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요양원 '아인프리트'이다. 기다란 본관과 그 곁의 별관이 모두 백색(白色)으로 정원 한가운데에 직선으로 위치해 있다. 정원에는 동굴과 통로와 수피(樹皮)로 만든 정자가 재미있게 배치되어 있다. 요양원 건물의 슬레이트 지붕 너머에는, 푸른색 전나무로 이루어진 육중한 산들이 연한 계곡을 보이면서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레안더 박사가 이 병원을 지휘하고 있다. 그로 말하면 가구(家具) 속을 메우는 말의 털처럼 뻣뻣하고 곱실거리는 까만 팔자(八字) 수염과, 두텁고 번쩍거리는 안경, 과학이 냉정하고 딱딱하게 만들어 놓고 조용하고 너그러운 염세관(厭世觀)d로 가득 채워 놓은 사나이의 모습, 이런 것들을 가지고 박사는 간결하고 묵묵한 태도로 환자들을 자기의 지배하에 두는 것이다--환자들, 그들은 자기 스스로 법칙을 만들어서 그것을 지키기에는 너무 약하기 때문에, 그의 엄격한 규율에 의지하려고 그에게 전재산을 갖다 바치는 사람들이다.
폰 오스텔로 간호사에 대하여 말하자면, 그는 대단히 헌신적인 열성으로 병원의 전체 살림살이를 돌보고 있다. 그 여자는 얼마나 부지런히 계단을 오르내리고, 요양원의 한쪽 끝까지 뛰어 다니는 것일까! 부엌과 음식물 저장고에서 지휘를 하는가 하면, 세탁물을 간직하는 선반을 이리저리 기어올라가기도 하고, 하인들을 호령하는가 하면, 절약과 위생과 맛과 외관을 기초로 식탁을 마련하기도 한다. 그 여자는 엄청난 조심성을 가지고 살림을 한다. 그와 같은 극단적인 활약의 이면에는 자기를 가정으로 이끌어가려고 생각지 않는 남성 전체에 대한 꾸준한 비난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의 양쪽 볼에는, 언제라도 레안더 박사의 부인이 되고자 하는 희망이 지울 수 없는 동그랗고 새빨간 두 개의 점이 되어 불타고 있다.
오존과 고요하고 고요한 공기......폐병환자에게는 이 아인프리트를, 심지어 레안더 박사의 경쟁자나 시기자가 무어라고 말하든 가장 열렬히 권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폐결핵 환자뿐만 아니라 각종의 환자--남자나 여자나 심지어 아이들까지 머무르고 있다. 레안더 박사는 지극히 여러 방면으로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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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대와 더불어 젊고 또한 거칠었다. 그리고 시대에 의하여 좋은 충고를 받지 못한 그는 공적인 생활에서 걸려서 넘어지고, 가끔 실수를 하고, 약점을 드러내고, 말과 작품에서 상식과 예절에서 벗어나는 잘못을 범하였다. 그러나 그는 위신을 획득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한 위신에 대한 충동과 자극은 그가 주장한 바에 의하면 모든 위대한 재능에는 선천적으로 구비되어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의 인생 행로 전체가 의식적이며 반항적이며 회의와 해학의 모든 장애를 뚫고 위신에로 향하여 당당하게 기어올라가는 상승이었던 것이다. 생생하고 정신적으로 구애받지 않는 작품의 명확성이 일반 대중을 즐겁게 만드는 비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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