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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아이돌

아무튼, 아이돌

: “또 사랑에 빠져버린 거니?”

아무튼, OO-045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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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9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202g | 110*178*13mm
ISBN13 9791188343492
ISBN10 1188343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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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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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도 역대급으로 어이없는 입덕이었다. 무릇의 덕통사고가 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라면을 먹으며 〈너의 목소리가 보여〉 재방송을 보다가 생경한 얼굴이 박장대소하는 장면에서 심장이 내려앉을 줄은 몰랐다. 안경이 잘 어울리네… 중얼거리다가, 웃는 모습이 해사하다고 생각하다가, 멘트를 못 쳐서 자꾸만 그 잘난 얼굴이 화면 밖으로 나가버리는 게 안타까울 즈음, 기어이 그날 착장으로 찍은 사진들을 검색하고 말았다. 나의 라이관린(이하 린린) 덕질은 그렇게 시작됐다.
--- 「봄바람」 중에서

내게 플래카드를 만들어준 그 언니도 이곳에 있을까? 우리가 혹시 같은 구역에 있지는 않을까? 그 언니의 닉네임엔 계상 오빠가 들어가 있었는데 플래카드에도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을까? 사방이 온통 하늘색 풍선뿐인 객석을 둘러보며 나는 끝없는 충만함에 문득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너무 기뻐도 서글플 수 있는 걸까. 그 감정이 낯설어 플래카드와 풍선을 든 손을 더 높이 뻗어 흔들었다. 오빠들은 아직 열렬히 노래 중이었다.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야아아”라고.
--- 「하늘색 풍선」 중에서

확실히 소녀들은 우상화된 남성 아이돌에 더 쉽게 장악당하고 압도당했지만 우리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우상보다는 롤 모델이었다. 아쉽게도 내가 자라던 때는 사회 전반적으로 롤 모델로서의 여성 역할을 획일화하는 데 부지런했던 시절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마치 반항하듯 베이비복스에 매료됐다. 그녀들은 무대를 마치 런웨이처럼 성큼성큼 활보했고, 대체로 미소 지을 필요가 없는 노래들을 불렀다(조소는 많았다).
--- 「Change」 중에서

그런데 왜 보아였을까? 〈인기가요〉를 교양 프로그램 삼아 지내던 내게 보아만큼 다채로운 자극을 주는 가수는 없었다. 보아는 TV에 꾸준히 등장하는 거의 유일한 또래 솔로 가수인 동시에, 내가 아는 가장 당당한 또래 여성이었다. 당시는 아직 소녀시대나 원더걸스 등 2세대 걸그룹이 등장하기 전이기도 했거니와 바야흐로 걸그룹 전성시대가 열린 이후에도 보아와 같은 솔로 가수는 여남을 통틀어 전무하다시피 했으니, 그 시절 보아에 매료당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 리 없다. 그냥, 보아니까. 보아의 존재가 특별하니까.
--- 「먼 훗날 우리」 중에서

나는 기본적으로 ‘덕질’이 어째서 내 밥을 먹여주는 일이 되어야 하는지 꾸준히 의문을 가져온 사람이다. 우리가 각자의 잉여 시간에 얼마나 생산적인 일들을 하는지 잠시 돌이켜본다면 타인의 덕질에 1도 연관 없는 자가 덕질의 효율이나 쓸모를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무례한 짓인지 깨달을 수 있을 텐데.
--- 「덕후 마음 설명서」 중에서

덕질은 마음의 문이 언제나 밖으로 활짝 열려 있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문 너머로 쏟아 보내는 무작정인 너그러움은 결코 당연한 게 아니다. 어렸을 때야 순진한 구석이 어느 정도는 남아 있었다 쳐도, 약아빠진 어른이 된 지금도 덕질을 하며 조건 없이 열정을 쏟고 무한히 이타적인 사람일 수 있다는 데 자주 놀라곤 한다.
--- 「덕력도 능력이다」 중에서

엄마는 행동하는 팬이었다. 외할머니의 화장품을 몰래 빌려 당시엔 미성년자 입장이 불가능했던 극장 공연을 야무지게 관람하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초청 가수 라인업이 쟁쟁한 나이트클럽에 가서 소기의 목적도 잊고 신나게 흔들다 오곤 했단다. 엄마는 무대 위의 사람들을 부지런히 동경하며 청춘을 보냈고, 마침내 딸을 임신하게 됐을 때, ‘별’이나 ‘태양’처럼 하늘에 있는 것 중 가장 반짝이는 것으로 이름을 짓고 싶어 했다. 아빠가 턱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지금의 내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시간이 흘러 ‘별’과 ‘태양’으로 활동하며 큰 사랑을 받은 가수들이 존재한 걸 보면 아빠도 그때만큼은 엄마의 의견을 따랐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 「엄마의 사적인 시간을 관찰하며」 중에서

트위터에 남긴 무수한 사랑의 말들이 세계를 부유하다 마침내 내게 도착하는 상상을 해본다. 나는 언제나 스스로를 가장 마지막에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두었는데, 그 시간은 어쩌면 내가 세상에 전송한 사랑의 총합을 기다리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기다림이라면 기꺼이 할 만한 게 아닐까. 이 사랑의 결과로 앞으로의 나는 자신을 더 잘 사랑하는 사람이 될 테니 말이다.
--- 「오늘 밤도 와이트」 중에서

내가 생각하는 ‘책임감 있는 덕질’도 바로 이런 마음에 기인한다. 끝없이 꿈꾸도록 설계된 시스템에서 개성이 다치지 않기를, 데뷔 이후에도 주어지는 공백기 동안 불안에 잠식되기보다 홀가분한 쉼표를 찍을 수 있기를, 춤과 노래 말고도 스스로의 성장을 목격할 수 있기를 바라며 아이돌에게 마음을 열고 지갑도 연다. 인생이 고단할 때마다 여러 아이돌을 보며 노력 없이 웃고 기력을 얻은 만큼, 내 행복을 바라듯 그 애들의 행복을 바라 마지않는다.
--- 「난 항상 FAN인걸, 그대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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