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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틴더를 시작했다

5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틴더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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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9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06쪽 | 162g | 123*200*8mm
ISBN13 9791188969371
ISBN10 1188969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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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년간의 연애를 끝내는 바람에 순식간에 망망대해로 떨어졌다.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언제든 의지하던 존재, 다사다난했던 내 20대의 대부분을 함께한 존재인 Z를 내 손으로 보내는 건 생각보다 좀 더 섬이 되어 버리는 일이었다. 나는 아주 너른 바다에 피어나 버린 섬이 된 기분과 동시에 아주 두껍고 좁은 네 귀퉁이가 있는 벽 속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 p.12

첫 번째 연애였기 때문에 Z와의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그를 5년간 만나다 보니 어쩌면 평생 단 한 명하고만 섹스를 하다가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Z와 헤어졌고 훨씬 더 열린 세계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와 헤어진 후 다른 남자와의 섹스가 어떨지 궁금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 호기심으로 틴더를 시작했다고 해도 사실 과언은 아닐 것이다
--- p.21

두 번째 만남에서 고깃집을 갔을 때도 그는 내가 젓가락을 들 필요도 없이(정말로 그랬다) 숟가락에 고기와 반찬을 끊임없이 얹어 주었고 나는 아기 새처럼 그것을 받아먹었다. 한입에 하나씩, 무언가 부족했던 게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무언가에 허기를 느끼고 있음은 분명했지만, 고작 이런 것, 이런 사소한 친절이라니. 이렇게 의지하는 방식이라니. B가 나를 섬세하게 챙겨 주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허전했던 구멍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어 견디기가 힘들었다.
--- p.30

Z는 무심하리만치 나의 취향을 모르는 남자였고 센스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B의 선물과 비교가 되었다. Z는 가끔 알 수 없이 비싼 볼펜이나 유치한 필통, 쓸모 있지만 낭만은 없는 도구 같은 걸 사 오는 남자였고, B는 만난 지 몇 주 만에 내 취향을 알아내서 딱 맞는 선물을 해 주는 사람이었다. Z와의 데이트에서 늘 취향을 물어보는 쪽은 나였다. 종종 나는 내 취향이 아닌 그가 좋아하는 팀의 야구 경기, 내가 싫어하는 종류의 영화를 보러 다녔다. 나는 내 취향에 관해 설명하기보다는 상대의 취향에 내 일상을 맞추며 긴 연애를 해 왔다. B는 분명 Z에 비하자면 연애하기 딱 좋은 그런 사람이었다.
--- p.33

나는 이런 C의 모습이 내 이전의 연애와 비교해서 틀렸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저 C가 가진 특징일 뿐이라고 판단을 해야 하는지 결정이 서지 않았고, 거기서 오는 불안함은 결국 그를 믿지 못할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그가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아침에 연락을 한 날, 나는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Z 사전에는 늦은 술자리가 없었다. Z의 기준으로 연애를 시작해 버린 나에게 C의 늦은 술자리는 오류사항이었다
--- p.44

D를 잃고 나서 우습게도 나는 Z와의 이별을 떠올렸다. Z는 나의 연인이기 이전에 나의 친구였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그와의 섹스나 그에 대한 이성으로서의 기억보다는 그가 나와 제일 가까운 친구였다는 점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서로의 일상을 누구보다 시시콜콜 알고 있는 사이였고, 고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서로에게 털어놓는 내밀하고 친한 친구였다. 그런 사람과 단번에 연락을 끊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 p.57

연애는 단순히 연애라는 부분으로만 인생의 한구석을 차지하는 게 아니다. 연애를 한다는 건 한 사람의 서사를 통으로 가져오는 일이다. 누군가와 연애하면 나는 그의 과거, 현재를 보게 되며 그가 앞으로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도 알게 된다. 어떤 상대에게서는 그의 친구보다도 더 내밀한 것들을 알게 되는데, 누군가에 대해 그만큼 자세히 알게 된다는 건 묵직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가져다준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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