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어느 날, 문득 내 옷장이 눈에 거슬리는 날이 찾아왔다. 고작 남한테 욕먹을까 무섭다는 이유로 구질구질한 것들만 가득하고 가치 있는 물건은 하나도 없는 옷장을 보는데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 당장 입어야 할 여름옷만 남긴 채 모든 것을 갖다 버렸다. 100벌이 뭐야. 200벌은 더 되는 것 같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버렸다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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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속물 카테고리는 굉장히 다양하다. 그러나 내 인생을 가장 행복하게 운전할 방법은 나 스스로만 알 뿐이다. 남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으니 법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원하는 바를 추구한다면 뭐든지 존중받아 마땅하다. 내 내면이 바라는 모습을 머리로 떠올렸을 때 속물처럼 느껴지더라도 부정하지 말자. 원하는 게 많다고 속물도 아니거니와, 속물이면 좀 어떠랴, 남을 해치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에게만큼은 솔직하게 살아야 진짜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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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가든지 좋은 옷 입고 좋은 가방을 든 사람들이 보였다. 내가 굉장히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은 그 기분은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어디에 가든 차림새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게 그 덕분이다. 좋은 옷을 아껴놨다가 중요한 날에만 차려입기보다는 언제나 적당히 차려입는 게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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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년 안 되는 기간에 거의 매달 명품을 구매하는 동안 최대한의 수익구조를 구축해놨고, 나의 가치관도 나의 스타일만큼 드라마틱하게 변화했으며 그 어느 때보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있다. 이렇게 1분 1초도 아까울 만큼 삶을 진하게 살고 있는데도 여전히 때로는 예전의 사고방식이 불쑥 튀어나와 불안감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 자존감을 다독이고 스스로 희망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지금 내 심리상태와 한 해 동안 깨닫고 변화된 많은 것들에 관해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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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고민해보고 완벽한 소비라고 자신하며 구매한 물건에 예상과 달리 후회를 해봤다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것을 나는 평생 고민되는 소비를 안 해보고 살아서 그런 걸 깨달을 기회가 없었다. 마음에 안 들면 버려도 그만인 소비에는 책임감을 느끼지도 않고 지나고 나면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일이 허다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첫 명품백을 통해 처음으로 책임감 느끼는 소비를 해보고 의미 있는 것들을 배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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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한가득 물려준 기질 중에 취할 건 취하고 바꿀 건 바꿔가며 나라는 인간을 다듬어가는 과정이 바로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안 드는 구석들은 내가 아직 바꾸거나 버리지 못해서 남아있는 내 선택의 결과이다. 더 다듬으면 언젠가는 반질반질 내 마음에 쏙 드는 내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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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맞는 사람 곁에서 괴로운 것보다야 외로운 게 낫고, 거슬리던 한 가지 단점 때문에 결국 오만 정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정말 없을지언정 최소한 그 사람보다 좋은 사람은 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쁜 인연을 단박에 끊지 못하고 이어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낮은 자존감 때문이라고 한다.
--- p.78
가질 수 있는 것을 갖는 게 A, 갖고 싶은 것을 갖는 게 B라고 할 때 A와 B는 애착, 성취감 면에서 분명히 다르다. 때로는 손쉬운 선택을 하면서 빠르게 일을 해나가야 할 때도 있지만 가끔 몹시 원하는 게 생기면 고집스럽게 가져보려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 p.80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못 헤어진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 p.77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방법을 어떻게 설명할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마치 나 자신을 태교한다 생각하면 와 닿는 것 같다. 태아에게는 마땅히 좋은 것만 주고, 해로운 것들, 술, 커피 아무리 끊기 어려워도 다 끊는다. 태교하는 동안 타협이나 합리화란 있을 수 없다. 이처럼 아무리 먹고 싶어도 철저하게 금주하는 임산부의 마음으로 생각하면 나쁜 인연을 과감하게 끊어내는 어려운 일에도 한층 강력한 결단력이 생길 것이다.
--- p.79
자신을 스스로 제한하는 말, 부정적인 사고방식은 얼른 갖다 버리고 그냥 지금 당장 나를 사랑하고 행복하기로 정하는 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득인 것 같다. 이쯤에서 모두 일단 한 번 깔깔 웃은 다음에 이 여자가 또 뭘 샀는지 지켜보시면 좋겠다.
--- p.84
오랜 꿈을 이루기까지의 모든 날에 노력이 담겨있는 셈이다. 모델이 되고 싶었지만,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 때문에 잠시 멈춘 적이 있었다 한들 결국 70대에 모델이 된 사람은 수십 년을 몸매 관리를 하며 노력해오다 때가 되어 결실을 맺은 것이니 후회가 없을 수밖에. 꿈을 버리지 않고 붙들고 있었다는 것도 엄청난 노력 아니면 뭐라고 부를까.
--- p.88
일어난 일들에 말을 보태며 후회하고 괴로워하지 말고, 재를 자기합리화 없이 솔직하게 바라보고, 너무 먼 미래는 미리 고민하지 않기.
--- p.92
그렇게 뭐든 ‘대충, 막’사는 게 습관이 됐더니 생활도 ‘대충, 막‘이 됐다. ‘아무거나 대충’이 입버릇처럼 붙어버려서 ‘귀찮아, 아무거나, 대충’을 남발했더니 살면서 계속 아무거나 대충인 일만 무난하게 겪어왔다. 언제부터 왜 거기 있는지 모를 것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몇 달, 몇 년이고 있기도 했다. 예를 들면 냉장고에 잠깐 붙여놓고 잊어버려서 한참 뒤에 잉크가 다 날아간 채 발견한 영수증 종이, 언젠간 써야지 생각에 버리지 않고 무턱대고 쌓아둔 쇼핑백들, 건전지를 새로 넣는 게 귀찮아서 방치하다 안 쓰게 된 랜턴 같은 소형 가전들? 그런 면에서 보면 놀랄 만큼 무심해질 수 있는 게 사람인 것 같다.
--- p.100
콤플렉스와 피해 의식으로 살아오다 옷장을 다 버리고 명품을 잔뜩 구매해본 나의 지난 1년을 거창하게 적어봤지만, 사실 이 입덕 부정기라는 말로 간단히 설명이 가능하다. 이 책은 진짜 나의 모습을 인정 못 하는 입덕 부정기를 지나 입덕을 결심하면서부터 그게 무엇이든 남이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나 자신을 지지하는 팬이 되기로 한 지난 1년의 기록이다.
--- p.109
예나 지금이나 내 본질이 세속적인 사람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고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의 마음가짐만 달라졌을 뿐인데 이게 정말 엄청난 차이 같다. 검소하지 않으면 죄의식을 느꼈던 내 오랜 콤플렉스를 벗어 던지려 명품 테라피 단기 속성 코스를 밟은 결과, 바짝 독이 올라있던 소비 욕구가 요즘에는 오히려 느슨해졌고, 강박도 많이 사라졌다.
--- p.109
‘귀한 사람’이라고 하면 좋게 들리지 않는가? 귀한 사람, 즉 귀인이다. 우리가 모두 좀 비싸게 구는 사람, 스스로 귀하게 여기는 귀인이 되면 서로에게 대운을 선사할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남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비싸다. 귀하다. 희귀하다. 드물다.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 바쁘다. 놓치면 다시 기회를 잡기 힘들다. 미리 약속하고 기다려야 한다.
--- p.128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사는 것에 대해서 요즘만큼 본격적으로 고민해 본 적이 없는데 어쩌면 남의 시선이라는 것은 의식하고 말고를 고민할 만큼 대단치 않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애초에 서울 한복판에서 ‘지나가는 코끼리가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나의 길을 걸어가면 되는 거였다.
--- p.134
내가 주인일 때 요리하고 수고하는 스스로를 대접할 줄 알아야 손님으로서 대접받는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게 된다. 희생을 강요받아온 윗세대가 ‘나 때는 더 힘들었다’며 요즘 사람들의 힘듦을 별 게 아니라고 치부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나의 수고를 낮잡아보면 남의 수고도 낮잡아 보게 된다는 증거다.
--- p.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