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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계몽

: 이성, 과학, 휴머니즘, 그리고 진보를 말하다

[ 양장 ] 사이언스 클래식-37이동
리뷰 총점9.8 리뷰 62건 | 판매지수 8,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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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1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864쪽 | 1390g | 162*233*47mm
ISBN13 9791191187298
ISBN10 1191187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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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MD 한마디

[스티븐 핑커 신작, 세상은 정말 망해가고 있을까?] 자원고갈, 양극화, 기후변화,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이 세상은 점점 망해가고 있는 걸까?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쓴 세계적인 석학 스티븐 핑커는 세상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 다시 계몽주의가 인류의 진보를 이어가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데이터에 근거해 흥미롭게 보여준다. - 자연과학 MD 김태희

한 줄기 희망이 되어 줄 세계적 석학의 거작!
빌 게이츠가 “내 생에 가장 훌륭한 책”이라고 절찬한
33개 언어로 번역된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


세계는 정말 망해 가고 있을까? 진보의 이상은 폐물이 되었을까? 세 번째 밀레니엄에 인간 조건을 기품 있게 다룬 이 책에서 인지 과학자이자 대중적 지식인인 스티븐 핑커는 이제 그만 소름 끼치는 헤드라인과 암울한 예언에서 멀어지라고 촉구한다. 우리의 심리적 편향을 악마의 모습으로 그리는 그 모든 저주에서. 대신에 객관적인 데이터에 귀를 기울여 보라고. 놀라운 그래프들을 75개나 보여 주면서 핑커는 서양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삶, 건강, 번영, 안전, 평화, 지식, 행복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진보는 어떤 우주의 힘이나 수정 구슬의 마법이 아니다. 계몽주의, 즉 지식이 인간의 번영을 증진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 원천이다.

우리가 이미 깨달았듯이, 계몽주의는 순진한 희망이 아니며 실제로 작동해 왔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옹호가 필요하다. 계몽은 선동자들이 즐겨 이용하는 인간 본성-부족 중심주의, 권위주의, 악마화, 마술적 사고-에 반대한다. 계몽주의는 모든 지식인이 합의한 내용이 절대 아니며, 서양 문명이 구제 불능 상태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는 종교, 정치, 문화 분야의 비관주의자들에게 맹렬히 공격당하고 있다. 그 결과 숙명론이 암처럼 번지고 자유 민주주의와 지구적 협력에 기초한 소중한 제도들이 난파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핑커는 냉소와 공포에 도전한다. 인간은 본래 불합리한 존재일까? 도덕성을 세우기 위해 종교가 꼭 필요할까? 근대성이 우리에게 외로움과 자살만 남겨 주었을까? 우리는 “탈진실 시대”에 살고 있을까? “공포의 시대”에? 전면적인 핵전쟁, 자원 고갈, 기후 변화, 고삐 풀린 인공 지능이 어느 순간에 이 모든 것을 파괴할까? 핑커는 지적 깊이와 문학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이성, 과학, 휴머니즘을 옹호한다. 우리가 현실의 문제와 맞서고 인류의 진보를 이어 가는 데 꼭 필요한 그 소중한 이상들을.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을시작하며 9

1부 계몽
1장 감히 알려고 하라! 25
2장 엔트로피, 진화, 정보 37
3장 반(反)계몽 59

2부 진보
4장 진보 공포증 71
5장 생명 93
6장 건강 107
7장 식량 117
8장 부 133
9장 불평등 159
10장 환경 195
11장 평화 247
12장 안전 263
13장 테러리즘 297
14장 민주주의 309
15장 평등권 331
16장 지식 359
17장 삶의 질 379
18장 행복 401
19장 실존적 위협 443
20장 진보의 미래 493

3부 이성, 과학, 휴머니즘
21장 이성 531
22장 과학 581
23장 휴머니즘 619

후주 685
참고 문헌 764
옮긴이 후기 834
찾아보기 839

저자 소개 (2명)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포퓰리즘과 양극화, 반지성주의와 진보 혐오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계몽과 진보의 꿈을 되살리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결코 완벽한 세계를 갖지 못할 테고, 그런 세계를 추구하는 일은 위험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의 번영을 증진하는 일에 지식을 계속 적용할 때 세계를 개선할 방안에는 한계가 없을 것이다.

이 영웅적인 이야기는 또 하나의 신화가 아니다. 신화는 허구지만 이 이야기는 사실 - 우리가 가진 최고의 지식,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단 하나의 진리에 비추어 틀림이 없는 사실 - 이다. 우리가 그 진실을 믿는 것은 그렇다고 믿을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알아 감에 따라 우리는 그 이야기의 어느 구절이 계속 참이고 어느 구절이 거짓인지를 밝힐 수 있다. 어떤 구절도 거짓일 수 있고, 어떤 구절도 거짓이 될 수 있다.

또한 그 이야기는 어느 한 부족의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것, 이성의 힘과 이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지각력이 있는 모든 존재의 것이다. 그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죽음보다 삶이 더 낫고, 병보다 건강이 더 낫고, 궁핍보다 풍요가 더 낫고, 압제보다 자유가 더 낫고, 고통보다 행복이 더 낫고, 미신과 무지보다 지식이 낫다는 확신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데이터와 증거, 사실에서 진실을 찾는
위대한 21세기적 계몽 사상가 스티븐 핑커의 새 모습을 만난다!


명확한 글쓰기, 시기적절하고 풍부한 데이터로 무장한 웅변, 합리적인 휴머니즘에 대한 강력한 옹호로 가득한 이 책은 정말로 훌륭한 책이다. 그리고 정말 쿨한 책으로 읽힐 것이다.
- [뉴욕 타임스 북 리뷰]

가장 고상한 과학 저술!
- [사이언스 매거진]

이성과 과학에 대한 열정적이고 설득력 있는 변호, 그리고 진보가 우리게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가치라는 깨달음을 상기시켜 주는 책.
-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과학에 대한 세심한 방어와 객관적인 분석, 그리고 우리의 정치를 어지럽히는 부족주의, 편협한 진영 논리, 가짜 뉴스에 대한 적확한 반박!
-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놀라운 데이터와 흥미진진한 정보로 가득한 묵직한 책!
- [파이낸셜 타임스]

계몽주의 이후의 역사, 개선의 역사였음을 입증한 강력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이성, 지식, 호기심의 가치를 다시금 고양시키는 더 좋을 수 없는 책. - 보스턴 글로브

진보 공포증에 대항하여 근대성의 가치를 완벽하게 방어한다.
- [타임스 하이어 에듀케이션]

좌파와 우파의 부족주의자들이 퍼뜨리는 현대의 신비주의에 강력한 타격을 가한다.
- [리즌]

이 책은 공정한 사람들이 반드시 봐야 하는 그래프와 데이터를 제공한다. 그리고 핑커의 결론은 늘 그렇듯이 도발적이다.
- [콜로라도 스프링스 가젯]

인류가 21세기의 삶에 대해 낙관적일 수 있는 모든 이유가 이 책에 담겨 있다. 그의 팬은 물론이고 다른 모든 이들 사이에서 깊은 사색과 토론을 불러일으킬 진보의 변호서.
- [북리스트]

핑커는 계몽 시대 이후 인류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보여 주기 위해 동시대의 비평가, 전문가, 냉담한 사상가, 포퓰리즘 정치가에 맞서 가며 진보의 이념을 옹호한다. 감동적이고 중요한 책이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정치 사회 문제를 다루지만 신경 과학과 인지 심리학 등 여러 분야의 흥미로운 정보로 가득한 흠잡을 데 없는 책이다. 저자는 쇠퇴주의가 비관주의가 일상적으로 퍼져 있는 세계에서 계몽주의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조상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으로 만들어 왔는지 조사한다.
- [커커스 리뷰]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스티븐 핑커의 마음은 순수하고 수정 같은 지성, 심오한 지식과 인간에 대한 동정으로 가득하다.
- 리처드 도킨스

세계는 좋아지고 있다.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말이다. 스티븐 핑커처럼, 세계가 진보해 가는 모습을 대국적으로 그려 내는 사상가가 있다는 사실이 반가울 뿐이다. 이 책은 핑커의 최고 걸작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졸업 선물을 줄 수 있다면, 이 책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은 제가 읽은 책 중 가장 영감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 빌 게이츠

건강 문제에서 전쟁 문제까지, 환경 문제에서 행복감 문제까지, 평등권 문제에서 삶의 질 문제까지, 광범위한 영역에서 진보가 이룬 것을 측정해 보여 주는, 굉징한 책이다.
- 니콜러스 크리스토프 (Nicholas Kristof, 미국의 정치 평론가, 퓰리처 상 2회 수상자)

핑커는 대화와 공동체를 복원하는 데 필요한 지적 정직성과 용기의 전형을 보여 준다.
- 데이비드 브룩스 (David Brooks, 미국의 시사 평론가)

회원리뷰 (62건) 리뷰 총점9.8

혜택 및 유의사항?
스티븐 핑커의 '계몽'을 의심해야 할 이유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c******6 | 2022.01.16 | 추천5 | 댓글0 리뷰제목
   스티븐 핑커의 ≪지금 다시 계몽≫은 2018년 출간 후 일약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책이다. 이 책을 통해 '거장'의 세계사적·통사적 관점을 맛보고 싶었던, 인문학을 사랑하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지금 다시 계몽≫이 꽤나 만족스러운 독서 경험을 안겨주었을지 모르지만, 매끄럽게 잘 빠진 이야기가 항상 진실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매끄러움을;
리뷰제목

 

 스티븐 핑커의 ≪지금 다시 계몽≫은 2018년 출간 후 일약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책이다. 이 책을 통해 '거장'의 세계사적·통사적 관점을 맛보고 싶었던, 인문학을 사랑하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지금 다시 계몽≫이 꽤나 만족스러운 독서 경험을 안겨주었을지 모르지만, 매끄럽게 잘 빠진 이야기가 항상 진실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매끄러움을 위해 생략해버린 디테일에 항상 정말 중요한 진실이 있는 법이다. 

 이 책의 번역 출간 이후, 세계적 '석학'들의 강연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화제를 모았던 EBS의 <위대한 수업>에 스티븐 핑커는 '팩트 폭격'이라는 이름의 강의로 출연했다. '팩트 폭격'이라는 이름이 공영교육방송의 표현 치고는 퍽 상스럽지 않은가 싶지만, 사실 저자가 ≪지금 다시 계몽(이하 ≪계몽≫)≫을 통해 전파하고 있는 통사적 관점의 유치함, 부박함과 잘 조응하는 면이 있다. 

 ≪계몽≫의 담론적 위상을 계보학적으로 탐색할 때, '신낙관주의(New Optimism)'라는 이름이 종종 언급되고는 한다. ≪계몽≫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사회과학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한 ≪팩트풀니스≫와 함께, '신낙관주의'라는 하나의 담론적 경향을 대표하는 저서다. 이 경향을 대표하는 저명한 이름으로는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븐 핑커뿐만이 아니라,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슬링, 스웨덴 역사학자 요한 노르베리, 과학 저술가 맷 리들리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신낙관주의자'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지향이 있다면, '팩트'를 통해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낙관주의'를 증명해보이려는 시도다. 하지만, '신낙관주의'는, 그 자신이 표방하는 것('팩트', '이성', '과학'...)과 달리, 이념적인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사조다. '신낙관주의'에 대한 기획기사에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기자 올리버 버크만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 삶의 고통이 수백년 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고 우리를 설득하는 것이 신낙관주의자들의 본질적 관심은 아니다. ...몇 가지 더 논쟁적인 함의들이 있다. ...(비록 신낙관주의자들의 저술에 항상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주장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지난 수십년 간 해온 것이 무엇이건, 그것이 분명히 잘 기능하고 있고, 따라서 우리를 지금 여기까지 끌고 온 정치·경제 질서를 고수해야 한다는 것(Burkeman, 2017).” 

 이 함의를, 조금 더 노골적으로 전개시켜보면 이렇다: "불평등이니 빈곤이니 기후변화니 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세상이 뒤집혀야 할 필요는 없다. 지금껏 해온 대로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몽≫ 혹은 신낙관주의가 넌지시 드러내는 이같은 암시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원서 출간 후 다소 이례적으로 짧은 기간 안에 번역 출판되고 국내 도서 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린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의 흥행과도 닮아있다. 사회 구조를 겨냥해온 비판가들이 호들갑스럽게 떠들었던 것과는 달리, 세상은 생각보다 더 좋은 곳이며, 사회는 염세주의자들의 생각보다 더 정의롭다고 말해주고, 더 나아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비판가들과 인문학자들, 염세주의자들이 유포해온 거짓말을 꿰뚫어보는 혜안을 얻은 것 같은 만족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매끄러운 내러티브를 위해 ≪계몽≫이 이론의 여지가 거의 없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로 만든 낱개의 주장들을 뜯어보기 시작하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신낙관주의자' 스티븐 핑커는 그의 책 ≪계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EBS 강의에서 기대수명의 증가와 극빈율의 감소, 전투 사망자의 감소, 민주주의의 확산 등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인다. 하지만 삐딱한 사람들은 그에게 이렇게 반문할 법도 하다: "그 '데이터'는 진짜야?"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과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하지만, 스티븐 핑커가 조작된 가짜 데이터로 약을 파는 하수는 아니다. 그는 이렇게 한다:

"물론, 데이터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조작되기도 하거든요. 가짜일 수 있어요. 당연히, 뉴스도 거짓일 수 있습니다. 조작될 수 있죠. 또, 완전하지 않은 데이터가 오해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기자, 과학자, 통계학자, 작가들이 데이터 출처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대표성이 있는지, 오염되지는 않았는지도 확인을 해야죠."

 스티븐 핑커가 인용하는 데이터들 중, 그 어떤 것도 '조작'되거나 '가짜'이거나 '오염'된 것은 없다. 스티븐 핑커의, 혹은 '신낙관주의자'들의 데이터를 두고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그게 진짜냐" 따위가 아니다. 이렇게 고쳐 물어야 한다: "조작되지 않은 진짜 데이터는 과연 진실인가?"

 

 '팩트(fact)'의 라틴어 어원인 '팍툼(factum)'에는 만들어진 것(제품; the product)'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사실, 스티븐 핑커와 일련의 '신낙관주의자'들이 '팩트'라고 주장하는 것들 가운데 상당수는 인간이 제작한 개념적 구성물에 기초한 인위적 '팍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령, 빈곤은 줄어들고 있고, 세상은 더 평화로워지며, 사회는 더 민주적으로 변한다는 그 주장을 실증적으로 검증하려면, 당장에 '빈곤'과 '평화', '민주' 따위의, 인류가 고안해낸 추상적 개념들을 어떻게 측정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부상한다. 사회과학자들은 주로 조작화를 통해 이 구성개념들을 측정 가능한 방식으로 다시 정의하여 연구에 사용한다. 그래서, 항상 사회과학자들에게는 과연 측정하고 있는 현상이 그들이 애초에 연구하고자 했던 그 개념과 얼마나 정확히 대응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방법론적 관심이 될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하면, 빈곤은 줄어들었다느니, 사회가 더 민주적으로 변한다느니 하는 '팩트'들은 이 조작적 정의의 제약 아래에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다. 스티븐 핑커의 '팩트'에서 생략된 건 바로 이런 사실관계다. 

 

 예컨대, 세계화에 의해 '기본적 욕구'조차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는 상태인 '극단적 빈곤'이 눈부신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는 스티븐 핑커는, 이 '극단적 빈곤'의 조작적 정의에 쓰이는 PPP(구매력평가)의 개념이나, CPI(소비자물가지수) 등, '극단적 빈곤'의 구성개념과 관련해 중요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쟁점들을 실상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 '극단적 빈곤' 통계를 생성하는 세계은행은, 전세계의 서로 다른 나라들에 걸쳐 '달러'라는 통일적인 단위로 빈곤을 측정하기 위해 각국의 법정통화와 달러를 서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물가의 차이에 따른 구매력 차이를 보정하려는 목적으로 '구매력평가지수'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 '구매력평가지수'의 환산 비율이 '기본적 욕구'의 충족을 위해 긴요한 재화들의 가격 비율이 아니라, 전체 인구가 일반적으로 소비하는 재화 및 용역 집합의 각 품목들의 가격비를 집계함으로써 산출된다는 사실은, 세계은행 빈곤 측정의 타당도를 떨어뜨리는 중요한 한계로 지적받아 왔다. 

 

 즉, '극단적 빈곤'을 측정하는 본디의 목적을 만족시키려면, 인구의 일반적인 소비 성향을 반영하는 재화 및 용역 집합에 대한 구매력이 아니라, 이런 '기본적 욕구'의 충족과 직결되는 재화에 대한 구매력을 측정해야 한다. 하지만, 세계은행처럼 저소득 국가들의 빈곤선을 달러로 환산하기 위해 일반 구매력평가지수를 적용하면, 그 나라들에서 '기본적 욕구'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재화를 빈곤선 수준만큼 구매하는 데에 필요한 달러가 얼마인지가 아니라, 인구의 평균적인 소비 품목을 그만큼 구매하는 데에 필요한 달러가 얼마인지를 계산하게 되는 셈이다. 

 

 이와는 달리, 구체적인 물질적 후생 수준(권장 식이 허용량)을 기준으로 빈곤선을 설정하고, PPP 지수의 바스켓도 그 구성개념(‘권장 식이 허용량’)과 일관되게 식품들로 구성해 식량 차원의 빈곤을 측정한 한 연구는, 세계은행의 국제빈곤선('극단적 빈곤')이 그리는 것과는 사뭇 달리,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들이 추진한 '세계화'가 가장 급진적으로 전개되던 8-90년대에 오히려 빈곤의 개선이 정체하거나, 혹은 오히려 소폭 증가했다는 결과를 보여준다(더 자세한 논의는 ≪지금 다시 계몽≫ 비판: '빈곤'의 팩트, 혹은 팍툼 참고).
 

 '빈곤'의 측정과 관련해 위에 기술한 문제들이 지나치게 아카데믹한 이슈들이라, 참조할 여유가 없었다고 선해해볼 수 있다. 스티븐 핑커는 이런 비판에 대해서 무어라고 생각할까?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을 통해 게재된 세계은행의 빈곤 통계에 대한 한 비판 칼럼을 두고 핑커가 남긴 반응을 보면, 대략 '빈곤이 줄어든다는 팩트를 부정하다니, 극좌 맑시스트 이데올로그가 틀림없군!' 정도인 것 같다. 진지한 학술적 논의들을 균형감 있게 면밀히 검토하기 보다, 개중에 가장 '정치적'인 반응들을 콕 찝어 이념적으로 비방하는 식이다. ≪지금 다시 계몽≫에서 공공 담론의 '탈정치화'를 역설하는 인물치고는 굉장히 정치적인 대응이지 않은가? 

 번역판으로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책에서 이런 사례들을 또 찾아내기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가령, 그가 역시 논쟁적 저작이었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부터 뚝심있게 주장해온 '인류는 평화로워지고 있다'는 명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금 다시 계몽≫은 세 개의 그래프를 제시한다. 그 중 첫번째 그래프는 1500년 이후 열강 사이의 전쟁 햇수 비율('그림 11.1', p.249)이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스티븐 핑커는 ‘열강 사이의 전쟁 햇수 비율’이 감소한다는 기술적 사실의 의미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적절한 맥락을 누락하고 있다. 이 첫번째 그래프가 그려진 기간 동안 "열강 사이의 전쟁”은 줄어들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동시에, 분쟁의 일반적인 양상이 변해왔다. 즉 분쟁의 일반적 성격이 '열강 사이의 전쟁'으로부터 식민지 정복과 내전, 학살 따위로 옮겨져왔다는 중요한 사실관계를 언급하지 않고, "전쟁이 감소"한다며 '평화'의 추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 의미를 크게 오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전쟁 햇수'라는 단위가 문제적이다. 같은 기간 동안 인류가 발휘할 수 있는 살상력이 크게 증가해왔다는 사실관계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전쟁의 기간이 줄어들었기에 전쟁의 폭력이 감소한다고 말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종합적인 추이를 파악하려면 최소한, 17세기 열강 간 전쟁과 식민지 정복, 20세기의 내전 등, 살상력의 차이가 큰 서로 다른 형태의 분쟁들을 동일한 차원에서 비교할 수 있는 단위로 그 수를 파악해야 한다. 그럼, 스티븐 핑커는 이런 점을 몰랐을까? 스티븐 핑커는 불과 몇 페이지 뒤에서 이런 성격의 통계를 인용하고 있다. 즉 전쟁의 희생자 수 통계다('그림 11.2', p.252). 단, 이번에는 그래프가 1500년이 아니라 1946년부터 시작한다. 그래프에 의하면, 1946년 이후 전투 사망자 비율이 감소하고 있다. 그럼, 1945년 이전에는 비슷한 통계 자료가 없었던 걸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핑커가 인용하고 있는 자료는 전투의 직접 사망자만을 집계하지만, 간접 사망자까지 포함해 그보다 더 긴 시계열을 형성하고 있는 자료가 있다. 핑커가 책의 2부 전반에 걸쳐서 인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그래프가 ‘Our World In Data’라는 웹사이트에 정리되어 있는 자료들로 그려진 것인데, 이 웹사이트에서는 1400년 이후의 분쟁의 직간접 사망자 통계 역시 정리되어 있다. 이 자료를 통해 그려진 그래프의 추세선은, 분쟁 사망자가 1400년 이후 장기적으로 증가 추세를 그린다는 걸 보여준다(참고: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있을까). 핑커가 인용하는 전투 사망자 수의 감소세가 시작하는 1945년 이후의 경향이, 이런 수백년의 장기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을지는, 적어도 이 그래프에서는 파악할 수 없다. 스티븐 핑커 본인이 언급하듯, 항상 큰 전쟁들 사이에는 평화적 휴식기가 있어 왔기 때문이다. 

 1945년 이전 전쟁 사이의 이 휴지기들과 그 이후 '장기 평화' 사이에 차별적인 특징이 있다면, 1945년 이후에는 훨씬 많은 나라들에서 민주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인데, 스티븐 핑커는 이 민주주의의 확산을 다루는 챕터에서도 역시 사실관계를 오도할 수 있는 그래프로 그의 논의를 뒷받침하고 있다. <위대한 수업>에서는 아예 “지난 10년 대비 가장 높은 민주주의 지수를 기록”하고 있다며 인용하는 이 그래프는 폴리티IV의 민주주의 지수를 바탕으로 한 '민주정 대 전제정' 점수의 시계열을 그린 그래프다. 폴리티IV의 민주주의 지수가 최근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받는 헝가리나 폴란드 등의 나라들에게 프랑스, 한국, 미국보다 높은 10점 만점을 주는 지수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민주정 대 전제정' 점수가 인구가 아니라 국가를 단위로 산출된 점수라는 점은,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있다는 핑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큰 결함이다. 핑커가 인용한 그래프의 논리대로라면, 14억 중국이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것과 8천만 이란이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것이 똑같은 수준의 변화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다양성(V-Dem) 연구소의 ‘자유민주주의’ 지수에 인구 가중치를 주어 한 나라의 점수 변화가 그 인구 수에 상응하는만큼 지수의 변화에 기여하도록 한 그래프에 따르면, 세계의 자유민주주의는 2000년대 이후 정체하다가 2010년대에 접어들어 1990년 즈음의 수준으로 회귀하고 있다(참고: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있을까).

 더 큰 엉성함은 스티븐 핑커가 '팩트'라고 제시하는 모든 진보의 배후에 있는 '계몽주의'의 개념에 있다. 계몽주의 시대의 지성사를 연구하는 여러 역사학자들이 스티븐 핑커의 계몽주의에 대한 이해가 엉성하다는 서평들(
Bell, 2018Gray, 2018; Riskin, 2019)을 남겨왔지만, 이런 지적들에 대한 핑커의 생각은 이렇다: 

"'계몽주의'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고른 이유는, 그것이 내가 옹호하려는 이상을 더 캐치하게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제목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계몽≫은 지성사 연구가 아니다. 그 시대의 모든 작가들이 그 이상에 똑같이 찬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단어를 두고 트집잡는 건 무의미하다. ...'계몽주의'는 관습적으로 인류 복지를 증진하기 위해 이성과 과학을 사용하는 이념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핑커가 말하는 '계몽주의'는 그 정의 상, 실제 계몽 시대의 사상가들에게 보편적 지지를 얻은 이념이 아니라, 저자 본인이 지지하는 이성적·과학적 이상일 뿐이라는 것. 이건 그야말로 무적의 정의다. 계몽주의의 모든 나쁜 것은 그저 간편하게 이성과 과학의 '잘못된' 사용, 오용이었다고 말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계몽이 아니다!"

 그래서 ≪계몽≫은, 저자 본인이 쉽게 인정해버린 것처럼 '계몽주의'에 대한 학술적 정의에 기초한 지성사적 작업이 아니라, 저자의 조야한 이해로 키치하게 정의한 용어를 제재로 한 인상비평집에 가깝다. 그가 '계몽'의 핵심 정신이라고 꼽는 '이성', '과학', '인본주의'를 다루는 마지막 세 챕터도 계몽주의에 대한 지성사적 연구와는 거의 무관한 그의 시사 비평이다. 핑커식 '계몽주의'의 느슨한 정의는 너무 쉽고 간편하게 저자의 정치적 입맛에 맞게 확장된다. 계몽주의란 '휴머니즘'이고 '열린 사회'이며, '코스모폴리타니즘'이고 '고전적 자유주의'다
(≪계몽≫, p.21). 따라서 자유민주주의가 곧 ‘계몽’ 정신의 구현이고,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체제가 곧 ‘계몽’ 정신의 구현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계몽주의 시대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계몽주의는 결코 그렇게 간편하게 요약되는 일관된 이상적 이념이 아니라, 굉장히 다원적인 성격을 지닌 운동이었다고 입을 모으며, 특히 조나단 이스라엘과 같은 학자에 의하면, 핑커가 옹호하는 근대 세계의 중추적 가치인 민주주의와 평등권, 사상과 표현의 자유, 정교분리의 이상을 정초하는 데 사상적으로 가장 크게 기여한 주역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경제 이념과 친했던 계몽 사상의 온건파가 아니라, 계몽 사상의 "급진적" 분파였다(참고: 지금 다시 계몽≫ : "그것은 계몽이 아니다"). 계몽의 결실이자 핑커에 의하면 "진보를 이끄는 사령부(≪계몽≫, p. 363)"인 교육 발달이 반드시 '고전적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확대에 빚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역시, 최근 사회과학자들의 계량 연구들을 통해 보다 강력한 증거를 얻고 있다(참고: 문제는 정치야, 바보야!). 계몽의 승리는 곧 고전적 자유주의의 승리라고 생각하는 스티븐 핑커의 '진보' 내러티브에는 그래서, 실제로 진보를 견인한, 때로는 반자유주의적인 역동을 품고 있었던 사회 운동과 정치의 역할이 전혀 없다. 계몽 시대를 연구해온 역사학자 데이비드 벨의 서평≪계몽≫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마치 전체 인구가 자연적으로 더 계몽되고 너그러워진 결과로 진보가 혼자 알아서 이뤄졌다고 믿는 것 같다. 그는 "정의를 향해 구부러지는 신비한 궤적이 실재로 존재(≪계몽≫, p.329)"하는 것처럼 말한다. 576페이지(번역판 기준 863쪽)의 ≪지금 다시 계몽≫에서 완전히 부재한 것은 바로, 수세기 동안 평등권과 노예제 폐지, 노동조건 개선, 최저임금, 결사권, 기본적 사회보장, 더 깨끗한 환경, 다른 수많은 진보적 이상을 위해 투쟁한 사회 운동이다."

 

 그렇게 진보적 비평가들에게 반발을 산 핑커는 이렇게 말한다: "진보(the progressive)는 진보(progress)를 싫어하는군!" 하지만, 발전의 척도로서 진보(progress)가 정치적·이념적 의미의 '진보(the progressive)' 없이도 이루어져온 것처럼 말하는 그의 주장을 어떤 '진보(the progressive)'가 수긍하겠는가?

 

 물론, 스티븐 핑커가 인용하는 어떤 '팩트'들은, 과연 팩트다. 가령, 오늘날과 과거의 어떤 임의의 한 시점만을 두고 단순히 비교해보면, 빈곤이 줄어들었다는 그의 주장은 사실이다. 기대수명 역시 100여년 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팩트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실관계다. 데이터와 팩트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신낙관주의'의 '팩트'도 복잡하게 펼쳐진 사실관계 가운데 선별된 것일 수밖에 없음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신낙관주의'의 '팩트'가 강력한 힘을 갖는 것도, 실은 사실관계와 이해관심의 제약 하에 (종종 정치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임을 무시할 수 없다. 스티븐 핑커나 혹은 일각의 몇 '신낙관주의자'들은 이런 의미관계를 물신화해, 마치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자신들의 '팩트'에는 주관적 이해관심과는 무관한 자기완결적 의미가 있는 것처럼 가장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사실관계와 이해관심이 부여하는 그 의미의 힘은 취하는 정치적 효과를 누리는 셈이다. 요컨대 스티븐 핑커의 데이터는 '조작'되었거나 '가짜'이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 아니다. 그 데이터와 팩트의 의미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적절한 맥락을 누락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적이다. 스티븐 핑커 식의 '신낙관주의'와 팩트 물신주의가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문제적인 까닭도 여기 있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저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된다는 순진한 몇 ‘신낙관주의자’들의 어렴풋한 바람과는 달리, 어떤 데이터도 그 스스로 혼자 말하지는 않는다. 빈곤, 평화,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그 ‘팩트’에는 항상 '신낙관주의자'들의 해석의 층위가 있었다. ‘신낙관주의’의, 혹은 핑커의 기대와는 달리, 어떤 사실도 사람들의 이해관심 바깥에서 개체적·원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빈곤과 건강, 수명, 교육, 행복, 평화와 민주주의 등, 사회 지표들의 ‘진보’에 관심이 있다면, 거듭, ‘신낙관주의’ 일각의 물신적 팩트주의가 질식시킨 사실관계의 함의를 복원하고, ‘신낙관주의’의 정치적 귀결을 제대로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동시에 '팩폭', '팩트폭격'의 오락이 지배하는 담론장에서, 사실관계에 기초한 합리적 정치 커뮤니케이션을 모색하는 작업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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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파워문화리뷰 세상의 긍정성에 대한 옹호와 방향성에 대한 굳건한 믿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e*a | 2021.11.22 | 추천6 | 댓글0 리뷰제목
2014년 이맘 때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읽을 때 다소 충격적이있다. 아주 좋아하던 과학저술가 매트 리들리의 《이성적 낙관주의자》를 읽으면서 조금 어안이 벙벙했던 터였다. 그런데 스티븐 핑커는 많은 데이터 자료들을 동원해서 우리 인류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입증하려 했다. 스티븐 핑커가 얘기하는 ''선한 천사''는 트허르 브레흐만의 《휴먼카인드》나 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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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이맘 때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읽을 때 다소 충격적이있다. 아주 좋아하던 과학저술가 매트 리들리의 이성적 낙관주의자를 읽으면서 조금 어안이 벙벙했던 터였다. 그런데 스티븐 핑커는 많은 데이터 자료들을 동원해서 우리 인류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입증하려 했다. 스티븐 핑커가 얘기하는 ''선한 천사''는 트허르 브레흐만의 휴먼카인드나 브라이언 헤어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본성적 선함 같은 것은 아니다. 인류가 본성적으로는 어떨지 모르나 이성적으로 이렇게 나아져 왔다는 것이었다.

 

지금 다시 계몽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의 기초를 유지한다. 데이터를 통해서 세상이 나아져 왔음을, 그리고 그 추세가 가파라지고 있음을,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추가하고, 강조하는 것은 그 추세가 무엇을 향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바로 이성, 과학, 휴머니즘, 그리고 진보다. 그것들은 계몽주의라고 하는 세계관에 기초한 것이다.

 

계몽주의 (Enlightenment)라고 하면 18세기, 19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이념이라고 알고 있다. 이 계몽주의에 기초해서 프랑스대혁명과 미국혁명 (독립)이 성공했다고 배웠다. 스티븐 핑커는 바로 이 어쩌면 고색창연해 보이기도 하는 계몽주의를 다시 꺼내들었다. 그것도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더 큰 타당성을 지닌 믿음과 가치관이라면서, 스티븐 핑커가 이야기하는 계몽주의는 "감히 알려고 하라!(Sapere Audel)''라고 하는 모토에서 비롯한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이성을 이용하고, 과학을 활용하려는 노력이며, 그것이 휴머니즘이라는 인간 중심적 가치관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집단보다는 개인에 더 비중을 두고, 야만적 관행을 점전직으로 중지시킨다.

 

우선 스티븐 핑커는 엔트로피와 진화, 정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것들을 이해하지 않으면 인간 조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원리이지만, 인간은 지식을 통해 에너지를 획득함으로써 엔트로피에 저항할 수 있게 되었다( 극복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에너지 획득 능력의 향상은 인간 운명의 양상으로 연결되었다. 진화라는 놀라운 개념은 인간이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주지만, 동시에 그것을 이해하는 것의 힘을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냄으로써 다른 동물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이해에 기초해서 스티븐 핑커는 다시 우리 세계가 얼마나 나아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수명과 건강에 관해서, 식량 사정과 부)에 관해서, 불평등의 극복과 평등권에 관해서, 환경에 관해서, 평화에 관해서, 안전과 테러리즘에 관해서, 민주주의에 관해서 지식의 증진과 삶의 질 향상에 관해서, 행복감과 실존적 위협(우울증으로 대표되는)에 관해서, 그리고 진보에 관해서. 이 모든 것이 일관되게 현대 사회에 들면서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스티븐 핑커의 해석이다. 사람들은 이 세계가 과거보다 더 불평등해지고,

 

위험해지고, 또 소외되고 있다고 생각해지만 그것은 단지 "가용성 휴리스틱 편향과 부정 편향'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데이터는 세계가 점점 더 평등해지고, 덜 위험해지고 있으며, 소외감도 그리 나빠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만, 좀더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여기서는 물질적인 것에서 비물질적인 것에까지 그 방향성을 따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조심스럽게 읽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진보'에 관한 것이다. 흔히 진보는 좌파와 연관시키지만, 스티븐 핑커는 우파뿐 만 아니라 좌파 역시 비판 대상이다. 그가 말하는 진보란 정치 이념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성으로서 가치를 갖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진보는 기대 수명이 증가하는 것,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 남녀가 보다 평등한 권리를 갖는 것. 더 많은 교육을 받는 것 등등 되풀이되는 발견과 개선의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분명 진보주의자이지만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사회주의를 반대한다. 그리고 동시에 트럼프와 같은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을 혐오한다. 또한 니체(의 사상)를 비판한다.

 

스티븐 핑커는 그런 진보를 향해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 방법에 대해서도 제시하고 있다. 어떤 정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토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수학을 기억하라. 일화는 추이를 대신하지 못한다. 역사를 기억하라. 어떤 것이 오늘 나쁘다고 해서 그것이 과거에 좋았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철학으 기억하라. 누구도 이성 같은 것은 없다고 추론하거나, 신이 명했으니 이것이 진리이거나 선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리고 심리학을 기억하자. 우리가 아는 게 아는 게 아닌 경우가 많고, 특히 동지들도 그렇다고 알고 있을 때 그렇다.” (682)

 

세상의 긍정적인 요소에 대한 발견과 옹호, 그리고 방향성에 대한 굳건한 믿음, 이것이 이 책이 이야기하는 바다. 그러나 이것만 읽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무조건적인 낙천주의는 아닌, 우리가 과학에 기대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한에서, 부단히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것 역시 빠뜨리지 말고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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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지금 다시 계몽]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알**콩 | 2021.10.2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스티븐 핑거는 걱정한다. 우리가 계몽주의를 통해서 이룬 모든 것들이 이전으로 슬며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걸 , 우리가 인지조차 못하고 있음을 걱정하고 있다. 또한 지나친 비관적 시선으로 다시 우리가 회귀할까 걱정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전의 언어가 아닌, 시대를 이끌어갈 미래의 세대를 위해 21세기의 언어와 개념으로 계몽주의의 이념을 다시 기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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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핑거는 걱정한다. 우리가 계몽주의를 통해서 이룬 모든 것들이 이전으로 슬며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걸 , 우리가 인지조차 못하고 있음을 걱정하고 있다. 또한 지나친 비관적 시선으로 다시 우리가 회귀할까 걱정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전의 언어가 아닌, 시대를 이끌어갈 미래의 세대를 위해 21세기의 언어와 개념으로 계몽주의의 이념을 다시 기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p.23)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사회는 내버려두면 언제나 무질서로 향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가 나태하거나 소심하면 사회는 금방 모순과 권력, 부패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또한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기보단 묵살하고, 음해하려 하며 잘못 되어 가는 것에 대해 '속죄양'을 만들어 가책을 회피하려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이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에게 추상화 능력과 인식의 조합과 반복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어 조금은 질서로 나아갈 수 있다고도 말한다. 또한 질서로 나아가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나의 의견에 논리성을 가져야 하며, 타인과 나의 의견 결합에 수용적이고, 타인의 의견을 차단하려 하지 않는 규칙이 필요하다고 서술하며 [지금 다시 계몽]을 통해 세상이 진보했음을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고 있다.

 

 

 


 

뉴스는 극적인 것에 집중하고, 그것을 수용하는 우리는 왜곡된 세계관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세계를 객관적으로 수용하기 보다 실제하는 것보다 더 극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것은 우리가 행운보다는 불행을, 수익보다는 손실은 더 두려워하며 더 실행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상은 진보를 이루었으나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두려움만 키우고 있다. 그러니 뉴스의 모든 것을 맹목적으로 믿으면 위험하다.

 

 

살아남고자 하는 투쟁은 존재의 원초적 욕구이며, 인간은 죽음을 면하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하고 있다. 의학과 과학의 발전으로 19세기부터 '위대한 탈출'을 이루며 평균기대수명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인공지능, 유전학, 나노 기술의 발전으로 '불멸'을 논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부작용의 우려와 부풀려진 효과라며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영원은 불확실하나 오래는 모두가 수긍한다. 의학과 과학의 발전으로 우린 이전보다는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위키디피아에는 과거형으로 기술된 전염병들이 있다. 그 전염병들은 과학과 지식을 통해 연구된 백신과 손 씻기, 화장실에서 배변하기, 모기장 설치하기 등 공중보건과 생활 속 실행 가능한 아이디어로 인해 과거의 전염병이 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지식이다" 라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 교수는 주장한다. (p.115)그러나 일부 잘못된 지식 때문에 진보가 역행할 수도 있다. 올바른 지식을 바탕으로 제도와 규범을 정비하여 인류가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백신에 대한 거짓 정보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전염병을 박멸하지는 못하더라도 전염병에 대비하거나,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식량 문제를 이야기할 때 인구문제는 언제나 함께 대두된다. 인구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식량의 부족함을 해결하기 위해 기아와 기근이 자연 발생한다는 멜서스식 사고를 아직도 이야기하고 있는 일부도 있다. 세상은 질소추출로 인한 비료 생산, 품종개량과 유전자 조작으로 가능해진 녹색혁명을 통해 식량안보가 가능해졌다.그러자 기아에 습관적으로 무관심한 집단에서 유전자 변형 작물에 대해 광적인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식량과 관련된 기아 문제는 이제 식량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식량 분배의 문제임을 세계는 인식하고 있다. 식량과 기아, 인구문제는 이제 제도와 분배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인류 전체의 오래된 가난과 빈곤이 20세기를 기준으로 어느 정도 해결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우선 산업혁명, 공중 보건 혁명 등으로 생산물과 인력이 풍부해지며 과학적 응용이 새로운 발견에 박차를 가한다. 또한 과학 응용에 힘을 실어줄 제도의 발달과 상업을 터부시하던 가치관이 변화한다. 이런 부의 물결은 다양한 도미노 효과를 불러 일으키며 부의 진보에 가속을 붙인다. 세계는 변화했다. 이념보다는 부를 통한 발전이 세계의 가치가 되어 가고 있다. 부유한 나라가 되기 위해선 전쟁과 내전으로 인한 분열을 최소화해야 하며 인권과 자유, 평등, 환경보호가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p.157) 물론 세계화가 불러 온 물질만능과 양극화의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통계적으로 보았을 때 빈곤은 해결되고 있다.

 

 

불평등은 빈곤과 다르고, 인류의 번영을 좌우하는 기본 요소도 아니다. 불평등의 증가는 보편적 빈곤에서의 탈출을 의미하기도 한다. 새로운 부의 원천이 발견될 때마다 불평등의 물결은 다시 인다. 불평등의 축소는 전쟁, 혁명, 전염병, 국가 붕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꼭 좋다고 볼 수 없다. 불평등은 상대적인 것일 수도 있다. 사회 전체의 부가 향상되었는데 상대적으로 부를 많이 가진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어 불평등하게 느끼는 것이다. 상대가 가진 것을 뺏어야만 평등하다고 느끼는 제로섬 사고는 이제 인류에게 의미가 없다.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환경문제도 올바른 지식만 있다면 해결 가능한 문제이다.(P.195) 녹색주의 이데올로기의 출발은 지구를 인간의 탐욕으로 더럽혀진 순진한 소녀의 모습으로 표상하고 있다.(P.196) 이는 너무 염세적이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올바른 지식으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접근해야만 적절한 해결이 가능하다. 우리는 다양한 자원과 에너지의 고갈을 예상했지만 언제나 그것들이 고갈되기 전에 대안을 마련했다. 그럼으로 사회는 발전했고 인류는 더 부유해졌다. 이는 탄소배출을 강력하게 규제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앞으로도 환경을 위해서는 밀도에 프리미엄을 붙여(P.214) 탈물질화를 향해 나아가야 하며, 공유경제와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접근이 아닌 효과적인 방법으로 진행해야 한다. 현대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해결보다는 공포를 극대화 시킬 뿐이다. 환경문제는 존재하며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왔듯이 현대적 선의 힘을 유지하며 해결해야 한다.(p.245) 그리고 우리는 해결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간 전쟁은 점점 감소하며 긴 평화가 왔다. 충돌은 대규모 전쟁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음을 세계가 인지하고 있음으로 전쟁을 피하려는 기류가 형성되었다. 다만 식민지 반환 후 다양한 이해관계 부족으로 발생한 내전, 급진 이슬람 주의 집단에 의한 충돌이 발생하는 정도이다. 하지만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전쟁에 대한 가능성을 인간의 정복과 침략을 향한 충동은 본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국가간 국제무역으로 인한 이해 관계, 민주주의 국가들 끼리의 평화 이론,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인준 없이 벌이는 전쟁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들을 고려하면 전쟁은 쉽게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세상은 진보하며 점점 안전해지고 있다. '살인' 은 정해진 공간에서 집중되어 발생하고 있으므로 일반적인 시선에서 판단하면 안된다. 범죄 예방을 위해 사회는 강력한 법을 효과적인, 적법한, 신속한, 공정한, 적정한, 인도적인 방식으로 집행해야 한다. 또한 손쉬위 만족의 기회를 환경 속에서 제거하며 범죄를 예방하고 있다. 때론 지나친 규제는 역효과를 볼 수도 있으므로 합법화하여 관리하는 것도 안전을 위한 행동일 수 있다. 불과 물에 의한 사고는 소방서 설립과 관리로 줄어들 수 있었으며, 상해 사고는 노동조합과 정부의 규제로 안전장치 의무화가 시행되며 줄어들 수 있었다. 세상이 진보하며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대처가능한 안전장치가 마련 가능해진 것이다.

 

 

테러로 인한 사망자수는 살인, 사고에 의한 사망자 수 보다 현저히 낮은데도 우라에게 안전한 시대에 살고 있음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큰 불안과 공포를 유발한다. 테러에 의한 사망자를 극대화하는 언론의 방식은 다른 죽음을 평가절하 시킨다. 테러의 범주는 넓지만 우리는 주로 이슬람 테러로 인식하는 것도 문제이다. 테러를 자행하는 사람들이나 집단은 빈약한 전력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테러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들을 부추기는 가장 위험한 효과는 '과잉반응'이며 자극적인 뉴스 방식이다.

 

 

민주주의는 발전, 확대되고 있다. 민주주의 정부는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먹지 않도록 막되, 권력자 자신도 사람들을 잡아 먹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p.310)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미국의 입헌민주주의를 시작으로 민주주의 국가의 수가 늘어난 것과 베를린 장벽과 러시아의 붕괴로 체제가 바뀌고 있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다. 

 

 

세상은 우리가 불공평하다고 인식하는 것보다 많이 평등해졌다. 하지만 흔적을 지우는 것이 진보의 본성이고, 불의에 시선을 고정하는 것이 우리의 행동이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상황이 더 나빠져서 화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민하고 빈번하지 않아서 화제가 되며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으로 인해 사람들의 인식이 개선되며 편견을 합리화 시키고, 인종을 분리하고, 남성만을 옹호하며, 아동을 착취하고, 동성애를 범죄화하는 형태는 어떤 변호가 불가능하며, 논쟁에서 패배하는 세상으로 바뀌었음을 우리는 알고있다.(p.341)

 


인간은 주변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고 축적하며 공유한다. 교육받은 사람들은 다양한 차별과 혐오에 예민하고, 자유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며, 정치적 견해를 표현할 가능성과 시민적 협의체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문해력은 인간의 진보를 이끈 핵심이다. 교육을 통해 습득한 지식들은 분석적 사고 능력을 향상 시킨다. 지식을 기반으로 한 인간 번영의 진보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인류의 삶은 점점 더 질이 높아지고 있다. 노동의 시간은 법적으로 보장되어 줄어들고 있으며, 노동의 시간이 줄어든 만큼 남는 시간은 각자의 취향에 맞게 여가를 즐기게 되었다. 그들에게 여유의 시간을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해준 것은 기술과 이동 수단의 발달이다. 예술과 문학의 용이한 접근성과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여가를 좀 더 깊이 있고, 쉽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졌는데 인류는 왜 불행하다고 느끼며 행복에 도달하지 못하는 걸까? 행복감을 조사했을 때 나이든 사람들이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이는 지혜가 생겨 관점이 넓어졌기 때문이며, 행복감은 기복이 심한 등락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삶에서 불안은 성인의 특권이다. 불안은 책임을 받아들이는 성년기에 급격하게 증가하고, 대처를 터득한 후 감소한다. 등락에 휘몰아치는 삶을 이해하게 되면서 우리는 행복하다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나노 머신, 로봇, 인공지능, 불가리아의 10대들이다. 실존적 위험을 직시하고 대비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종말론적 사고로만 세상을 본다면 모든 것이 위험하고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생각을 고착화하면 삶을 포기하게 된다.인공지능은 프로그래밍 대로 움직인다. 인공지능에게 인류를 위협할 명령어를 주입시키지 않으면 된다. 해커의 위협과 바이오 테러, 핵전쟁의 파급이 거대함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그것에 대비한 안정망도 위리에겐 충분하다. 실존적 위협에 대해 파멸을 선언하며 관조하는 자세는 우리를 더 위험에 빠트리는 것이다.

 

 

 


 

세상을 낙관적으로만 보는 것도 문제이고, 비관적으로만 보는 것도 문제이다. 스티븐 핑거는 한스 로슬링의 답을 자신의 견해로 인용한다. "나는 낙관주의자가 아닙니다. 나는 아주 진지한 가능주의자입니다." 저자의 책을 읽기 전 한스 로슬링의 [팩트 풀니스]를 읽었던 경험이 있어서 인지 같은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양한 사상과 저서, 그래프, 자료를 수집하고 조사하며 자신의 확실한 관점과 견해를 가진 저명한 하버드대 교수인 스티븐 핑거가 괜찮다하니 지나친 우려로 사회를 바라보지 말아야겠다. 우리는 다소 뻐걱거리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며 진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진보를 의심하기 보단 더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진보하길 바래보아야겠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성실활동으로 선물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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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10건) 한줄평 총점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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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3점
전작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불평등에 대한 긍정적 해석이 새롭다.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k****9 | 2022.02.07
구매 평점5점
좋아요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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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j*****5 | 2021.12.05
구매 평점5점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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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장* | 2021.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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