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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정전 셰익스피어

: ‘이방인’이 본 ‘민족시인’의 근대성과 식민성

[ 양장 ] 한길신인문총서-27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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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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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1년 08월 31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956쪽 | 1456g | 160*232*50mm
ISBN13 9788935660155
ISBN10 893566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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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제국의 정전 셰익스피어』는 블룸(Harold Bloom, 1930-2019)이 말한 “우리가 셰익스피어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셰익스피어가 우리를 창조했다(우리가 누구든 간에)”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데서 출발한다. 블룸은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인간성은 시공을 초월해 끊임없이 재생산될 만큼 보편성을 지니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재현한 인간을 세계인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저자 이경원은 셰익스피어가 ‘모든 인류의 자산’이라는 전제 자체가 총체적인 연구를 가로막는 장벽이라고 이야기한다. ‘모든 인류’의 범주에는 유럽 백인 남성만 속하고 그 이외의 소수자는 철저히 배제되어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문학의 틀을 벗어나 셰익스피어 작품을 젠더와 정치적인 관점에서 비판한다. 이 책의 최우선 과제는 셰익스피어의 미학적 양가성과 정치적 중립성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것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그들의 보물이 내겐 애물이 된 셰익스피어
들어가는 말

제1부 셰익스피어 신화의 재해석

제1장 셰익스피어의 정전성과 정전화
1 정전의 중심, 셰익스피어
2 형식주의 미학과 보수주의
3 형식주의 셰익스피어의 맹점

제2장 셰익스피어의 역사성과 정치성
1 셰익스피어의 독창성
2 셰익스피어의 보편성
3 셰익스피어의 중립성
4 셰익스피어의 양가성

제3장 앵글로색슨 민족의 셰익스피어
1 ‘만들어진 전통’ 셰익스피어
2 ‘자연의 시인’ 셰익스피어
3 ‘만인의 천재’ 셰익스피어
4 ‘셰익스피어 산업’의 발전
5 ‘진짜 셰익스피어’의 신기루
6 셰익스피어의 ‘세계화’

제4장 유럽 르네상스의 역사적 신화
1 ‘부흥’과 ‘발견’의 시대
2 가상의 제국 잉글랜드
3 ‘화이트 르네상스’의 신화

제5장 르네상스와 식민주의의 정합성
1 셰익스피어와 탈식민주의의 궁합
2 인종·제국 담론의 역사성
3 르네상스 잉글랜드의 인종주의
4 르네상스 잉글랜드의 제국주의

제2부 셰익스피어가 진단한 근대성의 징후

제1장 르네상스 인간의 자화상 『햄릿』
1 전환기의 혼돈과 불안
2 의심하고 질문하는 인간
3 복수의 주체로 등장하는 인간
4 땅에서 멀어지는 인간
5 명멸하는 중세의 유령

제2장 전환기 역사의 비망록 『리어왕』
1 상충하는 두 가지 세계관
2 사랑과 결혼의 물질성
3 광기 속에서 되찾는 이성
4 정신과 육체의 역설적 관계
5 근대성의 여명

제3장 실체와 재현의 모호한 경계선
1 전환기의 언어와 역사
2 실체의 부재, 허상의 편재
3 진실과 허구의 다름 혹은 같음
4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
5 변장과 연극의 기호학

제4장 가부장제 사회의 모순과 불안
1 ‘셰익스피어의 누이들’
2 ‘드센’ 여성을 ‘다루는’ 방식
3 순결·정조 이데올로기의 틈새
4 ‘가족 로맨스’의 씁쓸한 뒷맛
5 사랑과 결혼의 근대적 풍속도
6 왜 사랑은 ‘미친 짓’인가

제5장 해학에 담긴 민중의 정치의식
1 역사의 창조자와 구경꾼
2 이름 없는 자들의 쓴소리
3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4 바보의 지혜와 가르침
5 ‘밑바닥 인생들’의 꿈

제3부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잉글랜드와 로마

제1장 민족국가 잉글랜드와 그 ‘변방’
1 셰익스피어 사극과 민족주의 담론
2 민족국가의 젠더화와 잉글랜드 남성성
3 민중 문화의 주변성과 전복성
4 잉글랜드, 민족국가에서 제국으로
5 로맨스, 야만적 폭력의 완충장치

제2장 로마 제국의 이데올로기적 토대
1 위대한 제국의 모델, 로마
2 ‘로마다움’의 미덕, 불변성
3 르네상스와 불변성의 재해석
4 불변성과 남성성 담론

제3장 ‘고귀한 로마인’의 연극적 수행성
1 ‘부동의 북극성’ 줄리어스 시저
2 ‘우리의 로마 배우’ 브루터스
3 ‘명망 있는 여자’ 포샤
4 ‘진짜 대장부’는 누구인가
5 ‘교활한 책략가’ 안토니

제4장 로마 남성성의 과잉 혹은 상실
1 로마 비극과 남성성의 파노라마
2 여성에게 전이된 남성성
3 ‘전쟁 기계’ 코리얼레이너스
4 로마의 변천과 ‘로마다움’의 변주
5 ‘녹아내리는 용사’ 안토니
6 해체된 남성성, 분열된 주체
7 셰익스피어에게 남성성이란

제5장 제국의 ‘변방’ 브리튼의 재발굴
1 브리튼의 야만성 혹은 상고성
2 로마 제국의 식민지 브리튼
3 로마 제국의 계승자 잉글랜드

제4부 셰익스피어의 인종적 타자와 식민담론

제1장 샤일록: 문화적 차이와 차별의 수사학
1 낭만 희극과 오리엔탈리즘
2 셰익스피어 시대의 유대인 담론
3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유사성
4 셰익스피어는 반유대주의자인가
5 인종주의와 결탁한 여성 주체성
6 기독교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7 개종이 수반하는 혼종화의 불안
8 포섭과 배제의 이중 전략

제2장 애런: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
1 초기습작의 정전성 논쟁
2 ‘야만인’을 닮아가는 로마인들
3 로마의 이데올로기적 지형도
4 ‘더럽혀진’ 딸과 도시의 정화
5 백인 왕비와 흑인 노예의 ‘잡혼’
6 ‘야만스러운 무어인’이 필요한 이유

제3장 오셀로: ‘고귀한 야만인’의 자기소외
1 백인 무대에 등장한 흑인 영웅
2 ‘고귀한 무어인’의 모순된 정체성
3 문명사회에 침투한 ‘야만인’
4 지배 이데올로기의 내면화
5 인종적 타자의 자기발견
6 ‘우리나라’의 대변자 이아고
7 성적 타자의 저항과 (비)주체성
8 새로운 식민주체의 탄생

제4장 클리오파트라: 진화하는 오리엔탈리즘
1 ‘동양 요부’ 신화의 재구성
2 ‘여성화된 동양’의 야만성
3 ‘변화무쌍한’ 나일강의 악어
4 시들지 않는 집시의 관능미
5 ‘동양 폭군’의 변덕과 무능
6 이집트 여왕의 마지막 변신
7 로마/이집트의 불분명한 경계선
8 오리엔탈리즘의 궁극적 승리

제5장 캘리반: 억압의 틈새와 저항의 양가성
1 행복한 결말의 유보
2 포섭되지 않는 불협화음
3 전원 세계의 식민지 상황
4 ‘잡혼’과 ‘프로스페로 콤플렉스’
5 식민지 유토피아의 명암
6 억압과 저항의 변증법

제5부 정전의 조건과 제국의 전략

제1장 왜 셰익스피어였는가
제2장 근대성과 식민성의 상호연관성
제3장 관용의 정치학과 양가성의 미학
제4장 프로스페로의 책, 캘리반의 시각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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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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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정전이 되었는가?

블룸은 셰익스피어 작품의 독창성, 보편성, 중립성, 양가성을 강조하며 셰익스피어를 정전(正典, Canon)으로 떠받든다. 저자 이경원은 이를 반박하며 셰익스피어가 제국의 정전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이에 반기를 든다.

독창성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으로 여겨지는 『햄릿』(Hamlet)은 전 세계의 비평가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햄릿 이야기는 셰익스피어 고유의 창조물이 아니라 이중 삼중 문화적 번역을 거친 혼성물이다. 햄릿 이야기의 출처는 12세기 덴마크 작가 그라마티쿠스(Saxo Grammaticus, 1150-1220)가 라틴어로 쓴 『데인족의 사적』(Gesta Danorum)이라는 책인데 열여섯 권으로 된 이 중세 덴마크 역사서에 나오는 햄릿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매우 유사하다. 또한 일부 영문학자들이 셰익스피어가 쓴 『햄릿』의 원본이라고 주장하는『원형 햄릿』(Ur-Hamlet)의 존재 여부도 많은 논란거리가 되어왔다. 그것이 셰익스피어 『햄릿』의 원본인지 다른 작가가 쓴 작품인지 불확실한 데다, 현존하는 원고나 사본은 없지만 『원형 햄릿』에 대한 기록은 파편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전기를 펴낸 미국의 문학비평가 그린블랫(Stephen Greenblatt, 1943- )은 셰익스피어가 운이 좋은 작가였다고 주장한다. 협업과 경쟁을 펼친 상당수의 동시대 극작가들이 요절한 덕분에 연극대본 작성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가 운이 좋았던 또 다른 이유는 널리 알려진 고전을 표절한 다른 작가들과 달리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저급한 문학”을 많이 모방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가 어느 날 갑자기 템스강에서 신의 계시를 받아 적은 것이 아닐 텐데, 유독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만 일점일획의 오류가 없는 ‘세속의 바이블’로 숭배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저자는 그 독창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보편성

일찍이 18세기에 존슨(Samuel Johnson, 1709-84)이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은 “공통된 인간성의 진정한 후손이며, 그의 인물들은 모든 정신을 움직이는 보편적 열정과 원칙의 영향에 따라 행동하고 말한다”라고 주장한 이래, 보편성은 낭만주의와 빅토리아 시대를 거쳐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셰익스피어 비평사의 핵심개념으로 자리 잡아왔다.

미국의 백인 문화인류학자 보해넌(Laura Bohannan, 1922-2002)은 「미개지에서의 셰익스피어」라는 글에서 나이지리아 내륙지역에서 현장답사를 하면서 겪었던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한다. 보해넌은 평소에 “『햄릿』은 오로지 한 가지 해석만 가능하며 그것은 보편적으로 명백한 것”임을 굳게 믿고 있었는데, 그 신념은 티브(Tiv)라는 조그만 부족공동체와의 문화적 조우를 계기로 여지없이 무너지게 된다. 그런데 보해넌의 의도와 달리 부족민들은 백인 화자가 중요하게 여긴 『햄릿』의 모티프를 하찮게 생각하는 반면, 지엽적인 사건과 인물은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이를 통해 보해넌은 문명의 ‘중심부’에서 유통되는 셰익스피어와 ‘주변부’에서 수용되는 셰익스피어가 같지 않음을 인정했다.

서구 안에서도 ‘불변의 셰익스피어’와 ‘가변의 셰익스피어’ 사이에 이렇게 메워지기 힘든 단층선이 형성되는데, 서구 바깥을 향해 ‘우리의 셰익스피어’에 심취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서구 중심적 본질주의자의 욕심이라고 저자는 강변한다. 만약 셰익스피어가 각종 문화산업과 언론매체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우리의 동시대인’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중립성

블룸이 의미한 중립성이란 정치적 편향성의 반대개념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모든 이데올로기로부터의 자유로움 또는 초연함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르네상스 잉글랜드의 연극무대는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매개하는 공간이었다. 이는 특정 세력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거나 배척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봉건귀족과 신흥중산층의 긴장 관계는 연극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관계자에게 가장 불안한 뇌관이었다. 역동적이면서 억압적이었던 런던에서 활동한 셰익스피어에게 정치적 균형감각은 불가결한 생존전략이었다. 셰익스피어는 타협의 귀재였다. 벤 존슨(Ben Jonson, 1572-1637)과 토머스 내시(Thomas Nashe, 1567-1601) 같은 동료 작가의 필화를 목격한 셰익스피어는 특정 세력을 비난하거나 옹호하는 발언을 최대한 자제했고 연극무대에 허용된 ‘인가받은 일탈’의 경계선을 넘지 않았다.

셰익스피어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른 혁명적 낭만주의자도 아니었고 속세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관념적 초월주의자도 아니었다. 인클로저 법령에 맞서 균등한 토지분배를 외쳤던 민중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 역사의 흐름을 잘 읽어내고 거기에 편승할 줄 아는 현실주의자였다. 그러한 셰익스피어를 정치적 중립성이나 초연함으로 포장하는 것은 그의 텍스트에 담긴 역사성을 억지로 솎아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셰익스피어가 제국의 정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원인은 셰익스피어의 탈정치성이 아니라 정치성에 있다.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보장해주는 ‘그 무엇’은 미학적 요소인 동시에 정치적 요소다. 셰익스피어는 근대성의 이데올로기를 문학적으로 구현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으며, 그것이 제국의 이데올로기적 기획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이데올로기를 초극한 것이 아니라 적극 재현했으며, 텍스트 안에서 민족국가와 제국을 건설했다.

양가성

블룸이 말하는 셰익스피어의 양가성은 해석의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뜻한다. 그런데 셰익스피어 특유의 양가성은 중립성이나 보편성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의 가설을 따라가면, 양가성이 셰익스피어의 고유한 재현양식이 아니라 시대의 보편적 정서였다는 주장이 성립한다. 하위징아가 말하는 중세의 유산이란 “피 냄새와 장미의 향기를 동시에 발하고 있었다”라는 구절로 대변되는 심리적·사회문화적 양가성이다. 불안정한 중세에서 안정화된 근대로 이행하던 르네상스 시대에도 중세로부터 물려받은 양가성이 인간의 내면세계와 사회문화적 풍토를 지배하고 있었다.

물론 셰익스피어가 상충하는 가치 사이에서 찢어지고 갈라진 르네상스 인간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기술은 점수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셰익스피어: 인간성의 발명』(Shakespeare: The Invention of the Human)이라는 블룸의 책 제목이 암시하듯 그 시대에 내재한 양가성을 마치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것처럼 강변한다면, 그것은 맹목적인 찬양이요 몰역사적인 비평이다.
셰익스피어라고 해서 그 유구하고 완고한 전통에서 비켜서 있지는 않다. 셰익스피어가 젠더, 계급, 인종, 종교 등의 여러 심급에서 시도한 파격적인 타자 재현은 표층 담론의 변주일 뿐 심층 담론의 해체는 아니다. 어쩌면 양가성의 논리로 셰익스피어의 ‘사심 없음’과 ‘이데 올로기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추인하는 것이야말로 대영제국의 민족시인 셰익스피어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동시에 그가 복무한 이데올로기에 이서(裏書)하는 효과를 수반할 수 있다.

가부장제 사회의 모순과 불안

미국의 여성 사학자 켈리(Joan Kelley, 1928-82)는 “여자들에게도 르네상스가 있었던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남성 중심적 역사학 전통에 균열을 가했다. 르네상스 인본주의자들이 재배치한 ‘인간’의 범주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우리는 이를 셰익스피어의 텍스트 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여성의 순결과 정절에 집착하는 남성이 넘쳐난다. 남성들의 의심과 질투는 근거도 없고 해결책도 없다.

여성 주체는 충분히 주체적이지 않다.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귀족 여성들은 한결같이 요란하게 등장했다가 한순간에 허망하게 사라진다. 때로는 고매하고 때로는 문란한 여성들의 도전은 단순한 일탈이나 위반으로 귀결된다. 그들은 남성 주인공의 영웅적 함량을 시험하는 수단이자 자기성찰의 여정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으로 철저히 이용되고 마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여주인공은 가부장제 질서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크게 네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범주는 드센 여자가 더 드센 남자에게 순응하게 되는 경우다. 그 대표적인 작품은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Shrew)인데 이 극에는 말괄량이 신부 캐서리나에 대한 독불장군 신랑 페트루치오의 언어적·물리적 폭력이 난무한다. 캐서리나는 “여자가 저항 정신이 없으면 바보나 다름없다”며 아버지와 예비남편의 가부장제 권위에 맞서지만 페트루치오는 그녀의 기질을 역이용하여 제압하는 전략으로 완고한 성품에 재갈을 물린다. 이 극은 초기 셰익스피어의 미숙한 극작술을 드러내는 남성 중심적 소망성취의 판타지다.

두 번째 범주는 순결·정조 이데올로기로 길들여지는 여성이다. 셰익스피어의 낭만 희극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은 아버지의 권위나 예비남편의 구애에 승복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면서 버팀으로써 결혼으로 귀결되는 플롯을 지연시킨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부장제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의 덕목을 받아들이면서 바람직한 신부로 거듭나게 된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비앙카, 『한여름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의 허미아,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의 비어트리스, 『태풍』(The Tempest)의 미랜다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세 번째 범주는 자신의 욕망을 남장(男裝)이라는 연극적 장치로 은폐하는 동시에 해소하는 여성이다. 『베로나의 두 신사』(The Two Gentlemen of Verona)의 줄리아,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의 포샤, 『좋으실 대로』(As You Like It)의 로잘린드, 『열이틀째 밤』(Twelfth Night)의 비올라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착한 딸’이나 ‘고분고분한 여자’로 남아 있기를 거부하고 기지를 발휘해 장애물을 제거한 후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쟁취한다. 이를 위해 여성들은 ‘남성성’의 외피를 걸치고 남자들만의 배타적 영역에 잠입해 잠정적으로 인가받은 주도권을 행사한다. 사회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개인적 욕망을 구현하는 이들의 위장 행보는 가부장적 권위와 여성의 주체성 사이에서 셰익스피어가 모색한 타협안이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범주는 여성의 주체성에서 비롯되는 불안을 계급적 타자에게 전이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그 대표적인 예를 『헛소동』과 『열이틀째 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두 낭만 희극의 여주인공들은 전통적인 ‘여성성’과는 거리가 멀다. 『헛소동』의 히어로는 비어트리스에 비해 조용하고 수동적인 여성처럼 보이지만, 그의 이름 “히어로”(Hero)와 “처녀 기사”라는 칭호가 무색하지 않게 자신의 정절을 둘러싼 조작된 소문에 굴하지 않을뿐더러 완고한 독신주의자 비어트리스가 결혼하도록 배후에서 조종하고 주도한다.

스즈키(Mihoko Suzuki, 1953- )에 따르면, 히어로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하녀 마거릿을 통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이 남성 관객들에게 달갑지 않은 일인데, 이 극은 그 책임을 마거릿의 애인 보라치오에게 전가한다. 계급적 타자인 보라치오는 성적 타자인 히어로와 마거릿의 전복적 행위가 수반하는 불안감을 전이하고 해소하는 희생양이다.

이렇듯 셰익스피어가 비극에서나 희극에서나 여성을 욕망의 주체로 재현하는 것은 그만큼 당시 가부장제 사회의 권력 구조가 불안정했음을 반증한다. 켈리가 지적한 대로 르네상스는 잉글랜드에서도 ‘그들’이 배제된 ‘우리’끼리의 잔치였지만, 젠더 관계의 모순에서 기인한 파열음은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었고, 이를 무마하기 위한 시도는 전례 없이 다양하고 활발했다. 16세기 잉글랜드 경우도 여성의 욕망은 억누를수록 더욱 꿈틀거렸고 이에 따른 남성의 불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남성들의 불안과 시대상을 대변해줌으로써 이데올로기를 재현해냈다.

셰익스피어 작품 속 인종 장벽
‘고귀한 무어인’의 모순된 정체성


『오셀로』(Othello)의 주인공은 무어인 장군 오셀로다. 셰익스피어는 이 무어인에게 화려한 언변과 화술 같은 백인중심사회에서 바라봤을 때 흑인과 어울리지 않는 특징을 부여한다. 그는 백인 주류사회 내부의 흑인 영웅을 창조함으로써 전례 없는 진기한 연극적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잉글랜드 르네상스 관객들에게 검은 피부를 지닌 비극 영웅은 개념적 모순이었고, 인종 장벽을 넘어선 사랑과 결혼은 악명 높은 위반이었으며, 무대 위에서 생생히 재현된 살해 장면은 용납 불가능한 충격이었다.

룸바는 이 극의 갈등은 백인가부장제 사회의 인종주의와 그것에 도전하는 오셀로·데즈데모나 사이에 형성되며, 갈등의 전개 방식은 오셀로의 ‘흑인성’ 즉 인종적 차이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고 주장한다. 극의 서사구조도 성격묘사도 인종주의적이라는 얘기다. ‘고귀한 무어’ 장군 오셀로는 백인에게 고귀하다고 인정받으려는 흑인, 흑인이면서도 흑인혐오와 백인선망에 빠진 흑인, 백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백인과 동일시하는 흑인이다.

『오셀로』에서 기본 갈등은 인종 장벽을 넘어서려는 두 남녀주인공과 인종주의에 기초한 백인가부장제 사회 사이에 전개된다. 개인의 욕망과 사회의 규범이 충돌하는 모양새다. 오셀로의 정체성은 이중적인 동시에 양극적이다. 한쪽에는 공작이 존경하고 데즈데모나가 사랑하는 장군이 있고 반대쪽에는 백인사회가 경멸하고 차별하는 무어가 있는데, 그 사이에 중간지대는 없다. 백인사회가 오셀로를 바라보는 시각만큼이나 오셀로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극단적이기 때문에 화해의 가능성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오셀로가 인종주의를 내면화하는 양상이다.

오셀로가 겪는 내적 갈등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인종적 자의식(self-consciousness)이다. 무어인 오셀로는 ‘야만인’이며 아름다운 백인 여성 데즈데모나와의 결합은 ‘잡혼’이라는 인종편견은 베니스의 백인기독교 사회에 팽배해 있다. 문제는 오셀로 자신도 그 편견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젠더와 인종의 심급에서 나타나는 오셀로의 이중적 집착은 결국 가정폭력으로 이어진다. 이아고가 설치한 의심의 덫에 빠진 오셀로는 만약 데즈데모나가 배신했다면 그 원인은 자신의 ‘검은 피부’ 때문이라고 예단한다. 이는 인종주의를 외면하려는 오셀로와 인종주의에 승복하는 오셀로 사이의 싸움이다. 결과는 후자의 승리다.

룸바는 『오셀로』를 “인종 간의 사랑과 사회적 포용성에 관한 판타지인 동시에 인종 혐오와 남성 폭력이 빚는 악몽”으로 규정한다. 이 극의 최종심급은 계급이나 젠더가 아니라 인종이다. 『오셀로』에서 젠더 관계의 갈등이 화해 불가능한 파국으로 치닫는 이유는 인종 장벽 때문이다. 엄밀히 얘기하면, 인종적 차이로 형성된 단층선이 불균등한 젠더 관계로 인해 굳어질 뿐이다.

식민지 유토피아의 명암
캘리반의 시각에서 읽는 프로스페로의 책


셰익스피어가 지닌 이데올로기를 가장 잘 드러내는 극은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태풍』이다. 밀라노의 공작 프로스페로는 동생 안토니오와 나폴리 왕 알론조의 음모로 딸 미랜다와 함께 추방당한 뒤 오랜 기간 섬에서 머물면서 마법의 힘을 지니게 된 인물이다. 그는 마법의 힘으로 태풍을 일으켜 알론소와 그의 아들 퍼디난드 일행의 배를 난파시켜 섬에 표류하게 한다. 알론소와 퍼디난드는 서로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비통해한다. 그 사이 프로스페로는 퍼디난드와 자신의 딸 미랜다 사이에 사랑이 싹트게 한 후 퍼디난드의 사랑을 시험한다. 한편 아들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알론소가 프로스페로를 쫓아냈던 과거의 일을 뉘우치자 프로스페로는 그를 용서하여 마법의 능력을 버리고 밀라노 공작으로 복귀할 것을 선언하면서 극이 마무리된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프로스페로는 다양한 피지배자와 마주친다. 그는 어머니가 부재한 상황에서 자신의 딸 미랜다를 관리하고 통제하며, 12년 동안 사악한 마녀 시코렉스에게서 구해준 대가로 자신의 충복이 된 에어리얼을 부린다. 또한 이 섬의 본래 주인이었던 캘리반을 하인으로 삼고 섬을 빼앗아 마음대로 지배한다.

프로스페로가 캘리반을 다루는 방식은 식민지배를 연상시킨다. 이 극에서 가장 반항적인 인물인 캘리반은 물리적 폭력으로만 통제 가능하다. 프로스페로는 에어리얼에게는 칭찬의 말로 그가 노예근성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하지만 캘리반은 그의 타고난 폭력성을 부각함으로써 폭력적인 식민지배의 명분을 확보한다.

미랜다의 처녀성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이용하려는 프로스페로에게 캘리반이 미랜다를 겁탈하려는 계획은 가장 불쾌하고 불안한 일이다. 흑인 노예가 백인 귀족 여성의 몸을 더럽히는 것은 인종과 계급의 벽을 허무는 체제전복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캘리반이 알론소를 용서하고 딸 미랜다를 퍼디난드와 결혼시키며 아름다운 결말이 완성되지만 캘리반은 프로스페로가 베푸는 용서와 화해의 잔치에 끝까지 동참하지 못한다.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미개인’은 파농이 분석한 ‘니그로’와 비슷한 면이 많다. ‘흑인은 백인의 노예가 되고 나서 스스로 노예가 된다’는 파농의 구절에서, ‘흑인’과 ‘백인’이라는 단어 대신에 ‘캘리반’과 ‘프로스페로’가 들어가도 별로 어색하지 않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캘리반의 시각에서 읽는 프로스페로의 책’이다.

저자 이경원은 글로벌자본주의의 헤게모니가 존속되는 한 셰익스피어가 없어져도 누군가가 그의 자리를 대체하게 마련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셰익스피어 폐기론이나 무용론은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되기 어렵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프로스페로의 책’을 ‘캘리반의 시각’으로 다시 읽는 작업이다. 셰익스피어가 인종주의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문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지 않는지 끊임없이 되짚어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저자는 캘리반의 염원을 담은 케냐의 소설가 응구기(Ng?g? wa Thiong’o, 1938- )의 말로 책을 끝맺으며 세계문학의 지형도에 물음을 던진다.

“자신을 노예로 인정하지 않는 노예는 결코 온전한 노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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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주제에 글이 잘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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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셰*****언 | 2022.08.02
구매 평점5점
의외로 잘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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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니 | 202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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