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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가

: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 선 사상가 10인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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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가』출간 기념 마우스패드 증정 이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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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1년 08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460쪽 | 818g | 150*220*30mm
ISBN13 9791155401903
ISBN10 115540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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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변하기 위한 시도를 보여준 사상가 10인의 고전을 깊이 있게 읽고 알기 쉽게 해설한다. 철학과 문학을 오가며 ‘삶’과 ‘죽음’의 의미를 심도 있게 탐색하면서 목적과 방향을 잃은 현대인이 흔히들 갖게 되는 이익주의, 합리주의, 허무주의, 냉소주의 등의 태도를 반성한다.
10인의 사상가들이 보인 삶 전체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어떤 차이와 장단점이 있는지 균형감 있게 소개한다.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삶의 희극적 또는 비극적 차원을 논했던 사상가들의 생각이 때로는 교차하고 때로는 충돌하면서 다채롭게 전개된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감사의 말

들어가는 글: 삶이라는 질문은 정답이 아닌 표현을 기다린다

1장. 생각할 수 있는 세계 중 최악의 세계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1788~1860

삶의 참을 수 없는 비참함 | 끔찍한 소음이 들리는 철학 | 세계의 진정한 본성과 우리 존재의 핵심 | 고통과 죽음 속에서 신뢰할 만한 위안 | 죽어도 죽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이유 | 의지를 부정함으로써 존재하지 않는 법 | 최악인 동시에 최선인 세계

2장. 나로 존재하지 못한다는 절망
쇠렌 키르케고르 1813~1855

‘기독자’가 된다는 것 | 심미적 생활양식, 삶을 즐긴다는 것 | 윤리적 생활양식, 삶을 선택한다는 것 | 종교적 생활양식, 부조리에 대한 믿음 | 절망, 죽음에 이르는 병 | 침묵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되는 법

3장. 서로 복잡하게 뒤엉킨 신의 공포와 경이
허먼 멜빌 1819~1891

삶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환영 | 설선 위에는 심장이 없다 | 해수면 아래 헐떡이는 호랑이의 심장 | 방울뱀의 치명적 아름다움 | 진정한 불의 자식처럼 | 합리적으로 광대 노릇하기

4장.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면 그곳은 지옥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1821~1881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 | 인간은 이를 죽일 수 있는가? | 2 곱하기 2는 5 | 우리가 이웃을 사랑할 가능성 | 바보 성자가 발견한 아름다운 것들 | 영원은 구석구석 거미가 득실거리는 곳

5장. 피할 수 없는 모든 것의 끝
레프 톨스토이 1828~1910

어떻게 살 것인가? | 우리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기만을 기다리는 죽음이라는 용 | 탈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 믿음, 내면의 판사가 하는 말을 듣는 능력 | 부서지기 쉬운 삶의 의미 | 두 종류의 사랑

6장. 위험한 삶이 가져다주는 즐거움
프리드리히 니체 1844~1900

“신은 죽었다” | 말인의 행복에는 딱히 가치가 없다 | 선악을 넘어선 탁월한 파괴자 | 연민이라는 마지막 질병 | 성스럽고도 건전한 이기심 | 모든 좋은 것은 웃고 있으니, 무거움의 영을 피하라 | 무슨 일이 일어나든 지금의 삶을 사랑하라

7장. 구체적인 세계의 극적 풍성함
윌리엄 제임스 1842~1910

‘의미 있음’의 실질적인 현금 가치 | 울타리 밑에 숨겨둔 뼈다귀가 가져다주는 황홀감 | 건강한 정신과 병든 영혼 | 자정의 고뇌에서 대낮의 믿음으로 | 신앙을 가질 권리 | 위험 없는 세계의 끔찍함

8장. 진정 삶을 살았다고 할 만한 유일한 삶
마르셀 프루스트 1871~1922

죽음을 극복하는 예술의 위력 | 사랑이라는 끔찍한 속임수 | 욕망이 불러일으키는 역설 | 끊임없이 죽어가는 자아 | 같은 강물에 발 두 번 담그기 | 보이지 않는 것을 탐구하는 사람들 | 시간 너머로 존재하는 법

9장. 언어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가망 없는 투쟁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1889~1951

별이 되고 싶었지만 지상을 벗어나지 못한 | 철학의 본질과 용도 | 삶이라는 수수께끼와 수수께끼의 소멸 | 이방인 같은 삶 |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으로서의 윤리학 | 언어의 의미는 살아가는 방식 속에 있다 | 의심할 수 없는 것들

10장. 세계의 부드러운 무심함
알베르 카뮈 1913~1960

원하는 것과 얻는 것 사이의 괴리 | 자유가 부여한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 | “그래서 어떡하란 말인가?” | 의미 없는 세상에서 의미 창조하기 | 부조리는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 | 삶이라는 한계 안에서 반항하라

나오는 글: 요약할 수 없는 음악 작품

주석

저자 소개 (2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이 책을 쓴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문학적?지적 모험이었다. … 그들의 작품을 읽고 그들에 관해 글을 쓰는 것은 보람이 넘치는 일이었다. 각 작가마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고 잠시나마 그 세계 속에 거하면서 풍성한 보물을 발굴하고 음미할 수 있었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읽고 쓰기에 우울한 주제처럼 느껴져야 하겠지만 나는 전혀 우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훌륭한 작가들과 시간을 보냄으로써 정신이 고양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들이 죽음에 관해 표현한 방식 덕분일까, 그들의 세계 속에서는 죽음조차 아름다운 존재처럼 느껴졌다. 표현은 중요하다. 언어 표현에서 사상을 완전히 분리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표현은 의미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의미를 창조하기도 한다. 표현은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고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세계를 이해하도록 돕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렇기에 내가 보기에 철학과 문학은 서로 빈틈없이 섞이는 존재다. 삶의 유약함과 아름다움을, 삶의 비극성과 희극성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반영한다는 점에서 적절한 표현은 중요하다. 우리 모두는 삶에 비극과 희극이 둘 다 풍성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책은 죽음을 다루는 책이지만 동시에 삶을 찬미하는 책이기도 하다.
--- p.15

쇼펜하우어가 보기에 진정한 철학이란 인간의 필멸성을 이해하고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고통을 경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행복한 사람들, 다시 말해 삶에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고 세상에 만연한 온갖 고통과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철학을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세계가 왜 이런 식으로 존재하는지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들은 삶에 관해 딱히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 따라서 근본적으로 철학적 궁금증이란 단지 지적 호기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도덕적 분노에 해당한다. 철학적 의문은 세계가 응당 그래야 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각하는 데서 기인한다. 인간은 물론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가 가끔씩도 아니고 꾸준히 온갖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과 세대를 거듭할 때마다 온갖 살육과 죽음이 끊이지 않고 맹목적으로 무분별하게 반복된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실들이 아니다. 철학자로서 우리는 문제를 인정한 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이해하고자 애써야 한다. 그러지 않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척, 모두 괜찮은 척하는 것은 지적으로 솔직하지 못한 태도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타락한 태도다.
--- pp.35-36

우리는 윤리적 요소를 외면화하는 데 익숙한 나머지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묻는 질문들에 대해 결코 객관적이고 무심하고 관찰적인 관점에서 추상적인 언어로 묻거나 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윤리적 생활방식의 핵심은 이것이(이것이 무엇이든 간에) ‘나’와 관련돼 있으며 무슨 선택을 내리든 ‘내’가 바로 그 선택에 따라 살고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죽음이 악인지, 죽는다는 것(혹은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숙고할 때,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자가 지금 살아 있으며 곧 죽는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은, 더 나아가 지금 살아 있고 그런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결국 죽게 될 바로 그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은 심각한 실수다.

따라서 질문은 절대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형태를 취할 수도 취해서도 안 되며 항상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같아야 한다. 나라는 특정한 단일 개인이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특히 나에게 있어서는 ‘나’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중요해야 한다. “윤리적으로 볼 때 개별 주체는 무한히 중요하다.”
--- p.85

자연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이 괜찮다고, 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차분한 날씨에 바다가 고요하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우리는 자연을 보고 경계심을 풀며 그 사이에 자연은 우리 앞에 덫을 놓는다. “꿈결처럼 고요한 때가 있다. 평온한 가운데 아름답게 반짝이는 해수면을 바라보다가 그만 그 아래 호랑이의 심장이 헐떡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을 때, 벨벳 같은 앞발에 무자비한 발톱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 할 때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관해 숙고하다 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게 된다. 우리가 거대한 전체를 이루는 일부에 해당한다고, 우리가 진정으로 세계에 속한다고, 우리가 우주와 하나를 이루고 있다고 믿게 된다. 따라서 그런 세계가 결코 우리를 해칠 리가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런 믿음을 가졌다가는 갑작스러운 충격을 맞이할 것이다. 우리가 전체의 일부라는 몽상에 빠져 있다가는 우주적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벨벳처럼 보드라운 호랑이의 앞발에 매료돼 그 속에 무자비한 발톱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면 치명적인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 p.117

라스콜니코프는 스스로를 의심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노파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 즉 자신도 “나머지 모두처럼” 이에 불과한지 아니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에 해당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고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취함으로써 자신이 다른 인간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자신이 정말로 특별하다는 사실을, 자신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 하지만 이상하게도 라스콜니코프는 감히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자신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느낀다. 자신이 한계를 “넘어서는 데” 실패했다고 판단한다.

(…) 왜 그럴까?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과는 달리 자신이 정말로 살인을 저지를 권리가 있는지 계속 곱씹었기 때문이다. 라스콜니코프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그 확신의 부족이 그에게 특별한 자질이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줬다. … 라스콜니코프가 자신이 오직 이 한 마리를 죽였을 뿐이라고 주장하자 소냐는 인간을 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지적한다. 그러자 라스콜니코프는 소냐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이렇게 답한다. “물론 이 한 마리가 아니지. 그건 나도 잘 알아.” 라스콜니코프 역시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신의 이론적 가정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그것도 ‘명백히’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라스콜니코프가 스스로에게 뭐라고 되뇌든 라스콜니코프도 그가 죽인 노파도 이가 아니다. 결국 진실은 ‘어떤’ 인간도 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 pp.154-155

여기서부터 네흘류도프의 “부활”이 시작된다. 한때 네흘류도프의 영혼이 죽어 있었으나 이제 다시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무언가 분열 같은 일이 일어났으며 네흘류도프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 순간 이후로 네흘류도프는 자기 주변에 만연한 고통은 물론 특히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온갖 불의를 점점 더 또렷이 자각하게 된다. 세상이 어디가 잘못됐는지 이해하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행동을 취하기 시작한다. 불의에 맞서 싸운다. 자신의 소유물을 전부 내준다. 자기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원하기를 그만둔다.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살아간다. 사실상 네흘류도프는 러시아 혁명가로 변모해간다.

특이하게도 톨스토이가 내세우는 주인공들 가운데 네흘류도프만큼 삶의 의미를 찾는 데,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는 데 시간을 적게 투자한 인물이 없다. 그럼에도 네흘류도프는 그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가 인도하는 대로 행동함으로써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데 가장 근접한 인물이기도 하다. 즉 선한 목소리를 들었다. 우리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 말해주는 목소리를 들었다. 이 시점의 톨스토이는 우리 모두가 내면에 이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그저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
--- p.227

니체는 “성스럽고도 건전한 이기심”을 온 마음을 담아 예찬한다. 진정으로 성취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당신은 우선 서는 법, 걷는 법, 기어오르는 법, 춤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늘을 나는 것으로 나는 법을 배울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소위 죄 많은 행위를 정죄하는 기독교적인 도덕관념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대로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그런 도덕관념은 우리 모두를 “도덕적인 괴물이자 허수아비”로 만들 뿐이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를 부끄러워한다면 여기에는 비관적인 세계관이 따라온다. 스스로를 혐오하기 때문에 삶 역시 혐오하게 되는 것이다.

그 대신 우리는 “고귀한 이기심”을 끌어안아야 한다. 이는 더 솔직할 뿐만 아니라 덜 가식적이다. 결국 이타심이 추앙받는 주된 이유도 다른 사람들의 이타심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타적이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이타적이기를 바란다. 자유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데 있다. 자기 자신에게 겁을 먹고는 자기 자신이 비열하게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대신에 우리는 마치 자유의 몸으로 태어난 새처럼 수치심도 걱정도 없이 날아올라야 한다.
--- pp.255-256

제임스는 휘트먼이 예찬한 “삶에서 기본적으로 확정돼 있는 좋은 것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 평범한 인간들은 “보는 것, 냄새 맡는 것, 맛보는 것, 자는 것, 몸을 과감히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일들에서 느낄 수 있는 유익에 지나치게 무감각한 경향이 있다. 삶을 좋게 만드는 것은 삶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아니다. 삶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대개 “스스로를 생각하지 않는 단계, 순전히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단계로 끌어내릴 때 삶이 제공하는 강렬한 즐거움” 덕분이다. 의미가 자연적으로 그리고 제일 먼저 생겨나는 곳은 바로 감각이다.

결국 제임스의 철학에 따르면 삶의 의미는 철저히 공평하게 주어진다. 우리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정치운동가나 의료연구원이나 인권변호사가 될 필요가 없다. 성자가 될 필요는 더더욱 없다. 특별한 무언가를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그저 세상에 존재하면서 우리의 존재를 즐기면 된다.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투지를 내려놓은 채 긴장을 풀고 삶을 한껏 받아들이면 된다. “삶에서 휴일은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부분이다. 휴일은 신비할 만큼 무책임한 매력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 p.282

예술은 우리가 겪는 고통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한다. 배신이나 실망을 비롯해 우리가 경험하는 온갖 불행은 우리가 새로운 경험의 세계를 발견하도록 고무하고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며 우리가 더욱 고차원적인 존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준비시켜준다. “결국 삶의 기술이란 우리에게 고통을 초래한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고통의 신성한 형태를 받아들이고 우리의 일상을 신성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육체적인 고통은 영적인 지식으로 치환된다. 우리의 신체가 점차 노쇠하고 와해되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우리 자신과 세계에 관해 새로운 진리를 밝혀준다.

정신적인 고통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은 매순간 우리를 고통스러운 딜레마에 빠지게 하지만 우리는 이로부터 우리가 어떤 질료로 만들어졌는지 성공적으로 배우고 확인할 수 있다.” 예술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경험하는 나쁜 일들은 좋은 일들보다 더 가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소한 일, 덧없는 쾌락, 성관계나 사랑(그밖에 다른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무의미한 시도), 사회 및 정치 활동에 투자한 시간은 물론 많은 경우 불행을 초래하지만 아예 낭비된 시간은 아니다. 오직 우리가 이런 경험들을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만, 즉 예술로 승화시키지 않을 때만 낭비된 시간이다.
--- pp.346-347

우선 비트겐슈타인은 세계에 존재하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행복이 가능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 그 답이 앎의 삶에 있다고 주장한다. “좋은 양심은 앎의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행복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심이 남는다. 앎은 행복한 삶에 이르는 열쇠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포기’가 답일지도 모른다. “유일하게 행복한 삶은 세상의 안락함을 포기할 수 있는 삶이다.” 물론 비트겐슈타인은 그런 시도도 해봤지만 분명 소용이 없었다. 어쩌면 행복이란 우리가 심미적인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볼 때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물론 이조차 틀릴 수 있다. 오히려 행복이 세상을 아름답게(혹은 아름다워 보이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논리철학논고》에서 지적한 대로 행복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행복한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과 달리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살아갈지도 모른다. 결국 핵심은 행복(혹은 아름다움)에 관한 만족스러운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꾸준히 언급한 내용이니 비트겐슈타인 자신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행복을 얻는 비법을 이론적으로 밝혀낼 수는 없다. 오직 실천을 통해서만,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만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 p.374-375

우리에게는 나쁜 소식도 있고 좋은 소식도 있다. 나쁜 소식은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세계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좋은 소식은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세계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세계가 우리에게 나타내는 “적의”는 전적으로 수동적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도 힘을 주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해코지를 하지도 않는다. 세계가 우리에게 무심한 데는, 우리의 필요와 욕구에 무심한 데는 악의가 없다. 이런 점에서 (그리고 오직 이런 점에서만) 세계의 무심함은 부드럽다. 카뮈의 칼리굴라는 “무의미함”이 “선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틀리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무의미함은 확실히 선물이다.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 우리 자신만의 역사를 써내려갈 여지를 제공한다.

“부조리는 비록 내가 영원한 자유를 얻을 기회를 앗아가지만 그 대신 내가 행동할 자유를 되살리고 강화한다. 희망과 미래가 줄어든다는 것은 인간이 지닌 가능성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우리는 부조리에 직면하기 때문에 창조적이 될 수밖에 없다. 세상이 가지고 있지 않은 무언가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부조리에 직면한 창조자는 “공허에 다채로운 색깔을 선사해야” 한다. 실제로 세계는 공허하다. 하지만 세계가 이미 가득 차 있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신적인 창조주의 솜씨에 경탄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 p.406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세상이 끝날지라도 우리 곁을 맴돌 궁극적 질문”
어두워질수록 더욱 깊어지는 삶에 대한 통찰 10

“답이 보이지 않는 삶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
위대한 사상가 10인이 펼쳐낸 삶과 죽음의 의미


전 세계가 자발적으로든 강제적으로든 철저한 ‘고독’과 ‘격리’를 겪고 있는 요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특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눈앞에 닥친 삶과 죽음의 문제는 수학 공식처럼 하나의 정답으로 결론 내릴 수 없는 무수한 질문들을 끌고 들어온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혼자 머리를 감싸 쥘 필요는 없다. 이미 세계의 절망과 고통을 숙고해온 위대한 철학자와 문학가들이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많은 작품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왜 살아야 하는가』는 이 같이 궁극적 질문을 품어온 사상가 10인의 작품을 깊이 있게 읽어나가며 삶과 죽음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가장 적절한 ‘표현’을 제시한다.

“우리가 지옥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라”
쇼펜하우어부터 톨스토이까지
참혹한 삶의 무게를 짊어진 사상가들


지금도 삶의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키는 사고방식이 존재한다. 어찌됐든 이 세계는 자기 이익만 좇는다면 살아가기에 편리한 곳이고, 역사는 꾸준히 진보하고 있으며, 효율과 합리를 따른다면 행복과 즐거움이 가득하고, 과학과 의학의 힘으로 곧 죽음까지 정복할 날을 앞두고 있다. 이런 세계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나 ‘왜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아 보인다.

『왜 살아야 하는가』는 이 같은 이익주의나 합리주의 등의 세계관을 반성하며 삶의 의미를 모색한 사상가들의 깊은 사유를 소개한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이라는 찰나의 만족보다 욕구와 충동 가운데서 허우적대며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생의지’를 중요시했다. 키르케고르는 우리의 인생이 근본적으로 ‘절망’에 빠져 있다고 진단하고 심미적인 즐거움을 좇기보다는 삶의 부조리를 받아들이고 오롯이 ‘나 자신’으로서 살아갈 것을 주문했다. 멜빌은 『모비딕』에서 흰 고래를 잡는 치열한 사투 이야기를 통해 아름다워 보이는 자연과 세계 속에 숨겨진 발톱을 드러내 보이고 거기에 대응하는 개인의 모습을 다채롭게 보여줬다. 도스토옙스키는 ‘모든 것이 허용된’ 자유로운 세계가 자살과 살인 등 비참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순수하리만치 바보스런 성자를 통한 사랑과 구원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톨스토이는 쾌락과 방종에서 윤리적 개혁가에 이르기까지 삶의 각종 측면을 경험했으면서도 ‘죽음’이라는 궁극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에 괴로워하며 평범하고 단순한 삶에서 다시금 의미를 찾기를 갈구했다.

“그럼에도 삶이란 살아갈 만한 것이다”
니체부터 카뮈까지
모험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 사상가들


반대로 삶에 어떤 의미나 동력도 부여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존재한다. 더 이상 거대한 원리나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자신이 정말로 무슨 삶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각기 다른 방식대로 태어나 살아간다. 철저하리만치 무심하고 또 서로에 대해 알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우리에게는 각자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과제 또는 삶을 끊을 수 있다는 선택이 주어져 있을 뿐이다.

『왜 살아야 하는가』는 이 같은 허무주의나 냉소주의 등의 태도와 마주하며 ‘그럼에도 삶을 살아갈 것’을 주창한 사상가들의 견해를 제시한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기독교적 ‘연민의 도덕’을 버리고 소멸과 생성의 순환 가운데 놓인 인간의 삶을 긍정하라는 급진적인 메시지에 가닿는다. 실용주의 철학자 제임스는 사유가 지니는 그 자체의 심각성보다 그것이 어떻게 실질적인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지에 주목하며 ‘의미 있는 삶’이란 결국 ‘삶이 제공하는 기쁨에 내어 맡기고 느끼는 것’이라 말한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장편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이 변화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사랑이라는 속임수와 불멸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예술 창작에 몰두할 것을 제안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라’고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수많은 문제에 부딪히는 우리의 삶은 스스로 변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카뮈는 어떤 것에도 무심한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진정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고난을 줄이고 정의를 받드는 ‘반항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삶의 가치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인생이라는 지옥을 건너는 철학자의 우아한 답변


『왜 살아야 하는가』에 등장하는 사상가들은 전쟁과 기아, 죽음이 일어나는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이에 대해 단순히 도덕적으로 재단하거나 멀리서 관망하고만 있지 않았다. 이들은 무미건조한 시대를 냉철하게 성찰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민하며 직접 삶으로, 작품으로 분투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의 사상에 깊은 감화를 받은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했으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괴로워한 이야기, 카뮈가 독일인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이방인』의 무심한 관찰자적 입장을 넘어 저항과 연대의 메시지를 『페스트』 안에 녹여낸 이야기 등이 흥미롭게 소개된다.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삶의 희극적 또는 비극적 차원을 논했던 사상가들의 생각이 때로는 교차하고 때로는 충돌하면서 다채롭게 전개된다. 각각의 사상가들이 주목한 삶의 측면은 매우 다르지만 저자 미하엘 하우스켈러는 어떤 하나의 사상가를 치켜세우지도 매도하지도 않는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의 삶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의미를 얻을 수 없고 오직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맺음말을 넌지시 남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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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주간우수작 모든 사람이 처할 운명이지만, 모든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운명, 죽음에 대해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e*********3 | 2022.01.07 | 추천17 | 댓글14 리뷰제목
모든 사람이 처할 운명이지만, 모든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운명, 죽음에 대해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우리는 끊임없이 묻는다. 인간은 태어난 이래 지금까지 삶과 죽음에 의문을 가졌다. 오랜 시간 수많은 철학자 및 사상가들이 고뇌하고 연구하고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부투해 왔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쉽사리 답을 낼 수 없었던 주제다. 누군가 나에게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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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처할 운명이지만, 모든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운명, 죽음에 대해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우리는 끊임없이 묻는다. 인간은 태어난 이래 지금까지 삶과 죽음에 의문을 가졌다. 오랜 시간 수많은 철학자 및 사상가들이 고뇌하고 연구하고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부투해 왔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쉽사리 답을 낼 수 없었던 주제다. 누군가 나에게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삶과 죽음에 대해 묻는 것과 마찬가지로 쉽사리 답을 낼 수 없는 동일선상의 물음이다.

저자 미하엘 하우스켈러의 <왜 살아야 하는가>의 원제는 <The meaning of Life and Death> 이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10인의 사상가를 통해 알아가는 이 여정이 우리에게 어스름한 힌트를 던져준다. '삶과 죽음은 바로 이거야' 라는 명확한 답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철학이다. 그렇기에 철학이 어렵고도 재미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5명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쇠렌 키르케고르, 프리드리히 니체, 윌리엄 제임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와 3명의 소설가 (허먼 멜빌, 마르셀 프루스트, 알베르 카뮈), 2명의 소설가 및 사상가(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레프 톨스토이) 를 만날 수 있다. 낯설지 않은 이름들이라 무언가 친숙하게 다가온다. 10명의 사상가로 부터 깊고도 심오한 삶과 죽음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를 펼친다. 그 중 유독 내 마음을 뒤 흔드는 세 명의 사상가들에 대한 내용을 아래에 살짝만 적어봤다.

우리의 삶이 무의미해 보이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벌어지는 일에는 어떤 종합적인 계획이나 합리적인 구상도 반영돼 있거나 실현돼 있지 않다. 그 대신 세계의 중심에는 맹목적이고 강력하지만 전적으로 우둔하고 목적도 없는 분투가 이루어지고 있다. 계속해서 존재하는 것 외에는 무엇을 바라는지도 모르는 채 하염없이 바라기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세계에는 이런 사실만이 반영돼 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p43)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인간이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통과 고난은 삶 곳곳에 만연하고 삶의 본질이라는 사상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가장 핵심이다. 고통은 언제나 올 수 있는 것이기에 미리 준비하고 감내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각할 수 있는 세계 중 최악의 세계'라는 부제목이 쇼펜하우어가 매우 부정적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시각이 오히려 우리의 삶을 희망차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돕는다. "삶이 왜 이리 무의미한 것 같지?" 라는 의문에 원래 삶이 무의미 하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삶을 더 바람직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고통이 가득한 세상에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다. 즉, 행복하지 않음이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계가 원래 이렇게 고통스럽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 고통이 그리 고통스럽지 않게 된다. 쇼펜하우어 철학을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죽음이라는 용이 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려고 여지없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온전히 이해한 채 삶이라는 나무에 매달려 있다. ... 물론 나에게는 끔찍한 진실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들어주는 꿀 두 방울이 있다. 바로 가족을 향한 사랑과, 내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글쓰기를 향한 사랑이다. 하지만 이조차 더 이상 달콤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레프 톨스토이 (p194)

"삶은 뛰어난 사기꾼으로 온갖 유혹을 통해 죽음이라는 진실을 숨기려고 애쓰고 있다"고 톨스토이는 <고백록>에 표현했다. 레프 톨스토이 편에서는 동부유럽 우화 '죽음이라는 용'을 통해 삶과 죽음을 빗댄 표현들이 매우 공감된다. 나의 삶에서 달콤한 꿀 두 방울은 무엇일지를 생각해 본다. 톨스토이와 마찬가지로 가족을 향한 사랑이 나에게도 역시 꿀 한 방울이 되겠으나 나머지 한 방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또한 중요한 것은 이 생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아느냐 모르느냐는 매우 큰 차이를 가져 온다고 생각한다. 한 편으로는 우리의 삶이 이 꿀을 찾아 떠도는 여정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저 나뭇가지에서 버티다보면 용이라는 죽음이 기다릴 뿐이다. 이 삶은 달콤한 꿀을 맛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과정이다. 생각만으로도 힘들고 고달프다. 이런 저런 참 많은 생각이 들게하는 우화다.

신의 죽음은 인간이 스스로를 재창조할 기회를, 더 고등한 형태의 인간으로 소생할 기회를 주었다. 신의 죽음은 곧 우리 인류의 부활이다. (중략) 확실성을 갈망하지 않는, 안전망이 필요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 돼야 한다. 오히려 자신이 누리는 자유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에 기뻐하면서 가능성만을 즐기는 영혼이 돼야 한다. 삶이 무엇을 내놓더라도, 심지어 심연의 끝자락에 있더라도 춤을 출 줄 아는 자유롭고 쾌활한 영혼이 돼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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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가 - 위대한 사상가 10인의 대답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삵* | 2022.01.09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책을 읽게 된 배경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의 의미를 자주 찾곤 하는 삵에게 '왜 살아야 하는가'는 중요한 주제다. 어릴 때부터 철학 책에 줄곧 관심 있어 왔고 개똥철학으로 뒤범벅된 삵으로서 이 주제에 대한 끌림을 견딜 수가 없었다.   게다가 목차를 보면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를 다룬 사상가 10인을 만날 수 있는데, 쇼펜하우어, 도스토옙스키, 니체, ... 더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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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게 된 배경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의 의미를 자주 찾곤 하는 삵에게 '왜 살아야 하는가'는 중요한 주제다. 어릴 때부터 철학 책에 줄곧 관심 있어 왔고 개똥철학으로 뒤범벅된 삵으로서 이 주제에 대한 끌림을 견딜 수가 없었다.

 

게다가 목차를 보면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를 다룬 사상가 10인을 만날 수 있는데, 쇼펜하우어, 도스토옙스키, 니체, ...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이 필요없는 사상가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특히나 몇몇 사상가들은 인용으로만 수도 없이 들었지 그들의 저작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기에 이 참에 요약본이 될 수도 있는 이 책을 읽어보기로 결정했다.

 

 

┃ 책의 내용

이 책은 450페이지 정도로 그 유명한 삵의 책과 비슷한 두께다. 딱 적당한 두께라고 할 수 있다. 또 사상가 10명을 다루니, 대략 사상가 한명당 45페이지 정도로 잘 요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사상가들의 위대한 저작 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는 것도 매우 좋지만, 삶과 죽음을 다루는 측면에서 이 책은 사상가들이 세상에 전하고자 했던 생각들을 잘 알려주고 있다. 이제 한명씩 그들의 생각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툭 까놓고 말하자면 이해하기조차 어렵다."

 

내 얘기가 아니다. 이 책의 저자가 한 얘기다. 쇼펜하우어는 30세의 나이에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걸작을 발표했다. 대박날 것이라 기대했지만 기대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30년 뒤 쇼펜하우어가 노인이 된 뒤에나 이 책은 인정받았다고 한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의 대부분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랬기에 그의 걸작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쇼펜하우어가 보기에 세계는 지극히 나쁜 곳이며 그렇다고 그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삶은 본질적으로 고통 그 자체다."

 

"인간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갈구한다. 산다는 것은 욕망한다는 것이고 욕망은 부재를 전제한다."

 

"아무것도 욕망할 것이 없다면 권태가 시작된다. 이는 심지어 욕망보다도 훨씬 더 고통스럽다."

 

"권태는 우리로 하여금 존재의 공허함을 마주하게 하며 이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욕망이라는 고통과 권태라는 고통 사이에서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은 뚜렷한 수준의 고통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매우 짧게나마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일시적인 고통의 유예를 가리켜 '행복'이라 부른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잠시 요약하자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항상 갈구하게 되어있기에 인생은 고통이다. 또, 그 끝에는 권태가 있는데 그건 더 고통스럽다. 최선은 이를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나는 것 뿐인데 이것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확실히 음울한 면이 있다. 게다가 사랑을 못 받았던 면이 많아서인지 염세적인 면도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철학적으로는 생각해볼만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이어서 살펴보자.

 

"쇼펜하우어에게 있어서 철학이란, 더 정확히는 형이상학이란, 세계를 완벽히 기술하는 것 이상과 관련돼 있다. (...) 형이상학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제공해야 하고 "고통과 죽음 속에 신뢰할 만한 위안"을 제공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형이상학은 종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종교는 거짓을 말함으로써 위안을 제공하며 따라서 신뢰할 만하지 않은 반면 형이상학은 훨씬 견고한 무언가를 통해, 즉 진리라는 "부서지지 않는 다이아몬드"를 통해 우리의 존재론적 불안을 달랜다는 점에서 더 신뢰할 만하다."

 

하지만 앞서 쇼펜하우어의 얘기에 따르면...

 

"우리는 영원히 고통을 겪을 운명으로 보인다. 다행히도 한 가지 탈출구가 존재한다. 쇼펜하우어는 이를 가리켜 "의지의 부정"이라 부른다."

 

"우리는 금욕주의자가 됨으로써 의지에 반하는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원하기를 그만두고 더 이상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으며 무언가에 애착을 느끼기를 거부한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삶의 진정한 목적은 의지의 부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정말 뭔소린가 싶다. 좀 이해하기 쉽게 말해보자면, 어차피 삶은 고통이니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금욕주의자가 되는 것이 삶의 진정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2. 쇠렌 키르케고르

 

키르케고르의 작품은 오직 한 가지 주제로 귀결된다.

 

"어떻게 진정한 기독자, '진짜' 기독자가 될 것인가"

 

하지만 이 주제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기독교인이 될 것인가와는 굉장히 다른 접근이다.

 

"기독자가 되는 것은 사실상 "자기 자신이 되는 것"과 차이가 없으며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개별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야만 한다."

 

그는 자기 자신이 되지 않는 가장 흔하고도 자연스러운 방식은 '심미적' 삶이라고 한다. 언뜻 보면 심미적 삶은 그다지 나빠보이지도 않고, 흔히 우리가 사는 방식과 똑 닮았다. 우리의 욕망을 따르고, 정신적, 육체적 만족과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얘기처럼 결국 이는 계속 지속될 수 없는 법이며(권태) 고통이 반드시 찾아온다. 죽음과 함께.

 

"키르케고르는 심미적인 인생관이 근본적으로 "절망"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키르케고르는 <인생행로의 여러 단계>에서 실존에는 세가지 영역이 있다고 하는데 심리적, 윤리적, 종교적 실존이다.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윤리적 실존은 바로 '자유'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주권을 말한다.

 

"윤리적으로 사는 한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을 붙들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즐겁게 하기 위해 그리고 권태를 저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좇을 필요가 없다."

 

그는 윤리적 삶은 '의무'를 다해야하는데 이 의무는 "우리의 가장 깊은 본성의 표출"이어야 한다.

 

"윤리에 있어서 순수한 객관성을 달성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 질문은 절대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형태를 취할 수도 취해서도 안 되며 항상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같아야 한다."

 

종교적 실존은 윤리적 실존을 한단계 더 확장시킨 개념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말하는 진정한 기독자가 되는 개념이다. 그가 따라해야 한다고 하는 신앙은

 

"가장 고통스러운 고립감을 가장 강력하게 표현하는 신앙이다."

 

이라면서, '자기 자신의 눈으로 볼 때' 영웅이 되도록 행동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한 것은 없지만 자신의 인격 안에서 살아가면서 스스로의 증인이 되고 스스로의 판사가 되며 스스로의 고소인, 유일한 고소인이 된다는 것 (...) 이 과제가 특히 어려운 이유는 가능한 한 모든 인간 이성에 저항할 것이기 요구되기 때문이다."

 

키르케고르는 마치 아브라함이 보편적인 관념을 집어 치우고 본인의 신앙에 따라 이삭을 죽이려 한 것이 바로 그런 예라고 말한다.

 

"믿음의 기사는 개별자가 되기 위해 보편자를 포기한다."

 

"믿음은 이해를 거스른다. 신이 모든 이해를 거스르기 때문이다."

 

3. 허먼 멜빌

 

멜빌의 역작 <모비딕>은 당시에는 환영을 받지 못했다. 멜빌의 비관적인 철학 때문이다. 지금 다시 보면 그다지 비관적이지도 않은 것 같은 그의 철학을 짧게 들여다 보자.

 

"우리 인류가 세계의 이면에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며 알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신 같은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 혹은 있더라도 그 존재가 어떤 특성과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현상 이면에 관심이 있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는 만물이 무언가를 '의미'하기를 바란다."

 

"답을 간절히 갈구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실마리조차 얻지 못할 것이다."

 

4.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도스토옙스키 작품의 줄거리는 대개 자살이나 죽음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 있다.

 

그는 '평가적 허무주의'가 인간이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허무주의를 반박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소설에서 그는 이성적인 논증을 벌이는 대신 그런 세계관을 가지고 살 때 실질적으로 어떤 결과가 닥치는지 제시함으로써 허무주의와 삶이 양립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예를 들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는 이러한 화두를 던진다.

 

"인간의 불멸성은 신의 존재와 연결돼 있다. 인간의 불멸성 없이는 무엇도 말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므로 우리가 무엇을 하든 안 하든 아무 상관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신의 존재는 '도덕적' 필연성을 지닌다."

 

"신의 존재는 도덕적으로는 필연적일지 모르나 동시에 과학적으로 혹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논리의 전개를 기반으로 키릴로프의 허무주의는 악마에게 옹호를 받고, 허무주의로 말미암아 유토피아적인 사회주의를 이루고자 시도하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도스토옙스키는 당시에 퍼져있던 철학에 의해 삶이 위협받고 있다고 느꼈다.

 

"서구의 계몽주의 운동 이후 러시아를 엄습한 이 철학에는 무신론, 공리주의, 물질주의, 과학지상주의, 합리적 이기주의, 결정론과 같은 사상들이 위태롭게 뒤섞여 있었다. 이런 철학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당연하게 여겨진다면 우리 모두가 허무주의자가 될 것이 뻔했다."

 

이러한 생각을 기반으로 그는 앞서 대표적인 역작들을 남겼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꼭 한번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5. 레프 톨스토이

 

톨스토이는 귀족집안에서 제법 안정적으로 자랐다고 한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모든 것을 누린 셈이다. 하지만 행복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았다. 톨스토이는 자신이 찾지 못한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찾으려고 평생 애쓴 것으로 보인다. 또 그는 온갖 업적과 성공 등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딱히 중요하지 않다는 감정에 시달렸다."

 

"톨스토이는 청년 시절부터 목표를, 삶의 목적을 찾고자 했다. (...)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를 찾아야 했다."

 

그는 이런 과정에서 글쓰기의 소질을 알아 차리고 작가로서 대단한 명성을 얻고 소위 성공한 삶을 살았으나 끝내 행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성공적인 소설가로서의 삶은 부유한 한량으로서의 삶보다 더 보람 있고 더 많은 존경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결국 마찬가지로 무의미했다. 어찌됐든 그런 삶조차 결국 죽음으로 끝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쟁과 평화>에서는 운명론적 관점을 <안나 카레니나>는 '자유의지'를 보이고 의미있는 삶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남겼다. 그리고 <부활>에서 노년의 톨스토이는 '의미있는 삶',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삶'의 열쇠는 '보편적 사랑'이다.

 

"하지만 여전히 죽음이라는 존재가 풀리지 않는 의문을 제기하는 듯하다."

 

6.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말은 모두가 아는 말이다. 이 말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자.

 

"19세기 말엽 서유럽을 지배하던 세계관은 유물론과 인본주의였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데 더 이상 신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사실상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을 믿기를 관뒀다. 이런 모호한 상태를 끝내기 위해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우리가 신이 없는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현실에 따르는 결과를 마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즐거운 학문>에서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냉혹한 선언을 한다. 그리고 신을 죽인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라 밝힌다. 우리는 더 이상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음으로써 신을 죽였다."

 

"이제 세상은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변했다. 신이 없이는 무엇도 확실하지 않고 무엇도 분명하지 않으며 무엇도 보장할 수 없다. (...) 방항셩을, 목적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우쳤기 때문에 무엇도 옳고 그른 것 같지 않다. (...) 신이 없는 세계는 분명 끔찍한 곳이며 이에 대한 합당한 반응은 모든 것이 공허하고 무의미하다고 매도하면서 심각한 우울감에 빠지는 일밖에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신이 사라진 세계에 대응하는 방법 중에는 허무주의 말고도 훨씬 건강하고 진보적인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을 죽였을지는 모르나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위 후손에게 엄청난 이바지를 했다. (...) 신이 죽음으로써 이전에 존재하던 가치들을 대체할 새로운 가치들이 등장했다."

 

"신의 죽음은 곧 우리 인류의 부활이다. (...) 다시 말해 명령을 듣지 않고도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영혼이 돼야 한다. 확실성을 갈망하지 않는, 안전망이 필요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 돼야 한다. 오히려 자신이 누리는 자유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에 기뻐하면서 가능성만을 즐기는 영혼이 돼야 한다."

 

이 주장은 삵도 즐겨 읽었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자세히 다뤄진다. 니체는 여기까지.

 

7. 윌리엄 제임스

 

윌리엄 제임스는 <실용주의>로 알려진 '실용주의'의 원작자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특정한 명제가 참이든 거짓이든 실용적인 관점에서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면 그 명제는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익숙한 명제같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제임스에게 있어서 누군가에 의해 어떤 식으로인가 경험되지 않는 대상은 실재하는 대상이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경험되지 않는 대상은 우리에게 아무런 차이를 가져오지 않기 때문이다. (...) 반면 경험은 행동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경험은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의미'는 확실히 우리에게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의미 있기를 바라며 의미 없어 보이는 삶을 보고 탄식한다."

 

"어떤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일종의 열의를 경험한다면, 계속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독려하는 삶의 즐거움을 경험한다면 그 삶은 의미 있는 삶이다. 반대로 그런 열의가 결여된 삶을 의미가 없는 삶이다."

 

그렇다고 아이러니하게 이 뜻은 그런 열의가 없다고 살 의미가 없다는 대단히 철학적인 뜻이 아니고 오히려 살아갈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자의식이 강한것이라 말한다.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을 사는 데는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는 어느 부면이든 삶의 특정한 부면에 강렬한 '흥미'를 가지는 것이고 그런 흥미를 추구하는 와중에 수반되는 혹은 결과로 따라오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또 그는 다른 책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즐거움을 놓치는 것은 전부 놓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즐겁게 살자.

 

8. 마르셀 프루스트

 

마르셀 프루스트는 역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을 펴낸 인물이다. 이 소설에서 그는 주로

 

"현재를 붙들고 있을 수 없다는 사실과 과거를 다시 돌려받을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로 인한 상실감과 회환"

 

을 다루었으며,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 현실에 대처해야 함"

 

을 다루고 있다.

 

"결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해방과 구원의 가능성에 관한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음으로써 죽음 자체까지 극복할 수 있는 예술과 창의성의 위력에 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9.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은 나와 같은 기계공학도 출신이다. 그런데 그가 앞서 나온 톨스토이의 <아무도 모르는 예수>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을 기회가 있었고, 이후로는 그는 철학자가 된다.

 

"인생 내내 비트겐슈타인은 "무언가 긍정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병적인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실제로 후세에 그는 철학자로서 대단한 인물이 되었지만 생전에는 철학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실제로 그는 뛰어난 제자들을 볼 때면 철학을 업으로 삼지 말라고 만류했다. 그 대신 무역을 배우거나 공장에서 일하는 등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독려했다."

 

"<논리철학논고>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이 우리에게 세계에 관한 어떠한 새로운 사실도 말해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철학적 문제를 다루는 대부분의 명제와 질문은 거짓이 아니라 무의미하다."

 

"우리가 세계에 관해 알 수 있는 모든 사실은 자연과학이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리고 철학은 과학이 아니다. 철학이 할 수 있는 일은 우리의 사고를 명료하게 만드는 것이다. 바로 그 과정, 즉 명료화 행위가 철학의 본질이다."

 

이 다음부터가 익히 알려진 비트겐슈타인의 생각들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나의 언어의 한계가 곧 나의 세계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이러한 철학을 전달하며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이 가치가 있다면 그 이유는 이 책이 모든 철학 문제를 해결해서 얻을 수 있는 성과가 얼마나 미약한지 입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다. 그래도 이렇게 끝나면 허무하니까 비트겐슈타인의 멋진 대사로 마치겠다.

 

"매 순간 존재하기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이 스스로 멈출 때까지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 속에서 살면 된다."

 

10. 알베르 카뮈

 

'세계가 궁극적으로 무의미하다는 느낌'은 카뮈 철학의 출발점이자 뿌리다.

 

"우리는 우리가 왜 여기 존재하는지, 우리의 존재와 고난과 분투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기를 원하지만 아무리 답을 찾으려고 노력해도 세계는 어떤 실마리도 제공하지 않으며 입을 열지도 않는다."

 

"설령 운이 좋아서 행복을 약간 찾더라도 결국 우리의 행복이 소멸할 수밖에 없음을 확신한다. 세계에서 고통은 거의 불가피하다. 그리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 죽음이 우리의 열망에 온전한 끝을 가져올 것이다. (...) 여기에 우리의 잘못은 없다. 결국 마땅한 이유도 없는 셈이다. (...) 결국 무엇도 아무 의미가 없다."

 

언뜻 보면 허무주의 같은 카뮈의 철학이다. 더 살펴보자면 이렇다.

 

"카뮈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원하는 것과 우리가 세계로부터 얻는 것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 상황을 가리켜 '부조리'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철학의 근본적인 과제"다.

 

"삶이 살아지려면,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으려면 삶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어야 할까?"

 

"카뮈는 세계에 우리를 보살피는 부모 같은 존재가 없다는 사실, 세계가 우리에게 완전히 무관심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우리에게 해방감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삶을 그만큼 더 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미리 정해진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에게서 압력을 덜어주고 족쇄를 풀어주기 때문이다."

 

"카뮈의 카리굴리는 "무의미함"이 "선물"이라고 이야기한다."

 

"카뮈는 '우선' 우리가 삶을 최대로 이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희망도 없지만 후회도 없이 삶을 온전히 살아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 바로 지금 이 순간 가지고 있는 그리고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에 몰두해야 한다.

 

"부조리한 세계에서 삶의 의미란 "지금으로서는 미래에 무심한 채 주어진 모든 것을 다 써버리고자 하는 열망"에 지나지 않는다."

 

"부조리를 겪는 인간의 이상"

 

카뮈의 <페스트>의 핵심은 '반항'이다.

 

"반항은 무언가에 '맞서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카뮈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삶이라는 한계 안에서 반항을 하면서 '부조리를 겪는 인간의 이상'를 좇는 것이 삶의 무의미함이라는 선물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아닐까?

 

┃ 논의 및 삵 평

저자가 독일 철학자인만큼 사상가들의 작품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깔끔하게 잘 설명해준 것이 참 좋았다. 특히나 사상가들의 책을 이름으로만 익히 들었지 막상 꺼내 들어 읽기 시작하면 졸린 작품들이 제법 많다. (과거에 철학 서적과 함께 잠든 날은 제법 많았다...)

 

이 책 덕분에 위대한 사상가나 철학자로 분류되는 이들의 세계관을 짧은 시간에 훑을 수 있었다. 서평에도 많이 담고 싶었으나, 하다보니 분량 조절이 안돼서 줄거리 요약 부분을 실패한 듯하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싶다면 그래도 정상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저자도 이 책이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던져주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마무리를 들으며 자기만의 생각에 잠겨보자,

 

"이 책에는 결론이 없기 때문이다. (...) 이 책이 그랬듯이 우리의 삶은 우리에게 간결하고 함축적인 결론 따위를 제시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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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우리는 살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0 | 2021.12.2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인간이 생각하기 시작하고부터 시작된 질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죽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요. 그 이유와 의미에 대해 저자는 10명의 철학자를 통해 힌트를 얻고자 이 책을 집필했습니다. 철학이라는 말만 나와도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무래도 어려운 단어와 알듯 말듯한 의미심장한 단어;
리뷰제목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인간이 생각하기 시작하고부터 시작된 질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죽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요. 그 이유와 의미에 대해 저자는 10명의 철학자를 통해 힌트를 얻고자 이 책을 집필했습니다.

철학이라는 말만 나와도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무래도 어려운 단어와 알듯 말듯한 의미심장한 단어들로 인해 내가 읽었다고 하는걸 과연 읽었는지 의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읽은 시점에따라 모든게 맞기도 하면서 틀리기 때문에 정답이 있을거란 기대를 아주쉽게 날려 버리기도 합니다. 저자도 말합니다.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이 책이 어떤 해답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이죠. 각자의 삶과 죽음은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는것이라는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죽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없다면 살아야 할 가치가 사라지기에 삶에 대한 의지가 없어집니다. 죽어도 죽지 못한다면 삶이라는게 지옥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모든건 상대적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A가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B가 있어야 한다. 물론 이 논리도 철학적으로 분석을 한다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가 꼭 그것 하나만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게 때문입니다.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삶에서 살아가야 할 욕망이 생긴다면 충분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깁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 이유라는 것을 얻기위해 철학을 논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철학에는 단어들이 즐비합니다. 무엇을 사용하느냐에따라 의미는 달라집니다. 그렇기에 해석의 차이로 인해 전혀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요. 여기서 하려고 했던 것은 삶과 죽음을 다룬 10명의 작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 죽음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느껴보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든 삶의 주체는 나이며 나는 사랑을 갈구하고 욕망을 향해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루기위해 하루하루 견뎌내며 살아갑니다. 이 모든 것이 끝나는 지점에서 죽음이 기다리고 있지만 이는 죽음에 다다르지 않고서는 죽음에 대해 알 수없고 느낄수도 없기 때문에 죽음보다는 삶을 살아가야 할 전제를 늘 만들고 이를 변화시켜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고 희생보다는 나를 좀 더 사랑하자는 생각들이 지배적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살아왔던 삶에서 나를위해 살아가야 하다보니 목표가 사라지고 흥미조차 생겨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나를 제대로 나로 느끼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이는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살아야하는 이유를 스스로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삶과 죽음은 곧 내가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같은 삶이라도 다른 삶을 사는게 우리네입니다. 그렇기에 좀더 관심을 두고 흥미있는 일을 만들고 욕구가 생기도록 하는게 살아야 하는 이유라 하면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10명의 작가이자 철학자들의 생각이 어렵게만 들리겠지만 그건 당연합니다. 이걸 다 이해했다면 그 사람이 곧 희대의 철학자로 남을 수 있을테니까요. 오늘은 삶과 죽음에서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해 배워봅니다.

이 책은 #청림출판 #추수밭 출판사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좋은 책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 시간에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좋은 책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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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17건) 한줄평 총점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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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습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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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 | 202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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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처할 운명이지만, 모든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운명, 죽음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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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3 | 202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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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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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 20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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