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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세계사+한국 가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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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1년 08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424쪽 | 618g | 152*225*30mm
ISBN13 9791156122012
ISBN10 115612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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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아메리카노’에서 커피 믹스, 모카에서 강릉까지
다른 커피사와는 다른 인문향이 물씬

우리나라는 2018년 기준 커피 수입량이 세계 6위였다. 성인 1인당 연간 약 353잔의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나타나 세계 1인당 커피 소비량 132잔의 3배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가히 ‘커피공화국’ ‘커피 대국’이라 할 만하다. 그러니 커피 감식안이 문화인의 한 증표로 치부되거나 역사, 제법 등 커피와 관련된 책도 숱한 것이 당연하다. 한데 교육학자에서 커피 인문학자로 변신 중이라 자처하는 지은이가 쓴 이 책은 여느 커피사 책과 다르다. 기원, 제법 등 커피 자체뿐 아니라 커피문화를 짚어낸 점이 그렇고, 무엇보다 최초 음용자에서 커피농장까지 한국의 커피사를 한눈에 정리한 덕분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프롤로그: 커피를 만나다

1부
01_커피 탄생 설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커피의 탄생은 수수께끼|커피나무의 고향은 에티오피아|커피 음료의 기원
02_이슬람 커피 문화의 탄생: 중국차의 영향
중국차가 보여 준 커피의 길|카이르 베이의 커피 탄압설|쿠프릴리의 커피 탄압설|커피 탄압의 역사=가공의 역사|야생 식물에서 경작 식물로|모카 커피의 전설
03_유럽에 전해진 커피 이야기와 커피 향
커피 이야기, 유럽에 전해지다|이슬람 음료 커피에 대한 유럽인의 거부감|유럽인의 코와 입을 자극한 커피
04_제국주의와 자바 커피의 탄생
고향을 떠난 커피나무|자바 커피를 탄생시킨 비첸|막 내린 예멘의 커피 독점
05_인도양, 대서양을 건너 브라질로
카리브해에 심어진 ‘고귀한 커피나무’|프랑스 왕실의 커피, 부르봉 커피|세인트헬레나에 뿌려진 커피 씨앗|사랑과 음모의 전설, 브라질 커피
06_노예가 만든 커피, 커피가 만든 혁명
아프리카 노예의 눈물로 자란 중남미 커피|카페에서 시작된 프랑스혁명|커피와 함께한 미국의 독립전쟁
07_차를 택한 영국, 커피를 택한 대륙
커피를 버리고 차를 선택한 영국|〈커피 칸타타〉를 탄생시킨 프로이센|카페 천국 오스트리아|북유럽으로 번진 커피 소비

2부
08_커피의 대중화와 나폴레옹

산업혁명이 만든 커피의 대중화|치커리 커피를 마시는 파리지엔느|커피 섬 세인트헬레나의 나폴레옹
09_커피 소비의 리더 미국, 거대 생산국 브라질
커피 소비의 리더 미국의 등장|커피 생산의 거인 브라질의 등장
10_전쟁, 커피 그리고 커피 전쟁
소비자 대표와 생산자 대표의 전쟁|가짜 커피와의 전쟁|제1차 세계대전, 저소비와의 전쟁|신흥 커피 생산국 사이의 전쟁|대공황과 가격 폭락|제2차 세계대전, 커피 맛과의 전쟁|에스프레소와 인스턴트커피의 전쟁

3부
11_1861년 4월 7일 한양에 배달된 커피

동아시아에 등장한 커피/ 철종 11년 춘 3월 커피를 주문하다|주문한 지 1년 1개월 1일 만에 배달된 커피
12_조선 최신상 커피의 유행
신문에 등장한 첫 커피 기사|조선 ‘최신상’ 음료, 커피|조선 최초의 커피 광고와 커피하우스|고종 황제 커피 독살 기도사건
13_끽다점 풍경
끽다점이 연 20세기 조선|식민지 초기 끽다점 풍경|끽다점 붐과 광고 홍수
14_카페 전성시대
카페의 등장과 융성|악惡카페와 공설카페
15. ‘모뽀’, ‘모껄’ 그리고 제비다방의 추억
다방의 출현|이상의 제비다방|조선의 다방은 ‘조선만의 그것’
16_융 드립하는 현모양처
유행하는 커피 상식|융 드립하는 현모양처|아이들도 마시는 커피|커피 유해론, 커피 해외 토픽
17_대용 커피를 마시며 군가를 듣는 다방
‘가배당’을 우울하게 한 대용 커피|다방에서 듣는 군가|독신자용 커피포트와 아이스 커피의 등장|짓밟힌 다방의 푸른 꿈

4부
18. 인스턴트커피와 커피 제1의 물결

우리 시대의 커피|인스턴트커피가 만든 제1의 물결|미국에 의한 커피 저급화|인스턴트커피, 유럽의 커피 문화를 흔들다
19_국산 커피의 탄생과 DJ오빠의 시대
전쟁 전후 ‘커피당’의 비명소리|쿠데타에 말라 버린 ‘오아시스’|다방 커피와 도끼빗을 꽂은 DJ오빠|믹스 커피, 자판기 그리고 티켓 다방
20_커피 전문점의 등장과 커피 제2의 물결
커피 전문점의 탄생|커피 체인점 붐과 커피 제2의 물결|다방의 몰락
21_커피를 갈아 황금을 만들다
커피가 보여 준 경제위기 조짐|거대 커피 기업의 탄생|커피특별시 강릉
22_사라진 규칙, 커피 제3의 물결
커피 세계의 새로운 스타들|모험과 변화를 추구하는 유럽의 젊은 커피인들|스페셜티 커피 중심의 아랍|킷사텐과 결합한 일본 커피 문화
23_한국형 제3의 물결, 커라밸
8만 커피 전문점, 50만 바리스타, 1,000큐그레이더의 나라|세계 커피 박물관의 반이 한국에|또 다른 도전, 커피 농장

에필로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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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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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커피 재료로 인기 높은 아라비카종 커피나무의 고향은 아프리카 북쪽 에티오피아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1930년대 이전까지는 아비시니아Abyssinia라고 불린 에티오피아 남서부의 고산지대 카파Kaffa 지역(지금의 짐마)으로, ……
--- p.18

인류가 지금 형태의 뜨거운 액상 커피 음료를 널리 마시게 된 것은 15세기 중반쯤이고, 커피가 처음으로 유행한 곳이 예멘 지역이었다
--- p.24

커피의 역사에서 칼디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22년이었다. 윌리엄 우커스(1873~1945)가 《올 어바웃 커피》에서 나이로니의 글을 인용하면서 ‘칼디와 춤추는 염소들Kaldi and his dancing goats’이라는 제목의 삽화를 넣었다. …… 우커스에 의해 칼디라는 목동이 등장하고 낙타 대신 염소가 커피 기원 전설의 주인공으로 둔갑한 것이다
--- p.28

15세기 중반 어느 시점부터 예멘을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커피음료는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점차 메카, 메디나 등 인접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커피 음료가 유행하면서 이슬람교의 상징 도시인 메카에 1500년경 세계 최초로 커피하우스kahve hanes가 등장했다
--- p.38

술탄 아무라드 4세(1612~1640) 시대의 재상이었던 쿠프릴리는 칸디아(지금의 크레타)와의 전쟁 중에 반정부 선동을 두려워하여 도시의 커피하우스들을 폐쇄시켰고, 이를 어길 경우에는 매질로 다스렸다고 한다. 커피를 마시다 거듭해서 걸리면 가죽 포대에 넣어 보스포루스 바다에 던져 버렸다고도 한다
--- p.43

1683년 오스만터키가 빈을 공격함으로써 시작된 전쟁에 터키 군대가 엄청난 양의 커피 원두를 가져갔고, 이것이 오스트리아에 커피를 유행시킨 계기가 되었다는 유명한 콜시츠키Kolschitzky 이야기 또한 쿠프릴리의 커피 탄압설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 p.45

16세기 후반 경에는 예멘 지역이 ‘아라비아 펠릭스’라고 불리면서 커피 생산의 기원지로 알려지게 되었고, 모카는 커피 혹은 커피 무역과 동의어가 되었다. 에티오피아 하라 지역 커피와 예멘 산악지대 커피가 모여서 다른 이슬람 지역과 유럽으로 팔려 나가는 출발지가 바로 모카였다
--- p.49

네덜란드에 의해 실론과 자바 등에서 커피나무가 경작되기 시작한 18세기에 이들 지역에서 생산하는 커피에서는 모카 커피가 지닌 특유의 달콤한 맛과 향이 나지 않았다. 따라서 설탕이나 초콜릿을 가미하여 모카 커피와 비슷한 맛을 내려는 문화가 널리 생겨났고, 이로 인해서 커피에서 초콜릿 향이 나거나 단맛이 가미된 커피를 모카 커피로 부르게 된 역사는 모카 커피의 명성을 말해 준다
--- p.51

1592년 1월 교황이 된 클레멘트 8세가 커피 반대론을 주장하는 기독교도들의 뜻에 따라 커피를 심판하기 위해 직접 커피를 맛보았는데, 커피를 추방하기는커녕 커피에 세례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 p.57

1674년에 발표된 〈커피를 반대하는 여성 청원서The Women’s Petitionagainst Coffee〉는 여성들의 이런 불평을 담고 있다. “커피는 우리 남편들을 거세시켰고, 힘을 빼앗아 버렸다.” …… 이런 다양한 논쟁과 우려 속에 정치적 불평과 불만의 본거지로 변한 커피하우스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찰스 2세는 1676년 ‘커피하우스 금지령A Proclamation for the Suppression of Coffee Houses’을 발표하였다
--- p.64

카페 프로코프는 18세기 전 기간을 통해 파리의 지성인들이 즐겨 찾는 최고의 사랑방이었다. 이곳에서 볼테르가 글을 쓰고, 루소가 강연을 하였으며, 디드로가 백과사전 원고를 썼다. 어린 군인 나폴레옹은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돈 대신 모자를 맡기기도 했다. 카페 프로코프는 커피를 마시는 장소에서 출발하여 프랑스 문화와 정치 담론의 탄생지가 되었다
--- p.66

콜시츠키는 이것으로 커피 판매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그 사업체 명칭이 블루보틀Blue Bottle이었다. 요즘 제3의 커피 물결을 이끌고 있는 스페셜티 카페 블루보틀이 이 명칭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것이 빈에 커피가 처음으로 전파된 과정의 이야기이다
--- p.71

비엔나커피의 원래 명칭은 아인슈페너Einspanner다. 하나라는 뜻의 ‘아인ein’과 말고삐라는 뜻의 ‘슈페너spanner’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로 한 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뜻한다. 빈의 마부들이 추운 겨울에 손님을 기다리며 마차 위에 앉아서 뜨거운 커피 위에 설탕을 넣고 생크림을 듬뿍 올려서 마신 것에서 유래했다
--- p.72

깨어나기 시작한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장소가 바로 카페였고, 이들의 의식에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한 음료가 바로 커피였다. “커피는 많은 바보들이 일시적으로나마 현명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는 몽테스키외의 말에 끌리듯이 그동안 구체제에 복종하며 살던 시민들이 커피 향을 맡고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 p.105

1789년 7월 12일 일요일, 카페의 거리였던 팔레루아얄에서 변호사 출신 언론인 카미유 데물랭이 혁명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였다. 바로 그 유명한 카페 프와Cafe Foi에서였다. 데물랭의 연설에 감동한 카페 손님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행진을 시작함으로써 혁명이 시작되었다. 카페 프와에 모인 시민들은 숙청 명단을 만들었고, 이들의 머리를 카페 카보Cafe Cabo로 가져오면 현상금을 준다는 공고가 나붙었다. 카페가 시민혁명의 기지였다
--- p.106

1712년경 프랜시스 홈스가 운영하던 필라델피아의 ‘번치오브그레이프스Bunch of Grapes’라는 이름의 커피하우스는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던 장소로 유명하다
--- p.109

교회 음악으로부터 멀어진 바흐는 1729~1742년까지 대학생 연주 단체인 콜레기움 뮤지쿰Collegium Musicum을 맡아 과외 활동에 몰두하였는데, 이 시기에 만든 대표적인 곡 중 하나가 바로 유명한 〈커피 칸타타〉(BWV 211)다. 콜레기움 뮤지쿰의 정기연주회가 열리던 곳이 짐머만 카페Cafe Zimmermann였고, 이 카페를 위해 만든 음악이 바로 〈커피 칸타타〉였다. 이런 면에서 보면 〈커피 칸타타〉는 최초의 카페 광고 음악이다
--- p.115

대왕은 새로운 대책을 내놓았다. 그것은 왕이 세운 커피콩 로스팅 공장에서 합법적으로 로스팅된 것 이외의 커피는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였다. 불법 거래되는 커피가 가정에서 로스팅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계획이었다. 퇴역 군인들에게 커피 냄새를 탐문하여 색출하는 일을 맡겼다. 이른바 커피 스니퍼coffee snipper였다
--- p.118

바쁜 노동자들은 간편한 먹을거리를 찾아야 했다. …… 커피가 최소의 영양분과 활기를 가져다준다고 믿는 공장 노동자들에게 커피는 훌륭한 아침 대용품이었다. 알코올이 들어 있는 맥주나 긴 조리 시간이 필요한 스프보다는 정신을 맑게 해주고 간편히 마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백 년 동안 귀족이나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커피가 노동자들의 일상음료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 p.132

미국의 커피 소비 역사에서 가장 큰 전기를 제공한 것은 남북전쟁(1860~1865)이었다. 북군의 경우 하루에 43그램의 커피를 보급품으로 받았는데 이는 하루에 거의 열 잔 정도의 커피를 내릴 수 있는 양이었다. 소총의 개머리판 부분에 커피 그라인더를 장착할 정도로 커피는 군인들의 필수품이었다
--- p.148

1892년, 맥스웰하우스Maxwell House가 등장했다. 식료품 도매회사 외판원으로 커피를 배달하던 조엘 오슬리 칙Joel Owsley Cheek은 …… 커피마다 고유한 맛이나 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칙은 여러 생두의 장점을 합하면 매우 훌륭한 커피 맛을 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블렌딩 커피를 창안한 것이다. …… 8년의 실험 끝에 1892년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맛을 찾게 된다. 저렴한 브라질 산토스산 커피를 베이스로 하고 여기에 두 종류의 중남미산 마일드 커피를 섞는 방식이었다. 이 커피를 처음으로 공급한 것이 테네시주 내슈빌 소재 맥스웰하우스라는 호텔의 커피숍이었다
--- p.151

엄청난 양의 커피를 수출하는 항구 산토스라는 이름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17~18세기에 모카, 19세기에 자바가 있었다면 20세기에는 산토스가 있었다. 모카와 자바는 고급 커피의 대명사였지만 산토스는 저렴한 커피의 대명사였다
--- p.152

카페인의 유해성 논쟁에는 많은 과학자들도 가세하였지만 명확한 근거는 찾지 못했다. 지나친 카페인 섭취는 해롭다는 것, 그 이상의 새로운 이야기는 없었다. 이런 논쟁 끝에 탄생한 것이 디카페인 커피였다. 1906년 독일인 루드빅 로젤리우스Ludwig Roselius가 생두에서 카페인을 추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 p.160

커피 대용품 포스텀 개발자로서의 자존감을 상실한 포스트는 불과 59세의 나이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의 재산을 물려받은 그의 딸 마조리 메리웨더 포스트와 그녀의 두 번째 남편 에드워드 허튼은 훗날 미국을 대표하는 식품 기업 제너럴푸드General Food를 창설하였다. 제네럴푸드는 1928년에 미국을 상징하는 커피회사 맥스웰하우스를 인수하였다. 커피 유해론의 열렬한 지지자가 만든 회사가 커피 사업을 하게 된 아이러니한 역사의 한 장면이다
--- p.163

물에 녹는 가용성 커피, 즉 인스턴트커피였다. 1881년 프랑스의 알폰소 알레Alphonse Allais, 1890년 뉴질랜드의 데이비드 스트랭David Strang, 1901년 일본인 사토리 카토Satori Kato 등이 개발에 성공하였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한 인물은 조지 콘스탄트 루이 워싱턴George Constant Louis Washington이라는 벨기에계 미국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0년이었다
--- p.164

행동주의 심리학의 아버지인 존 왓슨John B. Watson은 1921년에 광고회사 JWT에 입사하여 행동주의 심리학적 기법을 광고에 적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회사에 입사한 지 2년도 되지 않아 부사장에 오른 왓슨은 자신이 맡았던 맥스웰하우스 커피 광고를 기획하며 ‘커피브레이크coffee break’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 p.167

전쟁 기간 동안 익숙해진 묽은 커피를 마시는 습관은 전쟁 이후까지 지속되었다. 미국인들이 마시는 묽은 커피라는 의미의 ‘아메리카노’가 탄생하였다
--- p.172

유럽 커피 문화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 것은 에스프레소 추출 기계의 등장이었다. 높은 압력을 이용해 짧은 시간에 추출하는 진한 커피가 등장한 것이다. 1901년에 이탈리아인 루이지 베쩨라Luigi Bezzera가 최초로 개발한 에스프레소 머신은 1930년대에 비로소 유행하였다
--- p.173

역사가 조너선 모리스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일본에 커피가 처음 소개된 것은 17세기 후반이며, 당시 커피를 마셨던 일본인은 몸을 파는 유녀들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손님들이 화대를 지불하지 않고 떠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 유녀들이 밤새 깨어 있어야 했고, 그래서 커피 마시기를 좋아했다고 분석했다
--- p.180

조선 사람으로는 윤종의尹宗儀(1805~1886)가 최초의 커피 기록을 남겼다. 1848년 완성한 《벽위신편闢衛新編》을 1852년에 개정하면서 필리핀을 소개하는 내용을 추가하면서 커피를 소개했다고 한다. 이어서 최한기(1803~1877)는 1857년에 쓴 《지구전요地球典要》에서 커피를 언급하였다
--- p.181

남아 있는 그의 서신 자료 중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의 리부아 신부에게 보낸 1860년 3월 6일 자 서신의 요청 물품 목록에 보면 커피 40리브르, 흑설탕 100리브르가 포함되어 있다. …… 베르뇌 주교가 커피를 주문한 시점은 1859년 여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콜레라, 1859년 12월부터 시작된 경신박해로 인한 불안감이 극에 달해 있던 시기였다. …… 커피 전래와 관련된 최초의 문서 기록은 위에서 살펴본 대로 1860년 3월 6일 자 베르뇌 주교의 서신이다
--- p.184

1860년대 초 23~46킬로그램 정도로 환산되는 50리브르 혹은 100리브르(50카티스도 비슷한 양이었을 것이다)의 원두로 커피를 끓였을 때 적어도 5천 잔에서 1만 잔(1잔에 4.5그램 원두 사용으로 계산) 정도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 전국 각지로 흩어져 숨어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던 10명 남짓한 프랑스 신부들이 다 마시기에는 많은 양이고, …… 프랑스 신부들 주변의 조선인들이 커피를 적지 않게 마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 p.189

1884년 1월 어느 추운 겨울날 로웰은 경기도 관찰사의 초청으로 서대문 밖 한강변 언덕에 있는 관찰사의 별장을 방문하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한강 얼음 위를 걷기도 했던 일행은 다시 별장에 올라 커피를 마셨다. 그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1884년에 로웰 일행은 ‘잠자는 물결’이라는 뜻을 가진 집에 올라가서 당시 최신상인 커피를 저녁 후식으로 마셨다
--- p.194

커피 광고가 처음으로 신문에 게재된 것은 1896년 9월 15일 자 《독립신문》이었다. 독일인 알버트 F. 고샬키Albert F. Gorschalki(1856~1917)가 정동에 문을 연 상점에서 새로 로스팅한 모카 커피 원두를 1파운드에 75센트, 자바 커피를 70센트에 판매한다는 광고였다
--- p.198

1918년 10월 1일 대구역 신축과 함께 역사 안에 문을 연 끽다점에서 여자를 급사로 채용했다는 기사가 《부산일보》(1918년 10월 6일 자)에 게재된 것을 보면, 1910년대 중후반 어느 시점부터 ‘여뽀이’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 p.212

‘미인좌’와 ‘아리랑’ 두 카페는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1931년 10월 6일에 본정서(지금의 중부경찰서)에 10원씩의 과료(벌금)를 물었다. 이유는 조선 안에서는 금지된 외국인 웨이트리스를 무허가로 고용한 까닭이다. ‘미인좌’는 러시아 여자 마리야를 고용하였고, ‘아리랑’은 독일 여자 리레메를 채용했다(《매일신보》 1931년 10월 7일)
--- p.224

1941년, 드디어 대용 커피를 생산하는 공장이 세워졌다. 원산에 세워진 이 공장에서는 1941년 7월 1년에 5,000석의 대두를 가공할 계획으로 국산 커피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일본의 인도차이나 침략에 대응해 미국, 영국, 네덜란드 정부가 자국 내 일본 자산 동결과 일본으로의 석유 수출 금지를 선언한 즈음이었다
--- p.276

1960년에 콜롬비아 커피생산자연합Federacion Nacional de Cafeteros de Colombia에서 탄생시킨 후안 발데스Juan Valdez라는 가공의 인물이 주인공이었다. 노새와 함께 서 있는 콧수염을 기른 커피 농부 캐릭터인 발데스는 광고에 약한 미국인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하였고, 매우 짧은 시간에 콜롬비아 커피를 세계 최고급 커피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 p.303

29일부터 서울 시내의 각 다방은 스스로 커피 판매를 중지하고 생활의 검소화와 불필요한 외래용품 배격 등의 혁명 과업 수행에 발맞추었다. 서울 시내에 있는 다방만도 1천여 개, 하루 평균 백 잔씩의 커피를 판다 해도 그 소비량은 한 집 2파운드, 전체 2천 파운드라는 엄청난 숫자가 나온다. 이것을 다시 돈으로 환산하면 하루 천만 환 정도(파운드 당 최고5천 환)씩 절약하는 셈이 된다. 이날 다방협회는 앞으로 국산차의 질 향상과 그 보급에 힘쓸 것이라고 새 결의를 다짐하였다(《동아일보》 1961년 5월 29일)
--- p.315

국내 생산 커피 제1호인 맥스웰하우스 레귤러 그라운드 커피가 첫 발매를 시작한 것은 1970년 9월이었고 곧이어 인스턴트커피도 생산을 시작하였다
--- p.318

1950~60년대에 다방의 꽃이 마담과 레지였다면 1970년대 음악다방의 주인공은 단연 DJ 오빠였다. 음악 다방을 찾는 손님들이 마시는 음료는 한결같이 커피였다. 당시 음악 다방 중에는 국내 최초로 비엔나커피와 핫케이크를 제공하는 곳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었다. 1975년 명
동에서 문을 연 ‘카페 까뮤’였다
--- p.318

동서식품은 이미 1974년에 ‘프리마’라는 이름의 식물성 커피 크림을 개발한 바 있었다. 이 기술을 이용하여 인스턴트커피, 설탕, 프리마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서 1회분씩 스틱형 봉지에 포장한 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맥심Maxim이라는 이름이었다
--- p.322

한국 거리에 최초로 자판기가 등장한 것은 1978년이었다. 그해 3월 22일 종각, 시청, 서울역 세 곳에 설치되었고 커피 한 잔 가격은 100원이었다. 자판기 사업에는 롯데, 삼성, 금성사 등 대기업들이 참여해 빠른 속도로 보급되었다. 1978년 첫해에 이미 서울 시내 다방 수를 넘어섰고, 초등학교 매점에까지 설치될 정도였다
--- p.322

한국의 바리스타 1세대를 상징하는 인물 네 사람을 지칭하는 ‘1서 3박’이 등장하였다. 모두 일본에서 커피를 공부한 이들이었다. 신촌 콜롬비아의 서정달, 이대 앞 다도원의 박원준, 커피 맛을 찾아 세계를 주유한 것으로 유명해 마도로스 박이라 불리던 박상홍, 강릉 보헤미안의 박이추가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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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시작된 믹스 커피, 1980년대에 시작된 자판기 커피의 등장에 이어 나타난 캔 커피도 다방의 인기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1986년에 동서식품에서 시작한 캔 커피 시장에 1990년 미원음료가 ‘로즈버드’라는 상품으로 도전하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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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노’에서 커피 믹스, 모카에서 강릉까지
다른 커피사와는 다른 인문향이 물씬

우리나라는 2018년 기준 커피 수입량이 세계 6위였다. 성인 1인당 연간 약 353잔의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나타나 세계 1인당 커피 소비량 132잔의 3배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가히 ‘커피공화국’ ‘커피 대국’이라 할 만하다. 그러니 커피 감식안이 문화인의 한 증표로 치부되거나 역사, 제법 등 커피와 관련된 책도 숱한 것이 당연하다. 한데 교육학자에서 커피 인문학자로 변신 중이라 자처하는 지은이가 쓴 이 책은 여느 커피사 책과 다르다. 기원, 제법 등 커피 자체뿐 아니라 커피문화를 짚어낸 점이 그렇고, 무엇보다 최초 음용자에서 커피농장까지 한국의 커피사를 한눈에 정리한 덕분이다.

달콤-모카 커피와 김홍집의 ‘최신상’
많은 커피사가 에티오피아와 칼디라는 목동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지은이는 이 같은 ‘정석’을 밟으면서도 커피를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모카커피 이야기가 그렇다. 16세기 후반경 세계 커피 무역의 중심이 예멘의 모카항이었기에 모카가 커피 또는 커피 무역의 상징이 되었는데 18세기 자바 커피가 ‘모카’와 같은 달콤한 맛이 나지 않아 초콜릿 등을 가미해 마시면서 이런 류의 커피를 ‘모카 커피’로 불렀단다(51쪽). 그런가 하면 조선의 대미외교를 거들었던 퍼시벌 로웰이 1884년 경기도 관찰사 김홍집의 한강변 별장에 초대받아 ‘최신상’인 커피를 후식으로 마셨다는 사실은 조미 ‘밀월’의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씁쓸-산업혁명의 여파와 카페의 풍기문란
커피하우스는 ‘페니대학’ 또는 ‘불온사상의 온상’으로 불릴 만큼 사회적 역할을 했다.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는 “커피는 많은 바보들이 일시적으로나마 현명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거기엔 입맛 쓴 일화도 있었으니 산업혁명 이후 간편한 먹을거리를 찾던 공장 노동자들은 알코올이 들어 있는 맥주나 긴 조리 시간이 필요한 스프보다는 정신을 맑게 해주고 간편히 마실 수 있는 커피를 아침 식사 대용으로 즐기게 되었다(132쪽). 일제강점기인 1931년 각각 러시아와 독일 여자를 고용해 ‘에로 서비스’를 제공하던 유명 카페 ‘미인좌’와 ‘아리랑’이 벌금 처분을 받은 사례(224쪽) 또한 쓴맛을 남긴다.

풍미-최초의 카페 광고음악 「커피 칸타타」와 비엔나 커피
커피는 예술의 동반자이기도 했다. 일례로 바흐의 「커피칸타타」는 최초의 카페 광고음악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이끌던 대학생 연주단체 콜레기움 뮤지쿰의 정기연주회가 열리던 짐머만 카페를 위해 만든 곡이기 때문이다. 1975년 문을 연 명동의 ‘카페 까뮤’에서 처음 소개한 비엔나 커피는 젊은이들이 줄지어 먹을 정도였다. 그 비엔나 커피가 원래 명칭이 ‘한 마리 말이 끄는 마차’란 뜻의 아인슈페너로, 마부들이 추운 겨울에 손님을 기다리며 마차 위에 앉아서 뜨거운 커피 위에 설탕을 넣고 생크림을 듬뿍 올려서 마신 것에서 유래했단다(72쪽). 커피향을 짙게 해주는 일화 아닌가.

여유-만들어진 커피 브레이크와 혁명의 뒤끝
더운 여름, ‘아아’ 곧 묽은 커피와 얼음이 만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즐기는 여유는 선물 같다. 한데 ‘아메리카노’는 2차 대전 당시 군용 커피에 길든 퇴역 군인들로 인해 붐이 일어났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고단한 직장생활에서 숨을 돌리는 ‘커피 브레이크’는 광고의 산물이란다. 행동주의 심리학자 존 왓슨이 1921년 광고회사에 입사한 후 자신이 맡았던 맥스웰하우스의 커피 판촉을 위해 기획한 개념이 추후 미국 직장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이다(167쪽). 커피 한 잔의 여유에 관한 ‘신화’는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5?16쿠데타 직후인 1961년 5월 29일 다방협회는 스스로 커피 판매를 중지하고 국산 차의 질 향상과 보급에 힘쓰기로 결의했다. 생활 검소화와 외래용품 배격을 통해 혁명과업 수행에 발맞추기 위해서였다(315쪽). 커피와 라이프의 밸런스를 뜻하는 ‘커라밸’까지 등장한 요즘 보면 딴 나라 이야기 같다.

다양한 화제를 통해 그윽한 풍미와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이 책은 한마디로, 다른 커피사 책과는 다른 커피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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