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던지는 말 한마디의 무게를 잊은 채 살아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넘쳐나는 막말과 혐오의 표현들은 사실 위험수위를 넘은 지 오래고, 이는 교실 언어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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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적 느낌’이라는 유행어처럼, 지금은 느낌의 시대입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을 기하기보다 느낀 대로 툭툭 내뱉고, 재밌으면 깔깔 웃으며 너도나도 열광적으로 호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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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성세대와 요즘 것들은 언제나 대립해 왔습니다. 시작하면서 소개한 수메르인의 기록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고대사의 다양한 장면에서, 버릇없는 ‘요즘 것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비판이 속속 나오는 것을 보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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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빙빙 돌려 말하는 대신 정곡을 찌르는 말, 또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팩트폭격’, ‘팩폭러’ 등으로 부르지요. 이런 사람들은 상대방의 약점이나 단점을 에둘러 말하지 않고 정곡을 찔러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정곡을 찌른 나머지 말을 듣고 나면 ‘뼈를 때리는 아픔’이 느껴진다고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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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소년들은 ‘학교’와 ‘집’이라는 사회에만 갇혀 살지 않습니다. 꼭 직접 가보지 않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다른 학교, 다른 지역, 다른 사회와 얼마든지 연결되는 초연결 세상에 살고 있죠. 그러다 보
니 예전에 보이지 않던 새로운 문제들이 자꾸 눈에 보입니다. 때로는 교칙이 부당하고, 때로는 급식 메뉴가 부당하고, 나아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활동조차 뭔가 부당하다고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점점 더 가슴이 뜨거워지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지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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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밈’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통용되는 그들만의 ‘공통된 유머 포인트’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그 유형과 종류는 실로 다양합니다. 때론 유행어가 될 수도 있고, 우스운 댓글을 차용해 사용하는 것이 될 수 있으며, 유명한 노래를 너도나도 패러디하는 현상 또한 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생물학적 유전자가 복제되고 전파되는 것처럼 사회문화 요소가 끊임없이 복제되고 확산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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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처음에는 정말 몰라서 한두 가지 틀리기 시작하고, 틀렸다는 것을 알아채면 맞춤법도 제대로 모른다며 자신의 무식함을 탄식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것에 쏠쏠한 재미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즉 일부러 맞춤법을 무시하는 것이 꽤 재밌는 놀이가 되어버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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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임말 또한 경제성 추구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죠. 하지만 이제는 줄임말이 경제성을 넘어 재미 추구를 위한 하나의 놀이가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재미’는 ‘밈’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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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은 언어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느낌이 중요합니다. 즉 과거 텍스트 중심의 매체에 대해서는 의미를 파악하고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오늘날처럼 시청각이 중심이 되는 매체를 접할 때는 어떤 정동이 발동되고 있는가를 빠르게 알아차리는 데 더 관심이 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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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전문가들은 마치 접미사처럼 ‘-충’을 붙여서 온갖 상대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이유에 대해 “젊은 세대의 불안감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팍팍한 현실에서 궁지에 내몰린 청년들이 자조적 공격성과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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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청소년들이 서로 욕을 주고받는 것을 일종의 친밀감 표현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남자아이들끼리는 시도 때도 없이 서로에게 ‘놈’이니, ‘새X’니 하는데, 이런 말은 더 이상 욕도 아니고 심지어 상대방에게 어떤 모욕감도 주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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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는 성장의 주요 길목입니다. 특히 추상적 사고력이 크게 발달하면서 다양한 개념화가 이루어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오랜 세월 이어져온 뿌리 깊은 가부정적 사고방식의 학습 결과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겠지만, 올바른 성적 개념과 성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청소년기에, 자칫 무심코 사용하는 여성혐오적인 다양한 언어 표현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왜곡된 성인식에 물들고 있다면 더욱 큰 문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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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수저의 색깔로 신분을 가르는 이른바 수저계급론은 원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his mouth)’라는 영국 속담과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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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경제적 능력을 폄하하는 온갖 종류의 유행어들이 양산되고 전파되는 점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적 언어생활은 점점 더 어린 연령대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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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맛’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이 말이 주로 사용되는 상황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맥락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 정도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젊은 세대를 열광시키고 있는 B급 감성 또한 어떻게 보면 이런 ‘병맛’이 주는 은근한 재미와 관계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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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말을 통해서 개인이나 사회가 자기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는 뜻으로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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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은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지만, 이 말은 말이 가지는 예언의 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나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하면 나쁜 일이 생기고,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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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녀, 김치녀’로 시작된 젠더갈등은 급기야, 가장 성스럽고 존중받아 마땅한 엄마들마저 ‘맘충’으로 전락시키기에 이릅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불특정 다수 여성들을 ‘꼴페미, 메갈’이라는 말로 무분별하게 낙인찍으며 ‘페미니즘’ 자체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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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혐오 표현을 사용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표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혐오 표현과 막말을 즐기는 한편, 자신들이 내뱉은 혐오 표현에 대해 분노하며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부들부들잼’이라고 말하며 희열까지 느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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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혐오 표현은 세상 곳곳에 스며들었고, 그 유형 또한 워낙 다양하다 보니, 사람들은 혐오 표현을 쓰면서도 자신이 하는 말을 딱히 혐오의 말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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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떠도는 혐오 표현들의 대부분은 그 대상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법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가 처벌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포괄적 차별방지법이 발의되고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계속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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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이목을 쉽게 끌지만, 반대로 그것이 가짜임을 밝히는 뉴스에는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엎질러진 물’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한번 뱉은 말을 도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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