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물리학자들의 밤낮 없는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1890년도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을 완성한 것이다. 이제 적임자가 나타나 돌쟁이 히틀러를 제거하면 히틀러 출생지에서 이름을 딴 ‘작전명 브라우나우’는 성공리에 막을 내릴 것이다. 여러분이 적임자라면 타임머신에 몸을 싣겠는가? 현시점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이 없어도 기꺼이 그러겠노라고 해야 공리주의에 입문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 p.22
한 쌍의 연인이 삼겹살을 한 입 가득 볼이 터져라 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적 장애아 지원책이 미흡하다는 뉴스에 귀가 꽂혔고,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씹고 있던 고기를 튀기며 합창하듯 비난을 쏟아냈다. 이들 연인이 우리 인간의 전형이며, 이는 우리 절대다수가 종차별주의자라는 뜻이다. 바로 이 종차별주의 아성이 싱어의 공략대상으로, 예컨대 처참하게 사육, 도살당하는 돼지의 고통을 지적 장애아의 고통과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주변부 사람들에 의존한 이익평등고려 원칙의 골자이다.
--- p.40
대체 가능성 논변을 제시함으로써 동물해방의 아이콘인 싱어가 육류 소비의 길을 터준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 환경에 끼치는 영향과 비효율적인 영양섭취 문제를 고려할 때 공장식 사육을 옹호하기에는 매우 약한 논거라고 싱어 자신이 정리했기 때문이다.
--- p.49
분명한 것은 프레이의 계량결과를 신뢰할 수 없듯이 싱어의 계량결과도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익평등고려원칙을 내세우고도 계량이 가능 하지 않다면 꽃은 화려하지만 열매가 없는 화이부실華而不實 아닌가. 철학적 독트린으로서의 공리주의의 흠결은 차치하더라도 싱어에 묻어 가기 어려운 이유이자, 그가 깔아 놓은 꽃길을 사양하는 이유이다.
--- p.78
장시간의 비행에 출출했던 대기업 상무님이 라면을 폭풍흡입하고 국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그런데 맙소사, 승무원이 땅콩라면을 들고 일등석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화가 치민 상무님이 당장 땅콩라면을 대령하라고 호통을 쳤다. 규정상 일등석 승객에게만 땅콩라면을 제공할 수 있다고 승무원이 양해를 구했지만, 상무님은 분을 삭이지 못해 기어이 일을 내고 만다. 흘린 라면국수를 집어서 승무원의 얼굴을 때린 것이다. 비즈니스석 승객에게 땅콩라면을 제공하지 않은 것이 잘못인가? 물론 아니다.
땅콩라면을 놓고 고가의 항공권을 구입한 승객과 그러지 않은 승객을 차별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착륙하던 여객기의 날개가 지면에 닿아 엔진에 불이 붙었다면 일등석 승객을 차별해 구출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에 대해 여러 설명이 가능할 것이나, 모든 사람은 경제력, 피부색, 성별, 정신능력에 무관하게 내재적인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라는 것이, 따라서 기본적인 권리를 지녔기 때문이라는 것이 레건의 입장으로, 내재적 가치를 지닌 동물에게 땅콩라면을 제공받을 권리와 같은 적극적인 권리는 없지만 학대와 착취, 죽임을 당하지 않을 소극적인 권리인 기본적인 권리는 있다는 것이다.
--- p.100
물리학자로부터 양자역학에 대해 설명을 듣는다면 모르긴 몰라도 히브리어를 듣는 기분일 것이다. 이성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동물의 권리를 부정하고자 한다면,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권리도 부정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도 일차방정식은 이해하지 않느냐는 것이, 한 개체의 권리는 그 개체의 능력이 아닌 그가 속한 유형의 능력에 달렸다는 것이 주변부 사람들 논변 부정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래서 인간은 예외 없이 권리를 가졌다는 것이나 근시안적인 발상임에 틀림없다. 우리보다 정신능력이 뛰어난 외계종이 지구를 접수해 위의 전략을 그대로 써먹기라도 한다면 기꺼이 그들의 손에 사육 당하고 그들의 식탁뿐 아니라 해부대에도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 p.108
병현이가 보스의 명령으로 줄무늬 스텐드를 들고 미나를 찾아갔다. 병현이의 굳은 말투가 재밌었던 미나는 라면을 먹고 가라고 제안했고, 처음으로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진 병현이는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하지만 달콤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누워 감상에 젖던 중 경찰관과 미나가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경찰관의 설명은 놀라왔다. 미나가 성추행 당할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신고를 했다는 것이었다.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곁에서 미나가 말을 거들었고, 병현이는 격앙된 어조로 억울함을 호소한다. “미나 씨, 성추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미나 씨가 분명히 말했잖 아요. 저는 성추행을 해야 할 의무를 면제받은 거잖아요. 성추행을 당할 권리를 침해 했다니요?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이 대화가 자연스레 느껴지면 의지 권리론에 딱히 의문을 제기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익론에 한 표를 던질 것을 권한다. 의지 권리론으로는 성추행을 당할 권리가 어색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이익 권리론으로는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p.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