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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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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8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08쪽 | 404g | 140*210*18mm
ISBN13 9791167370518
ISBN10 116737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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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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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말이야,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다 쉬워질 줄만 알았어.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것, 답답해하는 것, 어려워 하는 것이 모두 해결될 줄만 알았어. 나이가 들면서 육체는 노화하지만 이성은 발달하고 경험과 지혜가 쌓이는 거잖아. 그러면, 사는 게 좀 쉬워질 줄 알았어.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은 거야. 아니, 사실은 어릴 적보다 훨씬 더, 모든 게 다 어려워.”
--- p.80

그 순간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존재하는 것?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어. 누군가와 마음으로 하나 될 수 있을까, 간절히 바라던 시기가 있었어. 어떤 존재와 나의 존재가 합일하는 순간 속에 영원히 머물 수 있다면, 하고 말이야. 그것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어. 그것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어. 그저 담담했어. 모든 것이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그곳에 머물고 있었어.
--- p.129

메이는 이제 신상보다는 그 앞에 엎드린 사람들을 더 유심히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엇이 저 사람들을 신상 앞으로 내모는 것일까? 어째서 저들은 돌무더기에 지나지 않는 저 석상에 집착하는 것일까? 석상 따위가 정말로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까? 그들을 지독한 가난과 고난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영원한 피안의 세계로 인도해줄까?
--- p.177

메이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웃옷도 없이 나온 터라 맨살에 닿는 공기가 차가웠다. 메이는 샌들을 벗어 양손에 하나씩 든 채 맨발로 계단을 올랐다. 발바닥에 닿는 돌의 감촉이 차다 못해 시렸다. 그 시림이 발바닥을 통해 회음부로, 심장으로, 머리 꼭대기로 전해져왔다. 아, 아아……. 신음이 나왔다. 심장이 찢어져 그녀 몸의 구멍을 타고 쏟아져내리는 듯했다. 머릿속 골수가 산산이 부서져 심장의 피와 함께 온갖 내장기관들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온몸에서 오물이 뒤엉키고, 쏟아지고, 비어져나왔다……. 메이는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 양 손바닥을 바닥에 짚고 개처럼 엉금엉금 기어 계단을 올랐다. 거대한 난디상을 지나 정상 부근에 다다를 즈음, 바로 그곳, 메이가 늘 보아오던 커다란 바위틈이 드러나 보였다. 그 바위 틈새로 나아가면 편평한 돌무더기가 나오고 그 아래가 바로 절벽이었다.
--- p.287

언젠가는 나의 이야기도 끝이 나겠지. 내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내 안에 아무런 기억도 상처도 남지 않을 때까지 나는 계속 나의 이야기를 써나갈 거야. 써나갈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러니 당신도 편지하기를, 이야기하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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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사랑은 포옹이다. 삶의 상처와 자기내면의 지옥과 용서할 수 없는 타인을 끌어안는 일이다. 데뷔작 《제리》로 밑바닥 청춘의 어둠과 자기파괴를 그려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가 김혜나는 이번 소설을 통해 사랑이 흔들리는 미완의 청춘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보여준다. 그녀의 인장인 활활 타는 불의 언어와 휘몰아치는 서사는 이 소설을 성장담을 넘어선 힘 있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완성시킨다. 차문디 언덕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확인해보시길.
- 정유정 (소설가)
살아 있다는 것은 죽음을 막아내는 데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살아가는 일은 이 실패의 실패를 중단하지 않기 위한 움직임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이 앎을 주관하는 것은 자기 자신만이 아니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혼신을 다해 매달리는 마음들이 도처에 우글거린다. ‘기도를 올리는 듯 비명을 지르는 듯’, 신을 향해, 당신을 향해, 결국은 자신을 향해 쏟아내는 아픔과 후회와 절망의 이야기들. 김혜나의 이야기는, 후회하고 후회하고 절망하고 절망하는 자기 자신을 이겨내어 죽음을 막아내는 데 실패하지 않으려는 두 개의 매달림, 두 개의 구도(求道/構圖)에서 흘러나온다. 제가 만든 미궁을 헤매느라 얽혀버린 문답을 고통스럽게 풀어내는 몸짓과, 제 안의 비루함을 들춰내서라도 거짓됨의 폭력을 저주하는 외침. 이 몸짓과 외침이, 신도 당신도 구원하지 못한 자신을 부단히 삶의 순간으로 이끌어온다. 계속하기 위해, 더 살아나기 위해, 언제나 지금을 살기 위해, 김혜나의 소설은 중단될 수가 없다.
- 백지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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