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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긴 여행을 했었어

조금 긴 여행을 했었어

: 소설가의 세계 여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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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8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48쪽 | 584g | 145*215*20mm
ISBN13 9791197350511
ISBN10 119735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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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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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의 메인 요리는 떡갈비와 흡사한 고기였다. 아줌마는 그걸 자꾸만 내 그릇에 놔 주었다. 사람 수대로 하나씩 먹기에도 모자랐는데. 내가 다 먹으면 어느새 접시가 채워져 있었다. 많이 먹었다고 거절해도 소용없었다. 우리네 엄마, 할머니와 똑같았다. 내내 고맙고 따뜻했다. 뭐라 더 설명할 수 있을지. 모든 기운이 가슴께에 서 다 합쳐진 듯했다.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지 않았다. 두 번 봤으니, 세 번, 네 번도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고 하는데, 만남이 있으면 또 다른 만남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걸 인연이라 믿었다
--- 「커다란 온실」 중에서

여행지를 선택하는 기준은 모두 다르다. 나는 좀 다른 구석이 있다면 끌리는 편이다. 결국 내 선택은 옳았다. 불가리아는 우리가 흔히 유럽이라며 그리는 화려한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대신 도심에 흐르는 소박한 공기, 그을린 피부, 무엇보다 너그러운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가끔 그곳이 떠오른다. 사실 강렬하진 않다. 잔상이 된 여러 이미지로 어쩌다 다가온다. 그게 싫지 않은데, 그런 기억이 더 오래 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 「오래된 편지」 중에서

잘 가던 중에 어두운 골목이 나타났다. 어두워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저긴 절대 가면 안 된다라고 확신했다. 나는 굿바이를 외치곤 뒤를 돌려고 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엄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을 비비며 말했다. “머니!” 나는 팔짝 뛰었다. “무슨 소리야, 너가 공짜라 했잖아!” 그러자 그는 열 살은 더 먹은 듯한 얼굴을 하더니 얼른 내놓으라며 정색했다. 이거 잘못 걸렸구나, 탄식하는 순간 근처에서 한 명이 더 튀어 나왔다. 키가 더 컸던 그는 내 왼쪽 팔을 꼬집으며 말했다. “문제 일으키고 싶어?” 미칠 노릇이었다.
--- 「덕분이에요」 중에서

한동안 평화로웠다. 친구와도 사이가 좋았다. 사고는 갑자기 찾아왔다. 우린 케이크와 오렌지를 비닐에 담아 강가 앞 가트에 갔다. 자릴 잡았더니 원숭이가 달려들어 비닐을 가로챘다. 오렌지 여섯 개가 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굴러갔다. 원숭이들은 오렌지를 야무지게 까먹었다. 뭐 이런 놈들이 다 있나 하며 재수없다 정도로 여기려 했다. 그때 오렌지가 모자랐는지 어미 원숭이가 재빠르게 H에게 달려 왔다. 원숭이는 흉악한 이빨을 드러내며 H의 오른 어깨를 온 힘을 다해 깨물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 「치유하고 치료하고」 중에서

케이블카에 올라탄 뒤였다. 잘 가다 문득 티켓을 어디다 뒀는지 기억이 안 났다. 주머니를 뒤적거려도 보이지 않았다. 7달러짜리 티켓인데. 마침 검수원이 다가오고 있었다. 초조했다. 어쩌지. 제발이라고 몇 번이나 외쳤다. 모든 걸 포기하는 순간, 검수원이 날 지나쳐 갔다. 이 계절에 가장 다행스러운 장면이었다. 그러면서 반대로 인도 릭샤 기사에게 사기 당한 기억도 따라 떠올랐다. 또 수하물이 연착된 뉴욕에서 얼마나 좋은 방에 배정 받았는지 생각했다. 행운과 불운의 완전한 대비였다.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됐다. 나쁜 일 만큼 좋은 일이 따라왔다. 마이너스, 플러스 하다 결국엔 0에 수렴했다. 불운하다고 너무 속상할 필요도 없고, 너무 기쁘다고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되었다.
--- 「0」 중에서

듣는 거 말곤 할 게 없어 주변을 둘러봤다. 옆 테이블에 눈이 갔다. 쿠바에서 흔치 않은, 혼자 다니는 여자 여행자였다. 작은 배낭과 편한 원피스 차림이 그녀의 여행 스타일을 알려줬다. 그녀는 담배를 멋스럽게 피우고 있었다. 참, 나도 시가가 있었지. 말 걸기 좋은 구실이었다. 용기 내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라이터 좀 써도 될까요? 그녀는 담담하게 수락했다. 나는 시가 껍질을 벗긴 뒤 불을 붙였다.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다. 옆에서 보고 있던 그녀는, 젓가락질 못하는 외국인을 보는 한국인처럼 웃었다. 시가는 돌려가며 불을 골고루 붙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불도 못 붙이면서 라이터는 왜 빌리러 왔냐는 눈으로 또 웃었다. 얄팍한 수작이 들통나 버리고 말았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다. 칠레라고 했다. 혼자서 쿠바를 여행 중이라고. 나도 내 소개를 짧게 했다. 그러면서 여기 앉아도 되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물론이라며 웃곤 의자를 빼 줬다. 내 테이블에서 사과 주스를 가져왔다. 그녀는 내 사과 주스를 보고 또 웃었다.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 「시가도 필 줄 모르면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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