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를 꿈꾸는 순수한 소년, 넬로와
그 소년의 곁을 지키는 충직한 개, 파트라슈의 우정 이야기
플랜더스 지방,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의 영혼이 도시 곳곳에 살아 있는 벨기에의 안트베르펜과 그곳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순수한 소년 넬로와 충직한 개 파트라슈의 이야기이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무거운 짐수레를 끌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넬로와 그의 할아버지에게 발견되어 정성어린 보살핌을 받은 후로 파트라슈는 평생 이들을 위해 살기로 결심한다. 노인과 소년은 작은 수레로 이웃들의 우유 통을 안트베르펜까지 나르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렇기에 나이도 지긋하고 절름발이라는 장애가 있는 노인과 아직 어린 소년에게 파트라슈는 소중한 가족이자 없어서는 안 될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소년에게는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성당에서 천으로 가려 놓고 돈을 내는 사람들에게만 보여주는 루벤스의 그림 두 점을 보는 것, 그리고 언젠가 자신도 그처럼 되는 것이 소년이 품은 희망이자 간절한 꿈이었다. 넬로의 마음속에서는 늘 예술혼이 불탔다. 루벤스를 신처럼 여겼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그렸다.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과 열정을 가졌지만, 넬로가 처한 ‘가난’이라는 환경은 그를 더욱 안타깝고 슬픈 상황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언제 어느 때든 파트라슈는 처음 마음먹었던 결심대로 묵묵히 넬로의 곁을 지킨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을 가진 넬로와 우직하고 한결같은 파트라슈의 이야기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마음을 정화시킨다. 욕심 때문에 소년을 외면하고 모르는 척했던 사람들 속에서 원망 대신 희망을 꿈꾸며 크리스마스 날, 죽음을 맞이하는 소년은 산타클로스와 같은 ‘니콜라스’라는 그의 애칭대로 마을 사람들에게 신 앞에서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는 성스러운 속죄의 마음을 선물한다.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는 순수한 동심의 세계
어린 시절 느꼈던 감동을 다시 새기다
『플랜더스의 개』는 꼭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그 이야기 내용이나 주인공 모습이 낯설지 않다. 1970년대에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이후 국내에도 이미 여러 번 TV 시리즈 만화로 방영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TV 앞에서 선하게 생긴 아름다운 소년과 그 옆을 경쾌한 방울 소리를 내며 함께 거닐던 듬직하게 생긴 개를 보며 즐거워하고, 때론 가슴 아파하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한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30여 년이 넘은 오래된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다시 방영이 되고 여전히 사람들 기억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까닭은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깊이 때문이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개라는 이유로 파트라슈에게 모질게 대하는 주인과 거의 죽음에 다다른 개를 외면하는 사람들, 위대한 화가의 그림을 돈을 받고 보여주는 성당 사람들, 넬로에게 냉담하게 대하는 코제 씨, 지주인 코제 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죄없는 소년에게 등을 돌리는 마을 사람들 등은 결국 한 소년과 그의 개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에 처하면서도 누구 하나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넬로와 파트라슈는 꿋꿋이 자기가 할 일을 성실히 해낸다. 죽는 순간에도 희망과 꿈을 잃지 않고 현재에 만족하며 신에게 감사를 드리며 서로를 꼭 끌어안을 뿐이다.
죽음의 순간에도 잃지 않았던 예술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가진 소년과 끝끝내 소년의 곁을 지키는 개의 한결같고 서로를 위하는 모습은 세상의 모든 티끌과 먼지를 덮는 새하얀 눈처럼 아름답게 빛을 발한다. 이 둘이 보여주는 순수함과 충직함이 보는 이들에게 오래도록 잊지 못할 감동을 되살리며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김지혁 작가의 인상적인 일러스트를 만나
가슴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플랜더스의 개』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빨간 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에 이어 화려한 색감의 연출과 장면의 클라이맥스를 섬세하게 잘 살리는 것이 특징인 김지혁 작가의 일러스트는 『플랜더스의 개』의 감동을 한층 더 높여준다.
최근 자신에게 특별한 책 이야기를 쓰고 그린 에세이집 『마음으로 읽고 그림으로 기억하다』를 출간할 만큼 김지혁 작가가 이야기를 이미지로 재탄생시키는 감각은 탁월하다. 인물, 배경, 색감 하나에도 작가의 감정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섬세한 만큼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답지만 어딘가 슬프기도 하고, 명랑하고 따뜻하지만 애잔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인상 깊은 김지혁 작가의 일러스트가 더해져 말 그대도 ‘아름다운 고전’으로 새롭게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