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런 모습이 나는 더 좋았다. 만약 헤세가 성자처럼 고고하게 사는 모습이었다면 나는 그를 인간이 아닌 성인으로만 만나야 한다. 하지만 그는 짝사랑에 빠져 여인들에게 차이고, 젊은 애독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성적(性的)으로 고뇌하는 모습도 있었다. 말 그대로 나랑 별반 다르지 않은 동네 형님 같은 사람이었다. 나이에 따라 책이 다시 온다는 말도 그르지 않았다. 이십 대에 읽은 『유리알 유희』와 오십 대에 읽은 그 책이 같을 리 없다.
--- 「서문」 중에서
사람은 누구나 좌절할 수 있고 방황하는 존재라는 실존적 문제를 소설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것은 헤세가 정신적으로 많은 부분을 배웠던 니체가 말한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스스로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라는 말과도 상통한다. 만약 헤세(곧 주인공 한스)가 신학교에서 중퇴하지 않고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면, 정치가가 되었을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히틀러에 부역하는 정치인이 될 수도 있었다.
--- p.31, 「『수레바퀴 아래서』 산책」 중에서
이 소설을 쓸 당시 서른일곱 살 창창한 나이였던 헤세는 왜 ‘죽음’이라는 화두를 소설에 투여했을까. 그 까닭을 눈치 채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린 시절 신학교를 중퇴한 뒤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고, 또 평생 어느 한 순간도 고독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보지 못했던 헤세이기에 죽음은 항상 가장 가까운 벗이었을 것이다.
--- p.53, 「『크눌프』 산책」 중에서
이 소설이 쓰여질 당시 헤세의 마음은 상당히 불안정했다. 1916년 아버지가 사망하고, 부인 마리아와 아들 마르틴이 심리 치료를 받았다. 자신도 아버지의 사망 이후 형편없이 무너졌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작품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행히 그의 옆에는 지속적으로 심리 치료를 해주던 랑 박사가 있어서 그나마 도움이 됐다.
--- p.67, 「『데미안』과 헤세」 중에서
나 역시 지금까지 선과 악에 대한 답은 없었다. 오히려 세상은 양반과 비양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권력자와 비권력자, 밀레어네어와 비밀레어네어 등으로 구분될 뿐이다. 이런 차이는 평화로울 때는 조용히 강자가 약자의 영역을 침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개의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더 확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때로는 그것을 더 단단하게 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만들기도 한다.
--- p.74, 「『데미안』 산책」 중에서
헤세가 동양에 대해 가진 생각은 신기하리만큼 긍정적이다. 페낭이나 싱가포르에서 만나는 중국인들을 나쁘게 이야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 당시 이미 서양에서는 동양을 비하하는 감정이 있었다. 특히 식민지 쟁탈전은 이미 절정을 넘어 포화 상태에 이른 만큼 서양에서 동양은 그저 차지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헤세는 동양의 정신을 상당히 높게 봤다. 이런 성향은 인도학자인 외할아버지를 비롯해 가족들의 상당수가 동양을 다녀왔고, 동양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헤세가 싱가포르 등을 방문했던 1911년의 동양 모습은 사실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 p.87, 「『싯다르타』와 헤세」 중에서
나 역시 마찬가지다. 돌이켜보면 마흔이 되던 시기에 귀국했고,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겪었다. 가장 힘들 때, 그저 하루하루가 꿈이기를 소망하던 때도 있었다. 어떻게든 그 시기를 버텨갔다. 끝이 보이지 않은 터널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걸었고 마침내 도달한 터널 끝에서 빛이 비추었다. 그리하여 터널이든, 터널 밖이든 세상임을 알았던 것도 이 시기였다. 조개가 진주를 품기 위해서 상처를 얻는 시기가 있듯이 나나 우리 가족에게도 그런 시기라고 위로하기도 했다.
--- p.108, 「『황야의 이리』 산책」 중에서
그러고 보면 헤세의 실제적인 삶도 골드문트와 별반 다르지 않다. 헤세는 소설을 통해 자기의 삶을 고백하면서, 세상에 자신을 변호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결국 헤세는 자신의 속된 삶이 성스러운 삶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또 성(聖)과 속(俗)이 멀지 않고, 다르지 않다는 전작 소설들의 주제 의식을 여전히 의식한 것으로도 보인다. 이는 또한 『유리알 유희』로 이어진다.
--- p.137,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산책」 중에서
『유리알 유희』는 한 사람의 성장에 관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담고 있다. 때문에 읽는 나이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소설 가운데 하나다. 나도 20대 중반에 처음 읽을 때와 50대 초반에 읽었을 때 그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처음 읽었던 그때 나는 티토에 가까운 나이였고, 미래를 찾아서 헤매고 있었다.
--- p.170, 「『유리알 유희』 산책」 중에서
헤르만 헤세가 가장 좋아했던 인물이 누구일까를 물으면 많은 사람들은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니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층위는 다르겠지만 헤세의 문학에서 니체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 있다. 바로 야코프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1818~1897)다. 그는 헤세가 스무 살 때, 79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니, 두 사람 간의 실질적 교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헤세는 확실히 모든 면에서 부르크하르트를 사숙했다.
--- p.175, 「부르크하르트」 중에서
헤세: 대답하기 참 곤란한 질문인데, 피할 수는 없겠지요. 저는 본래 이성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열다섯 살 때 연상의 엘리제에게 반했지만 실연당하고 그 충격으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이성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스물일곱 살 때 마리아와 결혼했습니다. 마리아는 저보다 아홉 살 연상으로 훌륭한 여자입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가 저를 옥죄는 것 같아서 신혼 때부터 집을 떠나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 p.198, 「헤세 가상 인터뷰」 중에서
헤세: 나이가 젊은 층이 읽기에는 정말 쉽지 않은 소설일 겁니다. 그 안에 나오는 개념들의 틀조차 잡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 그 이전의 소설들을 읽었다면 상대적으로 읽기가 쉬울 겁니다. 좀 길지만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 밟아오는 게 좋습니다. 『유리알 유희』를 제가 10년에 걸쳐서 썼는데, 너무 쉽게 읽으면 오히려 제가 아쉽지요.(웃음) 또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크네히트의 전기’를 먼저 읽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 p.209, 「헤세 가상 인터뷰」 중에서