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건 결혼하고 우리만의 대화 카테고리가 신설되었다는 점이다. 친구, 가족,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오직 둘만의 세상. 이 카테고리 안에서 우리 둘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대화 메이트다. 둘만 아는 농담에 온 집안이 떠나가라 꺅꺅 웃고, 남들이 봤을 땐 영 시답잖은 일에 세상 진지하게 머리를 맞댄다. 둘만의 세상은 매일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는데, 나는 이게 곧 우리 부부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내가 남편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남편 역시 내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 수많은 날이 모여 이 세상을 일궜다.
--- p.26
남편이 내게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물으면, 난 거의 자동적으로 “데이트가 피곤해서”라고 답한다. 미안하지만 진심이다. 결혼의 좋은 점이 뭐냐고 물으면 “데이트 안 해도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 역시 순도 100% 진심이다. 퇴근 후 각자의 시간을 꾸릴 수 있는 여유. 함께 생활의 리듬을 맞춰가는 기쁨. 집 앞에서 아쉽게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행복. 식당이 아닌, 집에서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해 먹고 오순도순 할 수 있는 충만한 기분.
--- p.30
결혼 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신혼 초 남편이 너무 미워 이혼하고 싶었다고. ‘아씨, 결혼 망한 것 같은데’라는 생각에 매일 울었다고. 또 다른 유부녀 친구의 목소리도 들렸다. “나는 신혼집 하면 남편이랑 싸웠던 생각밖에 안 나.”
원래 다 이런 건가. 다들 SNS에는 행복하다고만 하면서 뒤로는 이런 고충을 겪고 있었단 말이야?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에이씨, 나도 결혼 망한 거면 어쩌지, 신혼부부 전세 대출은 어쩌지, 일시 상환해야 하나, 엄마한텐 뭐라고 말하지. 너무 무서웠다.
--- p.114
동거가 아닌 결혼이어서 우리는 지옥 끝까지 갔다가 무사 귀환할 수 있었다. 일평생 함께 살겠다고 각오한 만큼, 맞춰야 할 부분은 밤을 새워서라도 토론하고, 때로는 치열하게 싸우며 합의를 봤다. 합의점을 찾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우리만의 대안은 마련할 수 있었다. 평생 봐야 할 사람이기에 대충대충은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은근슬쩍 넘기는 게으름 없이, 다툼의 정상까지 오른 뒤 손을 맞잡고 뿌듯하게 하산했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할퀴기도 했고, 무너지듯 외로운 날도 많았다. 하지만 끝까지 노력했던 경험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우리의 다름이 포용 가능한 것인지 아닌지 확인해볼 시도조차 하지 않고, 관계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채 느껴보지도 못하고 서로를 포기했을 것이다.
--- p.145
친정집에 갔을 때 가구 위치가 달라져 있으면 나는 엄마에게 작은 울적함이 지나간 흔적을 본다. 남편이 열심히 욕실에 락스를 뿌릴 때면 그에게 기분 전환이 필요한 순간임을 느낀다.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할 때면 내 마음이 조금 우그러졌음을 알아챈다. 우리 모두 각자의 기분 포물선이 있다. 다른 이의 포물선에 무기력하게 올라탈 필요도, 불협화음에 당혹스러울 일도, 외로움에 서러울 것도 없다. 각자의 방식으로 천천히, 때로는 즐거운 마음으로 포물선 일치의 순간을 기다리면 되니까.
--- p.156
나는 순간 아득해져 엉엉 울었다. 남편이 미워서도, 바지락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구 서방 취향 찾아 삼만 리인 엄마 표정이 떠올라서였다. 남의 집 귀한 아들이 혹여나 입맛에 안 맞는 것을 먹고 기분이 상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우리 엄마,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었다. 나는 엄마처럼 마음이 넓지도, 따뜻하지도 못해 반찬 투정하는 남편이 그저 얄밉기만 했다. 대성통곡하며 울었다.
--- p.172
연인의 다툼이 2학점 교양과목 수준이라면, 부부의 다툼은 3학점 심화전공을 한꺼번에 10개 정도는 듣는 수준이다. 그것도 내 전공이 아닌 회계, 경영, 철학, 체육, 언어, 역사 전 분야에 걸친 수업을 남편과 팀을 짜 수강하는 기분이다. 정신을 똑바로 붙들어야 한단 뜻이다. 게다가 연애 시절 다툼이 현관문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부부싸움은 안방, 화장실, 거실에 이르기까지 집 안 구석구석에서 일어난다. 피할 곳이 없단 뜻이다.
--- p.174
남편이 몸살에 걸린 날이면 바쁜 출근길 우리 집에 들러 삼계탕을 배달해주는 엄마. 친정에 갈 때면 항상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만 해주는 엄마. 남편이 맛있게 잘 먹은 반찬을 기억해뒀다가 언제고 만들어주는 엄마. 쌀, 채소, 온갖 음식 재료가 떨어지지 않게 우리 집 몫까지 사주는 엄마. 비염이 있는 남편을 위해 밤새 대추고를 만드는 우리 엄마.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다면, 친정엄마가 남편에게 푸근한 밥상을 차려주겠지. 엄마가 이 세상에 없는 날이면, 나는 어디서 따뜻한 집밥을 먹을 수 있을까.
--- p.179
나는 여전히 친구들과의 대화가 즐겁고 웃기다. 남편과의 대화에서는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친구들을 만나면 채워진다. 남편과는 죽었다 깨나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친구들과는 나눌 수 있다. 내 20대를 함께 한 이들과 즐기는 흑역사 소환 파티를 어찌 마다하랴. 하지만 친구들과의 대화가 ‘현재’를 가리키고 있으면 나는 늘 조심스럽다. 이 말이 상처가 되진 않을까, 관심 없진 않을까, 불편해하진 않을까를 속으로 엑스를 쳐가며 해도 될 이야기만 남긴다. 그러다 보면 수다 엑셀 시트에는 예전만큼 많은 이야깃거리가 남아 있지 않다. 이게 자꾸만 아쉽고, 그럴수록 친구들이 더 보고 싶다.
--- p.241
희생은 결혼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키워드다. 남편과 내가 맞춰온 시간을 희생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희생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이나 가진 것을 바치거나 포기함’. 우리는 서로를 이해했을 뿐이고, 서로를 사랑했을 뿐이다. 우리 스스로나 우리가 가진 무언가를 상대방을 위해 버리지 않았다. 희생이라는 단어는 부모님들에게 양보하고 싶다. 우리는 희생하지 않았다.
--- p.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