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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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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8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232g | 120*188*20mm
ISBN13 9791190475822
ISBN10 1190475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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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구름 속에서는 계속해서 번개가 번쩍이고 있었다. 구름 속 작은 번개는 빨강, 노랑, 보라색 등의 다양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구름은 호빵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더니 송이버섯 모양을 만들어냈다. 날씨는 쾌청했고 햇살은 주변의 산과 바다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지만, 우라카미만이 거대한 구름 그림자에 뒤덮여 새까맣게 보였다. 마침내 콰앙 소리와 함께 천지가 진동하더니 옷자락이 펄럭이고 나뭇잎이 날아다녔다.
--- p.26

병원 광장에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쓰러져 있고, 거기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신들이 벌거벗은 채 뒤엉켜 있었다. 하시모토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여기는 지옥이야, 지옥. 비명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완전한 사후세계였다.
--- p.33

돌아보니 아기 엄마는 중상을 입어 의식이 없었고, 2개월 정도 된 갓난아기가 배꼽을 드러낸 채 옆에서 울고 있었다. … 엄마의 품에 안겨주자 아기는 우렁차게 울었다. 그 순간 의식을 잃은 엄마의 손이 아기를 향해 움직였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박처럼 굵고 검은 비였다.
--- p.75

단 한 발로 이렇게 많은 생명을 빼앗고, 이렇게 엄청난 파괴력을 보인 폭탄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간호부장이 달려와서 한 장의 종이를 건넨다. 어젯밤에 적기가 뿌린 삐라였다. 삐라를 훑어본 나는 무심코 소리를 질렀다.
“아! 원자폭탄!”
나는 다시 한 번 어제와 똑같은 충격을 받았다. 원자폭탄이 완성되었다.
--- p.92

지금 우리가 진료하는 환자의 증상이야말로 의학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자료가 된다. 이를 외면한다면 단순히 자기 태만이 아니라, 귀중한 연구를 포기하는 것이다. 과학자로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도 이미 원자병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해서 안정을 취하지 않으면 증상 악화로 죽거나 중태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학문적 양심은 내게 환자를 진료하고 정확히 관찰하고 실태를 파악하고, 그리고 치료법을 찾아내라고 끊임없이 격려한다. 수술 장비도 없고 검사 도구도 없다. 종이도 연필도 잃어버렸다. 고작 메스와 핀셋과 봉합 바늘과 얼마 남지 않은 소독약과 붕대로 쓸 천을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 들고 다닐 뿐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두뇌가 있고, 눈이 있고, 손이 있다.
--- pp.126-127

우리의 임무는 지금부터가 아닌가. 국가의 흥망과는 관계없는 개인의 생사야말로 우리의 진짜 임무다. 일본이 개인의 생명을 너무 함부로 다룬 탓에 이런 비참한 꼴에 처한 것은 아닐까. 생명 존중의 초석은 다름 아닌 바로 이곳에 있다.
--- p.138

전쟁과 우라카미의 궤멸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죄악에 대한 벌로서, 일본 유일의 성지인 우라카미가 희생의 제단에 바쳐질 순결한 희생양으로 선택된 것은 아닐까요.
--- p.176

종이 울린다. 폐허가 된 성당에서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원자 벌판에 울려 퍼진다. 이치타로 씨가 청년들과 함께 벽돌 밑에서 찾아낸 종은 5십 미터 높이의 종탑에서 떨어졌는데도 상처 하나 없었다. 크리스마스 저녁에 겨우 종을 매달았고. 청년들이 아침, 점심, 저녁에 종을 울렸다. 예전의 그리운 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 pp.19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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