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09월 09일 |
---|---|
쪽수, 무게, 크기 | 332쪽 | 394g | 138*201*20mm |
ISBN13 | 9788954682152 |
ISBN10 | 8954682154 |
발행일 | 2021년 09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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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32쪽 | 394g | 138*201*20mm |
ISBN13 | 9788954682152 |
ISBN10 | 8954682154 |
MD 한마디
[작별하지 않는, 작별할 수 없는 이야기] 학살로 가족을 잃은 이는 그 흔적을, 행적을 찾기를 포기하지 않고, 말해지지 않은 지난 시간들은 수십 년을 건너 눈보라 속에서 고립된 외딴집 흔들리는 촛불 아래에서 되살아난다. 이것은 작가의 바람처럼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 삶을 잠식하는 고통 속에서도 결코 작별하지 않는 이야기다. -소설MD 박형욱
1부 새 1 결정結晶 2 실 3 폭설 4 새 5 남은 빛 6 나무 2부 밤 1 작별하지 않는다 2 그림자들 3 바람 4 정적 5 낙하 6 바다 아래 3부 불꽃 작가의 말 |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접한 한강 작가의 작품이다.
'소년이 온다'가 광주에서 국가의 손에 죽어간 이들을 다룬 작품이었다면 이 책은 제주에서 국가의 손에 죽어간 이들을 다루고 있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특이한 점이라면 제주 4.3사건을 다루고 있으면서 시점이 현재라는 것이다.
제주 4.3사건 당시 가족을 잃고 살아남은 노모를 두었던 다큐멘터리 감독 인선과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작가 경하의 시각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러면서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도 아직 발굴조차 되지 못한 유해들을 비롯해 완결되지 않은 그날의 사건을 영원히 기억에 남게 하는 작품이었다.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마치 '소년이 온다'를 쓴 작가 본인처럼 소설 속 경하 역시 5.18 관련 책을 낸 작가로 등장한다.
그 여파로 악몽에 시달리는데, 그 악몽을 현실에서 표현해 보자는 프로젝트를 인선과 함께 하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그 후 경하는 극심한 우울과 무기력함 속에서 세월을 버텨가고 서로 삶의 궤적도 다른 탓에 프로젝트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다.
그렇게 죽음이 나를 비껴갔다.
충돌할 줄 알았던 소행성이 미세한 각도의 오차로 지구를 비껴 날아가듯이.
반성도, 주저도 없는 맹렬한 속력으로.
그러던 중 인선이 손가락 두 마디를 잃는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향한다.
병원에서 만난 인선이 경하에게 한 부탁은 뜻밖에도 키우던 앵무새를 돌봐달라는 것이었다.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을 받은 경하는 폭설이 내리는 제주의 한 오지로 떠난다.
그럼...그래야지...라고 습관적으로 대화를 맺는 사람의 탄식하는 말투처럼,
끝이 가까워질수록 정적을 닮아가는 음악의 종지부처럼,
누군가의 어깨에 얹으려다 말고 조심스럽게 내려뜨리는 손끝처럼
눈송이들은 검게 젖은 아스팔트 위로 내려앉았다가 이내 흔적없이 사라진다.
인선의 집으로 가던 경하는 실족 사고를 당하는 등 고난 끝에 집에 다다르지만 이미 앵무새는 죽어 있다.
그런데 병원에 있어야 할 인선이 눈에 보이면서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인선의 이야기(인선의 어머니가 겪은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유령이 등장했던 '소년이 온다'처럼 고통스러웠던 역사를 다루면서도 몽환적인 판타지 느낌을 담아내고 있다.
실제로 경하가 만난 인선이 이미 죽은 인선의 유령인지, 죽어가는 경하가 보는 환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상식을 벗어난 존재가 와서 70여 년 전에 있었던 상식을 벗어난 사건을 담담하게 들려줄 뿐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인간이 갖는 공감의 본능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제주에 지인이 있는 것도, 그 사건의 피해자 중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이 겪었던 일들은 결코 쉽게 잊히지 않는다.
죽어가는 동생을 위해 자신의 손가락에 피를 내어 동생 입에 흘려주던 언니의 심정을, 언제 죽었는지 기록조차 남지 않은 오빠의 흔적을 쫓는 동생의 심정을, 사건의 트라우마로 실톱을 이불 밑에 넣어놔야만 잠이 드는 어머니를 평생 지켜보며 살아온 딸의 심정을, 그 어느 것도 인생에서 직접 겪어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솔직히 작가의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고는 말 못 하겠다.
타인의 감정은커녕 자신의 감정도 잘 알지 못하는 내가 읽기에는 몰려오는 감정의 양이 너무 커서 읽는 과정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이 작품 역시 그저 '빨갱이'를 지향했던 사람으로서 이 사건을 다룬 소설이니 꼭 봐야만 할 것 같다는 의무감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작가의 문장이 가진 힘 때문이었다.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갔고 그 후 오랜 시간이 흘러 해당 사건의 당사자들이 모두 잊힌 후에서야 대한민국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절대로 이 사건과 작별하지 않겠다고 외치고 있다.
그 외침을 들은 독자들 역시 국가의 손에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이 이 땅에서 더 이상 생겨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지 않을까.
지금 해수욕장이 된 백사장에서 12월에 모두 총살됐어.
모두?
군경 직계가족을 제외한 모두.
젖먹이 아기도?
절멸이 목적이었으니까.
무엇을 절멸해?
빨갱이들을.
언급하기도 어려운 사건을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로 풀어낸 작품이기에 읽기에도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실감 나게 살려낸 제주의 방언 역시 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멸공'이라는 단어 없이 서술하기란 불가능할 테고 그중에서도 제주 4.3 사건이 갖는 의미는 굉장히 크기 때문에 이 사건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좋은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역사서는 아니기 때문에 사건의 전후 맥락이나 경과를 자세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기초지식이 좀 있다면 등장인물들의 심정에 공감하기가 보다 쉬울 것 같긴 하다.
누구에게나 쉽게 추천할 작품은 아니지만 읽는다면 후회하지는 않을 작품이라 소개하고 싶다.
책을 덮고서야 길고 얕은 숨을 편히 내쉬었다. 이 책이 지극한 사랑에 관한 책이길 빈다던 작가의 코멘트가 맴돈다. 내게는 사랑의 또 다른 말이 하나 더 생겼다. 작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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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지만 죽은 이 같았던 경하가 인선의 부탁으로 아마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제주 집으로 갔다. 정심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심리적 고통의 무게를 이겨가며 오빠의 소식을 쫓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인선은 그런 엄마, 정심의 기록을 따라 제주 4.3 사건을 추적했다. 프로젝트를 하지 않겠다는 경하의 선언에도 인선은 초연하게 홀로 계속 하겠다고 하며 실천했다. 결과를 알면서도 끝까지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시간. 그게 사랑이 아니면 또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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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 「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 한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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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모든 이야기가, 이 한 문장에 녹아있다. 작별하지 않기 위해 책을 덮은 지금, 인선의 병실을 거듭 떠올려 본다. 역사도 그렇다.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숨기고 덮어두기만 하면 신경이 죽어 결국은 어깨까지 절단하듯 더 많은 걸 희생해야 한다. 인선의 고통에 절로 눈살을 찌푸리던 경하와 내가 그랬듯, 그 역사의 주인공이 아니었더라도 우리는 눈 돌리지 않고 그 과정을 함께 지켜봐야 한다. 고통을 느끼고 나누어야 한다. 이 모든 끔찍한 사건에 대해 우리는 계속해서 피를 흘려야 하고 고통을 느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썩어버릴 테니까.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님의 글은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던 책이랑 많은 다른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그 부분이 새로워서 처음 책장을 넘기는 것은 조금 힘들었다. 그러나 장수가 늘어날수록 묘하게 빠져드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작가가 되는 순간이 있고, 등장 인물이 되는 순간이 있고, 아니면... 때로는 그들을 바라보는 제3가 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직 1회독 밖에 하지 않았으나 더 읽어보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