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21년 09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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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96쪽 | 292g | 135*194*16mm |
ISBN13 | 9788937473326 |
ISBN10 | 8937473321 |
출간일 | 2021년 09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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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96쪽 | 292g | 135*194*16mm |
ISBN13 | 9788937473326 |
ISBN10 | 8937473321 |
『누운 배』 『사랑의 이해』의 작가 이혁진 신작 장편소설 ‘현실논리’와 ‘상황논리’가 만들어 내는 부조리의 생산과 부조리 위에서 민낯을 드러내는 인간군상의 실체 이혁진 장편소설 『관리자들』이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한겨례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누운배』와 후속작 『사랑의 이해』를 통해 회사로 대표되는 계급 사회와 그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하는 인물들의 다층적 욕망을 그려 내며 개성적인 색채를 보여 준 이혁진 작가가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소설은 공사 현장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상황과 상황 논리 앞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타협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인간 군상들의 면모다. 국도 옆으로 파 놓은 터에 관을 매립하는 일로 정신없는 인부들 사이, 좀처럼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이름은 선길이다. 현장에 적응하지 못하는 선길은 현장 최고 관리자의 의지에 따라 멧돼지 보초병이라는 불가해한 임무를 맡게 된다. 그러나 며칠 밤을 새워도 멧돼지는 보이지 않고, 멧돼지를 지키던 선길의 모습도 더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발생한 예기치 못한 사고는 여느 일터와 다를 바 없던 현장을 순식간에 갖은 병폐를 안고 있는 부조리한 무대로 탈바꿈시킨다. 무에서 유를 일구어 내는 공사 현장이자 누군가의 일상을 떠받치고 있는 삶의 현장인 동시에 은폐와 카르텔로 얼룩진 불의의 현장이기도 한 이곳은 도덕과 윤리가 고장난 죽음의 현장으로 기능하며 악순환이 반복되는 어둠의 장소가 된다. ‘관리’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힘의 의지와 힘에 기생하는 작은 인간들의 타협은 현실을 점점 더 왜곡시키고 급기야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관리자들』은 어느 공사 현장에서 벌어진 참사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흔한 비극’이라는 점이 이 소설을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비참함이자 불의라 부르게 한다. |
관리자들 7 작가의 말 193 |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자기가 앉은 자리에 따른 책임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당연하다. 그 자리에 앉기 위해서 큰 노력을 했을 것이고, 또 그 자리 아래의 사람들까지 통솔하고 맡은 일을 수행하는데 책임이 따른다는 건 진리다. 그 자리 앉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힘 때문이다. 이 소설 속 소장, 반장, 관공서와 공사 관계자들의 자리 역시 마찬가지다.
인부들은 반장의 지시 아래 일하고 그에게 소속된 사람들이다. 반장의 팀에 합류해 공사 현장을 같이 다닌다. 여러 명의 반장 역시 공사 현장 소장의 지시를 따른다. 소장이라고 자기 맘대로만 할까. 그 역시 시행사와 공사와 관련된 여러 문제와 절차를 해결하려고 동분서주한다. 피라미드 같은 구조 속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일하는 이들인 것으로 보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그 힘을 확인하고 즐기기도 한다. 당연하게 주어지는 책임을 망각한 채로 말이다.
국도 옆에 파 놓은 터에 관을 메우는 공사 현장은 인부들의 바쁜 몸짓이 한창이다. 그사이에 다른 인부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한 남자 선길이 있다. 반장은 그가 신경 쓰이지만 어쩌지 못하고 있었는데, 현장 소장은 선길을 멧돼지 보초병으로 세운다. 공사 현장과 멧돼지가 무슨 연관인가 싶을 테지만, 우습지도 않은 그 일의 배경에는 소장의 비리가 있다. 소장은 늘어나는 공기(공사 기간) 때문에 발생한 추가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고, 부족한 돈을 인부의 식사를 위한 현장식당 예산에서 챙긴다. 부실한 식사가 불만인 인부들의 항의에 소장은 밤에 산에서 내려오는 멧돼지가 식당 부자재를 위한 비닐하우스 채소를 망가뜨려 놓아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에 작업 현장에 끼지 못하고 어색한 선길을 밤의 비닐하우스 보초병으로 세운 것이다. 어쨌든 소장은 일 못 하는 사람을 자르지 않고 임무를 주어 하루 일당을 챙겨주고 있다는 생색을 낸다. 아무도 소장의 말에 대꾸 못 하고 이 상황을 지켜보기만 한다.
우리 인생과 닮은 공사 현장의 모습에 많은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없는 현장에 무언가를 채우고 올려세워 눈앞에 보여 주는 것. 어느 날은 땅을 파고 있던데, 며칠 지나서 보니 바닥이 단단하게 메워져 있고, 또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 보니 건물 1층이 올라와 있어서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뭔가 세워지고 만들어지는 게 신기해서 바라보기만 했지, 그 현장의 논리 속에 우리 인생이 걸렸다고 여긴 적은 없다. 하지만 닮았다. 우리 삶 역시 자꾸 배우고 노력하고 올라가면서 채워지는 거 아니겠나. 규정대로 공정하게만 오른다면 문제 될 게 없겠지만, 현실의 전쟁터는 공정하지 않았다. 은폐와 카르텔로 얼룩진 불의의 현장 그대로였다. 도덕과 윤리가 사라진, 비리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곳이었다.
관리가 아니라 힘으로 움직이는 곳이 된 공사 현장은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고도 모자라, 피해자를 성실하지 않은 노동자로 왜곡시킨다. 마치 ‘그러니까 죽었지, 그래도 싸다’라는 비난을 받아도 충분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피해자의 가족은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해 죄송한 마음으로 사죄한다. 가족을 잃은 슬픔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을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입힌 사람의 가족이 되었다는, 배우자를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으로 살아가야 한다. 관리자들이 ‘관리’를 잘한 덕분에.
“책임은 지는 게 아니야. 지우는 거지. 세상에 책임질 수 있는 일은 없거든.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멍청한 것들이나 어설프게 책임을 지네 마네, 그런 소릴 하는 거야. 그러면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자기 짐까지 떠넘기고 책임지라고 대가리부터 치켜들기나 하거든. 텔레비전에서 정치인들이 하는 게 다 그거야.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지우는 거, 자기 책임이라는 걸 아예 안 만드는 거. 걔들도 관리자거든. 뭘 좀 아는.” (46페이지)
처음 알았다. 관리자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 내가 아는 책임과 너무 달라서 말이다. 책임을 지는 게 아니고 지우는 거라는 말이 이렇게 섬뜩하게 들릴 줄이야. 책임져야 할 일을 만든 시작이 누구인지, 어디인지 뻔히 알고 있는데 그 상황을 너무 쉽게 바꿔놓는 소장의 발 빠른 처리가 너무 무서웠다. 피를 흘리며 죽은 현장 근로자가 내 앞에 있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려서, 혹시 이거 내가 잘못 본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마치 그런 일이 있었던 게 사실인지 내 기억을 의심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한 부조리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피해와 결말을 만들어내는지 적나라해서 이게 소설이 아닌 다큐멘터리로 여겨도 충분했다. 이 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얼마나 이기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지 확인한다. 동시에 묻는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떤 선택으로 이 상황을 벗어날 것인지를.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던 악당이 세상 악의 표본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주변에 얼마나 평범한 악당이 많이 존재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 어쩔 수 없이 힘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우리다. 때로는 그 힘에 주눅 들고 타협하며, 누군가가 책임져야 할 일을 대신 떠안으며 대가를 챙기기도 한다. 힘에 기생하는 작은 인간이기도 하니까. 현실 논리와 상황 논리가 언제나 일치하지 않은 괴리감에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소설 속 비극은 선을 넘는 일이었고, 불의를 보고 넘길 수 없게 했다. 슬프게도 이런 이야기는 주변에서 자주 접하는 일이기도 하다. 비극인데 흔하다니, 반복해서 일어나기에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게 절망적이다.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너무 익숙한 비극이 되어 이제는 그 슬픔과 불의조차 그럴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게 될까 봐. 그래서 마지막에 현경이 굴착기의 시동을 켰을 때 흥분했던가 보다. 아직 우리가 인간이기는 하구나 하는 안도감에, 이 불의를 그대로 묻어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 같아서.
#관리자들 #이혁진 #민음사 #오늘의젊은작가 #한국소설
#책 #책추천 #소설 #문학 #불의 #악당 #카르텔 #노동자
할 수만 있다면 그게 가능하다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걱정과 두려움 없이 오늘을 즐기며 살고 싶다. 나만 이런가. 모두들 그렇지 않을까. 내일 따위는 없다는 듯, 거침없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막무가내로. 아마 이렇게 살다가는 인성 쓰레기라는 말을 듣지 싶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성격과 성향의 문제가 있다. 타고난 게 이 모양인데. 누가 침묵하고 있으면 나 때문에 기분이 나쁜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믿기지 않겠지만 내내 이런 걱정을 하며 살았다.
오늘도 당황해서 죄송합니다를 말했고 사실 그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었는데 본능적으로 튀어나왔다. 뭐가 죄송한데? 모르겠다, 나도. 실력을 키우고 돈을 벌어서 지금의 위치보다 높은 곳에 가겠다는 열망을 품지 않는 건 그 자리에 맞는 책임감을 가져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책임감. 하여 학교 다닐 때 반장 선거에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나 하나 돌보지 못하는데 반 전체를 어떻게 통솔하고 책임 지나. 내내 뒷자리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숙제를 했다.
이혁진의 장편소설 『관리자들』은 책임감을 정의한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현경이 굴착기를 현장 식당 앞으로 몰고 온다. 식당 안에서는 소장과 인부들이 회식을 하고 있다. 거침없이 현경은 굴착기의 액셀을 밟는다. 장면이 바뀌고 식당에서 현경은 목 씨에게 선길이 멧돼지 보초병으로 서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웬 멧돼지? 공사 밥이 부실하다는 인부들의 원성을 듣자 식당 주인은 난장판이 된 부식 비닐하우스를 보여준다. 멧돼지가 내려와 쑥대밭을 만들어 놓는 바람에 밥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국도 옆 관을 매립하는 공사를 하는 현장이 『관리자들』의 배경이다. 소장을 비롯한 인부들은 공기(공사기간)를 맞추기 위해 겨울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한다. 관리자로 대표되는 소장은 소설에서 비열하게 그려진다. 멧돼지는 없었다. 식당 주인과 짜고 공사비를 뒷돈으로 만들기 위해 부린 수작이었다. 일에 적응하지 못하는 선길은 소장에게 잘 보이고 싶은 반장의 술수로 심야에 공사 현장에서 보초를 서게 된다. 있지도 않은 멧돼지를 잡기 위해.
소설은 일의 부조리함과 불합리함을 다양한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일의 절차와 순서, 원칙은 상관이 없다. 지키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일을 빨리 끝내고 그 사이에 자리를 지키고 빼 먹을 수 있는 돈이 있다면 없으면 만들어 내서라도 자신의 주머니에 넣는다. 주먹구구식으로. 회사에 들어가면 놀란다지 않는가. 이렇게 중요한 일을 대충대충 하는 것에. 하루 종일 전화를 돌리다 보면 아는 게 있다. 궁금해서 물어보면 정작 당사자도 잘 알지 못해 전화기를 돌린다.
혹은 이것도 모르냐는 식의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침묵. 그래 나 몰라. 몰라서 전화하는데 왜 그걸 모르냐는 질문을 하면 내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 건데. 『관리자들』을 읽어가다 보면 깜짝 놀라는 순간이 있다. 소장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거지 같은데 그가 하는 말은 틀리지 않다는 것에. 개소리를 길고도 성의 있게 한다. 읽다 보면 그렇지, 세상 일이라는 게 책임감을 갖는 게 아닌 책임감에서 멀어질수록 이득이 되는 거지. 수긍하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소설은 우리가 가진 편견을 깨뜨린다. 현경이 굴착기를 밀고 들어가는 소설의 시작은 끝부분으로 이어진다. 왜 회식하는 인부들이 있는 식당으로 굴착기를 몰고 갈 수밖에 없는지 『관리자들』은 점진적으로 이야기한다. 소위 관리자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책임한지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지 보고 들었다. 경험도 했으리라. 교묘하게 책임감을 지우는 자들, 관리자들. 사람들 모이는 곳에 권력이 생기고 정치질이 시작된다.
그게 싫어서 진저리 나서 이렇게 살고 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까지 천천히 걸어와서 씻고 눕는다. 천변을 걷다 보면 금목서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앞에 가는 어떤 이가 향기를 맡기 위해 마스크를 잠깐 벗었다. 모습이 아름다워 울컥했다. 전염병이 돌고 있어도 사람들이 아파도 꽃은 피고 향기를 퍼뜨린다. 여름 지나 가을.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 잠시 서서 숨을 들이켠다. 살아 있어서 맡을 수 있는 향기에 감사하며. 다시 마스크를 쓰고 밤길을 걸어가더라. 나 역시 그렇게 했다.
『관리자들』의 마지막은 얇실한 희망을 피어 올린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에게 함부로 대하는 이들은 어떤 세상을 살고 있을까. 함께 일하고 밥 먹는 이를 궁지에 몰아넣는 그들은 어떤 세상을 살게 될까. 착하고 순수하다는 말은 나쁜 뜻이란다. 좋은 말이 아니라고. 멍청하고 바보 같다는 말을 돌려서 이야기하는 거라고. 문학은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까. 피하고 도망가고 자꾸 숨는 나를. 너만은 나를 이해해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