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긱경제(gig economy)를 대해 말한다. 뉴스 캐스터부터 택시기사, 피자 배달원, 실업자에 이르기까지 긱경제 때문에 우리의 일자리, 직업, 경제, 일상생활이 변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11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음식배달, 택시운전 등을 비롯한 긱경제 분야에서 일한다. 이는 국민보건서비스(NHS(National Healthcare Service))의 전체 고용인원과 비슷한 규모다(Balaram et al., 2017). 영국 노동자의 11%는 디지털 노동 플랫폼에서 소득을 올린 경험이 있다고 한다(Huw and Joyce, 2016). 미국 사람들의 8%가 긱경제 플랫폼에서 일하는데, 18∼29세의 청년층만 따지면 그 비율은 16%까지 치솟는다(Smith, 2016). 긱경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디지털 노동 플랫폼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플랫폼은 고용주들이 즉시 고용 가능한 인력의 풀(pool)에 접근할 수 있는 도구의 역할을 한다. 2025년까지 모든 노동 거래의 1/3정도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Standing, 2016). 전 세계적으로는 플랫폼에서 일자리를 찾은 사람의 수가 무려 7천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Heeks, 2017). 2015년 발간된 맥킨지(McKinsey) 보고서에 나타난 수치는 훨씬 더 놀라운 수준이다.
2025년에 이르러 5억 4천만 명의 사람들이 온라인 인력 플랫폼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2억 3천만 명 정도는 훨씬 더 빠르게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으며, 덕분에 실업의 기간은 단축될 것이다. 실업 상태에 있거나 임시직에 고용된 2억 명 가량의 프리랜서들은 플랫폼을 이용해 추가의 노동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6천만 명은 자신의 기술과 선호에 보다 적합한 직업을 찾고, 5천만 명은 비공식 부문에서 공식적 부문으로 옮겨갈 수 있다(Manyika et al., 2015).
오늘날 일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비판적 시각에서 소개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책의 전반에 걸쳐서 우리의 연구를 통해서 발굴한 사례, 노동자의 목소리, 이 분야의 주요 논쟁 등을 소개할 것이다. 일이란 흥미로운 개념이고 중요한 논쟁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드시 해야만 한다. 우리가 일을 찾아 수행하는 조건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권력, 기술, 경제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우리는 참여적 연구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서술했다. 긱경제의 출현만을 전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현 시점에서 그것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노동자와 플랫폼은 각각 무슨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미래에는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책에서는 소위 ‘긱경제’라고 일컬어지는 분야에서 ‘긱(gig)’으로 알려진 - 즉, 일시적, 단편적으로 행해지는 - 불안정하고 파편화된 일들에 주목한다. 배달, 택시, 가사 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우리는 특히 우버(Uber)나 딜리버루(Deliveroo)와 같은 플랫폼에서 디지털로 연결된 플랫폼 노동에 주목한다. ‘긱’은 수많은 경제 분야에서 오랫동안 존재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플랫폼으로 활성화된 긱경제는 최근의 현상이며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긱 일자리를 점점 더 많이 대체한다. 플랫폼에 주목함으로써, 어떻게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일들이 변화하고 있는지, 어떻게 이런 변화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우리는 플랫폼 기반 노동 모델의 전례 없는 일반화를 목격하면서 중대한 역사적 변곡점에 살고 있다. 이런 변화를 단순히 기술하는 것으로만은 부족하다. 보다 정의롭고 공정해질 수 있도록 길을 닦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책무다.
긱경제의 의미
‘긱경제’란 용어에서 ‘긱’은 음악 공연 이벤트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단기적인 일을 말한다. 큰 포부를 가진 뮤지션은 아마도 긱의 기회에 환호할 것이다. 호프집 같은 곳의 뒷방에서 대기하는 자신의 일을 친구에게 자랑삼아 이야기할 수도 있다. 물론 공연에 정기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뛰어나게 잘 한다거나 눈에 띄게 인기를 끈다면 그런 기회를 얻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딱 한번만으로 끝이다. 연주의 대가는 지불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대가의 지급 방식도 정해지지 않는다. 사전에 정해진 수고비, 입장권 판매의 일부, (공짜 맥주 몇 잔 등) 현물지급 등 무엇이든 가능하다. 연주를 준비하는데 드는 비용도 마찬가지다. 이를 정산 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앞서 언급한 플랫폼 노동과 비슷한 측면이 많다. 긱경제의 업무 또한 단기적인 임시직이며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다음 기회 또한 바람직한 수행 결과나 평판에 좌우된다. 그러나 앞으로 더 상세히 살필 것처럼 긱경제의 일은 음악의 긱들과 많이 다르다. 긱 일자리의 대부분은 커리어 개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직업’ 아니라 끝없는 업무에만 시달리면 더욱 그렇다. ‘긱경제’란 용어로 경제적 변동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다. 이는 바로 수많은 분야에서 일들이 임시직화, 불안정화, 파편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하나의 일자리에서 훨씬 더 적은 시간 동안 근무하며,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전전하는 경우도 많다. 소득 없이 시간만 낭비할 위험성도 있는데, 특히 긱 업무를 찾는데 드는 시간에 대해서는 어떠한 금전적 보상도 지급되지 않는다.
이 책에서 ‘긱경제’는 디지털 플랫폼 상에서 또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독립적인 계약 노동시장을 뜻한다. 이러한 유형의 일은 조건부로 제공되는 비정규의 임시직이다. 노동 시간은 가변적이며, 직업 안정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임금은 건당을 기준으로 지급되며, 커리어 개발을 위한 선택지는 거의 없다. 이런 노동관계는 보통 ‘독립계약직’, ‘프리랜싱’, ‘임시직’ 등의 용어로 표현된다. 이런 용어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활동에 쓰였고, 디지털로 연결된 노동 뿐 아니라 자전거 퀵서비스나 택시운전과 같은 분야에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디지털 플랫폼에 초점을 맞춘다. 그것이 초래하는 변화의 스케일을 고려한 것이다. 디지털 플랫폼을 기초로 긱 기업들이 나타났다. 그런 플랫폼은 ‘노동의 공급과 수요를 한곳으로 모으는 도구’의 역할을 하며(Graham and Woodcock, 2018: 242), 일을 관리하기 위한 앱, 디지털 인프라, 알고리즘으로 구성된다. 이에 대해 닉 스리니체크(Nick Srnicek, 2017: 48)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 마디로, 플랫폼은 새로운 형태의 기업이다. 서로 다른 사용자 그룹 간을 중개하는 인프라 제공, 네트워크 효과에 따른 독점의 경향성, 새로운 사용자를 유치하기 위한 교차보조(cross- subsidization) 전략의 활용,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지배하는 아키텍처 디자인 등을 핵심적 특징으로 한다.
플랫폼은 사회적 활동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사용자를 끌어 모으고, 데이터를 획득해 수익의 원천으로 사용한다.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규모가 커야한다. 현재 상상 가능한 모든 경제적 활동은 플랫폼으로 중개되고 있고, 이는 긱경제 모델을 바탕으로 한다. 디지털 플랫폼의 진입장벽은 매우 낮다.
--- 「제1장 서론: 긱경제와 플랫폼 노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