알겠으나, 오히려 내가 받은 느낌은 집안의 그 어느 부분 하나도 남성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고, 대부분을 그들이 주관하고 주도했다는 것이다. 부부가 함께 살림을 꾸려나갔다고 하기에는 부인이 그 일에 대해 어떤 식으로 참여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그래서 조선 시대의 '살림'이라는 주제보다는 조선 시대 양반들의 '생활사'로서 받아들였을 때 더 흥미로웠다. 궁중에서 일하는 양반이 어떻게 녹봉을 받는지, 노예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손님 대접에 얼마나 힘썼는지 알 수 있어서 양반의 삶을 상상해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자식, 손자 교육' 부분이 인상 깊었다. 무려 우리나라 지폐에 얼굴을 올린 대표적인 선비 퇴계 이황이나, 사랑꾼의 면모를 보이는 미암 유희춘같이 주변에서 존경받았을 양반들이 자식과 그 손자의 공부에서는 가차 없는 모습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퇴계는 극성맞은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였다. 스스로 많은 공부를 통해 성공한 학자가 되었던 만큼 자신과는 다르게 공부에 온 힘을 쏟지 않는 아들과 손자에게 끊임없이 잔소리한다. 그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만 봐도 대신 숨 막힘을 느낀다.

 미암은 더 심하다. 아들에게 원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자 손자에게 더 큰 꿈을 꾸게 된다. 하지만 손자가 공부에 뜻을 보이지 않고 놀러 다니자 화가나 머리를 잡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기까지 한다. 그 뒤로 손자는 점잖아졌다고 하는데, 미암의 할아버지로서의 욕망이 너무나도 무섭다.

 물론 그 당시는 시대 상황이나 사고방식이 전혀 다르고, 지금의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되겠지만, 현시대의 고통 받은 많은 아이를 떠올리면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가부장제는 일제 강점기의 산물로 우리의 전통이 아닐지 모르겠으나, 아이의 미래에 관여하고 간섭하고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부모의 행태는 역사가 뿌리 깊어 보인다.

 그런데 반대로 똑똑하고 공부하고 싶었던 여자아이들은 오로지 결혼을 하고 살림을 꾸려나가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전혀 없었다. 시를 쓰던 여자아이는 결혼 후 당연하다는 듯이 붓을 놓는다. 이 책에서는 자식의 성별에 상관하지 않고 교육했던 집안들의 예가 나오지만, 끝까지 자신의 소양을 쌓고 공부할 수 있었던 인물이 없었기에 우리의 기억 속 조선 시대 여성은 신사임당, 허난설헌 정도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은 우리가 실망하는 조선 시대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의 편견을 깨주던 일상도 분명히 있었다. 특히 연암 박지원의 모습은 지금의 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직접 고추장을 담그고, 반찬을 만들어 아들에게 보내준다. 그리고 벼슬길에 나아갈 필요는 없다며 학문에 대해서도 압박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부를 시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던 퇴계나 미암의 손자와 달리 연암의 아들들은 출세한다.

 또한, 부부관계에 있어서 여자의 지위가 낮을 거라고만 생각한 것과는 달리, 자신의 부인에게 존댓말을 쓰면서 존중하고 애정을 보였던 양반들도 많았다. 아들에게는 무섭기 그지없지만 부인과는 편지와 시를 주고받고, 기나긴 당직 끝에 오랜만에 돌아간 집에서 부인을 보고 반가웠던 마음을 기록한 미암에게서, 한 인물이 얼마나 입체적이고 다양한 면을 가졌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자신보다 어린 부인에게 언제나 극존칭을 써서 마음을 전한 추사 김정희의 편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조심스럽고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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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역사교육의 관점에서 미시사를 바라보기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이*원 | 2022.01.15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인으로 살아가며 한국사에 대해 배우고, 국가적으로 위기가 닥쳤을 때마다 과거에 위기를 극복했던 선조의 사례를 보며 다함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 실제로 역사교육의 목적, 특히 한국사를 가르치는 목적 중 하나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뿌리를 알고 애국심과 소속감 등을 함양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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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인으로 살아가며 한국사에 대해 배우고, 국가적으로 위기가 닥쳤을 때마다 과거에 위기를 극복했던 선조의 사례를 보며 다함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 실제로 역사교육의 목적, 특히 한국사를 가르치는 목적 중 하나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뿌리를 알고 애국심과 소속감 등을 함양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라고 하면 늘 외울 게 많은 지루한 암기과목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이런 역사라면 어떨까? 이래도 역사가 지루한 암기과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역사가 지루한 암기과목이었던 이유는 대개 수업시간에 교사가 과거의 사건들과 사실들만을 쭉 나열하고 그것을 외우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는 현장의 교사들도 아쉬움을 느낀다. 역사뿐만 아니라 국어, 수학, 영어, 과학 등의 과목에서도 선생님들은 진도를 빼기 바쁘고 수업 이외에도 다양한 업무가 있기 때문에 수업 설계에 온전히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 또한 입시 위주로 이루어지는 한국의 고교 교육 특성상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새롭고 실험적인 방식의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교사 개인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만약 다양한 방식의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역사교육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이 책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통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칠 때는 정치사를 위주로 가르친다. 구석기부터 시작해서 민주화에 이르기까지의 거시적인 흐름을 왕조와 정치적인 사건을 위주로 해서 말이다. 물론 거시사, 정치사는 중요하다. 우리의 역사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진행되었는지 그 흐름을 알아야 경제사, 사회사, 문화사 등을 학습할 때 그러한 변화가 왜 일어났는지, 해당 사건이 사회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사가 역사의 전부는 아니다. 역사는 왕과 귀족(또는 양반, 장군 등 상류층) 몇 명 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여 완성하는 것이다. 동학농민운동 하면 전봉준이 떠오르지만 전봉준을 따르고 함께 행동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역사교과서의 한 페이지에 동학농민운동이 실릴 수 있었던 것이다. 유관순과 함께 만세를 외쳤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3.1 운동은 최대 규모의 비폭력운동으로 기록될 수 있었고 일본이 식민지배 정책의 방향을 변경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서평을 쓰고 있는 현재를 기준으로 약 두 달 후에 있을 제20대 대선에서도 국민들의 선택 하나하나가 역사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당시 사회상, 생활상을 들여다보아야만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시사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도 아쉬움을 내비쳤던 것처럼, 양반이 아닌 평민의 생활은 연구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역사 연구의 바탕이 되는 사료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필자는 오늘날 유튜브에서 브이로그가 유행하고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해서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일상이지만 그것이 100년, 200년 후에는 21세기 초반의 생활사를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조선시대에 농민들도 일기를 많이 썼더라면 생활사, 문화사 연구가 활발해지고 풍부해졌을 것이다. 이 책에 주로 등장하는 퇴계 이황, 미암 유희춘, 연암 박지원, 추사 김정희, 오희문 등의 양반들은 일기와 편지를 쓸 때 자신들의 기록이 몇백 년 후 역사 연구를 위해 사료로 사용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기록을 남겨준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덕분에 이런 흥미로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책으로 인해서 역사가 지루한 암기과목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기를 희망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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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5점
저자가 비전공자라는게 아쉽지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에 충분히 훌륭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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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 202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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